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어린이’, 그리고 ‘어린이와 지식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 : Karin Murris와 더불어 생각하기

#973 이연선, 부산대학교 교수 2023.10.18
“본 원고를 통해 Murris의 어린이에 대한 철학과 관점을 소개하고 어린이와 지식과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개체를 벗어나 관계를 보게 하는 그의 철학은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실재하는 어린이를 보도록 한다.” (본문 발췌)

 

 

2023년 9월, 영국의 유아교육 정치학자 Peter Moss와 핀란드의 철학·문학·아동기 연구자이자 현재 아동기 담론 해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Karin Murris가 한국유아교육학회에서 기조강연을 하였다. 이들은 국내 유아교육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영역에서 다른 관점으로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비판적 교육학자이자 연구자들이다. Murris는 「포스트휴먼 어린이와 초개인적 행위성(Posthuman Child & Transindividual Agency)」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며 유아교육에서 어린이와 아동기에 대해 새로운 개념화가 절실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언어와 이론은 한 번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본 원고를 통해 Murris의 ‘어린이’에 대한 철학과 관점을 소개하고 하고 ‘어린이와 지식과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Murris는 강연을 통해 어린이를 포스트휴먼 어린이로, 자연문화 현상(natureculture phenomenon)으로 설명하며, 행위주체성 내지 행위성(agency)을 인간 신체 내부에 있는 소유의 개념으로 보는 관점으로부터 관계를 통해 상호구성되는 것으로 재배치할 것을 촉구하였다. 즉, 행위성이란 특정한 관계를 이루기 전의 상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체를 벗어나 관계를 보게 하는 Murris의 철학은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실재하는 어린이를 보도록 한다.

 

Murris가 형상화한 포스트휴먼 어린이는 2030 Learning Compass OECD 보고서(2019)에서 개념화하고 있는 행위주체성(agency)과도 관련이 있다. OECD 보고서에서는 학생 행위성(student agency), 공동-행위성(co-agency), 집단적 행위성(collective-agency), 세 가지의 개념화를 통해 행위성을 개인의 특질을 넘어서는 관계적이고 맥락적인 것으로 이해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관계적 존재론이라는 철학적 특질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OECD를 비롯하여 국제기구에서 내어놓는 교육 프레임워크는 인본주의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Murris를 포함하는 포스트휴머니즘 학자들은 포스트개발주의와 같은 Post- 사조를 통해 과학적 진보와 발전에 대한 선형적 담론에 도전하며 인간을 생태계에 가장 우위에 두는 인본주의에 문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인간과 동물, 기계와 물질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며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관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Murris는 자신의 융합학문적 배경으로 인해, 어린이, 어린이와 지식과의 관계, 그들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인 놀이에 대해 유아교육 전공자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유아교육이나 교육학 전공을 통해 훈련을 받게 되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주로 (교육) 심리학에 기반을 두어 형성된다. 이를 바탕으로 교사와 학습자를 구분하여, 학습은 학습자(어린이)가 하는 것으로, 교사는 어린이의 학습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교사의 역할을 구분하여 학습이론을 통해 배우게 되는데, 이 역시도 인지심리학과 학습심리학에 기반한 교수학습방법이 주를 이룬다.

 

철학, 문학과 교육학을 넘나들며 어린이에 집중하여 연구하며 집필을 시작한지 10여 년이 되는 Murris는 2016년 「The posthuman child」(국내에서는 2021년, 「포스트휴먼 어린이」로 번역됨)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이 책을 통해 유아교육 분야에서 규범이 되어버린 어린이에 대한 특정 관점을 와해시킬 것을 주장한다.

 

Murris는 Brandan Reynolds의 도움을 받아 만든 「포스트휴먼 어린이 선언문」(https://www.youtube.com/watch?v=ikN-LGhBawQ)이라는 카툰 영상을 통해 어린이를 재형상화한다. 서양철학과 심리학, 사회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어린이와 아동기에 대한 6개의 형상화를 간략하게 가계도를 통해 제시하였다. 아래의 표는 역사적, 연대기적 혹은 선형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와 같은 관점이 다층적인 차원에서 사고의 도구로 작동하여 실제 어린이와 존재론적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 문제가 됨을 인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발달하는

어린이

–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뿌리를 찾음.

– 아리스토텔레스, 다윈, 피아제, 비고츠키

– 참나무의 도토리처럼 어린이는 선천적(nature)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존재임.

– 성인의 올바른 지도와 비계 설정을 통한 성장과 성숙을 통해 완전한 성인이 될 수 있음.

무지한

어린이

–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로크

– 어린이는 합리적 이성과 지성이 부족한 빈 수레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채워주어야 함.

– 어린이는 경험과 훈련이 필요함.

악한

어린이

– 기독교의 영향

– 어린이는 선천적으로 선함이 부족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임,

– 문화(culture)의 과제는 통제와 훈육인데, 현대 종교의 교리에 따라 교육을 제공함.

– 대진리는 외부에 있으며 주입을 통해 가능함.

순수한

어린이

– 루소의 낭만주의의 영향

– 아동기는 유약한 특수한 시기로, 어린이는 가능한 적은 중재를 통해 자연스럽게 성장함.

– 교사는 학습의 촉진자로 위치됨.

– 어린이는 책임감이 부족하고 보호와 조력이 필요한 존재임.

자기중심적인

어린이

– 심리학자 피아제의 영향, 유아교육 분야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

– 어린이는 사회적 규범과 문화적 가치를 잘 모르고 타인과 공감이 어려움.

– 자신의 상상력으로부터 탈중심화가 어려움. 그래서 성인에 의한 사회화와 주입이 필요함.

유약한

어린이

– 정신의학적 모델

– 어린이는 유약하고 회복력이 부족하며 정상화를 위해 보호, 의학적 처방과 중재가 필요함.

– 어린이는 선천적으로(nature) 회복력이 부족하므로 이를 진단하고 중재하고 의학적 처방을 하고 교사 등을 통해 치료함

(출처:「Posthuman child Manifesto」(https://www.youtube.com/watch?v=ikN-LGhBawQ), Murris(2016). The posthuman child 등을 수정보완함)

 

이와 같은 문화와 자연에 대한 이분법은 성인과 어린이를 명확하게 구분짓는다. 아리스토텔레스, 피아제, 비고츠키, 루소, 로크 등 서구의 철학과 심리학에서 말하는 어린이에 대한 개념이 표준이 되어 규범화되었고 이것은 고정관념이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이와 존재론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Murris는 어린이 형상에 얽혀있는 다음과 같은 담론들을 와해시키고자 한다.

 

1) ‘어린이’를 ‘배워야 하는 학습자’로 위치시키는 이분법을 해체한다.

 

서구 형이상학의 존재론은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문화, 교사와 학생 등 이분법적 구조를 만들고 이것의 관계에 대한 식민지적 관점을 형성시켰다. 데카르트 중심의 서양철학은 문화와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나눈다. 이와 같은 논리는 교육에 그대로 적용되어 성인은 가르치는 사람으로, 어린이는 배워야 하는 사람으로 위치된다. 이분법의 논리는 어린이의 기원, 어린이가 학교교육을 통해 얼마만큼의 지식을 배워 사회화·문화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설, 지식의 근원과 지식의 쓰임을 결정짓는 교육적 관점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와 식민주의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비-관계적 존재론으로 인간, 땅과 지식을 소유재산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논리를 지속시키는 경쟁적이고 개체화된 행위성과 주체성을 강조한다.

 

Murris는 성인/어린이, 교사/학습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을 넘어 관계 속에서의 복잡한 얽힘으로 본다. 얽힘 안에서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하고 연결되어서 구분없이 함께 배운다는 점을 강조한다. 교사는 공동탐구자로 위치되며 언제나 아이들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 이는 수업을 교수학습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탐구공동체로, 공동-행위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2) 발달주의에 녹아있는 식민지적 관점을 밀어낸다.

 

Murris에 따르면 어린이와 아동기를 설명하는 이론인 발달주의(developmentalism)는 자연/문화의 구분을 전제하며 인본주의 관점을 따르기 때문에 어린이에 대한 식민지적 개념을 형성시킨다. 즉, ‘발달하는 어린이’라는 개념에 이분법이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우리는 자연이 아닌 문화/문명의 일부로, 자연을 넘어선 문화화를 강조하며, 미성숙하고 순진하고 아직 발달이 불충분한 어린이 인류를 완전한 인간(fully human)인 성인이 되도록 길들이고 땅을 경작하듯 어린이를 경작하는 것이 교육이 된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는 경제-개발주의에서 보는 저개발 국가(undeveloped nation)와 유사하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개발과 발달이 필요한’이라는 개념을 갖게 한다. Murris는 이를 식민지의 논리(logic of colonialism)로 보았다. 우리가 어린이와 관계를 맺을 때 어린이를 미성숙하고 발달이 불충분한 것으로 보는 이 관점은 서구 철학과 발달이론으로부터 왔으며, 그 뿌리가 깊고 견고하여 교육자의 마음의 습관으로 형성된다. Murris는 어린이들과 함께 하거나 그들을 연구할 때 우리의 관점을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시켜 연령차별주의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탈식민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인인 교사는 가르쳐야 하고, 보호해야 하고, 중재해야 하며, 진단해야 하는 등의 위계적 개념 속에 갇히게 되는데, 성인과 어린이 사이에 마치 벽처럼 그어져 있는 이 이분법적 분리가 심각한 인식론적 불평등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Murris는 아동기는 단지 성인(교육자, 연구자, 부모, 인류학자 등)이 어린이를 이해하기 위한 대상으로의 시기가 아니며, 또한 성인으로 가는 전 단계로만 이해되어야 하는 시기가 아니며, 성인인 우리 또한 여전히 어린이와 같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신생아기, 영유아기, 아동기에서 등장하는 어린이 인류는 부정적이거나 부족의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세계-내-존재이다. 또한 그는 세계의 일부로서 세계를 마주하고 배우고, 생각하는 방식들을 그들 특유의 포스트휴먼적 사고방식과 재현적 지식습득을 거부하고 온 몸으로 체험하고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기 위해 만지고, 시도하고,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탐구정신을 강력한 힘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발달주의에서 벗어난 어린이 보기가 필요하다. 어린이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인 어린이 같은, 어린이의 것(child thing)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다. 탐구 정신, 상상력, 회복력, 유연성, 몰입성이 뛰어나고, 놀이를 통해 스스로 배우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어린이와 더불어, 어린이로부터 배울 수 있음이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3) 어린이와 지식과의 관계: 지식을 ‘교과와 학습영역’으로 세계 외부에 위치시킨 것을 와해한다.

 

지금의 학교교육에서의 지식에 대한 개념을 보면, 어린이가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는 지식이 되는 세계는 외부에 위치해 있다. 지식 세계는 우리의 외부에 있고 교육과정 내에 교육내용으로 안착된 선별된 지식을 텍스트나 활동지 등을 통해 배우는 것을 학교교육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어린이에게 세계에 관한(about) 개념들을 가르치는데, 어린이들이 학교교육을 통해 배우게 되는 세계에 관한 지식은 어린이의 삶에서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우리는 이를 실제 세계와 분리시켜서 가르친다. 그래서 늘 어린이는 지식                       에 관하여 텍스트와 상징적 기호들을 통해 배우게 된다.

 

예를 들어, 어린이가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에 대해 배우지만,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전체 프로젝트적 관점에서 알아가지는 못한다. 직접 보거나 관계 맺지 못한 채 외부에 있는 지식으로 배우거나 혹은 교실에서 기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인간이고 장수풍뎅이는 곤충으로 구분하여, 지능을 가진 더 나은 존재인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과학적 지식, 알아야 할 지식으로 선별하여 접근하게 된다.

 

어린이는 이미 세계-내-존재이자 세계의 일부로 지식은 어린이의 외부에 있지 않다. 지식은 어린이의 생활세계와 물리적으로 얽혀 있다. 어린이가 지식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보면, 생각한 것을 말하고, 보고 경험한 것을 표현하고, 호기심이 생기면 몰입하고, 질문을 쏟아낸다. 어린이는 이때 세계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식(세계)에 거주한다. 즉, 어린이는 장수풍뎅이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장수풍뎅이의 세계에 거주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발견하고 경험하고 공유하며, 참여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세계와 관계를 형성한다. 어린이가 장수풍뎅이에 대해서 질문을 하거나 자신이 경험하고 알아낸 지식들을 쏟아낼 때 어린이는 지식-세계의 일부가 된다. 이때 어린이는 하나의 현상(phenomenon)으로 다양한 물질담론적 장치들의 얽힘이자 행위성이다. 어린이와 교사는 지식을 공동으로 생성해 나간다. 공동으로 지식을 생산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인은 아이의 지식 세계에 깊이 관여하며 함께 고민해 주고 찾아주고 발견해 주며 어린이를 쫓아가는 사람으로 위치된다.

 

Murris는 학교교육에서 지식을 교과나 학습영역으로 분리시켜 놓은 분과적 교과체계(discipline)의 와해(undiscipline)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해외 여러나라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가르쳐야 할 지식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개념화해놓았던 전통적인 관점을 버리고 삶으로의 교육과정, 역량와 내용지식을 통합적으로 제시하는 등의 시도를 하고 있다.

 

 

나아가며

 

“나는 어린이에 대하여(about)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어린이(real children)와 함께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영유아기 어린이가 물활론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연령-특정의 것이 아니라 영원의 것이다.” (Murris, 2021)

 

Karin Murris의 어린이에 대한 접근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한 어린이에 대한 관점을 형성하고 있는 인식론들을 여러 각도에서 문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이를 특정 관점으로 보고 있었음을 깨닫는 것도 어려운데, 그 관점들이 어린이와 함께 하는 과정에서 특정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르침이라는 역할을 부여받고 훈련받은 교사에게 지금까지 배운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해(unlearning)!’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고, 궁금했지만 기존의 인식론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관계성, 물질성, 행위성과 같은 어린이의 배움의 복잡한 현상을 볼 수 있다면, 또한 그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다면 교육자로서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Murris는 유아교사교육을 통해 예비교사가 이미 학교교육에 자연/문화, 교사/학생 등과 같은 이분법적 논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어린이와 아동기는 정치적 범주’라는 Murris의 말에 공감하며, 유아교육 분야에서 어린이와 아동기를 고정된 개념이 아닌 논쟁적인(contestable) 개념으로 가르칠 것을 제안한다. 즉, 어린이를 철학 내지 심리학으로, 존재론 내지 인식론으로 나누어 가르치는 것을 넘어, Freire가 주장한 비판적 문해력과 비판적 사고 등의 역량기반 접근과 더불어 탐구공동체로 이끌어 내는 수업방식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Moss의 유아교육을 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는 것과 더불어 이 과정이 유아교사 양성과정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사고의 탈식민지화에 초점을 맞추어 Murris의 관점을 소개하려다 보니 본 원고에서 자세히 다루지 못했으나, Murris의 어린이와 지식과의 관계를 보는 방식은 신물질주의와 포스트휴머니즘에 강력한 기반을 둔다. 유아교육자로서 우리는 이미 어린이와 함께 할 때 물질적인 방식으로 하는 것에 익숙하다. 즉, 환경과 물질성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기에 주말에 교사는 도토리 껍질을 주우러 가고, 어린이가 놀면서 바꾸어버린 교실환경과 배치를 치우지 못하고 그대로 둔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어린이 인류가 물질이나 자연 등 세계와 관계를 맺을 때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관점을 내려놓는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을 주체로 두고 물질(material)과 물질성(materiality)이 어린이의 배움에 어떻게 관여하거나 기여하는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넘어 교육을 함에 있어 인간-이상 혹은 비인간 물질에도 초점을 맞추는 것이 타자와 관계할 때 존중적인 방식임을 일깨워준다.

 

예를 들어, 어린이와 과학을 할 때 (어린이에게 유아과학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결과론만을 교육의 내용으로 담아 단편적으로 접근하여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과학을 하며, 어린이와 교사는 현 세계의 물질성의 일부로서 거기에 응답하면서, 거기서부터 책임 있게 생각하면서 배우는 것이다(Murris, 2023). 즉,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방식을 정치-윤리적으로, 어린이의 생활세계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한다. 여기서 교사는 어린이의 질문에 정답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공동탐구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린이에게 과학을 교육하지 않고, 어린이가 시간-공간-물질과 얽혀서 지식과 관계를 맺는 맥락으로 들어가 함께 공동탐구해가며 책임 있는 과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의 교과는 ‘놀이지도’라는 과목명 속에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린이들에게 놀이를 지도하지 않아야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References

 

• Barad, K. (2007).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Quantum Physics and the Entanglement of Matter and Meaning.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 Barad, K. (2017). “What Flashes up: Theological-Political-Scientific Fragments.” In Entangled Worlds: Religion, Science, and new Materialisms, edited by C. Keller and M.-J. Rubenstein, 21–88. New York City: Fordham University Press.
• Murris, K. (2016). The Posthuman Child: Educational Transformation Through Philosophy with Picturebooks. London: Routledge. (역서. 포스트휴먼 어린이, 2021, 서울: 살림터)
• Murris, K. (2021). Navigating the Postqualitative, New Materialist and Critical Posthumanist Terrain Across Disciplines An Introductory Guide. New York: Routledge.
• Murris, K. (2023). ‘This is Not a Photograph of Zuko’: how agential realism disrupts child-centred notions of agency in digital play research, Children’s Geographies, 21(3), 547-562.
https://www.youtube.com/watch?v=ikN-LGhBawQ

 

🖨️ 인쇄(Print)하기

부산대학교 교수 이연선

컬럼비아 대학에서 국제교육을 전공했으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서 연구원으로도 근무했다. 현재는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이름과 뜻을 같이하며 교육을 바꾸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글 한국 교육학의 현실, 그 첫 번째 이야기 – ‘외화내빈(外華內貧)’ 다음글 핀란드의 문화, 예술 및 신체 교육을 통한 행복한 삶의 토대 마련하기
칼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