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 우리는 달린다
| 본 글은 2022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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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은 안 달려요?”
매일 아침,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치 안부 인사처럼 같은 말을 묻는 아이가 있다.
“오늘은 세 바퀴만 뛸까?”
“삼십 바퀴 뛰면 안돼요?”
늘 비슷한 대화들을 나누며 아침을 연다.
우리 반 힘찬이(가명)는 감정 조절이 어렵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부정적인 감정 조절이 어렵다. 아이가 학급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흔히 느낄 법한 수많은 감정 중 긍정적인 감정은 대개 표현되지 않고,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분노나 화로 표현된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의 소통과 관계 맺기에 어려움이 생긴다. 힘찬이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농도가 짙을 때 참지 못하고 손이나 주먹을 사용한다. 친구의 몸을 치기도 하고, 위협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사실 반 아이들은 이미 힘찬이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은 학기 초에 나에게 와서 힘찬이와 같은 반인 것에 불편함과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나와 다른,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생활한다. 아이들의 어울림을 바라보며 아이들이 다름과 다양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어쩌면 아이들은 작은 교실 안에서 편견을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며 아이들의 모습을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와 존중을 배워나가야 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이와는 반대로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된 잣대로 바라보는 시선을 표줄할 때가 많다. 소위 어른들의 시선에서 말하는 ‘모범생’을 기준으로 공부를 잘하지 못하거나 행동이 바르지 않은 아이들을 ‘문제아’로 바라보며, 함께 놀거나 어울리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리고 ‘문제아’에 해당되는 아이들은 친구들의 이러한 시선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많은 친구들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여기서 많은 문제들이 시작된다.
학교는 편견이 아니라 존중과 포용을 배워야 하는 곳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도와주기 위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교사도 아이들도 언제든지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생각해 내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꽤 근사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고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 교실을 만들기’라는 주제로 수차례의 학급 다모임을 하였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여러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보았다.
“모든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줘요.”
“실수했을 때에는 괜찮다고 말해줘요.”
“친구가 화가 많이 났을 때에는 잠시 거리를 두고 기다려줘요.”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힘찬이를 나무라거나 비난하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는 합의를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친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작점은 되었다.
이제 나의 역할이 필요했다. 구체적으로 힘찬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힘찬이는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쁠 때 어떻게 하면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태권도에서 운동하면 기분이 나아져요.”
“땀 흘려 움직일 때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아?”
“네.”
힘찬이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어 본 결과, 아이가 움직임을 통해서 감정을 풀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마침 아침 등교 시간에 학교 운동장에서 반 아이들과 달리기를 시작한 옆 반의 모습을 보고, 우리 반도 함께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등교 시간, 가장 많은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맞추어 함께 운동장으로 나가 아침 달리기를 시작했다. 다가오는 팝스 측정 연습을 빌미로 반 아이들에게 먼저 함께 달리자고 제안을 했고, 아이들은 흔쾌히 좋다고 하였다.
어느 날은 세 바퀴, 어느 날은 다섯 바퀴를 뛰기도 하며 아이들과 함께 넓은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평소의 체육 시간이라면 다른 학년 아이들과 운동장을 나누어 써야 하지만, 아침만큼은 운동장 전체가 다 우리의 것이었다. 우리는 넓은 운동장을 마음껏 달릴 수 있었다. 달리다 보면 힘들다는 아이들도 있고, 중간에 낙오되는 아이들도 있지만, 힘찬이는 늘 맨 앞자리에서 묵묵히 달린다.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뒤에 오는 아이들이 힘들어 하니 조금만 천천히 달리자.”
“속도를 맞춰서 같이 달리자.”
“친구야, 같이 가자!”
힘찬이는 달리는 동안 다른 친구들이 힘들어 하면 속도를 줄이고, 먼저 달려나가고 싶어도 기다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빠르게 달리고 싶지만 친구들과 발을 맞춰 함께 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달리기가 지겨울 때면 친구들과 얼음 땡 놀이도 하고, 꼬리 잡기 놀이도 한다. 몸을 움직이며 놀 때 내 몸의 힘을 조절하고, 친구의 몸을 지켜주는 방법을 배운다. 힘찬이는 종종 놀이가 마음대로 안 풀릴 때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친구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좀 더 노력해야 할 점들을 생각해 낸다.
약 십 분가량의 움직임 속에서 힘찬이는 혼자 속력을 내어 달리는 것보다, 함께 천천히 달릴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 아이들 또한 달려나가고 싶지만 발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힘찬이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힘찬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학급 친구들은 힘찬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기다려 준다. 힘찬이 또한 그러한 친구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얼마 전 학급 다모임을 하며 우리 반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반에는 문제아가 없어요.”
그래, 그거다. 우리 반에는 문제아가 없다. 아니,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아이들의 성장은 속도에 연연하지 않는다. 속도가 중요하다면 혼자의 힘으로 전력 질주하여 결승점에 도달하면 된다. 그러나 내가 달려가는 길을 온전히 누리고 즐기기 위해서는 속도가 아닌 방향을 바라보아야 하며,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함께 달리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결국 성장은 다른 사람과 동반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앞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은 성취에 가깝지만, 주위를 돌아보며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성장이다. 성장은 혼자가 아니라 둘, 셋 또는 여럿이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힘찬이와 우리 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보다 함께 이룰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세상이길 바란다. 옆에 있는 친구를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나보다 잘나고 못난 존재가 아니라, 협력하고 함께 하는 존재로 여기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모든 사람과 모든 만남이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힘찬이는 23명의 학급 친구들과 선생님, 더 나아가 학교, 마을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힘찬이가 어느 날 자신이 자라온 길을 되돌아보았을 때, 늘 누군가가 곁에 있어왔음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삶은 더욱 빛이 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반 24명의 아이들과 1명의 선생님은 오늘도 함께 달린다.
서울천왕초등학교 교사로, 2022년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에 글을 게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