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이후, 교권 보호를 넘어 학교 교육 회복으로
| “9월 4일 오늘 점과 점이 된 교사들이 시대적 흐름을 새롭게 만들었으니, 이제 소명 의식을 가진 누군가 나타나면 예측하지 못한 미래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뜨거운 여름은 지나가지 않았다.” (본문 발췌) |
오늘 9월 4일은 ‘공교육 멈춤의 날’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하루 멈춤의 날이다. ‘서이초 교사 추모 집회’를 넘어,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무기력하게 시달리는 ‘교권 보호’를 넘어,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교육개혁의 출발이 되어야 하는 날이다. 이 역사적 과업을 결단하는 선언이 오늘 어딘가에서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이 선언은 진정한 애도의 표현이고, 교사의 죽음도 학생의 죽음도 되풀이되지 않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진정한 교육개혁의 시작이며, 뜨거운 여름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교사들의 열정과 헌신에 대한 응답일 것이다. 오늘 전국적인 추모 집회에 참여하는 교사의 마음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교육개혁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9월 2일 전국에서 20만 이상의 교원이 모인 전국 교사 7차 집회는 우리 역사에 기록될 사건이다.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교사 개인이 점 하나하나가 되어 국회의사당 앞 대로를 가득 채웠다. 특히 9월 4일 임시 휴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교장과 교사를 징역형, 벌금, 파면‧해임으로 협박하는 교육부 공문이 교사의 분노와 열정에 기름을 부었다. 위로와 공감과 치유가 필요한 시점에 상처를 들쑤신 것이다. 교육부의 입장, 용산과 여당의 입장으로 빙의하여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 독재 시대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면, 교사의 죽음과 수많은 교사의 호소에 눈 닫고 귀 닫은 대통령과 장관이 아니라면 도저히 발송될 수 없는 공문인 것이다. 7차 집회의 규모에 놀랐는지, 다음 날(3일) 정부와 여당은 긴급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이미 9월 1일 여야와 교육감들이 합의한 교권 회복 4대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기로 했다. 교육부 장관은 오늘 예정된 ‘공교육 멈춤의 날’에 교사들이 집단행동을 하지 말라는 ‘교권 회복 및 교육 현장 정상화를 위한 호소문’을 호소문 같지 않은 형식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아동학대로 신고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시도교육청이 교사를 직위 해제하던 잘못된 관행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히 개선하겠다고도 밝혔다. 모두 이미 발표된 내용의 반복이었다. 현 상황에 대한 교육부와 교사 사이 인식의 괴리가 뚜렷하다. 교육부, 국회, 교육청은 현 상황을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해결해 달라는 교사의 민원으로 보고 있고, 교사는 학교 교육 회복을 말하고 있다. 교사는 교육을 말하고 있는데 교육부는 말단 하급행정기관을 대상으로 행정 처리 지침을 만들고 있다.
여러 교사의 죽음은 (그리고 여러 학생의 죽음은) 한 개인의 불행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재난이다. 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열정이 학교 사회를 움직인다면, 교사 개인의 교육 열정은 지금도 여전히 강건하다는 사실을 이번 여름 집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교사 개인이 아니라 학교 시스템, 행정 시스템, 법률과 제도에 있다. 그러므로 현 사태는 사회적 재난이다. 법률과 제도의 문제로 인해 학교라는 공공재가 파괴되었고, 어떤 학생과 학부모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교사가 내 아이를 다른 아이보다 더 예뻐하고 보호해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도 법률과 제도의 부산물이다. 하지만 정작 사회적 재난을 해결할 책임과 권한을 가진 교육부와 국회와 교육청은 교사들의 죽음을 사회적 재난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부 장관 명의로 교사를 협박하는 공문이 만들어지고, 교육부 장관이 나서서 수업하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으로는 학교 붕괴라는 사회적 재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교사 민원을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학교 붕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민원 대책이 아니라 총체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며, 그 총체적인 해결책이란 교육개혁을 통해 존경받는 학교를 만드는 일이다. 교사가 학생을 잘 가르치려면 교사가 건강해야 하는데, 지금은 교사가 아프다고 호소해도 교육부 장관은 그저 고통을 견디라고 요구한다. 견디지 못하면 징계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이런 정부로는 학교 붕괴를 막을 수 없다.
6월 21일 교육부가 발표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부터 다시 작성되어야 한다. 아마도 교육부는 이 문건에 담긴 대책 외에는 새로운 공교육 정책을 구상하지 않겠지만, 6월에 발표된 방안은 오히려 아픈 교사에게 새로운 짐을 떠넘기고 있다. “정확한 진단을 기반으로 한 기초학력 책임교육, 학생 한 명 한 명의 사회·정서 역량 지원, AI 에듀테크 기반 학생별 맞춤 교육, 학생의 흥미와 몰입도를 높여주는 교실 수업 혁신, 공교육 내 학생별 소질과 적성에 맞는 맞춤 교육, 고교학점제 기반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 교사의 수업 질 제고 지원 및 교육 활동 보호, 단위학교 자율성 확대를 통한 업무경감 지원”이 바로 교육부가 교사에게 부여한 새로운 업무이다.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교사들을 지원하는 대책이 당장 시급하지만, 그런 대책은 지금 정부 문건 어디에도 없다. 민원 처리 전담반을 구성하여 교장이 민원을 책임지고, 수업 중 핸드폰 사용을 금지하며, 정당한 교육 행위는 아동학대에서 면책된다는 법률 개정만으로 교사의 마음이 치유되겠는가. 아픈 교사가 있는 학교가 어떻게 아이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좋은 수업을 하겠는가. 공교육의 경쟁력 제고는 교사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교사 징계를 고집하는 현 정부가 그렇게 할 가능성은 없다.
교사의 죽음이 사회적 재난이기 때문에 오늘 어느 학교는 임시 휴업을 하고, 어느 교사는 휴가를 낸다. 서이초에서는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하는 ‘49재 추모제’가 열리고, 전국 여러 지역에서는 수업이 끝난 후에 추모 집회가 열린다. 그리고 내일이면 교육부가 예고한 대로 교장과 교사들을 색출하여 징계하는 절차가 시작될 듯하다. 모든 교육청은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청은 교육부의 하급 기관일 뿐이다. 학교 붕괴를 막아달라는 교사를 보호하지 못하는 교육감이 무슨 얼굴로 교사를 대하려는가. 그리고 교사들은 오늘 49재가 끝나면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초등교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주말 집회의 동력은 앞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그리고 누가 어떻게 학교 붕괴라는 사회적 재난을 해소하고 존경받는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남겨져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는 1) 교육 주체 사이의 관계 회복이고, 다음 과제가 2) 대학입시에 종속되지 않는 그 자체로 완결된 학교 교육과정의 회복과 3) 교사의 소외를 극복할 교사의 정체성과 전문성 회복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우선적인 문제는 ‘누가 어떻게’라고 할 수 있다. 1)~3)의 과제를 교육부에 맡길지, 국회에 맡길지, 교육청에 맡길지, 아니면 이미 유명무실해진 국가교육위원회에 맡길지 교사들이 논의해야 한다. 교육부에 넘기면 아마도 교육부는 국가교육위원회에 다시 떠넘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교육위원회는 이번 사회적 재난을 통해 무능, 공감 능력 결여, 철학과 존재감 부재를 온 세상에 드러냈다. 국회는 온통 정쟁과 내년 총선에 매달려 있어서 그런 순진한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나설 의원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교육청은 어떨까. 시대적 사명감과 의지를 갖고 사회적 재난을 해결하겠다는 교육감이 있었다면 사회적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국가가 해야 할 과제이지만 국가 기관은 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국 1)~3)의 과제는 실행되지 못한다. 교사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나서기도 어렵다. 예를 들면 ‘전국교사회의’를 구성하고 교육개혁 이슈를 정리하여 방향성과 정책과제를 제시하여,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여 실행에 옮기도록 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러니 사회적 재난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9월 4일 이후, 우리 사회가 교권 보호를 넘어 학교 교육 회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정부의 공교육 정책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정부의 교원 임용 계획도 재검토해야 하고, 학교 교육과 무관하게 움직이는 대입 제도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정부와 교육청은 에듀테크를 통해 만들려는 가상의 미래 학교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고 성장하는 현실 학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사람이 먼저 있어야 A.I. 보조교사도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 7월 18일에 9월 4일 오늘의 상황을 계획하지도 예측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들이 모여 오늘을 만들었다.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교육개혁은 지금 아무도 추진하지 않고 누군가 계획하지도 않지만, 오늘 점과 점이 된 교사들이 시대적 흐름을 새롭게 만들었으니, 이제 소명 의식을 가진 누군가 나타나면 예측하지 못한 미래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뜨거운 여름은 지나가지 않았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