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 그래, 너도 빛나고 있었구나

#926 정세영, 서울삼전초등학교 교사 2023.07.04
본 글은 2022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에 게재되었습니다.

 

“하찮게 여겨지던 돌들도 각자 자기 쓰임이 다 있는데” 

                                                                           

 

 

매년 스승의 날을 즈음하여 1996학년도에 담임을 맡았던 6학년 제자들이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고 있습니다. 정말 특별히 잘해 준 것도 없는데 스승이라고 기억하고 찾아 주는 그 제자들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단 한 번도 오지 않는 제자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중 한 제자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궁금하기보다는 염려에 가까웠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녀석은 한 해 동안 저와 반 친구들을 무척이나 힘들게 했습니다. 그 아이가 사고를 치거나 힘들게 할 때마다 저는 속으로 나중에 사회에 나가 잘 살 수 있을지 걱정되어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해인가 제자들에게 그 아이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어떻게 사는지, 제대로 살고는 있는지 말이죠. 그랬더니 제자들로부터 돌아온 것은 그 녀석이 아주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니 한참 젊은 나이에 수입차를 끌고 다닐 정도로 사업을 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습니다. 아마 제가 그 아이를 염려하여 물은 마음을 짐작한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다음 해 스승의 날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그 녀석이 찾아왔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컸던 덩치는 여전했습니다. 이제는 저보다 훨씬 덩치가 큰 그 녀석을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꼬옥 안아 주었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녀석이 제게 질문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들은 생활기록부의 행동 발달 상황을 1학년 때 선생님이 쓰신 걸 보고 2학년, 3학년 선생님들이 그대로 베껴서 쓰세요?″
“무슨? 그렇지 않아. 그해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학교생활 전반을 관찰하고 평가하여 기록하지.″
“그런데 저는 1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그리고 중·고등학교까지 어쩌면 그렇게 다 똑같을 수 있죠?″

“······.”

 

순간 저는 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 내용이 결코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내용은 아닐 것이며, 제가 쓴 것 또한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그 아이는 늘 친구들과의 다툼이 잦고 상당히 폭력적이며 학습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녀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과 만나러 가는 길은 깃털처럼 가벼웠으나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발등에 모래주머니를 가득 얹은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그 아이도 분명히 뭔가 잘하는 게 있었을 텐데……. 나는 왜 단 한번도 그 아이의 장점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그 아이가 변할 수 있었고 좀 더 평탄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이후 학교생활은 거의 매만 맞고 살다시피 해서 군대에 가서 맞은 매는 아프지도 않았다는 말을 들으니 너무나 가슴이 아파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생활기록부를 떼어 보고, 그 안에 적힌 내용에 적잖이 실망하고, 지나간 담임 선생님들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얼마나 컸을까 싶었습니다.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느 한 선생님만이라도 그 아이가 잘하는 점을 발견하여 격려하고 독려했더라면 생활기록부를 떼어 보고 실망하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저는 꽃을 좋아해 15년 전부터 깊은 야산에 꽃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비옥해진 땅에 아름다운 꽃밭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삽질이나 호미질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흙보다 돌이 더 많은 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돌들로 인해 너무 힘이 들었으나 그 돌을 이용해 꽃밭 사이의 돌길을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크고 납작한 돌들이 필요했고, 다음에는 그 사이에 끼울 주먹만 한 돌들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사이를 메울 아주 작은 자갈돌들이 필요해지자 땅을 일구며 나오는 돌들이 이제는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렇게 하찮게 여겨지던 돌들도 각자 자기 쓰임이 다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의 쓰임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을까 하는 깨우침을 자연으로부터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우리 아이들을 바라볼 때 장점을 찾아 주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아이들의 행동 발달 상황을 기록할 때에는 아이가 특히 잘하는 점을 위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해줄 필요가 있음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교직 생활을 하다 보면 매년 유난히 힘들게 하는 아이가 반에 한두 명씩 있기 마련입니다. 명예퇴직을 앞둔 이 시점에도 우리 반의 한 아이가 저와 반 친구들을 무척이나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 저 아이도 잘하는 게 있겠지?’

 

그 아이는 어떤 친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마치 기사도를 발휘하듯 적극 나서서 도와줍니다.

 

‘그래, 너도 빛나고 있었구나!’

🖨️ 인쇄(Print)하기

서울삼전초등학교 교사 정세영

서울삼전초등학교 교사로, 2022년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에 글을 게재하였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글 새로운 내신, 현 대입 체제 붕괴의 시작 다음글 ‘학교 교육 정상화’의 역사적 굴곡
칼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