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학교 교육 정상화’의 역사적 굴곡

#927 강태중,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23.07.06
이 글은 ‘학교 교육 정상화’라는 말이 오염된 사태를 되돌아보고 있다. 근대 학교를 세우면서부터 우리는 교육의 정상성을 덕양(德養), 체양(體養), 지양(智養)을 아우르는 데서 찾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적어도 생각으로는, 1980년대까지도 그 전통을 이어 왔다고 정리한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수요자 중심’(때로는 ‘민주적’)이란 기치 아래 추진되어 온 교육개혁이 학교 교육의 의미를 부패시켰다고 주장한다. 이 타락의 역사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고 ‘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건 기만이라고 얘기한다.

 

 

‘입시교육’을 탄식했던 1960년대 이야기

 

60년여 전, 1963년 1월 14일, 당시 서울시 교육회관에서는 대학 입학시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좌담회가 열렸다. “일선 교사, 교육 관계 인사 및 학부형 등 11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좌담회 앞머리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보도되어 있다.1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마치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다니는 것 같은 현 실정입니다. 정서적인 면은 도외시되고 외우기만 하고 있습니다.”
“입시교육 때문에 정상 교육이 잘 안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원문대로 발췌]

 

학교에서 ‘입시교육’ 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식을 지식답게 가르치지 않고 “외우기만” 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 또 지식 외의 면을 소홀히(“정서적인 면[을] 도외시”) 해서도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입시 준비교육”에서 벗어나 ‘교육 정상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데 좌담회에서 이견은 없었다.2

 

 

오늘날엔 정부가 나서서 입시교육 조장

 

오늘날 ‘정상적인 학교 교육’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는 경향은 60년 전과 비교해 딴판으로 변했다. 지난 6월 26일,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했다. 그 요지는 “사교육 수요 원인별 맞춤 정책으로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 내 흡수”하겠다는 것이었다. 학교가 사교육(‘입시교육’)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학교 밖 사교육 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없도록, 대입 준비를 학교에서 충분히 시키겠다는 게 정부의 공식적인 대책이었다.

 

정책의 철학에서 입시교육(과거 표현으로, ‘준비교육’)에 대한 경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학교에서 입시교육을 적극적으로 하도록 이끌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시험[입시]을 치르기 위해서 다니는 것” 같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전통적 입장은 온데간데없다. 학교 교육이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는 이야기가 이제는 아예 뒤집혔다.

 

 

식민지기에도 ‘시험주의 교육’은 악폐로 여겨

 

오랫동안 우리는 학교에서 입시 준비에 매달리면 안 된다고 여겼다. 식민지기에도 입시 위주의 교육 실상은 걱정거리였다. 이를테면, 1939년 5월 3일 자 동아일보에 실렸던 ‘시험주의(試驗主義)의 교육’이란 제목의 사설을 보자.

 

… 입학시험은 필연적으로 교육 방식의 전체를 혼탁 시키고 있는 경향이 현저하다. 교육자는 정상적 교육을 수여한다는 것보다도 입학준비교육을 위해서 급급하며 피교육자 역시 시험성적을 올리자는 것이 면학의 동기가 되고 상급 입학시험에의 합격이 유일한 목표가 되는 듯하다. … 시험본위로 나아간다면 거기에 파생되는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가르치는 선생이나 배우는 생도가 서로 기계적이 되어 무조건한 암기에나 치중하기 때문에 인격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며 모든 사물에 대한 창작성 내지 개성 발휘의 길을 막아서 완전한 교육의 성과를 볼 수 없게 한다. [띄어쓰기만 바꾸고 원문대로 옮김]

 

사설은 학교에 ‘시험주의 교육’이 만연해서 문제라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사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입시에 대비시키라는 현실의 압력에 학교는 꾸준히 굴복해 왔다. 그렇지만 그런 행태에 버젓하지는 못했다. 해선 안 될 짓을 하고 있다고, 늘 꺼리고 꺼림칙하게 여겼다. 지덕체(智德體)의 균형 성장을 막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생각으로는, 학교가 ‘전인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믿었다. 한데 이제 전인교육 이야기는 사라졌다. 적어도 정부의 정책 기조에서는 그 이야기를 더 이상 들어볼 수 없다.

 

교육 당국은 물론 심지어 교육을 걱정하는 교육자나 시민단체들까지도 전인교육을 거론하지 않는다. 관심은 이른바 ‘교육 고통’에 가 있다. 교육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그 고통을 줄이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교육 부담을 줄이는 것이 지상 과제라는 뜻이다. 교육의 성질은 차치하고, 학교는 오로지 ‘사교육 수요 해소’에 진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 정상화’라는 말도 따라 바뀌었다. 이제는 학교가 나서서 사교육을 줄이는 것이 교육 정상화의 방향이다. 대선 후보가 그런 정상화를 외치고, 대통령이 돼서 ‘국정과제’로 거듭 다그친다. 그렇게 몰아오는 동안 어느덧 우리 사회의 학교 교육관은 물구나무서게 되었다.

 

 

학교 이야기는 2000년대를 앞두고 뒤틀리기 시작

 

1980년 7월 30일, 이른바 ‘7.30 교육개혁 조치’가 발표되었다. “교육 정상화 및 과열 과외 해소”라는 제목이 붙은 ‘개혁’이었다. 당시 ‘과외 전면 금지’라고 대서특필로 보도되었다. 발표문에서는 “학교 교육이 입시 준비 중심의 교육으로부터 탈피하여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격 형성을 위한 교육이 되도록” 하기 위한 개혁이라 역설하고 있다.

 

이때 조치에 대한 평가는 갈려 왔다. 평가 논란은 덮어두고 학교 교육의 정상성을 어떻게 보았었는지만 보면, ‘입시 준비 중심의 교육’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면 안 된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정상적인 학교 교육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우리 사회의 생각은 이때까지도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입시 준비 중심으로 흐르지 않는 교육을 정상으로 여겼다.

 

학교 교육 이야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뚜렷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른바 5.31 교육개혁이 이루어지면서 그 경향은 확연해졌다. 당시 ‘문민정부’는 교육개혁을 국정의 핵심으로 삼고 전면적이고도 급진적으로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학교를 이야기하는 기조는 크게 휘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적으로도 호응을 얻었던 개혁 슬로건은 “공급자 중심 교육에서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였다. 이전까지 학교 교육은 정부 관료나 교사 또는 교육전문가 생각대로 이루어졌었지만, 앞으론 학생이나 학부모의 바람(‘선택’)에 따르도록 하겠다고 표방한 것이었다. 오랜 기간 군사정부의 전제적 위압에 눌려오면서, 교육 정책이 돌아가는 데 대해 한 마디 참견도 할 수 없었던 국민에게 ‘수요자 중심’의 슬로건은 호소력이 있었다. ‘문민’의 기치 아래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교육개혁에도 상응하는 기치가 내걸렸던 셈이다.

 

수요자 중심이란 취지 아래, 학교 교육은 서비스 상품과 다름없이 취급되기 시작했다. 학교의 사명은 학생과 학부모가 바라는 상품을 교육 시장에 내놓는 것인 양 와전되기 시작했다. 대입제도에 대해서는 “국민의 고통”을 덜겠다는 말로 개혁 취지를 번안했다. 이때 개혁의 핵심 대안은 “학교생활기록부를 필수 전형자료로” 삼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배우고 생활하는 것만으로 대입 준비가 끝나도록 만들겠다는 계산에서 내놓은 것이었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부상시킨 당시 정책은 종종 학교 교육 정상화에 이바지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평가에서 ‘정상화’는 학교 교육이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대입 전략상, 학생들이 재학 중 교과 성적과 활동 기록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학교나 교사의 지시에 고분고분해졌다는 뜻에 가깝다. 학생들이 학교를 무시하고 사교육 기관에 매달리던 이전의 경향을 다소 눌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는, 바꾸어 보면, 학교에서의 수업과 활동이 더 전면적으로 대입 대비 전략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학교 교육과 관련된 일거수일투족이 온전히 대입에 코 꿰이게 된 셈이다.

 

199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수능 개편도 수요자 중심의 기조를 탔다. 당초에 수능은 “암기 위주의 교육을 탈피하고 사고력을 신장하여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함과 동시에, 대학교육 적격자 선발 기능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되었다.3 그래서 시험 문항은 “통합교과 및 탈교과 방식”으로 출제되었다. “심층적인 사고력과 창의력”을 잰다는 의도였다. “학교 수업이 단편적 지식 암기 중심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곧 ‘수요자’의 원성을 낳았다. “단일 교과목 위주로” 이루어지는 학교 수업으로는 준비시킬 수 없는 시험이라는 비판이 일었고,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일어났다. 결국 수능은 “단일 교과목 위주로” 개편되어 갔다. ‘학교에서 준비시킬 수 있는’ 시험이 되도록 후퇴시켜졌다.

 

단일 교과목 위주로 이루어지는 비정상적인 교육을 지양하여,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추구한다는 취지에서 7년이나 걸려 만들어졌던 게 수능이다. 그러나 도입되자마자 수능의 본래 취지는 수요자에 의해 뭉그러지기 시작했다. 도입 초기에 수능은 교육다운 교육(‘교육 정상화’)을 추구한다는 취지를 관철할 가능성을 보였었다.4 그러나 수요자는 그 가능성을 용납할 수 없었다. 대입 준비가 더 번거로워졌기 때문이다. 수요자는 반발했고, 익숙했던 ‘입시’로 회귀하도록 요구했다. 정부는 곧 수능의 본디 취지를 접었다. 학교 교육이 정상적이지 못하게 될망정, 전에 해오던 대로 해서 대비가 가능하도록 입시를 고쳤다. 수능을 구상하면서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했던 ‘단일 교과목 위주’의 단편적인 교육이 지속될 수 있게, 대입의 양식을 수능 이전으로 되돌린 것이다.

 

교육 정상화를 노렸던 수능은 역설적이게도 그 표적이었던 비정상적 교육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폐기된 셈이다. 이때 정부가 채택한 ‘수요자 중심’ 정책이 말하자면 새로운 ‘교육 정상화’의 노선을 열었다. ‘비정상성의 정상화’라고 볼 만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학교와 학부모 등의 반발에 대해 정부도 처음에는 “시대착오적”이라고 일축했었다. 그러나 결국 굴복했고, 학교 교육의 ‘정상성’ 의미를 뒤집어 갔다.

 

 

‘학교 교육 정상화’는 이제 ‘학관화(學館化)’

 

2010년대 접어들며, 이명박 정부에서, ‘소비자’ 위주 경향은 완고해졌다. 특히, 교육(말하자면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에 예민해지는 사회 추세를 포착해, ‘비용’의 사안을 교육 자체의 사안보다 우위에 놓고 다루면서 굳어진 일이다. 당시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돈’ 문제를 부각했다. 이를테면 교육 관련 공약을 ‘사교육비 절반’이니 ‘반값 등록금’이니 하는 슬로건으로 꾸몄다. 당선된 후에는 그런 공약을 ‘100대 국정과제’에 담아 공식적인 정책으로 밀어붙였다. “사교육 절감형 창의경영학교”를 만들겠다거나 EBS 수능 강의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 그런 정책 부류였다.

 

학교 교육의 의미를 대놓고 뒤집은 사례는 예컨대 ‘사교육 없는 학교’라는 사업에서 볼 수 있다. 이 사업은 “공교육 내실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추진되었고, “내실 있는 정규교육과 학생 수요에 맞는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교육 수요의 대부분을 학교 교육으로 충족시켜주는 학교”를 만들려는 것이었다.5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방과 후 시간은 물론 정규 수업 시간까지 동원하여 사교육 수요에 부응하도록 모든 학교에 촉구했다.

 

기묘하게도 ‘사교육 없는 학교’는 사실상 학원과 다름없는 학교였다. 당시 ‘모델’이라고 추켜세워졌던 학교는 신문 기사에서 아래와 같이 묘사됐다.6

 

… [학교 교장인] 그는 “교사들이 모든 교육을 책임지는 ‘사교육 없는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 ▶우수 학생 수준별 수업 ▶실력 부진 학생 별도 지도 ▶통합논술‧심층면접팀 운영을 통한 ‘맞춤형 지도’ 아이디어를 냈다. 교사들에게 오후 10시까지 자발적으로 근무하자고 설득했다. …이 학교 800여 명의 학생이 학교에서 모든 공부를 해결해도 실력이 늘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 7년간 서울대 합격생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다 지난해는 세 명이나 합격시켰다. 상위권대 진학률도 급상승했다.

 

‘우수 학생’을 따로 분류해 가르치고 ‘통합논술‧심층면접팀’을 운영하는 등의 행태는 사교육 서비스를 그대로 학교 안으로 옮겨놓은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그런 서비스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입결’(대학에 진학시킨 성과)로 증빙하는 행태도 영락없는 학원의 짓이다. 1960년대였으면 위 학교 교장은 공교육의 사명을 버리고 학교를 학관화(學館化)했다고 비난받고, 좌천까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학교를 방문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다른 학교도 따라왔으면 좋겠고, 또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7 학교는 사교육 서비스(즉, 입시 준비교육)에 매진해야 한다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촉구한 셈이다. 이렇게 학교 교육의 의미는 온전히 뒤집혔다.

 

 

지금 정부처럼 ‘학교 교육 정상화’ 외치는 건 기만(欺瞞)

 

윤석열 정부의 현재 정책 기조는 이명박 정부 때 표방했던 것과 다른 데가 없다. 글 앞머리에서 인용했듯이, 최근 발표한 사교육 대책의 핵심은 “사교육 수요 원인별 맞춤 정책으로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 내 흡수”하는 것이다. 발표 자료에서는 ‘공교육 입시컨설팅’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공교육 경쟁력 제고’라는 말도 여기저기 쓰고 있는데, 이때 ‘경쟁력’은 사교육과 대비해서 뜻을 지닌다. 학교가 학원보다 대입 지원 서비스에서 나아야 한다는(그래야 경쟁력을 지니는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제 정부의 정책이나 담론에서 ‘바람직한 학교’란 입시 준비시키는 데서 사교육 기관을 능가하는 학교를 뜻하게 되었다. 학교 교육의 정상화는 학관화와 다름없게 되었다.

 

거듭 짚건대, 1990년대 후반 이후 약 30년의 교육 정책은 학교 교육의 목적 자체를 뒤집는 역사였다. 사회적 요구에 따른 역사였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소산이었다고 정당화할지 모른다. 이런 해명이 거짓이지만은 않다. 지난 30여 년의 정치가 반민주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러나, 민주적인 절차를 밟았었다고 해도, 결국에 학교 교육의 의미를 뒤집어 놓은 교육 정책의 역사가 온당했다고 인정하긴 어렵다. 교육의 본연적 가치가 다수결로 규정될 수는 없을 터이다.

 

학교 교육의 가치는 사람의 품격을 다듬는 사유(思惟), 사회 공동체 구성원의 덕을 닦는 사유를 바탕으로 가다듬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교육 정책에서 그런 사유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어야 할 사회적 숙의(熟議)는 늘 생략되었다.

 

앞에서는 식민지기까지만 얘기했지만, 입시 위주로 기우는 교육을 경계한 역사는 근대 학교의 시작에서 비롯했다고 보아 무리 없을 것이다. 5.31 교육개혁이 이루어지기 100년 전이었던 1895년, 고종은 “학교를 널리 세우며” ‘교육입국 조서’를 내렸다.8 조서는 “교육하는 강령”으로 ‘덕양(德養), 체양(體養), 지양(智養)’을 언명하고 있다. 학교에서 입시(출세) 위주 교육을 당연시하는 행태를 용납할 리 없을 강령이다.9 이렇게 짚는다면, 5.31 교육개혁 이후, 지난 30여 년의 교육 정책은 100년 넘게 어렵사리 지탱해 오던 우리 교육 전통을 개혁의 이름으로 무참히 뭉갠 셈이다.

 

이런 엄청난 사태가 일어나도록 우리는 성찰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 마땅한 성찰을 건너뛰고 교육 정상화를 도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백년대계의 뜻을 오롯이 살리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학교 교육의 의미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교육 정상화라는 말을 쓰는 데 조심하고 엄격해지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 인쇄(Print)하기

각주

  1. 동아일보(1963년 1월 17일). 입시와 준비교육의 문제점.
  2. 좌담회에서는 ‘교육 정상화’라는 말도 쓰였으며, 당시에(이전부터) 교육 문제를 이야기할 때 ‘준비교육’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입시에 대비하는 행태를 심각한 교육 문제라 여겼다.
  3. 이하 수능에 관련된 인용은 ‘대학수학능력시험 20년사’(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4)에서 온 것이다.
  4. 당시 언론에서는 시험 문제가 참신하다고 보도했고, 학생들 사이에 독서 열풍이 일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심층적인 사고력과 창의성’을 키운다는 학교 교육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5.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2009년 5월 14일). 사교육 없는 학교 지원사업 기본 계획.
  6. 중앙일보(2009년 2월 4일). 선생님 한 명이 학교를 바꿨다.
  7. 한국일보(2009년 2월 13일). 이 대통령 “학교평가-교장평가 연결돼야”.
  8. 고종의 교육 조서 인용은 박연호(2013)의 ‘사료로 읽는 한국 교육사’에서 딴 것이다.
  9. 조서에서 강령으로 제시한 ‘덕양-체양-지양’이 오늘날 관용적인 ‘지(智)-덕(德)-체(體)’의 순서대로가 아닌 사실도 깊이 음미해 볼 점이다.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강태중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글 [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 그래, 너도 빛나고 있었구나 다음글 학습과학 새 연재(19) : 기초학력 향상, 동기유발이 먼저다! (Revised)
칼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