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 아이를 보듯 나를 본다
| 본 글은 2022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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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하던 일상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코로나 19. 우왕좌왕한 세상에 가족들은 가장 안전한 울타리에서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모두가 어려웠던 이 시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평소보다 가중된 엄마의 역할도, 아이들의 학업 손실도 아닌, 사춘기에 막 들어선 딸과의 관계였다. 아이의 행동을 볼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럴 때마다 질타와 원망으로 관계를 쌓아가고 싶지 않았다. 사춘기라고 해서 꼭 이렇게 서로에게 날을 세워야 할까? 나날이 변해가는 딸을 이해하고 싶었다.
6살 차이의 남매를 임신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을 겪으며 편입한 대학교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될 시기였지만, 내게 졸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와 정서적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졸업을 유보하고 청소년 교육학 ‘청소년과 부모’ 과목을 수강하였다. ‘부모가 되기 전에 이해해야 할 나의 모습’의 단원을 배울 때였다. 교수님께서 던져 주신 가벼운 질문에 생각지 못한 어린 나와 마주하게 되며 비로소 사춘기 딸과 만들어 가야 할 오늘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내가 자라면서 부모님께 들었던 말 중 가장 좋았던 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부모님께 들은 좋은 말은 평생을 살아가며 원동력이 되어 주는 것이었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며 의식적으로 결과보다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칭찬하려고 노력했는데, 그것들이 특정한 말들의 반복이 아니었는지 점검했다.
다양한 칭찬을 받아보면 잠재력이 깨어난다. 평범하던 내가 학창 시절 선생님께 들은 뜻밖의 칭찬에 나의 새로운 장점을 알게 되었다. 인지하지 못했던 장점을 발견했을 때의 자존감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정도로 높아졌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청소년기에 겪는 불안을 다독이면, 아이만의 강점으로 자존감을 채워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두 번째 질문은 ‘내가 자라면서 부모님께 들었던 말 중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은 말은 무엇인가?’이다. 특별히 상처 되는 말이 기억나지 않지만, 학창 시절 어떤 이야기를 해도 짜증으로 대답하시던 친정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성격이 급한 나는 즉문즉답을 원하지만, 내성적이고 신중한 성향의 아이들은 대답과 행동을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차분히 기다려주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답을 재촉했다. 특히 첫째인 딸에게 말이다. 화를 참지 못하고 가시가 박힌 말을 그대로 쏟아내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반복적 대물림 속에 무의식적으로 짜증이 많은 엄마가 되어 있지는 않은가? 다정한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잠깐을 기다리지 못하고 닦달을 하던 날들을 반성한다.
세 번째는 내가 자녀에게 실제로 자주 하는 말의 횟수와 시간을 묻는 질문이었다. ‘사랑해’, ‘이쁘다’, ‘잘했네!’, ‘왜 이렇게 귀여워?’, ‘우와! 대단한데?’,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했지?’, ‘7살 중에(혹은 13살 중에) 제일 멋져!’, ‘성실한 건 아무도 우리 딸 못 따라온다.’, ‘못해도 괜찮아. 네가 그 순간이 즐거우면 된 거야.’ 내가 자주 하는 이야기들을 분 단위로 나누어 보았을 때 하루 24시간 중 겨우 10분 정도만 긍정적인 이야기를 했던 건 아닐까? 아이의 미성숙함을 어른의 시각으로 보며 나처럼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내길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닌지 되짚어 보았다.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조금 더 낫게 살아가는 지름길을 알려주고 싶어서 많은 설교를 늘어놓았었다. 앞으로는 많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마지막 질문은 ‘자녀가 나를 생각할 때 어떤 부모라고 생각해 주길 바라는가?’였다. ‘엄마랑 대화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민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아.’라는 답을 적었다. 내 앞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부모님께 고민을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헛헛함이 밀려왔다. 사춘기 시절 ‘엄마에게 이야기해 봤자 소용없어.’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는 크든 작든 언제나 스스로 해결했으니 말이다. 아이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고, 사회적 질타를 받을 만큼 나쁜 상황이 생겼더라도 가장 먼저 속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 엄마, 바로 나였으면 좋겠다.
네 가지의 질문을 받고 몇 번이고 읽어 내려가며 어느 것 하나 선뜻 답을 작성하지 못했다. 맞벌이 부모님, 무남독녀였던 나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었고, 뭐든지 알아서 해내야 했다.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부모님은 나에게 관심이 있으셨지만, 두 분은 다른 교육관과 사고방식으로 자주 다투셨다. 싸움에 지친 엄마는 약한 몸으로 일을 하시며 신세한탄의 넋두리를 하셨다. 그때마다 나에게 본인의 기분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셨다. 매일 기분이 다른 엄마 밑에서 나는 정서적으로 불안했다. 그럼에도 나는 누가 봐도 독립적이고 올곧은 아이였다. 학창 시절 특별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지금도 친정엄마는 종종 아이에게 너희 엄마만큼만 하며 살라고, 걱정 한번 끼치지 않고 잘 자랐다고 말씀하신다. 나 자신도 사춘기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에게 나처럼 살라는 말씀을 듣고 보니, 크고 작은 문제들에 혼자 분투했던 내가 보였다. 보호받지 못하고 덩그러니 놓여 있는 불안하고 외로운 어린 내가 말이다. 세상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는 청소년기에, 고민을 함께 나누며 의지할 엄마가 절실히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내 나이는 어느새 엄마의 나이가 되었다.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고단한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를 안아 줄 사람은 여전히 나뿐이다. 그 시절을 겪고 지금 엄마와 나의 관계가 되었듯이, 딸과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가 미래의 우리 관계가 되어있을 것이다. 먼 훗날 아이가 위와 같은 질문들을 받고 답을 해야 한다면, 현재의 나처럼 서글픈 마음에 눈물짓는 일이 없길 바란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를 통해 내 안에 멈추어 있던 상처 받은 어린 나를 아이와 함께 키워 가는 일이 아닐까? 건강한 부모가 되기 위한 공부로 더욱 성숙해진 엄마가 되어, 사춘기의 아이를 사랑으로 더 많이 안아줄 것이다.
서울창도초등학교 학부모로, 2022년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에 글을 게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