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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교육의 동행은 가능한가?

#880 김병만, 경남대학교 교수 2023.03.14
“이제 돌봄은 교육과 보육의 이념적이고 분절적인 경계를 넘어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는 유보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본문 발췌)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두 해가 지났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 가면 같은 마스크를 쓰고 학교로 들어가던 아이의 뒷모습이 아직까지 눈앞에 아른거린다. 학부모가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걱정도 공존했던 기억이다. 걱정의 중심에는 돌봄이 있었다. 이 시기 유례없는 코로나19로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 그리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정부는 서둘러 가족 돌봄 휴가 기간을 연장하였고, 재택근무를 권장하였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는 많은 고충을 겪었다. 막 초등학생이 된 큰 아이, 그리고 유치원에 다녔던 작은 아이와 함께 맞벌이로 생활했던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제도권의 돌봄을 기대했던 소박한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저출생 관련 연구를 수행하며 만나왔던 구성원들의 원망 가득한 목소리가 현실이 되었다. 제도와 사업으로 바라본 돌봄의 한계가 필자에게도 분명하게 다가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방과 후 어떤 돌봄을 받을지, 돌봄의 프로그램은 무엇이고, 시간과 비용은 어떠한지 정도에만 관심이 있었다. 아이의 신체적 돌봄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돌봄의 주체인 아이는 주변에 머물러 있었고, 돌봄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녔을 때가 좋았어요,
초등학교에 가니 집에 너무 일찍 와요”

 

열흘 전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나 역시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를 가진 부모들의 일상적 푸념에 공감하며, 우리들의 ‘레트로토피아’1를 부르짖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돌봄의 의미가 이것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유아교사 교육자로서 필자는 유아교육과 보육, 그리고 돌봄의 본질을 예비교사들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지 않았던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돌봄 담론에 대한 정리와 사유의 필요성을 느꼈다.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필자는 교육과 보육의 어느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는 돌봄을 소환하고자 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과연 돌봄과 교육의 동행은 가능한가?

 

 

돌봄의 인식

 

우리는 돌봄을 ‘취학 전 영유아기’와 ‘취학 후 초등학교 저학년기’로 나누어 이해한다. 물론 본질적 측면에서의 돌봄이 아닌, 제도적 측면에서의 돌봄 관점이다. 유치원의 ‘기본교육과정과 방과 후 과정’, 어린이집의 ‘보호와 교육이 통합된 보육’2, 초등학교의 ‘교육 및 방과 후 돌봄’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제도적 측면에서의 돌봄과 더불어 다양한 유형의 돌봄 서비스는 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무상교육·보육, 의무교육 이외 시간에 부모를 대신하여 돌봄이 필요한 아동에게 제공하는 일련의 서비스를 일괄 포함한다.

 

제도적 측면에서 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무성은 부모가 일하는 동안 자녀를 대신하여 돌보는 대체서비스로 볼 수 있다. 부모가 직접 자녀를 돌볼 경우, 임금에 대한 손실을 사회가 보존하는 방식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함께 부모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시간을 지원하는 제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할 경우, 그 대가를 지급하는 가정양육수당과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부모급여 역시 돌봄의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현금 지원식 돌봄 서비스는 성 평등의 관점에서 비판의 지점이 발생한다. 이는 다수의 여성이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하여 성 역할 재생산의 우려가 존재한다. 또한 자녀 돌봄 시간지원 제도 역시 여성 위주로 이용될 경우, 젠더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정부에 이어 현 정부에서도 유아교육과 보육 그리고 돌봄의 국가책임 강화를 주요 국정과제3로 선정하였다. 이에 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돌봄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 자명하다. 정부는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교육과 돌봄의 국가책임 강화를 목표로 하였고, ‘유치원 방과 후 과정 대상과 운영시간 확대’, ‘유보통합 추진’ 등을 주요 정책 추진과제로 제시하였다. 이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국공립 유치원·어린이집 확충’, ‘방과 후 과정 확대’, ‘돌봄 시간 다양화’, ‘돌봄 서비스 내실화’ 등 교육 공공성 확보 정책의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에서는 국정과제에서 제시한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유보통합’, ‘유치원 방과 후 과정’ 및 ‘초등학교 돌봄교실 운영 확대’를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모든 교육대상자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학부모의 돌봄 부담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돌봄은 우리의 인식 틀에서 정책과 제도, 그리고 서비스의 물질(matter)로 뿌리 깊게 고착화되어 있다.

 

 

돌봄의 해체4

 

필자는 본고를 통해 돌봄과 교육의 동행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원고 작성 중에 있는 지금, 필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독자의 의견이 매우 궁금하다. 예단하기 쉽지 않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돌봄과 교육을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고 있어 왔다. 특히 보육과 교육을 분절적으로 경계 짓고 다른 차원으로 바라보는 인식론적 접근을 하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물론 이런 필자의 고정된 사유 역시 또 다른 편견의 지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교육과 보육, 그리고 돌봄이 다른 것인지에 대해 주체자의 입장에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봄 담론에 대해 임부연(2023)은 단순한 양육을 넘어 관계와 배려, 존중의 행위이자 윤리적 가치로 이해되어야 하며, 지금까지 돌봄 담론에서 배제된 ‘인식론적 돌봄’의 관점에서 보다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돌봄, 가르침, 배움의 분절적인 표현을 해체하고, 통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에 필자는 돌봄에 대한 지배적인 형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다양한 관점과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Noddings(2013)는 돌봄을 학교와 교육이라는 맥락과 연결한 후 이를 최초로 담론화하였는데, 실제적으로 돌봄은 실용적인 관점보다 인식론적인 용어로 활용되는 경향이 많음을 제기하였다. 또한 Gilligan(2016)의 경우, 인간은 인식과 판단에서 개인의 경험, 정서와 무관한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행위에 돌봄 인식이 포함됨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논거를 따라가 보면 교육과 돌봄의 분리현상과 통합현상은 용어상으로 모순을 안고 있음이 자명하다(임부연, 2023). 상기의 논점은 돌봄 담론을 후기구조주의 이후 철학적 담론으로 논의한 포스트휴머니즘 관점을 통해 보다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휴머니즘 관점에서 보면 우주와 세계, 인간과 자연은 서로 뒤얽혀 있고, 인간 중심과 더불어 아이가 중심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재사유하게 한다. 아울러 자연을 돌보는 인간 중심적이고, 인간 우월론적인 관점 역시 비판한다. Karin Murris(2016/2021) 역시 아이들은 완전히 발달된 성인의 외부에 있는 열등한 위치에 있는 존재가 아님을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철학적 배경은 고정된 돌봄 사유에 대해 해체와 유연함을 제공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은 사회복지적 측면에서 약자와 요보호 대상의 보호를 의미하는 좁은 시선과 선별적인 지원의 의미에서 벗어나야 한다. 돌봄은 사회를 변화하고 혁신하는 주제어로 거듭나야 한다. 돌봄은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고, 가장 숭고한 것이어야 한다(The Care Collective, 2020/2021). 돌봄은 ‘보편적이고 상생적인 돌봄’으로서 돌봄의 행위는 가정, 이웃, 지역사회, 국가와 지구 전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최우선적으로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지금 논의하고 있는 돌봄 담론은 포스트휴머니즘의 인식론과 연계하여 돌봄 교육의 새로운 방향성 제시로 나아가야 한다.

 

 

돌봄과 교육의 동행

 

이제 돌봄은 교육과 보육의 이념적이고 분절적인 경계를 넘어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는 유보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전의 것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데 어우러져 끌어안고 상생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돌봄과 교육은 얽힘 그 자체로 함께 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특성과도 부합되는 부분이다.

 

돌봄의 공적 접근과 책무성 강화를 위하여 ‘돌봄과 교육’을 통합한 스웨덴의 사례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아울러 유아를 위한 무상교육을 돌봄과 교육으로 분리하지 않고 ‘돌봄 있는 교육’으로 통합하여 제공한 호주의 사례도 그러하다. 아이들의 해방감과 자유로움, 그리고 안전한 놀 권리를 보장하며 ‘보육과 교육의 동시적인 목적’으로 운영하는 일본의 사례 역시 우리가 필수적으로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정선아, 2017).

 

돌봄과 교육은 상호 분리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돌봄과 교육의 본질은 동등하기에 필연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이 인식론적 돌봄에 가장 충실한 시기이고, 모두 포스트휴먼적이라고 말한 Murris(2016/2021)의 주장에 주목해야 한다. 끝으로 ‘돌봄의 해체’ 장에서 참고한 논문에서 발췌한 아래의 글을 독자들에게 바친다. 아이들의 인식론적 돌봄에 대한 이해, 그리고 교육과 돌봄이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의미 있게 전달되길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유아들은 계속 운동하는 세계 속에 속한 존재자로서 ‘함께 더불어 사는 존재자’이다. 유아에게 식물과 동물은 관찰이나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에 관한 지극한 관심(caring about)’으로서 돌봄의 마음으로 작용한다. 인간중심적 돌봄은 대상이 보호의 대상이 되거나,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흥미와 관심의 지속성’은 될 수 있으나, 포스트휴먼 존재로서 유아는 꿀벌과 친구가 되고 나도 꿀벌이고 싶은 관계론적 마음으로 운동한다. 유아는 꿀벌과 비, 동백꽃, 모래를 자신의 신체와 뒤섞으며 내부작용한다. 유아가 그것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세계가 유아의 행위를 유발하는 인식론적 관계에 기반하여 세계를 알아간다. 유아는 사물의 특성을 잘 알고 있으며 더 알고 싶어 하고, 그 사물이 지속적으로 자신과 관계 맺으며 생명성을 유지하도록 돕고 싶어 한다. 그리고 벌과 모래, 꽃잎에 대해 어른들이 기대하는 지식도 많이 알게 된다. 이것은 확실히 인지적이고 신체적이며 감정적이기보다 인식론적이다. 돌봄의 인식행위는 두뇌의 사고, 언어, 판단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서로 내부작용하며 알아가는 배움이다.

 

출처 : 임부연(2023). 유보통합 돌봄에 대한 학문적 탐구 : 돌봄의 인식론적 전회를 중심으로. 영유아교육과정연구, 13(1), p.117.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참고문헌

 

• 임부연 (2023). 유보통합 돌봄에 대한 학문적 탐구 : 돌봄의 인식론적 전회를 중심으로. 영유아교육과정연구, 13(1), p.117.
• 정선아 (2017). 영유아기와 초등 학령기아동 돌봄서비스 강화 및 질 제고 방안 : ‘돌봄’과 ‘교육’의 통합 관점에서. 어린이교육비평, 7(2), 39-59.
• Baunam, Z. (2018). 레트로토피아 : 실패한 낙원의 귀환 [Retrotopia]. 경기: 아르테. (원전은 2017년에 출판)
• Gilligan, C. (2016). In a different voice: psychological theory and women’s development. Cambridge and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 Murris, K. (2021). 포스트 휴먼 어린이 [The posthuman child]. (이연선, 변윤희, 손유진, 신은미, 이경화, 한선아 역). 서울: 살림터. (원전은 2016년에 출판)
• Noddings, N. (2013). Caring: a relational approach to ethics and moral education. Berkeley, California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The Care Collective. (2021). 돌봄 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 [The care manifesto]. (정소영 역). 서울: 니케북스. (원전은 2020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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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레트로토피아’는 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Zygmunt Bauman(2017/2018)의 유작이다. 그는 현대 사회의 유동성과 인간의 조건을 분석하여 대중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전 삶을 낭만화시켜 그리워하며 이상화하는 것’을 ‘레트로토피아’라고 지칭하였다.
  2. 어린이집의 보육에는 시간연장, 휴일보육, 야간보육 등 시간제보육이 포함된다.
  3. 윤석열 정부는 유아교육, 보육, 돌봄과 관련한 국정과제로 ‘46. 안전하고 질 높은 양육환경 조성’, ‘84. 국가교육책임제 강화로 교육격차 해소’를 발표하였다.
  4. 본 장은 2023년 월 영유아교육과정연구에 게재된 임부연 교수의 ‘유보통합 돌봄에 대한 학문적 탐구 : 돌봄의 인식론적 전회를 중심으로’ 원고 내용을 일부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경남대학교 교수 김병만

아동학과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후 현재는 경남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유아 교육정책을 주로 연구하며 관심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구성원의 참여와 상생을 추구하는 공동선의 가치가 영유아 교육정책에 반영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상향식 영유아 교육정책 수립 및 평가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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