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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소담소담 No.2] 청소년기 푸른 색 마침표를 찍은, 예지 & 다희와의 만남

2020.05.26

 

Interviewer. 김명진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한 살을 더 먹을 때가 되니, 여기저기서 유독 짙은 한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 한 살을 얼른 더 먹고 싶어서 군침을 꿀떡꿀떡 삼키는 도깨비들이 있습니다! 누구냐고요? 에… 그건 바로… 청소년 계의 말년병장, 구(舊) 고3 상전들입니다.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成人)으로 설레는 첫발을 내딛을 우리의 19살, 청소년들입니다.

 

어른들은 우리 청소년들을 늘 걱정과 근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참 이상하다 합니다. 버릇이 없고 제멋대로이고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근데, 아시죠? “요즘 것들 참 까졌다.”는 말은 고대적부터 속담처럼 내려오는 말이라는 거 말예요.

 

그런 편견을 박살내 줄, 멋지고 당찬 우리 청소년들이 여기 있습니다. 김예지(00고 3학년)와 정다희(동덕여고 3학년)가 그렇습니다. 이 둘은 해외 봉사 활동에 참가하면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화목한 공동체를 도모하고, 작지만 좋은 생각들을 ‘나’의 사회 속에서 실천해 가면서 그렇게 건강하게 청소년기를 살아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끝자락에 이르렀습니다. 예지와 다희의 ‘청소년기 표류기’, 부제로는 ‘성장의 기록’. 한번 읽어 보실래요?

 

아참, 예지와 다희가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서 난파되지 않도록 해 준 튼튼한 밧줄은 바로 ‘봉사 활동’이었습니다. 예지는 무려 500시간, 다희는 200시간! 자, 보통 아이들이 아니라는 느낌 오셨죠?! 느낌 아니까~ 이제 시작합니다!


 

 

다른 게 아닌, ‘봉사 활동’에 꽂힌 이유

 

Q) 봉사 활동을 하면서 만난 친구라니 좀 특별해 보여요. 되게 ‘홀리’한 느낌이랄까. (하하) 어떤 계기로 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요?

 

다희)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1년 동안 연수를 했어요. 미국은 학과 공부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스포츠나 봉사 활동 같은 다양한 활동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사실 중학교 때는 형식적으로 막 일회적으로 봉사하러 다니느라 좀… 회의적이었는데, 미국에서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어려운 이웃과 자연스럽게 함께 나누는 미국의 문화를 접하면서 과거의 저를 반성했어요.

 

Q) 미국 유학 생활이 지금 다희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나 보네요?

 

다희) 그렇죠. 한 번은 어느날 여학생들이 학교 로비에 모여서 머리카락을 웃으면서 잘리고 있는 거예요. 약간 좀 괴기스럽죠? (웃음) 그때 저도 진짜 그랬어요. 근데 그게 소아암 환자들이 가발을 만들도록 머리카락을 기부하는 봉사활동이더라고요. 학생들도 되게 ‘쿨하게’ 거부감 없이 참여하고요. 그런 모습이 되게 멋져 보였고, 지금의 내가 배울 게 많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후에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청소년활동진흥센터라는 기관을 알게 됐고, 빨간 머리 예지도 거기서 만났고 (웃음) (예지는 수능을 마치고 예쁜 와인 색으로 단발머리를 염색했다.-인터뷰어 註), 캄보디아에 해외 봉사도 다녀왔죠.

 

예지) 저는 중학교 때, 학생회 활동을 했었어요. 근데 공연을 준비해야 해서 연습 공간이 필요했어요. 알아보니까 청소년 수련관이라는 곳이 대관료가 저렴하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청소년 수련관에서 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알게 됐어요. 그렇게 ‘국제 성취도 포상제’라는 활동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딱 왔는데, 학교에 정말 길게 있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학교도 학교지만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청소년 운영 위원회’에서 운영위원으로 쭉 활동했어요. 그러던 중에 캄보디아 해외 봉사 프로그램을 알게 돼서 다녀왔어요.

 

 

예지와 다희의 진짜배기 경험들

 

Q) ‘청소년 운영 위원회’는 좀 생소한 이름이네요. 그간 어떤 활동들을 해 온 거예요?

 

예지) 이름이 좀 거창한데…(웃음) 대내사업부 팀장과 운영위원장으로 있었고요, 수련관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기도 하고, 청소년 여가 생활이나 식생활 개선 캠페인 같은 걸 하면서 길거리 부스를 설치해 운영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 청소년 자치 활동에 참여해 왔어요. 가장 인상에 남는 건, 여성가족부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지역사회 변화 프로그램’ 공모전에 참가해서 ‘라이스 나이스’와 ‘DB 투어’라는 사업을 하기도 했어요.

 

Q) ‘라이스 나이스’라면, ‘밥이 좋다’ 뭐 이런 취지의 캠페인인가요?

 

예지) 네, 요즘 학생들이 아침밥 먹고 학교 다니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아침을 챙겨 먹자는 취지로, 주먹밥 같은 아침 메뉴를 만들어 특정 학교의 반을 선정하여 이벤트성으로 나눠 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설문지를 받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여러 가지 조사해서 손쉬운 아침밥 레시피에다가 아침밥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어요.

 

Q) 그럼 여성가족부의 공모전에 지원 신청서를 내서 심사를 통해 선정이 된 거군요?

 

예지) 맞아요. 청소년 운영 위원 활동이라는 게 청소년 수련관 내의 청소년 활동만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지역 사회 청소년들의 생활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보자는 것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있어요.

 

Q) 캄보디아 해외 봉사도 그런 맥락에서 가게 된 건가요?

 

다희) 아, 이건 제가 말할게요. 해외 봉사는 청소년 활동 진흥 센터에서 대한민국 해외 봉사단을 모집하는데 거기 지원해서 다녀온 거예요. 해외 봉사단이라는 게, 가서 자원 봉사도 하고, 거기 청소년들하고 문화 교류도 하고, 현재 지구촌의 문제랄까 이런 것들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기회거든요. 물론 가서 우리나라 전통 문화를 알리는 일도 하고요. 근데 예지는 태권도 유단자였기 때문에 서울 팀의 태권도 공연을 담당했었어요. 저는 사물놀이 공연을 했고요.

 

Q) 그럼, 가서 봉사만 한 게 아니라, 태권도 시범도 하고 외국인들 앞에서 사물놀이 공연도 하고 그랬다는 거네요?

 

다희) 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만나서 사물놀이 연습하고 맞춰보고 하느라 정말 고생했어요. 그래도 내가 외국에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대표라고 생각하니까, 무슨 책임감인지 정말 열심히 했죠.

 

예지) 저도 그랬어요. 태권도 단증이 있기는 했지만 그거 준비하느라 꽤 힘들었어요. 그저 나 혼자 태권도를 할 줄 아는 것과 내가 준비한 프로그램에 맞추어 다른 사람들과 무예 시범을 보이는 건 정말 다르더라고요. 제가 다녔던 관장 사범님에게 조언을 구해 봤지만 제 상황에 잘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 저 혼자 태권무를 만들었다니까요. 당시 K-pop 열풍이 불었던지라 유명한 K-pop 안무를 태권무 안에 넣느라 고생했어요. 10월에 캄보디아에 갔는데, 5월부터 준비를 시작했어요.

 

Q) 그럼 몇 달 동안이나 준비를 한 거네요? 학교생활하면서 벅차지 않았어요?

 

예지 & 다희) 에휴, 당연히 벅찼죠! (웃음)

 

예지) 집에서 청소년 수련관까지 거리가 좀 멀어요. 수련관 가는 날이면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때부터 밀린 공부와 숙제를 했어요. 근데 그런 어려움 자체가 해외 봉사를 선택했다면 감내해야 하는 일들인 것 같다고 느껴져서 견딜만 했어요. 내가 내린 결정에 따른 부수적인 것들은 나 스스로 책임지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다희) 그리고 캄보디아의 봉사 활동은 거의 ‘문화 사절단’ 같은 활동이었어요. 일방적으로 우리가 가서 못사는 나라를 잘살게 해 주자 이런 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접하고 캄보디아 대표로 참가한 청소년들 집에 직접 방문해서 여러 가지 문화 교류를 했어요. 물론 어려운 아이들 돌보는 일이랑, 건물 짓는 일도 하긴 했지만요.

 

Q) 해외 봉사는 그럼, 말 그대로 ‘우리나라 청소년 대표’로 나가서 캄보디아 청소년들과 ‘문화 교류’를 한 셈인 거군요?

 

다희) 그렇죠.

 

Q) 봉사 활동이라는 게 어찌 보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굳이’ 그런 활동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예지 & 다희) 재밌으니까요!

 

Q) 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좋은 일을 홍보하고 활동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는 거군요?

 

다희) 그럼요! 친구들과 모여서 이렇게 저렇게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준비해 가는 과정 자체가 즐겁고 신나잖아요. 물론 우리가 하는 활동들이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에 더 보람되고 뿌듯한 거죠.

 

예지) 뭐든 그런 것 같아요.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 더 좋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 멘토링을 하다 보면, 공부하는 것도 그렇더라고요.

 

Q) 고등학교에서 멘토링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얼 하는 건가요?

 

예지) 제가 잘하는 과목을 조금 뒤처지는 친구와 짝지어 공부하는 시스템? 이에요. 신청해서 참가하는 건데요, 어차피 나도 더 공부해야 하니까 좀 못하는 친구에게 가르쳐주면서 저도 더 깊이 공부하게 되고 그래서 좋더라고요.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뿌듯함도 있고요.

 

Q) 다희는 어떤 활동들을 주로 해 왔나요?

 

다희) 글쎄요… 이것저것 막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뿌듯했던 걸 꼽자면, 저는 교내 동아리 반크(VANK)에서 활동하면서 독도 알리기 같은 활동을 했어요. 쿠키 만들어서 혼자 사시는 노인 분들 찾아뵙기도 했고, 꽃동네 봉사 활동도 했었어요.

 

Q) 반크가 뭔지 소개해 줄래요?

 

다희) 반크는 한마디로 ‘사이버 외교 사절단’이에요.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의 약자고요. 외국 교과서에 일본해로 잘못 표기된 곳이 사실은 우리나라 동해라는 걸 알리고 바로잡는 활동처럼 주로 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를 홍보하는 활동을 했어요. 저는 독도에 대해 바로 알자는 취지의 활동에 참여했어요. ‘청소년 박람회’에서 반크 부스를 만들어 홍보 활동을 하기도 했고요.

 

 

그녀들의 마음속 한 장면

 

Q)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그렇게 왕성하게 봉사 활동이나 자치 활동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나 경험이 있다면?

 

예지) 청소년 운영 위원회에서는 매년 12월에 그해 활동을 정리해서 책으로 발간하고, 다 같이 모여서 파티를 해요. 그 자리가 항상 가슴 벅차고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일 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 해 왔던 일들이 떠올라 그런 것 같아요. 특히 저처럼 오래 활동하다 보면, 처음 운영 위원으로 온 친구가 점점 적극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되잖아요. 그게 또 정말 기분 좋아요. 처음엔 쭈뼛쭈뼛 어색해하던 친구나 후배들이 점점 청소년 운영 위원회 안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인지하고 제 자리를 찾아가고 마음이 성장해 가는 걸 느끼면 진짜 찡하고 그래요.

 

다희) 저도 봉사 활동을 다녀와서 평가하고 일지를 쓰면서 찍은 사진들 정리할 때,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막상 활동을 하고 있을 때는 사실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정신없이 바쁠 때도 많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일을 마치고 돌아보면 마음에 남아 계속 생각하게 하는 순간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특히 인상 깊은 경험은 꽃동네 갔을 때 일인데요, 제가 그때 몸이 불편하신 아저씨나 할아버지들 계시는 곳을 맡게 됐거든요. 사실 시설을 청소하거나 아주머니들 계시는 곳을 맡으면, 덜 부담스럽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여자라 그런 것도 있고요. 근데 이것저것 도와드리면서 제 마음이 전해진 건지 아저씨 한 분이 선뜻 꺼내기 어려운 가족들 이야기도 저에게 해 주시고, 고맙다고 묵주 팔찌를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주변 분들이 그런 행동을 원래 하고 그러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긴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진심을 담아 무언가를 하면 다른 사람에게 그게 전해진다는 걸 체험한 셈이에요. 그 여운은 정말 오래 갔어요.

 

 

내가 선택한 경험이 ‘나’를 성장시켰어요

 

Q)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봉사도 그렇고 자치 활동도 그렇고 활동을 하는 것보다 그걸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 정말 긴 것 같아요.

 

예지) 맞아요. 어떤 행사나 봉사 활동을 할 때 행사 당일의 할애 시간은 사실 얼마 안 되죠. 오히려 그 활동을 하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다른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준비하는 시간들이 대부분을 차지해요.

 

다희) 저 같은 경우는 사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려 활동한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Q) 앞에서 이야기한 활동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다희) 원래 제가 첫인상처럼 좀 예민하고, 까다롭고 그런 성격이었거든요. 그런데 교내 동아리 활동이나 해외 봉사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 거죠.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가치관, 다른 겉모습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면서 마음이 좀 커졌다고 할까요? 아무래도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해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기 쉬운데, 그런 것도 많이 없어졌고요.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됐어요.

 

예지) 저는 이전까지 주변에 관심이 없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무심했죠. 그저 내 일만 완벽하게 하고, 남에겐 폐만 안 끼치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런 봉사 활동이나 자치 활동들은 혼자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사실 처음엔 뭐든 완벽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혼자서 이것저것 다 하려고 애쓰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같이 하는 친구들과 합이 잘 안 맞는다고 할까요? 내 욕심으론 100정도는 해야 되는데, 친구들은 거기에 못 따라준다는 느낌이 드니까 계속 더, 더 주변을 채근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같이 하면 할수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100이 안 되면 뭐 어때? 같이 하면서 즐겁고 보람차면 되는 거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무조건 완벽만을 추구하지 않아요, 좋은 뜻을 알리고 활동하는 우리 모두가 즐거운 쪽을 택하게 되었어요. 내 성에 차지 않더라도 그 준비를 같이 해 주는 친구들이 즐겁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우리가 상을 받겠다고 봉사 활동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제는 일도 저 혼자 짊어지고 가기보다는 분담해서 친구와 선후배와 함께 나누어 같이 가는 습관도 가지게 됐어요. 내가 혼자 다 하려고 하는 것보다 좀 부족해도 다 같이 하는 게 결국은 더 효율적이고 모두가 즐거운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아쉬운, 친구들의 모습들

 

Q) 예지와 다희는 봉사 활동에 굉장히 진심으로 참여하고, 삶의 특별한 경험으로 소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아쉽지만, 우리 청소년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죠? 학교에는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봉사 활동 시간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예지랑 다희 주변 친구들은 보통 어떤 방식으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나요?

 

다희) 고등학교 3년 동안 60시간을 의무적으로 하면 되는 건데, 사실 특별히 학교 밖에서 찾을 필요는 없어요. 헌혈을 하거나, 관련 영상을 보거나, 교내 행사를 진행하는 일도 모두 봉사 활동에 포함되거든요.

 

예지) 대부분 학교에서 자체 봉사를 하거나, 학생회 활동을 하거나 그런 경우가 많죠. 뭐, 흔히 보시는 것처럼 지하철역 같은 데 나가서 하기도 하고요.

 

Q) 혹시 대학 진학을 위해 학생부 점수가 필요해서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친구도 있나요?

 

다희) 물론 있죠. 부모님이 특정 대학의 입시 전형에 맞추어 해외 봉사나 이런 거에 지원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리고 형식적으로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점수 따기는 쉬워요. 일단 모임에 신청만 해 두어도, 그 활동을 했다고 인정되기도 하거든요. 제일 안 좋은 건 그건 것 같아요. 봉사 활동을 엄마가 막 아이 의견도 안 묻고 신청해 두는 거예요. 그럼 아이는 그날 거기 가고 싶지 않으니까 일종의 펑크를 내는 거죠. 그러면 봉사의 손길이 필요했던 곳에서는 다른 인력을 구하지도 못하고 손놓고 있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건 정말 안 좋은 것 같아요. 이기적이고요.

 

예지) 에…그… 우리 청소년 운영 위원회에서도 그런 친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걸 나쁘게만 생각하진 않아요.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어쨌든 봉사에 한 발 내딛은 거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시작한 친구들이 진심을 가지고 봉사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변하도록,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잘 소통해 주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환경이 사람의 마음이나 의지를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봉사 활동을 하면서 전 정말 많이 봤거든요. 제가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깨달은 게 있다면 딱 그건 것 같아요.

 

 

더욱 푸르러질, 청년 예지 & 다희를 예고한다

 

Q)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될 텐데, 이후 어떤 활동을 하겠다, 이런 계획 같은 게 있나요?

 

예지) 저는 일단 이제껏 활동해 온 청소년 운영 위원회에서 간사로 활동해 볼 생각이에요. 그동안 제가 잘 몰라서 당황하고 실수했던 것들을 후배들은 반복하지 않으면서 저보다 더 멋지게 활동하면 좋겠거든요.

 

다희) 저는 미술 쪽에 관심이 있어서, 날이 풀리면 벽화 그리기 봉사를 해 보려고 해요. 처음에는 센터를 통해 봉사했던 것처럼 어떤 단체를 시작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게 하다 보면 여기저기 인맥이 생기더라고요. 쿠키 만들어서 어른들 찾아뵙는 일도, 봉사하다가 알게 된 선배가 권해서 개인적으로 같이 하게 된 거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 뜻이 맞는 사람들하고 그런 방식으로 쭉 하게 될 것 같아요.

 

Q)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부나 봉사 활동 등을 하고는 싶어 하지만, 방법을 모르거나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지) 자기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조금만 더 용기를 내 보라고 하고 싶어요. 제가 태권도 단증이 있어서 그걸 이용해 해외 봉사에 참여했던 것처럼 자기 성격이나 적성에 맞는 일을 먼저 찾아야 해요. 그리고 집에 앉아 인터넷으로 검색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찾아 나서야 해요. 나 혼자 무얼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수련관에서 청소년 운영 위원회라는 걸 알고, 내가 운영 위원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보고 직접 참여하게 된 것처럼, 함께 활동할 사람들을 찾아서 만나고 부딪쳐 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누가 대신 해 줄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그 병아리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 그 병아리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거죠. 봉사활동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희)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예지가 다 했네요. 저는 봉사 활동의 기회는 여기저기 굉장히 많은데 다만 그런 게 학생들에게 홍보가 부족하다고 봐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단체들이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봉사 활동에 대해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단체들과 학교가 연계를 잘 했으면 좋겠어요.


 

 

수능 시험을 마치고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예비 수퍼우먼, 예지와 다희 이야기 어떠셨나요? 대학에서 학생회니 동아리니 활동 좀 했다는 저도 아이들의 밝고 에너제틱한 기운에 깜짝 놀랐습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60시간 의무 봉사 활동 시간을 채우려고 형식적으로 시늉만 하는 학생들도 있겠지요. 특정 대학 특정 학과에 입학하기 위해 엄마 손에 이끌려 이런 활동, 저런 활동 기웃거리는 학생들도 물론 있겠지요. 어려운 이웃들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에 호주머니를 털어 구세군 냄비에 얼마쯤 넣는 사람도 있고, 여기저기 매체를 통해 일시적이라도 모금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아이들이 하는 모든 활동들에 비록 진정성이 떨어지더라도, 그 행동은 어쨌든 우리 사회에 미약하나마 온기를 가져올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런 활동들로 자신의 삶을 채워 나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 주세요. 형식적인 봉사 활동, 엄마가 대신 신청해 주는 봉사 활동,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출마하는 학생회 대표 선거… 우리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아요. 나는 내 아이의 삶에 과연 어떤 경험을 채워 넣어 주고 있는 걸까요? 아이들의 자신의 삶을 좀 더 진정성 있는 좋은 것들로, 좀 더 맑고 고운 것들로 채워 나갈 수 있도록, 부모님도 선생님도 우리 아이들 자신도 애써 주면 좋겠습니다.

 

봉사 활동 자체도 의미 있고 보람되지만, 봉사를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마를 맞대고 고민하며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도 몹시 즐겁고 가치 있다는 두 학생의 맑은 눈빛과 힘 있는 목소리에서 저는, 제 세대보다 좀 더 활기차고, 좀 더 당차고 야무지게 발전해 나갈, 우리 사회의 따뜻한 앞날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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