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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당신이 왜 그러시는지 제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856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2023.01.19
“아무도 감정과 입장과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외부의 시선을 들여온다고 해서 일종의 객관적 투명성을 무조건적으로 보장해줄 수 없다. 우리는 매우 복잡한 주관성의 세계 속에서 돌봄을 하고 있다.” (본문 발췌)

 

 

1. 왜 그러세요?

 

방학 동안 틈나는 대로 영어 문장 네댓 개를 칠판에 적어두고 세 번 정도 써보게 하고 있다. 일주일에 고작 이삼일 정도 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아우성은 작지 않다. 하지만 학교에서 영어 때문에 겪는 여러 가지 곤란을 생각하면 이 정도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깊다.

 

영어를 다 쓴 아이는 앞에 나와서 자신이 쓴 문장을 아이들 앞에서 한 번 읽어보게 한다. 아무리 말해도 그저 써서 내는 것에만 마음을 쓰는 아이들인지라 어떻게든 읽어보고 듣게 해보려는 심사다. Y가 세 번을 다 썼다고 앞으로 나왔다. Y는 발음이 나쁘지 않아 잠시 아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애들아, Y는 영어를 잘 읽으니 모두 잘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Y에게도 나쁘지 않은 일이고,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별 생각 없이 한 소리였다. Y도 기분이 좋은 듯 술술 읽어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G가 불쑥 “별로 잘 못 읽는데요,”하고 기분이 썩 나쁘다는 투로 말을 꺼낸다. 영어를 읽던 Y도 당황해서 말이 쑥 들어간 눈치다.

 

G의 등장은 진지하지만 도전적이었고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니 실은 왜 그런가 물었어야 했고, G도 어쩌면 그것을 바라고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녁 시간에 쫓겨 영어를 쓰게 하고 있던 차라 그런 배려를 못 했다. 급하게 말을 막듯 일을 마무리 짓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효과가 보였던 방법이었기에 선택이란 이름으로 급히 통제를 하려 했다. “얘들아, 너희들 그러면 서로 아무 소리나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하는 것하고, 서로 말조심을 하면서 지내는 것하고 어떤 게 더 나은지 함께 정해 보자”고 막 말을 하는 참인데 말을 시작하자마자 난리가 났다. G는 G대로 앞 구절만 듣고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면서 앉아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Y는 Y대로 “선생님, 그만 하세요. 선생님이 괜히 애들 앞에서 자꾸 제 편을 드니깐 얘들이 저만 더 미워하잖아요.”하고 타박을 해 온다.

 

일이 이리 되고 보니 망신스럽고 당황스러울 뿐이다. 아이들 앞에서 갑자기 꼴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정작 말은 아이들 모두를 두고 한 것인데 G는 G대로, Y는 Y대로 난리니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하, 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얼떨결에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나는 그런 여유와 눈치를 부릴 형편이 못 되었다. ‘성질’이 이끄는 대로 우선 뛰쳐나간 G를 데려오라 이르고 옆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Y를 잠시 째려보았다.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G가 감정을 수습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미 틀렸다. G는 실습 선생님과 함께 들어와서는 곧장 옆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더니 잠시 후 무언가를 집어던지는지 큰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그 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G가 아마도 의자를 던지는 것 같다며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정말 영어고 뭐고 안 가 볼 도리가 없게 되었다.

 

방으로 들어선 순간 아이와 그를 마주하고 있는 실습 선생님이 보였다. 선생님도 막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들어서자 얼른 나를 막고 나선다. “선생님, 제가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안 될까요?” 간청을 해 온다. 기분이 다시 언짢아졌으나 이해할 법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흥분한 아이를 실습 선생님에게만 맡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실습 선생님은 나를 막아선다. “제발요 선생님, 제가 한 번 이야기를 해 볼게요!” 둘 사이를 가로막고 거듭 간청을 해온다. 마치 내가 아이를 어떻게 할 것 같은 사람이고, 실습 선생님께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듯한 구도가 되어 버린 것만 같다. “비켜주세요, 선생님. 안됩니다!” 단호하게 거절을 거듭하고서야 아이를 마주하고 앉을 수 있었다.

 

 

2. 왜 그러니?

 

G는 화를 잘 낸다. 게임에서 지고 있는데 자신을 보고 웃었다는 이유로 거칠게 화를 낸다. 남들이 자신을 조롱하거나 비웃는다고 자주 화를 내고, ‘뒷담화’를 하며 자신을 뭐라 한다고 물건을 있는 대로 집어 던진다. 영화를 보러 갔다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 반성문을 한 장씩 써 오라고 한 날, 1학년 아동을 반성문 쓰는 일에서 빼주었다는 이유로 아이들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SNS 공간에 버젓하게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올리기도 하였다. 또 동네에서 축구를 하다 하도 남의 집 대문을 공으로 차서 참다 못 한 동네 할머님께서 나오셔서 꾸중을 하시니, “그러면 나더러 지금 우리 동네 가서 차란 말이냐?”고 무례하게 말대꾸를 하며 펄펄 열을 낸 일도 있다. 격노를 하신 할머님은 센터를 찾아와서 당장 부모님을 대령하라 난리가 나셨다.

 

아이의 어머님과 함께 할머님께 싹싹 빌고 일을 마무리 지었지만, 어머님은 아이가 집에서는 전혀 말도 없고 고분고분한 것 같은데 밖에서는 왜 이러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그런 어머님께서 센터를 빨리 가라고 등짝을 때렸다는 이유로 얼굴이 부루퉁해 온 아이가 “엄마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해서 결국 아동학대신고를 할 수밖에 없던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신고 과정을 경찰로부터 전해 들었다며 길길이 화를 내는 어머님을 상대하며, 잠시 아이 문제의 뿌리를 엿본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심리상담가가 아니므로 아이 마음의 정경을 제대로 그릴 수도 없고, 그를 고쳐놓을 수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작은 쪽창으로 언뜻 보이는 어떤 광경을 보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것을 본다고 다 알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G는 “모두가 자신을 미워하고, 특히 선생님은 나를 싫어한다, 그래서 자신을 혼내는 것이다”는 말로 자기 마음 일부를 엿보였다. 그런데 파랑새에서는 누구든 때린 사람과 맞은 사람이 맞서는 상황이 되면 우선 피해자의 입장을 중심으로 생각하기로 한 규칙이 있다. 맞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에 따라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비록 마음의 상처라 할지라도 G가 그런 소리를 하고 보니 내 탓도 작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G에게는 일단 급한 대로 G가 가진 여러 모습이 있으므로 그중 G가 잘못한 부분만 가지고 G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 두었다. 그러나 교사인 나의 입장에서는 잘못한 일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으므로 그 점에서는 이해를 바란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실은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 맴을 돌기 일쑤다. 그러므로 말을 한 들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마치 소용돌이처럼 이야기들이 이 주변을 뱅뱅 돌기만 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오늘도 그랬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어보아야 하는데, 입구를 바라보고 앉았던 G가 방안을 엿보려는 아이들을 발견하곤 자신을 향해 수군거리고 비난하려는 의도에서 저런다고 지레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야기는 다시 맴을 돌아 누구도 너를 특별히 미워하거나 특별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는 식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런데 불쑥 G가 “그럼 엄마, 아빠도 나를 안 사랑하겠네요?”하고 이야기의 억지를 비틀고 나선다. “그건 아니지. 네 부모님은 특별히 너를 제일 사랑하시지.” 말은 하면서도 아차 싶다. G는 마치 ‘그런 간접화법 따위는 때려치세요. 내가 이러니까 아주 내가 싫어죽겠죠? 내가 밉고 당장 어떻게 하고 싶죠?’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비록 표현은 못 하고 있지만 아이도 내 심사의 뒤틀림을 힐끗 엿보았던 것 같다. 공연한 칭찬에 공연한 레토릭을 읊어 대다 한 방 맞고 또 맞는다.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의욕이 더욱 꺾인다. 마치 녹음된 노래를 트는 것처럼 “나를 싫어해, 나를 미워해서…”하는 G의 읊조림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나는 빠르게 열기가 식어가고 있었다. 다만 그러나 그 자리에서 꼭 한 가지 해주고 싶은 일이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자리를 바꾸어 앉자고 했다. 앉은 자리를 바꾼 후 더 이상 창을 바라보지 않게 된 아이는 잠시 후 조금 더 진정된 모습이다. “그래. 이렇게 힘들면 피하는 것도 방법이야, 보기 싫은 장면은 잠시 피해서 마음을 다독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자리를 바꾸어 앉는 것은 네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니, 이런 것은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그것으로 마무리를 하고 나왔다. 그 후 아이는 친구들과 또 다른 선생님에게 고루고루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센터가 되면 좋겠다는 자신의 ‘소박한’ 심정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게 괜한 칭찬을 한 번 하려 했다가 날벼락을 맞고 말았다.

 

 

3. 정말 왜 그러세요?

 

밤늦게 실습 선생님의 일지를 열어 확인을 하다 깜짝 놀랐다. 지금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아이들이 북적거리는 방학인지라 실습 선생님들도 세 분이 함께 계시는 상황이다. 그런데 G의 일이 벌어졌을 무렵 이미 두 분의 선생님께서 또 다른 갈등을 빚고 있었다는 걸 일지를 통해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를 가로막고 간청을 해오셨던 선생님께서는 G의 행동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신 후 당신이 G를 ‘독대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본 또 다른 실습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혼내지 말아 달라”면서 그분을 오해하고 가로막고 나섰던 모양이다. 일지에는 갈등의 파편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하지만 G의 일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일로 마음이 상해 돌멩이를 집어 들고 다른 아이를 “죽여버리겠다”고 흥분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를 가까이서 지켜 본 그 실습 선생님께서도 많이 놀라셨던 것 같다. 일지에는 G가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단호한 의견이 실려 있었다. 자신을 포함해 센터 내 누구도 G에게 도움이 될 수 없으므로 당장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지의 내용은 여러 측면에서 당혹스러웠다. 부분적으로 바르게 본 부분과 올바른 판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도 쉽게 판단을 내린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다. 물론 한편에서는 내가 안일하게 상황 판단을 유예하고 있는가 고민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판단을 내린다고 그런 치료가 가능한 현실도 아니다. 과연 어떤 말로 아동의 보호자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인지 당장 그것부터 고민해 보아야 한다. 자칫하면 아이를 흥분시키는 상황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올 수도 있다. 의논도 없고 신중하지 못한 판단이 가득한 일지를 한숨을 쉬며 한참을 노려본다.

 

물론 G의 행동은 위험하고 과하다. G가 온라인 공간에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올렸을 때, G에게 화가 나서 한 말인 줄은 알지만 만약 정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너무 위험한 상태이므로 더 이상 파랑새에서는 너를 돌봐줄 수가 없다.”고 단호히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물론 만약 아이가 정말 그런 충동을 갖고 있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은 결정일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어린 아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그런 걱정은 우선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표현을 과하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만 이야기를 집중하였다. 교사의 입장을 듣고 당황했는지 G 역시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으며 화가 나서 한 말일 뿐이라고 한 발을 뺀다. 그나마 이런 소리라도 듣고 나니 안심이다. 하지만 그래도 실은 매 순간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다.

 

그렇게 가까스로 조금씩 조금씩 버텨가고 또 때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말이다. G의 거듭된 난동에 ‘자신을 포함해 센터 안의 누구도 아무 도움이 될 수 없을 것 같으니 당장 G를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실습 선생님의 일지는 들여다보고 있으니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이다. 물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우리도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한다고 ‘네’하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왜 그런 처지는 헤아려주지도 않고 물어봐 주지도 않는지 그것이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4. 난 왜 이러니?

 

파랑새에서 시설장이란 입장은 절대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 권위를 한편으로 활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염려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권위 때문에 오늘과 같은 봉변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있어도 없는 듯하고, 없어도 있는 듯하게 처신해야 하는 시설장의 입장도 만만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렇게 누구나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파랑새에 오면 우리는 함께 관계의 그물을 엮게 된다. 어떤 사람은 너무도 엉성하고 성글게 그물을 엮고, 또 다른 사람은 그런 사람을 생각해 애써 그물코에 바짝 당겨보기도 한다. 그리고 한 번씩 그물은 요동을 친다. 그런 그물에서 중심은 늘 변화한다. 그 중심이 때로는 교사들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방식대로 생겨날 수도 있지만, 원치 않는 곳에 불쑥 생겨날 때도 많다. 그래서 때로는 그런 그물의 모습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하고, 간혹 새 그물을 장만하고 싶은 유혹에 혹해보기도 한다.

 

“나를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G의 말은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G는 혹시 잠시 내 마음의 요동을 엿보고 속이 상해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아닐까? 물어보지 않아서, 물어보는 법을 잘 몰라서 아직은 잘 알 수가 없다. 나는 실습 선생님의 그런 일지가 왜 그렇게 불편했을까? 혹시 그럴 입장이 아닌 사람이 판단을 내린 게 불쾌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나는 아주 권위적이고 고루한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벌써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까? 마음의 정경은 갈가리 흩어지고 어지러이 날린다.

 

오래전부터 지역아동센터를 비롯해 아동들이 돌봄과 교육을 받는 곳에는 적절한 외부의 시선을 들여오는 게 좋다고 생각해 왔다. 나만 잘 한다면 그런 시선을 들여오는 데 무슨 걱정을 할 게 있겠는가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선도 역시 관계의 한 그물코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감정과 입장과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외부의 시선을 들여온다고 해서 일종의 객관적 투명성을 무조건적으로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에 미처 생각이 가닿지 못했다. 우리는 매우 복잡한 주관성의 세계 속에서 돌봄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저 매일매일 실감하며 살아간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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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성태숙

(현)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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