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교육 바루기(3) – 역량기반교육의 바른 이해(2)
목차
Q6. 역량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Q7. 역량은 전이가능한가?
Q8. ‘학교교육의 목적 = 핵심역량의 함양’이라는 관점은 타당한가?
Q9. 역량은 평가 가능하고 평가 결과는 신뢰할 수 있는가?
Q10. 역량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
맺음말
지난 칼럼 ‘역량교육 바루기(2) – 역량기반교육의 바른 이해(1)(Q1~Q5)에 이어 이번 칼럼 ‘역량교육 바루기(3)에서는 Q&A 형식으로 역량이 길러지는 방식, 역량의 전이 가능성, 학교교육의 목적이 핵심역량 함양이라는 비판, 역량 평가 가능성과 결과의 신뢰성, 역량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Q6. 역량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역량이 길러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두 가지 서로 다른 접근이 있다. 역량 자체를 ‘직접(directly) 가르치는 접근’과 역량을 ‘간접적으로(indirectly) 가르치는 접근’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가령 읽기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책을 읽게 하고, 비판적 사고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적합한 활동을 통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직접” 제공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역량을 몇 개의 구성 요소로 나눈 후 그 구성 요소를 가르치는 “간접적” 방식이다(Daisy Christodoulous, 2016). 두 가지 접근 모두 역량을 기르고자 하는 점에는 차이가 없지만 접근 방법이 다르다. 지금까지 한국의 역량 교육은 미흡했지만 후자의 방식으로 가르치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15개정 교육과정에 핵심역량 6가지를 도입한 것은 앞으로 프로젝트 수업 등을 통해 역량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가르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허스트에 의하면, 하버드 보고서는 지식과 정신능력 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정신능력이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생각과 그러한 일반적 능력 그 자체를 별도로 발달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홍우, 2010: 366-370). (중략) 하버드 보고서에 예시된 ‘효과적 사고능력’이나 ‘적절한 판단 능력’ 등은 구체적인 지식의 형식들의 맥락을 떠나서는 공허한 능력(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각 지식의 형식들과 연계되어 그 형식들을 내용으로 삼아 작동할 때에 비로소 마음의 실체나 그 발달이 설명될 수 있다 (황규호, 2018).”
위 인용문 내용은 ‘일반적 역량’이 실체로서 존재하거나 또 그 자체를 별도로 발달시킬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틀린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범교과적 역량 6가지를 포함시킨 것의 의미에 대해 중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역량교육을 먼저 시도했던 나라들의 경우 전통적인 교과교육이나 비교과교육에 각종 skills를 통합하여 지도하는 정도가 일반적이다.
특히 일반역량(generic competencies)인 핵심역량이 어떻게 길러지는가에 대한 대답이 간단치 않다. 세계는 아직 이에 대해 연구 중이다. 대표적인 21세기 역량의 하나인 ‘비판적 사고능력’을 통해 살펴보자. 역량 교육에 대해 일찍이 관심을 가진 나라들조차 비판적 사고능력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길러지는지에 대해 연구 중이다. 비판적 사고능력이 어떻게 길러지는지에 대해 알고 나아가 이를 가르치고 평가하려면 비판적 사고능력을 구성하는 하위 지식, 기능, 태도 등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마이클 풀란은 자신의 저서 Deep Learning(Michael Fullan, 2018)에서 비판적 사고력을 구성하는 요소로 아래 5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 정보와 주장을 평가하기
• 연결 짓고 패턴을 확인하기
• 문제를 해결하기
• 의미 있는 지식을 구축하기
• 세상의 아이디어에 대해 실험하고, 숙고하고, 행동을 취하기
비판적 사고능력에 대한 이런 분석은 풀란의 견해일 뿐이다. 설혹 이상의 분석에 대해 모두가 동의한다 하더라도 이 5가지 구성요소가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 또 어떻게 유기적으로 상호 발달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역량이 어떻게 길러지는가에 대해 학자들 간에 공감대가 넓은 부분도 있다. 역량은 지식을 주요 기반으로 해서 길러질 수 있다는 인식이 바로 그렇다.
“사실 사회적 삶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학교교육을 통해 강화해야 한다고 할 때, 해당 역량을 그 자체로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다. 역량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기 보다는 종래 교과교육에서 다루어 온 가치로운 지식과의 관련 속에서 의미가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사소통능력이 단순한 기술 이상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을 수반해야 한다 (Pring, 1995; 소경희, 2007 재인용 13쪽).”
최근 OECD가 Education 2030 1주기(2015-2018) 연구 사업을 통해 역량을 구성하는 지식과 기능 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등에 대해 조금 더 진전된 연구를 내놓았고 2019년부터 시작된 2주기 사업에서는 선정된 미래 역량을 육성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체제, 학습 환경, 교수방법, 평가방법 등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역량을 학교교육을 통해 기르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Q7. 역량은 전이가능한가?
황규호(2018)는 자신의 최근 글에서 2015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담긴 창의적 사고력, 의사소통 역량 등이 일반적인 역량인지 또한 이들 역량이 전이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창의적 사고 역량이나 의사소통 역량 등은 교과 영역을 넘나드는 일반적인 능력인가? (예컨대 과학에서 함양된 창의력은 예술 영역에서도 발휘될 수 있는가? 또는 국어교육을 통해 길러진 의사소통 능력은 수학적 의사소통 능력으로 전이되는가?)
또한 역량은 특정 맥락에 있는 개인이 취한 행동에서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맥락 의존적(context-dependent)이기 때문에 전이가 어렵다(소경희, 2007; Daisy Christodoulous, 2016). Daisy Christodoulous는 자신의 저서 『큰 진전 이루기(Making Good Progress?: The Future of Assessment for Learning))』(Oxford University Press, 2016)에서 여러 가지 관련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역량은 ‘맥락 의존적(context-dependent)’인 특성을 갖기 때문에 내용이나 맥락이 달라지면 그런 상황에서는 전이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2015개정 교육과정에 6개의 핵심역량을 총론에 소개하고 이를 각론의 각 교과에서 통합해 가르치기를 강력히 주문한 것은 역량은 가르칠 수 있고 배운 역량이 전이될 것을 기대한 것이다. 역량은 잘 전이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는 역량중심교육의 효과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마침 이런 점을 문제 삼고 대안을 제시한 책이 두 권 있어 소개한다.
Daisy Christodoulous는 역량을 구성 요소로 나누어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인지과학적 원리를 동원해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사람이 문제를 해결할 때 이런 작업은 작업기억(working memory)에서 일어난다. 새로운 정보와 장기기억(long-term memory)에 저장된 정보를 불러와 이 둘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데 문제해결의 핵심은 문제해결을 위한 지식을 사전에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이다. 바둑 프로기사들은 자신이 둔 바둑을 한 수도 틀리지 않고 복기(復棋)할 수 있다. 이는 이들의 기억 역량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흔히 나타나는 바둑의 수를 몇 만 개에서 많게는 십여 만 개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읽기 능력이 뛰어난 학습자는 읽기 능력이라는 일반적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읽기 자료가 포함하고 있는 어휘와 읽기 내용과 관련된 배경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잘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가령 문제해결능력이나 비판적 사고능력과 같은 일반적 역량을 잘 갖추려면 실제 과제 수행을 통해 이런 일반적 역량을 기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해결에 필요한 혹은 비판적 사고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배경지식과 관련 어휘를 충실히 갖추는 등의 지식 스키마의 확장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역량중심교육의 문제점을 인지심리학적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강하게 비판하는 책이 최근 하버드대학 출판사에서도 나왔다.
『왜 지식이 중요한가(Why Knowledge Matters: Rescuing Our Children from Failed Educational Theories)』(Harvard Education Press, 2016)라는 책인데 저자는 역량의 발휘에는 전문적 지식(expertise)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기능이나 역량은 ‘영역 특수성(domain specificity)’을 갖기 때문에 전이가 어렵다는 것이다. 즉, 어떤 특정 교과목에서 길러진 역량이 다른 교과 영역에서 활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능·역량의 기반은 특정 영역의 지식이다(the basis of skills is specific domain knowledge p.13)”라는 견해를 편다. 바로 앞에서 살펴본 Daisy Christodoulous와 같은 관점이다. 그래서 저자는 교육정책 결정자들이 ‘skills’란 용어 대신 ‘전문적 지식(expertise)’이란 용어를 쓸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프랑스가 독립 200주년을 기해 1989년 초등교육에 있어 기존의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포기하고 학생중심, 역량중심으로 교육의 패러다임은 전면적으로 전환했고, 이에 대한 20년 종단 연구 결과 참담하리만큼의 학력 저하를 겪었던 사례를 들며 학생중심(child-centered), 역량중심(skills-centered)의 미국식 교육을 지양하고 공동체 중심(community-centered), 지식중심(knowledge-centered) 교육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5개정 교육과정의 총론에 들어있는 6가지 일반역량(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열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을 포함시킨 것은 이런 범교과적 역량이 교과영역을 넘어 전이 가능할 것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잘못된 기대라면 역량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위 두 사람의 견해에 대해서 국내 학자들의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학교교육의 맥락에서 역량을 가르치고 이를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세계적으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 경우 역시 역량교육의 실천에 대해 충분한 연구 없이 2015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도입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맥락 의존성이 강한 역량은 전이가 어려우므로 전이가 가능한 개념적 이해와 개념적 지식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이는 전통적인 지식습득 중심의 지도나 학습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 지식 교육은 사실적 지식의 습득에 머물렀고 절차적 지식까지도 제대로 나아가지 못했다. 사실적 지식을 바탕으로 절차적 지식을 거쳐야 비로소 개념의 이해가 가능해진다. 이는 전이가 용이한 ‘개념적 지식(conceptual knowledge)’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미 2015개정 교육과정은 내용체계를 핵심개념, 일반화된 지식, 기능으로 구성하고 있다. 개념기반교육과정(concept-based curriculum)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은 2015개정 교육과정이 차용했던 이해중심교육과정(Understanding by Design)이 지향하는 것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제 2015개정 교육과정이 심화된 지식중심교육을 지향하는 교육과정인지 아니면 역량중심교육인지의 논란을 종식시킬 필요가 있다. 역량의 맥락 의존성 때문에 전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몇 년 전 유네스코에서도 심층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김기춘, 2017). 2015개정 교육과정에 역량을 도입한 의도도 재점검 해보고 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학교교육은 교육의 목표와 이의 이행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Q8. ‘학교교육의 목표 = 핵심역량의 함양’이라는 관점은 타당한가?
‘학교교육의 목표 = 핵심역량의 함양’이라는 등식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성과 발표회 자료집(2017)에 등장하고 그 이후 이것이 교사 연수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 등식만 보면 기존의 지식기반교육을 역량기반교육으로 대전환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인식은 2015개정 교육과정 연구자들의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연구자의 한 사람이었던 황규호(2016)는 자신의 글(개인적 관점임을 전제함)에서 아래와 같이 진술하고 있다.
“총론 문서에 제시된 역량 관련 진술들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역량의 개념을 통 해 국가 교육과정 체제에 근본적인 수준의 변화를 도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기존 교육과정과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가운데 ‘교과 교육을 포함한 학교 교육 전 과정’에서 앞으로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초점이 무엇인지를 역량의 목록을 통해 조금이나마 더 구체화하고 명료화하려고 했다는 것이 더 올바른 이해가 될 것이다.”
“총론 연구진들은 세부적인 의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역량교육이 결코 교과교육을 대체하는 교육이 될 수 없다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였다.”
2015개정 교육과정은 이의 개정을 주도했던 연구자들의 의도와 달리(다를 수 있기는 하지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통해 연수된 바 있고 그 결과 많은 교사들은 총론에 포함시킨 6가지 핵심역량이 마치 그대로 가르칠 수 있고, 학교교육의 맥락에서 그 자체로 측정 가능한 것처럼 오해를 하고 있다. 아직 역량교육에 대해 연구된 것이 매우 적다. Education 2030 프로젝트를 통해 DeSeCo 역량연구의 후속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OECD조차도 아직 역량의 정의와 역량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구체화하고 있는 수준이다. 역량교육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적 시각이 적지 않다(→ Q3. 역량교육에 대한 비판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역량교육에 대한 국내 연구자들조차도 역량은 개념이 모호하고 실체가 불분명하며(소경희, 2007), 행동주의적 접근이고 환원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할(박민정, 2009, 이원희 2015) 뿐만 아니라 역량은 맥락 의존적이기 때문에 전이가 어렵다는 단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역량교육에 대한 강조가 붐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평가를 포함한 역량교육에 대한 연구와 준비가 턱없이 미흡한 수준임을 고려하면 ‘학교교육의 목표 = 핵심역량의 함양’이란 대전환 이전에 각 역량이 어떻게 발달되고 이를 어떤 방법으로 기를 수 있으며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검토가 있었어야 했다. 소수 전문가들의 의견만으로 교육목표의 대전환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역량교육운동에 앞장섰던 세계적 전문가의 입장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21세기 초부터 역량교육운동에 앞장서고 ‘21세기 역량(21st Century Kills, 2009)’이란 책을 공저로 저술했던 챨스 파델은 ‘교육과정 재설계 센터(The Center for Curriculum Redesign)’를 통해 『4차원 교육』(Four-Dimensional Education, 2015)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21세기 학교교육 목표로 아래와 같은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림 1] 21세기 학교교육 목표 프레임(Charles Fadel 외, 2015)
이 도표의 해설에 따르면 저자들은 이 4가지 요소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효과적인 학습은 이 4가지의 조합을 통해 이뤄진다고 말한다. 지식교육보다 역량교육을 우선시하는 시각이 없다. 이제 역량이란 <지식, 스킬, 인성, 상위인지>가 4개의 톱니바퀴처럼 얽혀서 함께 돌아가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역량교육의 붐이 차분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과정으로 보인다. 최근 교육과정을 개정한 일본도 학력의 정의를 이 표의 내용을 준거로 삼아 새롭게 설정했다. 지식교육을 역량교육의 하위 요소로 놓을 수 없다. 지식이 역량을 낳고 역량이 다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순환적 관계로 보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다.
Q9. 역량은 평가 가능하고 평가의 결과는 신뢰할 수 있는가?
역량(competencies) 중에 ‘발아의 두 가지 모형 비교하기’, ‘휴지와 비닐을 제대로 분리하여 버리기’ 등의 ‘노하우(know-how)’는 평가가 비교적 용이하지만 ‘관심을 기울여 자연 환경 보호하기’와 같은 ‘일반적 역량(generic competencies)’은 아직 평가도구 개발이 덜 된 영역이라 주관적 평가가 일반적이다(UNESCO, 2016).
핵심역량의 하나인 비판적 사고능력을 예로 들어 평가 가능성과 평가 결과의 신뢰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표 1> 비판적 사고능력 채점기준표(루브릭)
출처: Assessing 21st Century Skills(Laura Greenstein, 2017 p.68 변형)
비판적 사고능력은 위와 같은 채점기준표를 통해 평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에는 아래와 같은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기준(standard)이 자의적이다. 기준의 개수를 4-5개로 늘릴 수 있다.
• 채점 기준이 주관적이다. 역량평가는 학습을 위한 평가,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한 평가가 일반적이다.
• 학생 수가 많을 때 이상과 같은 개별 관찰 평가가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자기평가와 동료평가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 관찰 시점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오랜 기간에 걸쳐 복수의 평가를 종합해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 어떤 과제를 수행하느냐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역량은 다양한 과제를 통해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 1~2회의 평가만으로는 평가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 따라서 유사한 상황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번 평가할 때 평가 결과의 신뢰성이 향상된다.
이상과 같은 분석만 보더라도 역량의 평가는 ‘학습을 위한 평가’를 중심으로 해볼 수는 있지만 지식을 지필로 평가한 결과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평가에 대해 유난히 민감한 한국적 상황을 고려할 때 역량중심교육은 평가의 어려움이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Laura Greenstein(2012)은 자신의 책(Assessing 21st Century Kills)에서 역량 평가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교육자들이 21세기 역량을 지도하고 평가하려면 우선 21세기 역량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명확한 개념의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때만 각 과목 교사들이 학교 급별로 교육과정, 수업지도 전략과 방법, 평가 등을 어떻게 연계시킬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역량이 어떤 것인지 대해서도 최소한의 공감대만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며, 어떤 역량을 명시적으로 가르칠 수 있고(teachable) 평가할 수 있는지에(assessable) 대한 합의는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는 이런 역량들의 발달이 어떻게, 어떤 순서로, 어떤 기반을 바탕으로, 또 어떤 인지적 능력 수준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해 아직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고도의 복합적 사고는 표현이 난해하다. 이를 접근·소통하고 평가하려면 이런 사고과정과 평가기준을 명확히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
역량 평가의 어려움에 대한 서술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UNESCO의 최근 역량 평가에 관한 연구(Assessment of Transversal Competencies, UNESCO, 2016)에서도 “역량의 평가를 위해서는 역량을 구성하는 복잡한 개념(ideas, constructs)을 이해가능하고, 감당할 수준으로 단순하게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특정 역량(예: 협업, 비판적 사고력, 소통능력 등)이 어떻게 발달하고 개발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그 역사가 짧아 알려진 것이 매우 적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총체적으로 발휘되는 역량을 구성요소로 나누는 것은 환원주의의 오류에 빠질 위험성이 크므로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역량을 인위적으로 분해할 경우 평가의 진정성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당분간은 인지적 특성과 관련된 역량 평가에 초점을 두면서 평가와 채점이 비교적 용이한 질문을 통한 평가를 시도해보는 것도 현실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또다른 유네스코 국제교육국의 최근 연구(A Conceptual Framework for Competencies Assessment. IBE. 2016 p.16)는 역량의 종류에 따라 평가의 용이성이 달라지며, 노하우 역량과 상황적 역량은 평가가 비교적 용이하지만 일반적 역량은 평가 자체가 매우 어렵고 주관적 평가만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일반적 역량이 양(quantity)보다 질(quality)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Q10. 역량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
역량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은 역량을 학교교육의 맥락에 도입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바른 이해, 역량이란 개념의 모호성과 실체의 부족 및 역량교육에 대해 비판과 한계에 대한 이해, 전통적인 지식기반교육과 역량기반교육과의 관계에 대한 바른 이해 등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학교교육이 역량중심적 접근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말의 의미는 그 해석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교과에 의존해 온 학교교육을 염두에 둘 때 역량중심적 접근이라는 것이 교과 대신에 역량을 가르치자는 논의라고 보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역량중심적 접근이란 학교교육에 대해 역량중심적 사고를 하자는 것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즉 종래의 학교교육이 교과를 중심으로 접근되어 왔다면 역량중심적 접근이란 학생들의 사회적 삶에서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가에 학교교육이 우선적인 관심을 두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경희, 2007).”
일부 연구자들의 경우 새 교육과정의 총론에 핵심역량을 도입한 것을 과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역량교육과 관련해 역량은 맥락 의존성이 강해 전이가 어렵고, 역량 그 자체를 가르치기 어려우며, 평가와 관련해서도 환원주의적 오류를 범할 가능성과 낮은 신뢰성이 존재하는 등 수많은 장애요인이 있다는 점에 대한 깊은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역량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은 아래와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역량은 깊은 이해를 수반하는 지식교육과 활용을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기 때문에 지식교육을 충실히 하면서 핀란드처럼 역량교육을 “보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역량교육을 강화하는 핀란드의 최근 접근이 큰 시사점을 준다. 핀란드는 최근 교육과정 전면 개정(2016)을 통해 9학년까지의 기본 교육(Basic Education) 과정의 경우 범교과적 대개념(big idea)(예: 인간, 유럽연합, 미디어와 기술, 물, 에너지)을 주제로 하여 ‘현상기반학습(Phenomenon Based Learning: PhenoBL)’ 프로젝트를 일 년에 한 번씩 필수적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외에는 전통적인 분과학문 체계에 의한 교과 중심의 학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큰 변화가 없다. 핀란드도 교육과정 총론에 7개의 범교과적 역량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것이 지식기반교육을 대체하는 성격은 아니다. 핀란드는 역량교육을 강화한 새로운 교육과정을 두고 ‘역량기반 및 교과기반 교수학습의 새로운 결합(a new way of combining competence-based and subject-based teaching and learning(Irmeli Halinen, Head of Curriculum Development, Finnish National Board of Education, 2015)’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둘째, 역량은 전이가 어렵고 전이는 개념의 깊은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학교교육이 개념적 지식의 교수·학습에 초점을 맞추려면,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도입을 시도한 이해중심교육과정을 잘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성취기준에도 깊은 이해를 위한 ‘일반화된 지식’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역량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가치와 태도’도 성취기준에 반영하는 것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싱가포르의 성취기준 진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넷째, 역량의 평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있으므로 핀란드처럼 실제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역량은 그 자체로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를 중시하면서 자기평가, 동료평가, 포트폴리오 평가, 교사의 관찰평가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교사들에게 루브릭과 체크리스트를 제공해서 학생들의 도달 수준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공유하며 아울러 평가 항목과 루브릭의 열린 축적 시스템을 개발해서 21세 역량 평가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학습자마다 역량을 발휘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평가 방식을 통하여 통합적으로(collectively)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정답이 하나뿐인 지필평가와 달리 역량평가는 ‘수용할만한 성취수준’이 복수로 존재하므로 보편적평가설계(Universal Design for Assessment: UDA) 원리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일곱째, 역량의 발휘를 위해서는 사실적 지식도 매우 중요하므로 사실적 지식의 평가는 객관식으로, 개념의 깊은 이해는 에세이 쓰기, 답과 함께 답에 도달한 과정을 설명하기로, 학습 결과의 전이는 배운 것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기로, 인성은 경청, 공감, 충동조절, 끈기의 발휘, 열린 자세, 문제해결을 할 때 유연성의 발휘 등으로 평가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Jay McTighe and Greg Curtis, 2016).
여덟째, 역량 평가는 ICT 리터러시, 직업세계에서 필요한 역량 등 평가가 비교적 용이한 것들에서 출발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아홉째, 역량은 학습자가 과제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학습책임의 점진적 이양(gradual release of responsibility: GRR)을 통해 학습자의 행위주체성(agency, autonomy)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열째, 역량중심교육과정의 본격적 시행은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기반으로 하여 특성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경험을 축적하고 이로부터의 경험을 일반계 학교로 확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무기력했던 지식교육은 혁신되어야 하지만 이 문제는 지식기반교육의 혁신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고 역량교육의 강조를 통해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아직 이것이 가능한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역량교육은 지식교육을 보완하는 수준에 가깝다. 한국의 경우도 역량교육에 대한 세계의 유행을 피상적으로 쫓기보다는 역량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현실적이고 내실 있는 접근이 절실히 필요하다.
맺음말
한국의 미래 학교교육의 성패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피상적 학습을 벗어나 깊은 이해를 통해 전이 가능한 교육을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와 ‘공정하고 정의로운 포용적 교육(inclusive education)을 통해 모든 아동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키우고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라는 두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지금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2015개정 교육과정은 표면적으로는 역량기반교육을 지향하는 듯하지만 역량기반교육은 아직 세계적으로도 연구와 시범 운영을 통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역량은 맥락 의존적이어서 전이도 어렵고 그 자체로 가르치기도 어렵다. 게다가 평가도 학습을 위한 평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역량을 구성 요소로 분해해 분석적으로 평가하려는 순간 환원주의적 오류에 빠질 우려가 크다. 그리고 2015개정 교육과정 자체가 성취기준 형식을 비롯해 아직 지식기반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지식기반교육과 역량기반교육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며 역량은 양질의 지식교육을 통해서만 기를 수 있다. 국내외 많은 나라들이 역량을 강조는 하지만 역량교육이 지식교육의 보완재로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둘의 바람직한 역할이라고 생각된다. 인지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현실 속 난제들의 해결도 지식 스키마를 불러와 해결한다. 이를 ‘역량의 발휘’라고 부를 뿐이다. 총론에 범교과적 핵심역량 6가지를 도입한 것도 역량교육을 전면화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국책기관의 일부 연구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총론에 역량을 포함시킨 것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지식과 역량의 관계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무력한 지식 교육의 개선은 역량이란 개념의 도입을 통해 해결할 것이 아니라 지식 교육의 질을 개념적 지식(conceptual knowledge) 수준으로 높이고 전이 가능한 지식 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깊은 이해를 목표로 하는 전이 가능한 지식 교육은 역량교육이 지향하는 목표와 만나게 된다. 이제 지식기반교육과 역량기반교육을 대척점에 두는 이분법적 사고를 거두어야 한다. 벌써 OECD 2030 프로젝트와 세계의 주요국들은 개념중심의 내용지식·역량 통합교육(content-competency integrated)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울러 우리도 OECD의 Education 2030 프로젝트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학생 개인과 사회의 집단적 웰빙 및 학생 행위주체성(student agency), 개인적·사회적 지속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차기 교육과정 개정 시 적극적으로 반영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역량교육에 대해서는 차분히 성찰하며 한계와 가능성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식교육의 무기력함은 학교교육을 대입시의 종속에서 벗어나게 하고 깊은 이해와 지식의 활용을 강화하는 데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는 개념적 이해와 개념적 지식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하고 이런 관점에서 이해중심교육과정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지식교육의 무기력함을 실체도 불분명한 역량교육의 강화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스럽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점에 특히 유념해서 바른 정책을 펴주기 바란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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