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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 담론(10): 목적을 설정하는 존재로서의 사람

#498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2019.11.20

지난 호에서 난해하고 지루한 존재론을 길게 파헤쳤다. ‘사람됨’을 해명하기 위해서다. ‘사람됨’을 그토록 집요하게 해명한 까닭은 그동안 사람이 담당하던 일들이 빠르게 인공지능에게 잠식되면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난해하고 복잡한 논의를 계속한 끝에 다음 셋 정도의 영역을 걸러낼 수 있었다.

 

1) 목적을 설정하는 존재로서의 사람
2) 가치와 방향을 설정하는 존재로서의 사람
3) 종합적(전체적인)인 존재로서의 사람.

 

이 셋이야말로 사람됨의 근본이며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인간상 역시 이 셋을 중심으로 설정되어야 하며, 교육 역시 그러한 인간상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재구성 되어야 한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0세기까지 근대 교육은 ‘목적’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였다. 교육은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능, 즉 능력(ability)을 기르는 것이지 목적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 목적으로 주어지는 능력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필요, 사회의 필요에 의해 교육 외부에서 먼저 존재했고, 교육의 목표는 언제나 “~에 대한 지식” “~을 할 수 있는 기능”을 익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 에 대한 지식, 기능”은 그 특정한 지식과 기능만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지능 장착 기계가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사실 인공지능까지 갈 것도 없다.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항상 특정한 기능을 그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 목적에 “지식”까지 포함시킨 것이 인공지능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공지능이 정말 “~에 대한 지식, 기능”을 알고 있는 것인가 되물어야 한다. “~ 할 수 있는 능력”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면 분명 능력이 있다. 인공지능은 합리적 행위자라면 할 법한 그런 선택과 결과를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내는데 특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알고 하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 인공지능의 결정적인 빈틈이 있다. 인공지능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 결과를 내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심지어 그 결과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애초에 그런 것들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목적에 들어있지 않다. 다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주어지고, 그 문제가 해결된 상태가 목표로 주어질 뿐이다. 인공지능은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계산해 가며 그 목표 상태에 도달할 확률이 가장 높은 행위나 조치를 선택할 뿐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목적 달성 외에는 아무 목적이 없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목적은 어디서 올까? 당연히 인공지능 외부에서 주어져야 한다. 가령 알파고에게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서로 번갈아 가며 두 직선의 교점에 돌을 놓아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적이 주어지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알파고는 알지 못한다. 물론 구글 딥 마인드의 경영자와 개발자들은 그 이유를 안다. 가장 복잡한 게임으로 알려진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고수를 물리침으로써 인공지능 발전의 새로운 단계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에게는 이런 목적이 없다. 목적은 구글 딥마인드의 경영자와 기술자들, 즉 사람의 몫이다. 인공지능은 철저히 사람이 세운 목적에 종사한다. 때로 사람보다 그 목적에 더 합리적으로 종사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사람을 능가한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앞으로 “~에 대한 지식, 기능”을 가진 사람이 전혀 불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을 갖춘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교육은 여전히 “~에 대한 지식, 기능”을 가르쳐야 한다. 구글, 유튜브에 다 나오는데 지식 교육 따위는 필요 없다는 말은 무책임하다. 오히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지식과 기능을 바탕으로 무엇인가 더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지식과 기능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 “목적을 세우는 존재로서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런 사람을 기르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 앞에서 존재론을 통해 살펴 보았지만, 목적을 세울 수 있는 존재를 기른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기른다는 것과 동의어다. 어떤 의미에서 교육은 이제야 산업사회에서 상실한 휴머니티를 재발견한 셈이다. 산업사회에서의 교육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길러내는 것이었다. 즉 당시의 교육은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을 생산 라인에 당장 투입해도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살아있는 기계로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그 기계가 반드시 구현해야 하는 프로그램이나 기능을 장착시키는 과정이 공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져왔다.

 

가령 어린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던 질문에 대해 20세기 교육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선생님, 이거 왜 해요?”

 

이것은 사람의 교육이 아니다. 기계가 단지 대체된 신체에 불과하던 시절에는 이를 깨닫지 못했다. 기계는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사람, 즉 지성과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3세대 인공지능은 사람과 인공지능의 결정적인 차이가 지성, 감성의 유무, 혹은 그 질과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냈다. 지성의 경우는 이미 인공지능이 사람을 능가할 날이 멀지 않았고, 감성이라는 것 역시 뉴럴 시스템이 고도로 발전하면 어떻게든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구현할 이유가 없을 뿐이다. 사람과 거의 같은 모습의 안드로이드에게 감정노동을 전담시킨다면 인공지능이 감성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그 안드로이드의 미세한 안면 조절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사람이 그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그러나 안드로이드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 싸진다면 이른바 감정 노동의 상당 부분이 인공지능에게 대체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결국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사람의 고유성을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인공지능에게 무엇을 시켜야 할지, 인공지능이 앞으로 담당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나아갈 방향과 범위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바로 사람이다. 커즈와일이 꿈꾸는 특이점이 정말 2049년 경에 올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당분간은 인공지능은 ‘인공’ 지능에, 즉 사람이 만드는 지능에 머무를 것이다. 혹시 인공지능이 스스로 자신을 코딩하고, 때로 업그레이드까지 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 수준까지 발전하더라도 무엇을 하기 위한 인공지능인지, 업그레이드의 방향이 무엇인지는 사람이 정해주어야 한다.

 

3세대 인공지능이 그 이전의 실패를 극복하고 눈부신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까닭은 역설적이게도 ‘사람처럼 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3세대 인공지능은 튜링 테스트를 포기함으로써 기존의 한계를 극복했다. 사람이 생각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구태여 구현하려 하는 대신 주어진 과제의 효율적인 해결에 집중했다. 그 생각과 추론의 과정이 사람과 같던 다르던, 그 결과가 합리적인 사람이 충분히 추론한 것과 같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이는 새의 날개 짓을 흉내 내는 것을 포기한 다음에야 비행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과 같다. 하늘을 날면 되는 것이지 꼭 새처럼 날 필요는 없는 것이다.

 

3세대 인공지능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동된다.

 

목적 확인 → 목적이 달성된 상태 확인 → 현재 상태 분석 → 현재 상태에서 목적이 달성된 상태로 이행할 성공확률이 가장 높은 방안을 선택

 

3세대 인공지능에게는 목적이 미리 주어져 있어야 한다. 더구나 그 목적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어서는 안된다. 성공과 실패 사례가 충분히 누적되어 있는 것이라야 한다. 만약 그 사례가 충분히 누적되어 있지 않다면 성공확률을 계산하고, 성공과 실패를 판별할 특징 학습에 필요한 딥 러닝을 할 수 없다. 그러니 인공 지능은 의외로 보수적이다.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일을 생각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은 이미 성공, 실패 사례가 충분히 자료로 누적되어 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상당히 보수적인 도구다. 인공지능은 새로운 목적을 찾아내는 도구도, 혹은 아직 사례가 충분하지 않은 일을 시험 삼아 해보는데 도움이 되는 도구도 아니다. 이러한 일은 계속 사람이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사람이 얼마나 많이 수행하느냐에 인공지능의 효율이 걸려 있다.

 

결국 언제나 그 출발점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서 있느냐에 따라 어떤 인공지능이 되는가가 결정된다. 교육의 수준은 교사의 수준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인공지능의 수준 역시 사람의 수준을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확산되더라도 사람의 교육이 더욱 중요해지는 까닭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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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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