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학습 부진아’의 틀에서 벗어나기
목차
Ⅰ. ‘학습 부진’의 일반적 접근에서 놓친 ‘틈’ 찾기
Ⅱ. 학습 부진을 규정하는 틀의 문제점
1. 주어진 교육과정의 문제점
2. 배운 교육과정을 측정하는 평가 도구의 문제점
3. 교육과정 실행에 미치는 문제점
1. 교육주의보다는 학습주의로
2. 학습의 결과를 평가하기보다는 학습을 위한 평가를
3. 경쟁보다 민주적 학습 공동체를 통한 협력을
Ⅰ. ‘학습 부진’의 일반적 접근에서 놓친 ‘틈’ 찾기
Zornado(2001)의 ‘만들어진 아동’에서 아동 문학은 성인이 원하는 아동을 길러내기 위해 그들의 시각에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를 담은 그릇이다. 아동은 그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읽고 모종의 감응을 보이지만, 그들이 생성했다고 여겨지는 감응은 성인이 만든 경계에 예속되어 있다. 나는 ‘만들어진 아동’에서 우리가 지금 ‘학습 부진아’라고 규정하고 있는 집단 또한 경계 세움을 통한 인위적인 혹은 일시적인, 부자연스러운 인공집단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학습이라는 것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것을 배우려는 자발성과 욕구로 본다면, 이 기준으로 범주화된 집단은 지금 우리가 통상적으로 논하는 ‘학습 부진아’와 다를 것이다. 우리 사회를 ‘배움을 지겨워하면서도 교육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려는 사람들의 사회’로 규정한 오욱환(2015)의 접근을 따른다면, 자발성을 내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습 부진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학습 부진아’는 특정 집단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결과물이며, 이에 김종훈(2015) 역시 통제와 규율을 통한 ‘사람 만들어 내기’와 ‘정상성 및 표준화’로 기초 학력이 지닌 한계와 모순을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학습 부진’을 규정하는 틀은 무엇이며, 이 틀이 지닌 오류는 없는가. 우리가 어떤 기준을 삼아 학습 부진아를 만들어 냈다면 그 기준이 과연 맞는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기초학력에 대한 접근은 학습 부진의 원인을 누적된 학습 결손으로 보고 이를 해소하면 학습 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접근은 학습 부진을 결정하는 외부의 시각을 그대로 수용하고, 이것이 옳다는 것을 전제로 이 틀 안에서만 학습 부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에 본 글은 학습 부진 문제를 학습 부진을 규정하는 기준의 문제로 보고, 교육과정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현재 학습 부진을 규정하는 틀은 무엇인가. 학습이 부진하다는 것은 학습해야 할 것을 다하지 않았거나 그 수행 여부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해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학생이 해야 하거나 배움의 결과로 나타나는 그 ‘무엇’이 있어야 이것으로부터 학습이 부진하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 현재 학습부진아에게 주어진 ‘무엇’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내용을 정하여 고시한 국가교육과정으로, 일정 기간 동안 전국의 초·중등학교에 적용되는 교육과정이다.
– 기초학습부진학생: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읽기, 쓰기, 기초수학능력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
– 교과학습부진학생: 학년 교과 교육과정에 제시된 최소 수준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대상 교과: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교육과학기술부, 2008)
국가는 특정 학년에서 이수해야 할 교육내용을 교육과정 고시 문서를 통해 지정하고 있으며, 그 학년 혹은 학년군의 끝에서 국가가 고시한 교육내용을 학생이 습득하지 않았을 때 그 학생은 부진아로 판별되므로, 주어진 국가교육과정은 곧 학습 부진을 규정하는 틀이다. 다음으로 국가로부터 주어진 교육과정이 학생이 학습하고 수행해야 할 그 ‘무엇’이라면, 그 ‘무엇’을 학생이 어떻게 성취했는가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학습 부진을 규정하는 틀이 될 것이다. 이것은 ‘무엇’에 대한 ‘어떻게’에 해당한다. 즉, 측정도구는 주어진 교육과정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를 규정함으로써 학습 부진 판별에 관여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초·중등학교에서는 기초학력진단평가를 통해 학습 부진아를 판별하는 데, 예를 들어, 객관식 문항 25문항 중 도달 기준점수인 16에 도달하지 못하면 학생은 학습 부진아로 구분된다. 이에 기초학력진단평가로 대표되는 측정도구가 학습 부진을 규정하는 두 번째 틀이 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틀은 학습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교실과 연속선상에 위치시킴으로써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데, 주어진 교육과정이 국가에서 고시된 형태로 하나의 ‘기준’으로 작동한다면, 교실에서는 이 ‘기준’을 교사가 구현함으로써 학생이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한 학년을 마치고 다음 학년이 될 때 기초학력진단평가는 이전 학년의 내용을 측정함으로써 학습 부진아를 결정한다. 즉, 시간 순으로 본다면 학생이 배움을 실천하는 교실 전후로 각각 주어진 교육과정과 측정도구가 배치되고, 교사는 이 두 개의 틀이 서로 당기는 긴장감 속에서 이 둘을 의식하며 학생의 학습을 돕거나 학습 방식을 결정한다. 이에, 학습 부진을 규정하는 틀은 두 가지 문제점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틀 자체가 지닌 내부적 결함이며, 다른 하나는 이 둘이 학생의 학습이 이루어지는 장인 교실을 속박하며 발생하는 문제점이다.
1. 주어진 교육과정의 문제점
가. 교육과정 내용의 과부하
어떤 내용을 학습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며, 꾸준한 반복을 통해 숙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한 반면, 배워야 할 학습량이 많을 때 학생은 충분하지 않은 시간으로 인해 학습 부진 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에 우리나라도 교육내용의 적정화, 대강화 등으로 교육내용을 조절하려 하였고, 그 이면에는 학생의 학습부담 경감과 이를 통한 의미 있는 교육적 경험 및 성장이 자리 잡고 있다(김재춘, 2003; 황규호, 2004). 구체적으로, 제4차 교육과정 시기 초등 1-2학년 교과를 줄임으로써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을 탄생시킨 것에서 시작하여 2009 개정 교육과정 시기에 도입된 교과군과 학년군, 최근 2022 개정에서 교육과정 과부하(curriculum overload)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등은 교육내용을 줄이려는 대표적인 시도이다. 교육내용 적정화가 교육과정 개정 시기마다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고,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교육과정 장치가 있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교육내용에 있어 적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단언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고, 같은 요인을 비교한다고 해도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이 있기 때문에 국가 간 직접 비교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같은 현상을 어떻게 접근하는지, 어떠한 양상으로 구현하는지 서로 견주어 볼 수 있기 때문에 국가 간 비교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교육과정 적정화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와 핀란드 상황을 비교해볼 때, 물론 핀란드는 국가 이후에 지역교육과정이 개발되기에 우리와 다른 상황에 처해있지만 학습부진의 틀이 되는 교육과정, 구체적으로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비교해 보았을 때 그 양에 있어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학년에서 6학년까지 국어, 수학, 사회의 성취기준 양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국어 57개, 수학 98개, 과학 113개라는 성취기준 수를 지니고 있고, 핀란드는 국어 15개, 수학 14개, 과학 19개라는 성취기준 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직접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두 나라의 성취기준 수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넘어 핀란드가 우리나라보다 성취기준 수가 현저히 적다는 것은 그것이 우리나라 보다 상위 수준에서 성취기준 수를 진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 있어 문제점은 바로 이것이다. 매 개정마다 교육내용 적정화를 외치지만 성취기준을 진술하는 수준이 하위수준이기 때문에 교육내용을 쉽사리 조정하기 어렵고, 이것이 곧 교육과정 과부하로 연결되는 것이다. 성취기준은 제7차 교육과정에서 처음 들어온 내용 제시 방식으로 ‘내용+행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육과정 내용을 성취기준 형식으로 취함으로써 기존의 방식인 내용 요소를 나열하는 방식을 대체하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취기준을 진술하는 데 있어 기존의 제시 방식인 내용 요소에 행동을 더하는 식으로 성취기준을 진술함으로써 많은 양의 성취기준을 양산해냈다는 것이다.
| 제6차 교육과정 | 제7차 교육과정 |
| (1) 우리 고장의 모습
(가) 우리 고장의 모습과 지도 ․ 땅 모양 ․ 길, 집 ․ 유적지 ․ 고장의 모습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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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장의 모습과 생활
(가) 고장의 모습과 지도 ① 간단한 기호가 들어 있는 그림 지도를 보고, 지도의 요소와 지도 읽는 방법을 익힌다. ② 고장의 모습을 관찰하여 그림 지도로 나타낸다. ③ 고장의 그림 지도를 보고 고장의 실제 모습과 생활 모습을 이야기한다.
〔심화 과정〕 ① 고장의 간단한 조감도를 보고 그림 지도로 나타낸다. ② 고장의 그림 지도를 보고 고장의 특징을 찾아 이야기한다. |
물론, 현재는 교육내용 적정화로 어느 정도 개선되기도 하였고 교과마다 차이도 있지만, 성취기준 진술이 내용 요소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성취기준 수가 많고 특정 내용을 붙박인 진술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미국과 한국의 과학과 성취기준을 비교해 보면, 성취기준을 더 구체화하여 진술한 것이 벤치마크임에도 불구하고 벤치마크가 우리나라 성취기준보다 더 상위 수준에서 진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미국 과학과(조재식, 2005) | 한국 과학과(2015 개정 교육과정) |
| (성취기준) 학생들은 과학적 탐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였음을 직접 보여준다.
(벤치마크) 학생들은 독립적으로든 협동해서든 자신들이 알고 싶어 하는 간단한 실험을 수행한다. |
[6과16-02] 소화, 순환, 호흡, 배설 기관의 종류, 위치, 생김새, 기능을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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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 제시하는 주어진 교육과정이 지닌 첫 번째 문제는 내용 수준에서 성취기준을 진술하였기 때문에 학생이 성취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며, 시간과 비례해 보았을 때 우리나라 학교의 경우, 성취기준뿐 아니라 역량, 범교과주제 등도 정해진 시수 안에서 다뤄야 하기 때문에 교육과정 내용에 과부하가 있다는 것이다.
나. 교육과정 내용의 불균형
주어진 교육과정의 두 번째 문제는 그것이 교육과정 내용을 제시하는 데 있어 불균형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나는 데 하나는 교과 내 불균형이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교과 간에 불균형이 있다는 것이다. 교과 간 불균형 문제는 쉬이 들어왔던 것이다. 여러 교과 중에 주지교과라고 따로 분류하여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주지교과와 대규모 총괄평가 교과에 시수를 더 배정하는 것, 주지교과를 오전에 배정하고 그 외 교과를 오후에 배정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교과 간 불균형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각 학생마다 본인에게 알맞은 표상형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특정 교과의 표상형식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학생의 학습에 제약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표상형식은 내가 경험한 것을 표현하고 남과 공유하는 방식이다. 사람마다 표상형식이 다르며 각자에게 더 알맞고 적확한 표상형식이 있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 각자가 지닌 표상형식을 충분히 활용하도록 기회를 주기보다 특정 표상형식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지 않는 학생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표상형식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학습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일찍이 Eisner(1995)는 학교교육과정에 표상형식 선택의 폭이 좁음을 지적하며, 표상형식이 언어와 수의 사용으로 제한됨으로써 교육적 불평등이 증가함을 언급하였다. 학습을 지속하는 힘은 학생 주체성, 내적 동기, 흥미다. 학생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활동에 참여하여 누적된 흥미를 얻는다면 그 경험은 학습의 다음 경험에 유의미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주어진 교육과정은 학생의 표상형식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학습한다는 경험을 충분히 체화하지 않은 학생에게 학습에 있어 부진함을 안겨 준다.
다음으로 교과 내 표상형식의 제한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내용 요소 수준의 교육과정 성취기준 진술과 관련이 있다. 앞에서 제시한 과학과 교육과정을 예로 들면, 성취기준을 상위 수준에서 진술할 경우,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가 많아진다. 성취기준을 더 구체적으로 진술한 벤치마크인 ‘학생들은 독립적으로든 협동해서든 자신들이 알고 싶어 하는 간단한 실험을 수행한다’에서 이 진술은 특정 실험이나 명세적인 학습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사는 식물 한 살이 실험을 하던 이산화탄소 발생 실험을 하던 학생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스스로 설계하여 실험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여기서 중요한 또 다른 사항은 벤치마크에 진술된 ‘자신들이 알고 싶어 하는’이라는 문구다. 이 벤치마크에서 학생은 최소한 자신의 흥미를 반영하여 자율적으로 실험을 설계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학습 내용을 세세하게 안내하는 것으로 성취기준을 진술하고, 알아야 할 공통적인 내용을 하위 요소까지 두기 때문에 학생은 여러 경로로 성취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처음부터 차단당한다. 또한 ‘설명할 수 있다, 발표할 수 있다, 조사할 수 있다, 비교할 수 있다, 토의할 수 있다, 관찰할 수 있다’ 등 학생이 어떤 행위를 보여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지정해주기 때문에 학생은 자신의 표상형식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
2. 배운 교육과정을 측정하는 평가 도구의 문제점
가. 변별 도구로의 전락
평가의 가장 큰 목적은 학생의 학습을 독려하기 위해 풍부한 피드백을 주는 것이고, 지금 실행되는 수업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더 학생에게 제공해야 하며,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조정, 개선해야 할 것인지 정보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에게 평가는 고위험부담평가로 인식되며, 나의 학습을 독려하고 교수 방법을 교정하기보다 나를 등급화하고 그 등급을 통해 나의 위치를 고정시키는 절대적인 도구로 여겨진다. 평가를 보는 이러한 관점이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으며, 그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도구는 대학 입학 시 적용되는 평가다. 학생을 변별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는 이 평가도구는 교육과정에 제시된 성취기준마저 왜곡하며, 그 현상을 이용환(2002)은 2001년에 치러진 수학능력평가로 설명한다. 6차 교육과정 하에 치러진 2001년 대입시험은 문학에 있어 서로 다른 세 사람이 쓴 세 시의 ‘공통점’을 찾도록 학생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제6차 교육과정 문학의 성취기준은 ‘작품은 수용자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안다’이며, 이 성취기준에 준하여 보면, 평가가 변별을 위해 본래의 성취기준을 얼마나 왜곡했는지 알 수 있다. 평가란 교육과정 목표에 준하여 실행된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 학생 변별을 위한 도구로 전락될 때 평가는 그것이 지닌 고유한 기능을 상실한 채 시험을 잘 보기 위한 학습, 반복되는 문제풀이 등 불완전한 학습, 아니 어쩌면 학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기계화된 반복과 암기만 학생에게 안겨줄 뿐이다.
나. 무분별한 객관화
두 번째 역시 왜곡된 평가와 관련 있다. 제7차 교육과정부터 성취기준이 도입됨으로써 변화된 한 가지 현상은 ‘내용’에 ‘행동’을 넣음으로써 성취기준이 학생의 수행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수행 평가, 교사 평가, 과정 중심 평가 등 학생이 실제로 보이는 수행을 중심으로 한 평가가 강조되고, 교사가 자신이 가르친 것을 자신이 직접 평가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됨으로써 교육과정과 평가의 관련성은 더 밀접해졌다. 교사는 수업 중에 학생과 함께 교육과정을 정하여 구현해 나감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학생이 어떤 수행을 보이는지 평가하는, 실행 중 평가를 실시함으로써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교육과정과 평가를 일원화해 나간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 현상이 모든 평가 현상을 아우르는 것은 아니며, 특히 집단과 집단을 가르고 어떤 인공적인 집단을 만들어낼 때 시험은 객관식인 경우가 많고, 그 대표적인 예가 학습 부진아를 선별하는 기초학력진단평가다. 기초학력진단평가는 객관식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객관식 문항은 교육과정 성취기준으로부터 문제를 어떻게 개발했는지 문제별로 성취기준을 제공한다. 따라서 성취기준과 평가 문항을 보면 기초학력진단평가지가 어떻게 성취기준을 평가도구로 연결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데, 기초학력진단평가가 객관식이라는 평가 형태를 취하다 보니 성취기준의 내용을 다 담지 못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국어 성취기준의 경우, ‘회의에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교환한다’, ‘절차와 규칙을 지키고 근거를 제시하며 토론한다’ 등의 성취기준은 학생이 실제로 수행하는 것에 기반한 성취기준이다. 그러나 이것을 선다형 문제로 평가할 경우, ‘함’보다 ‘앎’을 더 우선시 하게 되며 이러한 접근은 학생의 수행을 중심으로 한 성취기준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3. 교육과정 실행에 미치는 문제점
가. 교육 방향의 상이함과 혼란
교사는 학생과 함께 교실에서 교실교육과정을 개발할 수 있다. 학생의 흥미, 요구를 반영한 수업을 만들 수도 있고, 교사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중심으로 수업을 만들 수도 있다. 사회적 쟁점이나 이슈를 수업으로 만들 수도 있고, 지역 사회와 연계하여 수업을 만들 수도 있다. 학교교육과정 자율화라는 교육과정의 방향성, 10년 동안 지속된 혁신학교운동, 마을교육공동체, 교사가 교과목을 만들 수 있는 학교교과목(전북)과 학생생성교육과정(경북)은 교사에게 교육과정 주체자로서 스스로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학생에 맞게 전개하라는 방향성을 주었고, 교사의 역할 역시 이러한 방향성으로 많은 부분 변모했다. 교과서를 펴고 이번 시험은 어디까지 낼 것인가 협의하던 예전 모습에서 벗어나 교사는 자신이 가르칠 내용을 스스로 정하고 학생에게 가르친 것을 직접 평가한다. 평가 도구도 다양화되고 평가 방식도 많은 부분 달라졌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도 주어진 교육과정과 대규모 평가라는 큰 구조에서 벗어나기 힘들며, 그것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학교 현장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시가 강화되고 나서 고등학교 3학년 교실 수업이 문제풀이 수업으로 일상화된 것, ‘적극적으로 토의에 임한다’라는 성취기준을 구현하기 위해 토의할 기회를 학생에게 여러 번 제공하고 실제로 협의할 수 있도록 안내하였지만 선다형 문제에 취약하여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을 때 교사가 교수 방법에 있어 변화를 강요받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교육에 있어 지향해야 할 점을 교육 정책을 통해 보이고 있고, 평가 개선을 통해 학생의 학습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와 동등한 선에서 변별과 집단 나누기라는 교육의 부가 기능을 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에 적합한 방식을 객관화된 문제로 보고, 선다형 문제를 통해 측정할 수 있는 것만 인지라고 여기며 좁은 학력주의를 중심으로 학생을 끊임없이 변별해나간다.
주어진 교육과정 문서는 그것이 가르칠 내용을 규제하지만 교수 방법 면에서는 학생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육, 교사의 주체성을 보장하는 교육을 내세우고 있으며, 교사 역시 이러한 방향성에 기대어 수업을 개선해나간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성도 인지주의의 좁은 평가관 안에서 다시 좁아질 수밖에 없으며, 교사로 하여금 어느 순간 학습의 본질을 따라야 하는지, 현재 보이는 교육 현상에 맞춰야 하는지 갈등하게 만든다.
나. 교육의 소외계층 양산
주어진 교육과정에 내재된 표상형식의 제한, 특정 표상형식만을 발휘해야만 학습 부진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평가 체제는 필연적으로 교육에 있어 소외계층을 양산한다. 학생은 자신의 꿈과 연계된 수업을 하거나 자신 있어 하는 영역에서 기량을 발휘할 때 배우게 된다(김미숙, 김유상, 2014; 전명남, 2017; 조태곤, 김영욱, 2020).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때, 내가 잘 하는 것일 때 배움은 촉진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주어진 교육과정과 평가 체제는 특정한 지식을 다루고, 특정한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을 기본 틀로 삼고 있다. 이러한 기본 틀은 교실에서 곧 전제 조건이 되기에 교실의 교사는 정해진 시수와 교육내용 안에서 수업을 구현하고, 그 과정에서 특정 계층을 자연스럽게 소외시킨다. 특정 지식에 잘 반응하고,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아이, 그리고 이 특정 지식이 교육과정과 평가에서 ‘중요하다’고 인식되면 인식될수록 교실에서 그 학생은 ‘잘 하는 학생’이 되고, 수업 시수에 많이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잘 한다’는 느낌은 강화된다. 그러나 특정 지식에 반응하는 것이 서툰 아이, 특정 지식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는 수업을 통해 ‘못하는 학생’이 되고, 수업에 참여하면 참여할수록 ‘못한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이 학생은 자신의 표상형식을 수업을 통해 발휘하기도 전에 이미 규격화된 표상형식들로 인해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김정원(2022) 역시 수업을 통해 ‘공부 잘 하는 아이’가 강화를 통해 어떻게 ‘공부 하려는 아이’가 되는지,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공부를 하지 않으려는 아이’가 되는지, 그리고 여기에서 제도교육이 이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분류하고, 분류되게 만드는지 논의한 바 있다.
교육과정에 있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는 항상 중요한 문제였고, 그 문제 저변에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선택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음을 가정하고 있다. 이에 교육과정 논쟁은 주로 어떤 지식과 영역을 교육과정에 넣을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중요하지만 다뤄지지 않는 영역과 지식이 발생하게 된다. Eisner(1995)의 용어로, 중요하지만 다뤄지지 않는 영교육과정(Null curriculum)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교육이 이뤄지는 현장까지 영향을 미쳐 특정 지식과 영역을 잘 하는 아이를 이것을 지속적으로 잘 하려고 하는 아이로 만듦으로써 평가라는 공식적인 경로를 통하지 않더라도 제도교육에 입문하는 것만으로도 공부를 할 아이와 하지 않을 아이를 분별해 내는 것이다.
1. 교육주의보다는 학습주의로
가르친 교육과정의 결과가 학습한 교육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통상적으로, 누군가가 가르쳤다면 가르침을 받은 대상은 배움이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가르친 교육과정과 학습한 교육과정을 구분하여 인식하듯, 가르친 교육과정과 학습한 교육과정은 동일한 것이 아니며, 우리는 이상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가정하며 제도 속에서 교육을 실천한다. 그런데 가르친 교육과정을 학습한 교육과정과 동일한 것으로 본다면, 학생은 교수 활동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며 주체자로서의 역할을 점하기 어렵다. 즉, 우리는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한정하지만 학생 자체를 학습을 형성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로 볼 필요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전환에 도움이 되는 것이 교육주의에서 학습주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다.
| 교육주의 | 학습주의 |
| – 인간의 학습을 관리하고 통제
– 국가가 필요로 하는 내용을, 국가가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 국가가 필요한 만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 – 좁은 인지중심 교육 – 인간성의 잠재성을 축소시키는 교육 – 권위주의적 교육 – 서구중심적 교육 – 경쟁주의적 교육 – 물질주의적 경제지향적 교육, 그리하여 인간을 자기 자신과 사회 및 우주의 근원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교육 |
– 한 개인이 자신의 의도, 노력, 그리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자신의 지적, 도덕적, 정서적 향상을 이루는 것
– 인간 = 학습능력, 학습 자발성 – 교육은 학습을 위한 보조적 활동 – 교육자와 학습자는 상호학습 – 국가의 교육제도는 국가가 교육하는 제도가 아니라 학습자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제도로서 다양하고 풍부한 학습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교육활동을 육성,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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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신일, 박부권(2005)
교육주의는 인간의 학습을 통제하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내용을 특정 대상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학습주의는 인간이 지닌 학습능력과 학습 자발성에 방점을 두고 국가의 교육제도는 학습자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 둘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나눌 수는 없다. 국가가 교육을 책임지는 현대 교육 체제에서 교육주의는 어느 정도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을 교육의 본질로 삼아야 하는가,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두 패러다임이 공존한다면, 공히 학습주의 패러다임이 교육의 기저에 놓여야 하며, 교육주의가 학습주의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교육 현상에서 드러나려면 제도로서의 교육에 어떤 보완이 필요한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2. 학습의 결과를 평가하기보다는 학습을 위한 평가를
교육주의에서 학습주의로 패러다임을 옮긴다면 학습주의에서의 평가는 어떠한 형태여야 하는가. 이에 대해 Black & William(1998)은 학습주의의 평가가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의 형태를 지녀야 한다고 언급한다. 학습을 위한 평가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학생 스스로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과 성공 경험이다. 또한 평가가 학습에 공헌하려면 평가 결과를 교사의 교수와 학생의 학습을 조정하는 것에 사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사는 학생이 자신이 이해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넣어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
Earl(2003) 역시 학습을 위한 평가를 언급한다. Earl(2003)은 평가가 세 개의 형태로 구분된다고 말한다: 학습에 대한 평가(Assessment of Learning),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 학습이 곧 평가(Assessment as Learning). 교육주의 맥락에서는 ‘학습에 대한 평가’가 주도적이었다. 학교에서 무엇인가를 가르쳤다면 학생이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고, 그 대표적인 평가 형태가 ‘학습에 대한 평가’다. 그러나 학습주의로 옮긴다면 평가 역시 변해야 하는 데 학생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학습을 스스로 조절할 때 평가는 ‘학습을 위한 평가’, ‘학습이 곧 평가’가 대세를 이룬다. 교사는 효과적인 평가를 위해 평가를 학생에게 위임하고, 학생에게 성찰할 만한 질문을 하며 배우기 위한 전략을 함께 고민한다. 여기에서 평가는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하며, 학생은 자신의 학습 과정을 스스로 성찰하며 자신에게 더 필요한 학습 활동이 무엇인지 교사에게 요구하고 교사는 학생의 요구를 받아들여 학생의 학습 활동을 조절한다. 또한 교사는 학생의 학습을 위해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학습을 위한 평가를 실시할 수 있는 데, 이 평가는 배울 것과 관련하여 학생이 어떤 경험을 하였는지, 학생이 선호하는 학습 방식은 무엇인지, 학교 외 학생의 학습은 어떠한지 등 학생에 대한 학습 프로파일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즉, 학습주의를 강조하는 평가는 객관화된 문항으로 학생을 평가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평가 방식이 나타나게 되며, 학생의 지속된 학습을 위해서는 평가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3. 경쟁보다 민주적 학습 공동체를 통한 협력을
통상적으로, 어떠한 학생에게 누적된 학습 결손이 있을 때 우리는 학습 부진이 발생한다고 본다. 그러나 학습 부진은 협력보다 경쟁일 때, 개인보다 집단을 강조할 때, 자율보다 획일적인 분위기일 때 양산된다. 이에 교실에서는 민주적 학습 공동체를 형성할 필요가 있는데, 자율성(autonomy), 소속감(belonging), 역량감(competence)을 높여주는 것이 곧 구체적인 방안이다(강충열, 정광순, 문정표, 2020). 자율성에 관해서는 교육과정에 대한 학생의 목소리와 선택권을 높여주고, 소속감은 협동과 비경쟁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높일 수 있으며, 역량감은 학습 과제의 성공 기회를 모두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높일 수 있다. 학교 교육의 목적이 민주 시민 양성이라면, 그리고 학교가 학생이 민주적으로 사는 것을 배우는 곳이라면 교육과정을 통해 이것이 학생의 배움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교육과정은 학생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도록,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교육학적 배려를 충분히 해야 하며, 민주적 학습 공동체로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이 교육 내용을 선정하고 학습을 기획하는 데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자율성을 누려야 하며, 누구나 자신이 지닌 표상형식을 표현함으로써 역량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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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육정책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교육과정을 전공하였다. 주요관심 분야로는 '교육과정정책, 교육정책세미나, 교사교육과정, 학교교육과정, 국가교육과정 개발' 등이 있다. 저서로는「꼬마 시민을 기르는 통합교육과정」, 「교사, 교육과정을 만나다(역)」등이 있으며, 이 외에 다수의 논문 및 연구보고서를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