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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 활동의 목적과 인지적 기제에 대한 이해

#816 김새로나, 김해 삼문고등학교 수석교사 2022.10.19

“좀 더 아이들이 ‘활동’을 통해서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했는데, 그 점이 부족한 것 같아요… 고3 수업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좀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고민 했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쉽습니다.”

 

언어와 매체를 가르치시는 A 선생님이 수업성찰시간1에 수줍게 고백하듯 한 이야기이다. 선생님의 수업 중 교실에 앉아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을 하고 활발한 인지활동을 통해서 능동적이고 유의미한 학습을 한 것이 분명했는데도 말이다. A 선생님은 수업 나눔 전 작성한 설문조사에서도 “…이전에 하고자 하였던 참여형 수업이 쉽지 않아 ‘전달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라며 고민을 털어 놓았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 내 마음은 몇 가지 이유로 복잡해진다. 좋은 수업을 위해 고군분투 하시는 현장의 많은 선생님의 마음에 ‘활동’의 목적과 의미가 여전히 불명료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고, 현장 선생님들을 위해서 진행된 연수의 비효율성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며, 나 스스로가 관련된 연수를 진행해 온 지 어언 15년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책임감이 새삼 무겁게 느껴 지기 때문이다.

 

공유된 수업을 관찰한 결과, 학생들은 능동 학습(active learning)과 그에 따른 유 의미 학습(meaningful learning)을 경험한 것이 비교적 명확한데, 선생님은 왜 자신이 ‘전달식 수업’을 하고 있으며 아이들의 ‘활동’이 부족했다는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선생님으로 하여금 그런 자괴감을 느끼게 한 것일까?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한 불명확한 이해

 

한번 생각해 보자. 수업시간에 ‘활동’이 권장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잘 설계된 활동이 학습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습을 촉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학생이 활동을 통해서 수업 내용을 보다 잘 이해하고, 이해한 내용을 향후 다양한 맥락에서 필요할 때 손쉽게 인출하여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전이 가능한 형태로) 장기기억에 저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업시간에 진행되는 ‘활동’의 목적은 학습목표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단순히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해당 정보를 적절히 이해하고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것을 돕는 데 있다.2 즉, 학생들의 머리속에서 적절하고 활발한 ‘인지 활동’을 발생시키는 것이 수업시간에 ‘활동’을 하는 것이 권장되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A 선생님은 왜 자신의 수업에 ‘활동’이 부족하다고 느꼈을까? 관찰된 바에 의하면, 학생들은 선생님의 정교한 수업 설계에 의해서 적절하고 활발한 인지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상당한 정도의 내용을 이해하고 장기기억에 저장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도 말이다.

 

“학습활동의 궁극적인 기능은 학생들이 학습목표에 해당하는 새로운 정보를 유의미한 형태, 즉 전이가능한 지식으로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A 선생님이 본인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활발한 ‘인지 활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수업이 전달식 수업이며 수업에서 학생들의 활동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활동’을 ‘물리적(physical)’ 활동 혹은 ‘협동 활동’에 국한시켜 생각하고, 활동이 어떤 형태로 구성되던 모든 수업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적절하고 활발한 ‘인지 활동’을 발생시키기 위한 것임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3 즉, A 선생님은 본인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활발한 ‘인지 활동’을 하였지만, 그 활동이 물리적 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A 선생님의 고민이 안타까운 이유는, 본인이 해야 할 것을 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괴감으로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활동 만능주의’ 혹은 활동에 대한 ‘맹목적 압력’

 

활동의 주된 궁극적 목적이 새로운 정보를 유의미한 형태로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되면 A 선생님과 같이 불필요한 자괴감을 느끼는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부작용은 학습내용의 이해와 저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는 수업활동을 설계하는 경우이다. 즉, 활동을 통해서 성취기준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지식과 기능이 실질적으로 습득될 것인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학생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해 버리는 ‘활동 만능주의4’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 만능주의는 십여 년 전부터 공교육 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배움중심 수업 및 과정중시평가에 대한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킨 주범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활발한 활동이 학습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고, 학습이 발생하지 않은 활동이 수업시간의 유의미한 분량을 차지하면서 학습결손으로 연결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5

 

활동 만능주의의 원인은 활동중심 수업 도입 초중반기에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실시된 수많은 연수프로그램이 수업시간에 학생 활동을 도입해야 하는 궁극적 목적과 학생활동에 적용되는 학습 ‘원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연수 참여자들은 학생활동을 도입하면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안내를 받았지만, 왜 그러한 효과가 발생하는지, 어떤 조건에서 그런 효과가 발생하는지, 어떻게 그러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 즉 활동중심 수업의 원리에 대한 안내는 충분히 받지 못했고,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학생활동의 도입에 대한 큰 압력을 느끼게 되었다.6 원리에 대한 불충분한 설명이 학생활동 도입에 대한 압력에 맹목적 성격을 더하게 된 것이다. 맹목적인 압력으로 인식된 활동중심 수업 도입의 드라이브는 현장에서 그 동력을 잃기 십상이었고, 일부 선생님, 특히 다수의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저항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때로는 A 선생님이 느낀 것과 같은 불필요한 자괴감을 초래하기도 하였다.7

 

물론, ‘적절한 활동’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한 활동은 학생들로 하여금 학습해야 하는 새로운 정보를 능동적으로 처리하게 하고 유의미한 형태로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것을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습에 도움이 되는 활동과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적절한 활동 설계를 위한 학습의 인지적 기제에 대한 이해

 

학습에 도움이 되는 활동과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을 구분하기 위해서, 우리는 학습과 기억에 대한 인지적 정보처리 기제를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인지과정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 교수학습설계는 맹목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8 효율적인 교수학습설계를 위한 인지심리학적 연구결과와 함의를 자세히 안내하는 책 ‘인지부하이론(Cognitive Load Theory. Sweller, J., Ayres, P., & Slava Kalyuga, 2011)’에서, 저자들은 인간의 인지과정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특정 교수방법이나 수업 전략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지라도, 그 방법이나 전략이 왜 효과적인지, 어떤 조건에서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는지, 어떻게 그러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학습 및 기억과 관련된 인지기제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맥락에서 효율적인 교수학습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전이가능한 지식으로 기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활동과 효율적이지 않은 활동 간의 가장 기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각도에서 효율적인 활동을 살펴볼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장기기억에 배경 지식을 쌓는 것의 중요성과 어떤 내용이 기억되는 경향이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기억하게 하는가?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도록 돕는 활동이 적절한 활동이다.’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뻔한 내용을 쓸데없이 늘어놓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필요한 지식은 인터넷에서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면 되므로 특별히 외울(기억할) 필요가 없다’라는 주장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활동의 주된 궁극적 목적이 새로운 정보를 유의미한 형태로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 것에 관하여, ‘또다시 암기위주의 고리타분한 학습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인가?’라는 비난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보를 장기기억에 저장하거나 인출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 암기(rote memorization)와 장기기억에 ‘인출과 적용을 촉진하는 형태로 지식을 구조화(National Research Council et al., How people learn. 2000)’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인출과 적용을 촉진하는 형태로 지식을 구조화해서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것을 유의미 암기라고 칭할 수 있다면, 유의미 암기는 학습의 과정과 결과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의미 학습에 의하여 장기기억에 저장된 정보는 새로운 정보가 장기기억에 저장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학습은 작업기억(working memory)에서 발생한다. 학습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정보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외부로부터 감각기억을 거쳐 작업기억으로 유입된다. 작업기억에 유입된 새로운 정보는 장기기억에서 작업기억으로 인출된 정보(배경지식)와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재구조화되는 과정을 거쳐 장기기억에 저장되게 된다. 즉, 새로운 정보는 반드시 기존의 정보와의 결합을 통해서 장기기억에 저장된다. 따라서 학습에 있어서 장기기억에 저장된 배경지식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풍부하고 잘 구조화된 정보를 장기기억에 보유하고 있는 것, 즉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학습을 촉진하는데 있어서 결정적 기능을 한다.

 

새로운 정보를 효율적으로 습득함에 있어서 장기기억에 저장된 배경지식의 결정적 역할을 우리는 모두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나에게 친한 의사 친구가 있는데, 어쩌다가 새로운 수술법을 익히는 의사들의 워크샵에 따라갔다고 가정해 보자. 의사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새로운 수술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나의 이해도와 의사 친구의 이해도에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가? 워크샵이 끝난 후 워크샵 내용에 대한 기억의 정도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

 

고등학교 생명과학 내용조차 거의 알지 못하는 나는 새로운 수술법에 대한 내용을 거의 알아듣지 못할 것이며, 대부분의 정보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의사인 친구는 워크샵의 내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워크샵 후 나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초래하였는가? 바로 배경지식의 차이이다. 의료지식이 거의 전무한 나의 장기기억은 새로운 의료 정보를 맞이하기 위해 작업기억으로 내보낼 관련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않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정보는 적절하게 처리되지 못한 채 소실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를 효율적으로 습득(학습)하는데 있어서 배경지식이 갖는 중요성은 종종 ‘마태 효과(Matthew Effect)’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마태 효과는 성경의 마태복음 25장 29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를 학습의 양극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빌려 온 것이다. 즉, 배경지식이 많으면 새로운 정보를 더욱 더 빨리 습득할 수 있고,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데 어려움을 겪어 시간이 흐를수록 배경지식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학업 성취가 양극화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9

 

그렇다면 이러한 장기기억에 저장된 관련 정보(배경지식)의 중요성이 수업활동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갖는 함의는 무엇인가? 바로 성취기준에 의해 학습 목표로 설정된 교과지식과 기능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 수업활동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활동을 단순히 ‘경험’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험을 통해서 목표한 교과지식과 기능에 대한 정보가 장기기억에 저장될 수 있도록 활동을 설계해야 한다. 장기기억에서 단기기억으로 정보를 인출할 것을 요구하여 장기기억의 정보를 정교하게 재구조화하고 강화하는 효과, 즉 인출효과(retrieval effect)10를 의도한 수업활동 설계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11

 

2.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게 하는가?

 

이제 필요할 때 인출 가능한 형태로 배경지식을 장기기억에 구축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해진 것 같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할 수 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정기고사에서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공부하는 상황을 떠 올려 보자. 이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험을 잘 치고 싶어 하고, 따라서 교과 내용을 잘 기억하고 싶어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말이다.) 기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의 대가가 가혹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기억하고 싶어 한다는 것,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 등이 필요한 정보의 기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기억하기를 원하는 것을 모두 다 기억할 수 있다면 성적 걱정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반복’은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기억해야 하는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렸을 때 선생님이 숙제나 벌로 내 주시곤 했던 ‘빽빽이’를 생각해 보자. (지역에 따라서 ‘깜지’로 불리기도 한다.) 나는 선생님께서 빽빽이 몇 장을 숙제 혹은 벌로 내 주시면 내 글씨로 종이를 빡빡하게 채우기 위해서 영어단어를 무수히 반복해서 적곤 하였다. 물론 영어 단어를 외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빽빽이를 채우는 것은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데 놀랍도록 효과가 없었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아는 것,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 특정 정보를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아는 것, 반복적으로 기억해야 하는 정보에 노출되는 것 모두가 학습해야 하는 정보를 장기기억에 저장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또다른 가능성으로 정서적인 경험과 기억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강한 정서를 일으키는 경험은 보다 잘 기억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심리학과 Daniel T. Willingham 교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습득해야 하는 지식의 대부분이 특별히 정서적 경험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어, 정서 역시 장기기억에 정보를 저장하는데 필요충분 조건이 되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새로운 정보가 장기기억에 안착하도록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Willingham의 답은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것(what you think about)을 기억한다’이다. 즉, 인간은 매 순간 수없이 많은 감각정보에 노출되는데,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정보 중 주의를 기울여 생각을 한 바로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이다.12

 

“기억은 사고의 잔여물이다. Memory is residue of thought.”
(D. T. Willingham)

 

앞서 학생들이 활발하게 활동에 참여하였지만, 활동이 학습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의 문제점을 이야기한 바 있다. 활동 만능주의의 사례가 되는 활동의 경우, 이들 활동은 학생이 작업기억을 거쳐 장기기억으로 저장해야 하는 정보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국사 선생님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선택하여 기사, 만화, 광고, 이미지를 활용하여 신문을 제작하는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역사 자료 분석과 해석력을 키워주고자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활동의 유의미성을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검토해 볼 수 있을까? 바로 이 활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학생들의 사고가 가장 집중되는 정보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바로 그 정보가 장기기억에 저장되는 정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의 정교한 지시가 없는 이상, 역사신문 만들기 활동을 하기 위하여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역사적 사실을 인터넷에서 검색한 후 복사해서 붙이는 것으로 기사문 작성을 마무리하고, 활동의 많은 시간을 재미있는 광고와 만화, 이미지를 작성하는데 골몰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장기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정보일까? Willingham은 ‘기억은 사고의 잔여물이다’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그리고 수많은 인지심리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학생들의 장기기억에 남게 되는 정보는 재미있는 광고 만들기, 만화 그리기, 이미지 선정하기와 관련된 정보가 될 것이고, 이는 교사가 의도한 역사 자료 분석 및 해석력과는 거리가 먼 학습결과가 되는 것이다.

 

기억이 사고의 잔여물이라는 사실이 수업 및 과정중심평가 설계에 갖는 함의는 분명하다. 교사는 학생이 과제를 수행하면서 ‘실제로’ 무엇에 대해서 ‘주로’ 생각하게 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기억해야 할 정보와 무관한 정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방해자극이나 복잡성을 걷어내야 한다.13 높은 수업 전문성을 가진 선생님들이 갈수록 수업 설계를 단순화하고 핵심에 집중하고자 하는 경향은 그들이 이러한 인지적 원리를 누적된 경험에 의해 깨우치고 있음을 이야기해 준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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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내가 근무하고 있는 창원남산고등학교는 모든 선생님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성찰대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선생님들은 1년 중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수업 1시간을 수석교사에게 공개하고, 수업 공유 후 공유한 수업에 대해 체계화된 사후성찰 대화를 나눈다. 수업 공유 전 공유할 수업 설계에 있어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과 해당 부분을 신경 쓰는 이유, 해당 초점이 수업설계에 적용된 부분 등에 대한 설문을 작성하며, 사후성찰대화는 사전설문 응답 내용을 기초로 진행된다.
  2. 정보를 장기기억에 인출이 용이한 형태로 확실히 저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장기기억에 들어가 희미하게 저장된 정보를 작업기억(working memory)으로 인출해내는 것이다. 인출효과(retrieval effect)는 인지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검증되어온 연구결과 중 하나이며, 학습효과를 인정받는 다양한 수업활동은 대부분의 경우(의도하였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인출효과를 누리고 있다.
  3.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협동심 등을 포함해 올바른 인성을 갖추게 되는 것 역시 인지 및 정보처리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습득한 사람은 타인을 존중하는 것과 관련된 정보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형태로 장기기억에 저장되어 있으며, 장기기억에 저장된 의식되거나 의식되지 않은 정보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 ‘활동 만능주의’는 몇 년 전 한 국내 학자의 글을 보며 알게 된 표현이다. 안타깝게도 어떤 글에서 활동 만능주의라는 표현을 알게 됐는지 기억이 희미하고, 검색을 통해서도 해당 표현을 만들어낸 저자를 알아내지 못하였다.
  5. 학교 현장에서 발생한 학습결손은 학생이 가정에서 충분한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는 지원을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 보전되지 못한 결손으로 누적되기 쉽고, 계층간 학습격차를 넓히는 원인으로 연결되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존재한다. 보다 자세한 정보를 원하는 분들은 ‘Why Knowledge Matters: Rescuing Our Children from Failed Educational Theories.’(Jr., E. D. Hirsch. (2019). Harvard Education Press.)를 읽어 보기를 권한다. 한국에서는 2020년 EBS 다큐멘터리 ‘다시, 학교’에서 동일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6. 교사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연수에서 활동중심 수업의 원리를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활동중심 수업은 학생들이 ‘원리’를 ‘이해’하여 전이가능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지향하는 접근인데, 성인학습자인 교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인 연수에서는 이러한 지향이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7. 물론, 활동의 의의에 대한 이해 여부와는 별개로 새로운 수업모형을 시도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선생님들이 계셨던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불편감을 초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활동중심 수업의 도입과 함께 강의식 수업의 가치가 전적으로 부정되었던 데에서도 거센 저항의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교사에게 자신이 수행하는 수업의 질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며, 강의식 수업의 가치에 대한 전면적 부인과 비난은 자신의 가치를 부인 당하는 것과 맞먹는 충격과 부당한 압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강의 가치에 대하여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활동의 의의에 대한 이해도와 활동중심 수업의 현장 수용도가 상당히 높아져 있는 상태이다.
  8. Sweller, J., Ayres, P., & Slava Kalyuga. (2011). Cognitive Load Theory. Springer New York.
  9. 이러한 기억의 메커니즘은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의 영역특수성(domain specificity)을 설명하는 기본 기제가 되기도 한다.
  10. 인출효과는 시험효과(testing effect)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시험’은 ‘장기기억에서 적절한 관련 정보를 인출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 본다’라는 의미인데, 학교에서 실시되는 시험의 개념과 혼동의 여지가 있어 최근에는 주로 인출효과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11. 인출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학습 활동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구현할 될 수 있다. 각주 2.에서 언급했듯이, 학습의 효과를 높인다고 정평이 나 있는 다양한 유형의 학습 활동은 대부분 인출효과를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활동은 학생이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의 유의미한 재구조화를 위하여 장기기억에서 정보를 인출하도록 요구한다.
  12. Willingham, D. T. (2009, March 16). Why Don’t Students Like School?: A Cognitive Scientist Answers Questions About How the Mind Works and What It Means for the Classroom. Jossey-Bass.
  13. Sweller의 인지부화이론(Cognitive Load Theory)에 의하면, 기억해야 할 정보와 무관한 정보나 과도하게 복잡한 부가적 정보/활동은 사고가 발생하는 작동기억에서 인지적 부담을 가중시켜 한정된 인지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방해하고, 학습효과를 감소시킨다.
김해 삼문고등학교 수석교사 김새로나

이화여자대학교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의 대학원에서 인지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리서치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였고 이후 영어 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EBS의 ‘최고의 영어 수업’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으며, EBSi의 고등학교 심리학 강의를 맡아 하기도 하였다. 현재 김해삼문고등학교에서 수석교사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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