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소속 교사 제도를 만들자
뜨거운 열기가 지나고 바람도 바뀌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준비되지 않은 5세 취학 정책은 눈 깜짝할 사이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지금 대한민국 교육은 교육부 관료들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는 중이다. 7월 18일 대통령에게 보고했던 수도권 대학에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리는 방안은 일시적 대증 요법이었고, 7월 29일의 교육부 업무 보고는 총체적 패착이었다. 8월 22일 발표된 디지털 인재 양성 종합방안도 맨손으로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잡겠다는 정책이었고 그나마 새롭지도 않았다. 십여 년 전 정부는 초등학교 컴퓨터교육 방안을 발표하면서 4년 후에 모든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컴퓨터교육을 받는다고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도 모르고 가르칠 교사도 없는 게 지금 학교의 현실이다. 그래서 여유 있는 학부모들은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 앞으로 교육부는 국책기관과 대학을 동원해 연구도 하고 교육청을 통해 연수도 하겠지만, 결국 컴퓨터든 코딩이든 AI든 학교 교사가 가르쳐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인재 양성 정책의 핵심은 학교 교사가 양질의 코딩과 AI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체제를 만드는 데 있다. 수업 콘텐츠와 교재를 만들고 교사를 동원해 연수하는 사업은 상대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 정작 어려운 것은 학교 교사의 수업을 통해 아이가 코딩과 AI 관련 지식과 태도를 키우는 일이다. 초등학교부터 교사가 가르칠 역량을 키우고, 교대와 사범대 교육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가르칠 교사를 양성하고 임용해야 한다. 정책 효과를 거두려면 더 긴 호흡으로 더 큰 규모의 그랜드 플랜을 세워야 하지만, 늘 그렇듯이 교육부는 이번에도 대통령의 말씀을 단어 하나하나 충실히 따라가는(ad verbum) 쉬운 길을 선택했다. 대통령이 손가락 얘기를 해도 달을 보아야 하고, 대통령의 단어를 정책적 가능성(ad sententiam)으로 번역해야 했다. 하지만 스스로 새로운 일을 추진하지 않는 관료적 특성에다가 5세 입학 사태까지 트라우마가 되었으니, 앞으로 대통령이 공약했던 ‘교육개혁’(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의 추진 동력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실 주변이 언론에 장관 후보자들을 흘려 ‘간보기’하는 행태는 그야말로 참담하다. 현재 국면에서는 장관 임명 과정도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교육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제 교육과정과 고교체제와 대입제도라는 뜨거운 이슈는 국가교육위원회로 넘어갔다. 새 장관을 급하게 임명하기보다 오히려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임명과 국가교육위원회 구성부터 해서 새 교육과정 발표 및 고교체제와 2028학년도 대입 논의 절차를 시작하고, 새 교육부 장관 지명을 국가교육위원회 구성 이후로 미루는 게 그나마 현실적이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더 좋아질지 친윤 서열 따지지 말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어쩌면 이 가을이 마지막 시점이다. 5세 취학이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었다면, 교육부는 정책을 포기하지 말고 국민을 더 설득했어야 했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는 변명은 설득할 논리가 없거나 의지가 없었다는 사실을 교육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유보통합, 돌봄 확충, 반도체 인력 양성, 디지털 인재 양성, 대학입시 개혁, 고교체제 개편, 교육과정 개편, 고교학점제, 수도권 대학의 지방 이전을 어떻게 추진할 수 있겠는가. 도깨비방망이는 없다.
정부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여름에 여러 교육청에서는 교육감인수위백서를 발표하였고, 교육감의 공약과 관심 사항이 반영된 향후 4년간의 교육청 운영계획이 공개되었다. 필자는 “학교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친절한 교육청”이 교육청의 역할이며, 정책 결정권자인 교육감의 의지와 진정성도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기’, ‘단어만 바꿔서 해왔던 정책 이어가기’, ‘정부 정책 따라하기’, ‘다른 교육청 따라하기’로 가득한 백서라면 일선 학교와 아이들은 무슨 도움을 교육청에서 구할 수 있을까. 돈만 쓰고 생색내는 정책, 뭔가 하는 척하고 성과는 일선 학교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정책, 주변 사람들 자리를 만들고 예산을 얹는 정책으로 가득하다면 백서는 현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혹세무민이자 교언영색일 뿐이다. “학교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친절한 교육청”이란 교육청이 정책을 집행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개별 사업화된 교육정책은 탑-다운 방식으로 내려온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새로운 교육정책을 만들고 이를 사업화하여 예산과 지침을 함께 아래로 내려보낸다. 교육청은 이를 받아 일선 학교에 전달하며 규정에 따라 온전히 집행되도록 지도한다. 한편 교육청은 별도의 교육감의 정책 사업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일선 학교에 예산과 지침을 내려보내고 들볶기 시작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사업과 예산은 시도 때도 없이 학교로 내려오고, 느닷없이 연말에 내려오기도 한다. 사업을 집행할 일선 학교에서는 계획을 늘 수정해야 하고 운영할 교사도 새로 찾아야 해서 늘 바쁘고 혼란스럽다. 교육청의 A사업과 B사업이 유사해서 일선 학교가 통합해서 시행하려고 하면 양쪽 담당자 모두 안 된다고 한다. 학교 교장은 여러 부장을 불러서 사업을 나누고, 부장은 그 일부를 다시 교사에게 배분한다. 결국 교육청의 지침에 맞춰 사업계획서를 쓰고 집행하며 정산하고 결과보고서를 쓰는 사람은 부장 교사와 평교사들이다. 이런 사업이 너무 많다. 결과보고서는 예산 집행 내역서이며, 성과는 행사와 인력과 시간이다. 이는 다시 교육청과 교육부로 올라가 양적으로 예산, 행사, 인력, 시간이 집계되어 그들의 성과로 잡힌다. 이런 행정 속에는 아이를 위한 교육은 없고 교사의 행정 업무 부담만 있다. “학교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친절한 교육청”이 되려면 교육청은 사업을 줄이고 통합해서 사업 초점을 분명히 하고, 학교가 그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학교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규정도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는지 찾아보고 부족한 인력을 충당할 방안도 찾아야 한다. 계획은 위에서 세우고 성과는 아래에서 내는 행정으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교육을 할 수 없다. 교육감의 정책 사업만 고스란히 학교에 전달할 뿐이다. 그렇게 된다면 학교의 교사들은 스쳐 가는 바람이라며 시니컬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교육청이 추진하는 정책의 진정성을 교사가 믿게 하려면 “어떻게” 현실을 변화시킬지 그 정책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정책 수단이 오로지 교사의 시간과 능력과 헌신이라면 그것을 감내할 교사가 얼마나 있겠으며, 그 정책은 실효를 거둘 수 있겠는가. 정책의 성과는 일선 학교와 교사에게 달려 있다. 교육감의 관심 사항이니 예산을 주면서 학교와 교사를 닦달하는 행정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교육청은 학교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학교를 위해 봉사하는 조직으로 환골탈태해야 교육감의 정책이 현실을 움직일 수 있다.
“학교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친절한 교육청”이 고려할 일의 하나가 교육청 소속 교사를 만드는 일이다. 교육청 소속 교사란 1) 교사의 신분을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전환, 2) 교사의 신분을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이원화, 3) 교육청 소속 기간제 교사와 교육청이 운영하는 기간제 교사 임용 및 배치 플랫폼 구축이다. 1)과 2)는 현 법령상 불가능하고, 현직 교사와 교사 지원자가 신분 전환을 원하지 않으니 실현할 방법도 없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 보면 언젠가 다시 논의할 때가 올 듯하다. 현재 고3 학생이 45만 명 정도인 반면, 작년 출생아는 26만 명이었다. 올해 출생아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는 18년 후에는 42%의 학생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략 학교와 교사도 42%가 사라져야 한다. 학교에서 5명이 퇴직하면 정규직으로 1명, 기간제로 해에 따라 4명 → 3명 → 2명씩 순차적으로 임용하면서 총원을 줄여간다는 뜻이다. 사실상 지금 교육청이 암묵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일이다. 60명이 근무하는 학교는 36명이 근무하는 학교가 되고, 6개 반은 4개 반으로 줄어든다. 당장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학교 통폐합은 중학교로 올라오고, 법정 의무 교육 밖의 고등학교에 이르면 문제 양상이 달라진다. 공립 학교 통폐합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하지만 학생이 없거나 학생을 모으지 못하는 사립학교는 폐교되고, 사립학교 재산은 교육청으로 귀속되며, 폐교된 사립 교사의 일자리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교사직 제도의 완충 장치가 필요하다. 교원 수 증원이 거론되지만, 현실적으로 교원 수가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 교육부와 교육청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각 교육청은 퇴직 교사 수만큼 정규직 교사를 임용하지 않고 있으며, 인구 감소에 따른 교사 수의 완충 작용은 기간제 교사가 맡고 있다. 현재 기간제 교사가 약 30% 정도를 차지한다고 가정하면, 18년 뒤 학교에는 기간제 교사가 사라지고 전원 정규직 교사만 남게 될까. 아는 사람이 없고, 정해진 바도 없다. 다만 현재 분명한 사실은 정규직 교사의 수가 줄어들고, 줄어든 인원을 기간제가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 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총원이 서로 다른 비율로 모두 줄어들고, 학교 내에서 교직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아이들이 그 피해를 받는다. 더구나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 외 새로운 과목을 가르쳐야 하고, 학생의 선택권을 늘려주어야 하는데 일선 학교에는 해결책이 없다. 교대와 사범대 구조조정과 통폐합도 더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1)과 2)의 문제는 지금 논의해서 결정할 필요가 없다. 논의할 이슈는 3) 교육청 소속 기간제 교사와 교육청이 운영하는 기간제 교사 임용 및 배치 플랫폼 구축이다. 모든 학교가 기간제 교사를 구하는 일로 매 학기 소란스럽다. 기간제 교사 지원자들은 교육청 홈페이지 한쪽에 과목과 연락처를 남기고, 학교 홈페이지 등을 돌아다니며 임용 정보를 얻는다. 임용은 해당 학교와 교사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계속 연락을 취해도 기간제 교사를 구하지 못한 학교는 난감한 상황이 된다. 이 임용 계약은 매해 새로 맺으며, 계약 방식과 최대 갱신 가능 기간은 학교에 따라 다르다. 기간제 교사는 연금만 달리 적용되며 임금과 수당은 같은 처우를 받는다. 하지만 기간제 교사는 자신이 정규직 교사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이는 정규직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정규직과 기간제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1. 기간제 교사를 학교가 아니라 교육청이 채용하고 관리하자. 그리고 기간제 교사가 아니라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자.
2. 기간제 교사를 구하기 어려운 소프트웨어, AI 교과, 제2외국어, 윤리, 과학실험 교과에 대해 교육청이 기간제 교사 풀을 만들고, 여러 학교에 파견하는 순회 교사 방식으로 운영하자. 교사가 없으면 지역 대학의 협력을 구하고 잠정적인 교사 자격을 교육청이 인증하자. 그래서 일선 학교가 교사 수급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자.
교육청은 운영할 인력이 없고, 법령과 규정이 없으며,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할 수 있다. 한마디로 복잡한 일을 교육청이 떠안기 싫다는 말이다. 다행히 예산이 없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학교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친절한 교육청”이라면 학교가 안고 있는 기간제 교사 채용과 수급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나서야 한다. 한 교육청이 시행하면 이 제도는 전국적으로 퍼져갈 것이다. 교육청이 기간제 교사의 임용, 처우, 후속 교육, 배치, 연결 업무를 맡아서 학교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아이들 눈에 교사는 모두 같은 교사로 보이도록 하면 그야말로 교육감의 커다란 업적이 된다. 계약 기간, 재임용, 배치와 수급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관련 법령도 없겠지만, 한 교육청이라도 나서면 많은 학교가 혜택을 입게 된다. 고교학점제와 학생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는 기반이 될 수도 있다. 교육청이 더 많은 일을 하여 일선 학교의 부담을 덜어주고, 교사를 구하기 어려운 교과 교사를 구하여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면, 학생들은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육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기간제 교사를 교육청 소속으로 만드는 방안은 현실을 변화시킨다. 기존 정규직 교사와 교육청 관료가 반대할 이유는 많고, 찬성할 이유는 하나이다. 아이들을 위해 필요하다. 현실의 변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정책은 현실과 부딪히기 마련이다. 정당성이 확보되어도, 필연적으로 생각과 이해(利害)가 다른 사람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교육감의 진정성이 필요하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기간제 교사에 대해 검색하다가 우연히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는 이미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교육 전문가라 이리저리 훈수를 두시는데 예외(?)가 아니시라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아 그리고… 이러한 제도가 단점이 너무 많아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점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