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교사용 지도서, 내년부터는 볼 수 없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교육과정을 개정하여 새로 고시하면 바로 이어서 현장 지원 자료를 개발하여 보급한다. 교사를 위한 교육과정 해설서와 지도서가 대표적인 것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러나 2019 개정 누리과정부터는 교사용 지도서를 개발하여 보급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달라졌는가 안내하려고 한다.
1.
필자는 유치원 교육과정 개정에 두 번 참여하였다. 오래 전이지만 한 영역의 책임자로 참여했고 또 총론 연구진으로도 참여했다. 개정 작업에 두 번이나 참여했지만, 내용이 지나치게 상세하고 많은 것, 획일적인 교사용 지도서 보급 등의 문제에 대한 아쉬움이 커서 그 문제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2019 개정 누리과정에서 유아 교육과정 내용과 교사용 지도서에 대한 필자의 오랜 소망이 이루어졌다.
지난달 19일, 정부(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내년 3월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3-5세 유아를 위하여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국가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을 개정하여 확정, 발표하였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번에 개정된 누리과정은 유아교육과정에 대한 프레임 자체가 달라졌다. 그동안은 초등학교 교과와 연계하여 유아가 배우고 성취해야할 내용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했다.
이번 누리과정은 유아가 일상생활에서 놀이나 활동을 하면서 경험하고 경험해야 할 내용이 교육과정 내용이 되었다. 따라서 교사가 가르쳐야 할 많은 양의 내용이 유아가 꼭 경험하기를 기대하는 내용으로 대강화되었다. 유아교육 혁신안이 추구하는 유아중심 교육과정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교육과정으로 개정된 것이다.
유아교육 단계에서 학문과 연계된 많은 양의 내용을 국가교육과정으로 제시하면, 현장은 교사가 계획하여 주도하는 활동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유아교육이 추구하는 유아중심 교육보다는 교사중심 교육을 하게 된다. 교사중심 교육은 유아교육에서 가능한 지양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강조해 왔던 방식이다. 이제 진짜로 교사중심 활동을 덜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교사용 지도서는 교육과정 개정과 함께 정부 주도로 개발하여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급했다. 올해까지 사용하는 교육과정을 위해 교육부는 3,4,5세 교사를 위한 지도서를 주제중심 활동으로 구성하여 각각 10권, 11권씩 개발하여 DVD와 함께 전국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급하였다. 이로 인해 교사들은 국가교육과정 고시문과 해설서를 읽고 이해하기보다, 우리 반 유아들의 흥미와 관심을 관찰하기보다, 지금 현재 생활하는 이곳의 여건을 고려하기보다 지도서를 보려고 하였다. 교사가 고심하여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실행하려고 하기보다는 지도서에 있는 활동을 그대로 따라서 수업을 하려고 한 것이다. 교육과정 내용을 다 다루었는지를 확인하는 평가도 교사의 지도서 따라 하기 현상을 부채질하였다.
그러나 이번 개정 누리과정에서는 교사용 지도서를 더 이상 개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도서에 담긴 한 가지 활동을 전국의 유아교육기관이 동시에 진행하는 놀라운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해설서와 함께 구체적인 사례를 포함한 놀이이해, 놀이실행 자료가 교사의 놀이중심 교육과정 운영을 돕기 위해 개발되고 있다. 물론 교사를 위한 연수도 예전처럼 진행될 것이나 일방적인 강의식의 연수가 아닌 교사가 참여하는 방식의 연수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현장 교육기관들이 직접 실행한 놀이 사례집도 공모하여 전 교육기관에 제공하려고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2.
왜 이렇게 달라졌는가. 이 모든 과정은 유아에 대한 신뢰와 유아기 놀이의 가치, 그리고 교사가 교육과정 전문가라는 점을 새롭게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가장 좋은 자료는 현장에서 나온다는 경험적 지식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 교육 자치를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단위 교육기관의 자율성과 교사의 자율권을 실제 교육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한 것이고, 유아에게도 자유와 주도권을 더 많이 주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마침내 제거한 것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육은 대학 입시와 상대적으로 멀기 때문에 새로운 교육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고들 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래서 유아중심 놀이중심 교육과정으로의 개정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정부가 주도하여 개발 보급해 온 획일적인 교사용 지도서를 없앴다는 것은 교육과정 전문가로서의 교사의 자율권을 실제로 보장해주는 것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는 초중등학교 교사들보다 양성과정이 다양하고 학력 수준도 더 낮은 교사들이 많다.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지도서가 보급되지 않는 것에 대해 벌써부터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방식의 교단 지원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으니 교사를 믿고 시도해보자. 교사들은 분명히 책무성을 더 느끼며 유아들을 지원할 것이고, 이에 비례하여 유아들은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경험을 하면서 배움을 창출해 갈 것이다.
우리 초중등학교에는 아직 국정교과서가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국정교과서는 최소한으로 하고 검인정제도를 적극 확대하고 있다. 교육과정과 국정교과서 정책은 집권 정부의 토대 이념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사용지도서는 여전히 있다.
초중학교 교육이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국정교과서이고 그 때문에 교사용 지도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초중학교 교사의 전문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력 수준이 높고 교사가 되는 과정이 어려운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설득력이 없다. 검인정 교과서가 늘어남에 따라 교사용 지도서도 다양해질 것이다. 한 과목 교과서와 해당과목 교사용 지도서의 일대 일 대응체제도 변화될 것이다. 실제로 새로운 교수학습을 다양하게 모색하는 교사들에게 교사용 지도서는 교단 지원 자료의 단지 한 가지 유형에 불과할 것이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에도 자주 등장하는 핀란드 교육의 성공 요인에는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자율권이 포함되어 있다. 그 자율권이 수업에 대한 권한과 이에 상응하는 책임과 헌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제 교사용 지도서가 없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들은 조금 더 높아진 자율권을 조금 더 무거운 책무성으로 나타내야 할 것이다.
3.
필자는 이번 학기를 끝으로 학교를 퇴직하였다. 아직 정년이 남아있지만 새로 설치한 대학원 교육과정 운영에 더 필요한 교수가 충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실행한 것이다. 다행히 후임 교수가 결정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연구실을 정리하였다. 이 칼럼도 이번 호를 끝으로 퇴장하려고 한다. 교육 현장을 떠나기 때문에 현실감 있는 문제의식이나 글을 쓰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필자의 부족한 글을 실어주신 교육을바꾸는사람들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유아교육 전공으로 한국교육개발원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유아교육정책을 연구했으며, 현재는 동국대(경주)에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위원, OECD 유아교육과 보육정책 국가조정관, 교육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유치원교육과정 개정 등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정책 제안은 유아교육-유치원-교육부, 보육-어린이집-복지부로 이원화된 유아교육과 보육체제를 단일부처로 통합하자는 것이며, 이 안은 지금까지도 미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최근에는 미래를 위한 배우기와 익히기에 쏠려있는 유아기를 아이들이 주도하는 생동하는 놀이 중심으로 되돌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