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역할
지난 5월 31일, 누리과정으로 부르는 3~5세 대상 유치원, 어린이집 교육/보육과정 개정안이 행정절차법에 따라 6월 20일까지 행정입법 예고가 되었다. 올해까지 사용하는 누리과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그 중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1. 입법 예고된 누리과정의 핵심 사항
이달 20일까지 입법 예고된 누리과정은 2017년 12월 “유아교육의 혁신 방안”에서 제시한 “유아중심, 놀이중심” 교육과정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교사 주도 활동을 지양하고 연간, 월간, 주간, 일일 교육계획 수립 의무를 경감하여, 유아의 관심과 특성, 여건을 고려하여 유아와 교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임을 강조하였다. 또 유아가 충분히 놀이를 경험함으로써 몰입과 즐거움 속에서 자율성과 주도성을 키울 수 있도록 획일적이었던 교실 내 환경을 다양한 놀이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으로 구성한다는 원칙도 포함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의 영역 구분은 유지하되, 연령별로 제시한 세부내용은 통합 조정하여 3~5세 유아가 경험해야 할 최소한의 공통 내용으로 대강화하였다. 369개던 내용이 59개가 된 것이다. 이는 연령별로 고정된 교육에서 벗어나 유아의 발달 정도를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한 취지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주목할만한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공통과정”이라고 명시한 누리과정의 성격을 “공통 교육과정”이라고 명시한 점이다. 즉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만 3~5세 대상 누리과정을 국가의 “교육” 과정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공통과정과 공통 교육과정의 차이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유치원-교육, 어린이집-보육으로 이루어진 일과가 이제는 유치원-교육+방과후 과정, 어린이집-교육+특별활동이 되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일과가 더욱 동질화될 수 있게 된 것이다.
2. 교사의 역할 변화
앞에서 기술한 내용만으로도 이번에 개정된 누리과정이 매우 개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칼럼에서는 단 한 줄로 표기된 교사 관련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 내용은 총론의 운영에 포함되어 있는 2. 교수학습 내용에 들어있다.
교수학습 내용에는 가항부터 사항까지 총 7개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제목과 가항 사이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들어있다.
“교사는 다음 사항에 따라 유아를 지원한다.”
1969년 처음 제정되어 수차례 개정을 해온 유치원 교육과정에는 물론 어린이집 보육과정에도 교사에게 “지원”하라는 문장은 처음이다. 이 문장이 없다면 교사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사항에 따라 유아를 “가르치라.”고 인식할 것이다. 항상 그래왔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제 교사들은 다음 사항에 따라 유아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해야 한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번에 개정한 교육과정은 유아가 중심이 되어 놀이하는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강조하고 있다. 즉 배움의 주체가 유아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교사가 주체가 되어 교육을 계획하고 가르치는 활동을 통해 학습하도록 하는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가 주도하는 놀이 경험을 교사가 지원하여 더 풍요로운 경험이 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의미있는 배움이 일어나기를 기대한 것이다.
필자는 이 문장을 고대하고 최종 명시되자 환호를 했지만, 교사의 역할 내지 책무성에 대한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다. 질문을 하는 분들의 관점은 교사란 가르치는 사람이고 가르치는 행위가 곧 책무인데 지원하는 행위만으로는 책무성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5 개정 초중등교육과정과 이번 누리과정에서 지향하는 역량을 생각해보자. 이번 누리과정 개정은 교사가 가르쳐야 하는 내용을 대폭 줄이고 유아들의 자율성과 주도성을 키우려고 한다. 시대 변화를 반영하여 유아기의 많은 양의 지식 습득을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더 가치있고 필요한 역량에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자율성과 주도성은 교사의 말로 이루어지는 가르침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는 키워지기 어렵다. 실제로 해보는 경험을 통해 그 즐거움과 가치를 느끼고 체화해야 키워진다. 이번 누리과정 개정안에서는 유아의 자유 놀이 경험과 교사의 지원을 통해 자율성이나 주도성 같은 역량을 키우자는 것이다.
종종 진이 빠지게 수업을 했다거나 하도 열심히 수업을 해서 목이 너무 아프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그 과목을 들은 학생들은 교재 한권을 다 배웠는데 뭘 배웠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거나 그 과목은 뭔가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분명히 열심히 가르쳤다고 하는데 배운 사람은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생들의 경험이 배제되어서 배운 내용을 자기 것으로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짜 배움이 없는 경우, 가르침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좋은 가르침을 받아서 배우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스승을 찾아서 배움을 청하는 것은 오래된 인류의 미덕이기도 하다.
교사들은 양성과정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가르칠지를 배운다. 이제 유아 교사들은 무엇을, 왜,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아들의 말을 더 경청하고 유아의 놀이를 더 잘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지원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지원은 교구, 소모품, 환경 등과 같은 물리적 형태의 지원만이 아니라 질문, 개입 등과 같은 상호작용이 모두 포함된다. 교사가 지금까지 해오던 행위이기도 하고 가르치는 행위에 포함되었던 행위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라고 하지 않고 지원하라고 한 것은 가능한 유아에게 경험과 배움의 주도권을 주기 위해서이다.
교사가 직접 가르쳐서 알려주는 것은 자주 필요하고 매우 중요한 교육 행위이다. 그러나 교사가 지원하여 유아 스스로 배움을 창출해내도록 하는 것은 더 의미있는 교육 행위이다. 따라서 교사의 지원은 더 수준 높은 교사의 책무성 이행 행위라고 할 수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유아교육 전공으로 한국교육개발원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유아교육정책을 연구했으며, 현재는 동국대(경주)에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위원, OECD 유아교육과 보육정책 국가조정관, 교육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유치원교육과정 개정 등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정책 제안은 유아교육-유치원-교육부, 보육-어린이집-복지부로 이원화된 유아교육과 보육체제를 단일부처로 통합하자는 것이며, 이 안은 지금까지도 미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최근에는 미래를 위한 배우기와 익히기에 쏠려있는 유아기를 아이들이 주도하는 생동하는 놀이 중심으로 되돌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