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은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을 쫓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교육과정 재구성은 새로운 학력관에서 필수적인 교수학습 기법으로 통상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교수학습 및 평가의 차원에서 적절히 조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교과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교육내용을 시기, 지역, 학교, 학습자 수준 등의 교육여건에 맞게 재조직하는 것이다. 교육과정 재구성에는 교과서 활용 성취기준 중심 단원 재구성,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 이해 중심 단원 설계 재구성이 주로 쓰이며, 특히 새로운 학력관은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이 학생들에게 전이 능력과 태도 역량인 협력과 배려를 높이는 모범이라고 본다.
이번 칼럼은 교육과정 재구성에서 백미(白眉)라고 받아들였던 주제 중심 교과 통합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자 한다.
주제 중심 통합 재구성의 목표는 학습자의 전이 능력 향상이다
교육과정 재구성에서 주제 중심 교과 통합에 주목한 것은 현재의 국가교육과정이 단선적이고 표준화되었으므로 학생들이 미래 사회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보통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은 분절된 지식과 경험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서로 관련지어 가르치는 교육과정으로 알려져 있다. 즉 학습자의 전인적 발달과 미래 사회에서 대응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종래의 교과 경계를 허물고, 학습자의 지식과 경험을 통합하여 전이 능력을 높이는 교육 활동인 것이다.
주제 중심 교과 통합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은 ‘문제기반학습’과 ‘프로젝트기반학습(Project-Based Learning)’으로 나뉘며, 보통 학교에서 거의 모든 교과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문제기반학습은 비구조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학습자 중심의 교수·학습법이다. 이 교수·학습법은 1968년 캐나다의 하워드 배로우스 교수가 기존 강의식 수업이 의과대학 학생들에게는 다소 수동적이고 의학 실습과 관련성이 매우 약하다는 문제에 주목하면서 실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개발되었다. 문제기반학습에서 ‘문제’는 단순히 특정 주제나 단원과 관련된 질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직면할 수 있는 복잡한 문제들을 의미한다. 또한 수업은 이런 문제들을 중심에 놓고 소집단 간 협력을 통해 교과 지식뿐만 아니라 비판적 사고, 창의력, 의사소통 등을 학습해 나가는 것이다. 반면에 프로젝트기반학습은 학습자가 주도하여 주제를 선정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해결의 틀을 구성하는 교수·학습 형태다. 즉 지식이나 경험을 요구하는 특정 주제에 대해 학습자들끼리 모둠을 형성하여 전 과정을 자율적으로 조직하고 탐구하는 학습이다.
하지만 두 교수·학습법은 교수자의 역할을 축소하고 학습자의 역할을 확장하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교수·학습에서 무게 중심을 교수자의 교수에서 학습자의 학습으로 이동시킨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문제기반학습은 과제의 성격, 프로젝트기반학습은 학습의 시작에서 끝까지의 총체적인 활동 과정에 주목한다.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은 인터리빙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온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쓰이던 용어 중에 ‘인터리빙(Interleaving)’이 있다. 인터리빙은 정보를 처리할 때 여러 프로세스를 시간 간격을 두고 번갈아 가며 수행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는 정보 처리방식이다. 그런데 교수·학습을 보면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은 인터리빙과 유사하다. 각 교과의 교사는 공통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맞게 핵심 개념을 재구성해 번갈아 가르치고 학생들은 해당 주제의 지식, 기능, 태도를 하나씩 완전하게 학습한 후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이 학습에서 필요하며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과 통합적 사고를 높이며 지식, 기능, 인성이 조화로운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게 한다는 주장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
첫째, ‘청크’와 관련이 있다. 청크는 정보를 묶는 단위(덩어리)로 작업기억이 청크 단위로 정보를 처리하면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상 청크가 견고할수록 학습에 효과적이다. 다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청크로 고정된 패턴은 돌발적이고 비정형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는 골칫거리일 수 있다. 그러므로 학습자는 청크를 만들어야 하지만 원하지 않는 청크는 애초부터 만들지 않아야 하는데 그 해법이 바로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이다. 즉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은 현실의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교과에서 유용했던 개별 청크가 작업기억에서 고정된 정보 처리 패턴이 되지 않도록 한다.
둘째,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은 학습자에게 다양한 개념을 통하여 더 빠르게 각각의 청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며 더 정확하게 청크를 적용하도록 돕는다. 또 청크가 없는 낯선 문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련성이 깊은 청크를 적용함으로써 전이 능력을 높인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다르다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을 했다고 꼭 학생들의 통합적 사고와 전이 능력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특정한 조건, 즉 선(先)개념으로 장기기억에 명료한 지식을 기억할 때 의도한 결과가 나올 뿐이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즉 교육목표나 수업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 교수·학습에 다른 조건들이 덧붙여져야 실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의 논증이 보여주는 비슷한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이 손전등은 켜져야 한다. 나는 방금 새 건전지를 사왔고, 손전등에 그 새 건전지를 기존 건전지 대신 갈아 끼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전등이 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새 건전지는 불량품이다.”
손전등이 켜지지 않은 원인을 건전지 탓이라고만 할 수 없다. 새 건전지는 정상이라도 다른 부품이 고장났다면 손전등은 켜지지 않는다. 즉 윗글의 논증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는 부당한 논증이다. 그러나 이런 오류는 현실에서 잘 드러나지 않으며 사람들은 얼핏 건전지의 문제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뇌의 특성을 고려하면 특이한 일도 아니다. 우리 뇌는 두 사건이 상관관계인데도 인과관계로 받아들임으로써 진실이든 거짓이든 굳게 믿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두 개념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을 한다고 하더라도 전이능력이 무조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이 학생들에게 전이 등 문제해결 능력보다 자기 주도성 및 협력하는 힘을 높인다고 볼 수도 있으며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을 찬미하는 교사들은 그렇게 주장해 왔다. 다시 말해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스스로 노력하며 친구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자신의 마음에 의미를 구성했다면 더 중요한 교육적 성취를 이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제 중심 통합이 지향하는 근본적 목표를 훼손하는 주장일 뿐이다. 주제 중심 통합은 원래 기존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취지에서 정당화되므로 전이 능력을 높이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자기모순에 불과하다.
좋은 수학 수업이란 무엇인가?
다음은 주제 중심 교과 통합으로 이루어진 수업에 참여한 수학 교과에 대한 참관기록이다. 참관자는 이 수업에 대해 “교사에게 수업 시간에 수학 교과서와 함께 도덕 교과서를 들고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했으며 학생들에게 수학을 배울 때 다른 교과를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좋은 수업이다.”라고 평가했지만,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다.
《교사는 “오늘은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시설로 무엇이 있는지 찾아볼 거예요.”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을 꺼내 우리 주변에 어떤 장애인 시설이 있는지 검색해보라고 지시했다. 학생들은 흥미롭게 스마트폰을 검색하며 교사가 지시한 내용을 수행하였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검색한 시설에 있는 수학적 원리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장애인이나 환자가 타고 다니는 휠체어는 원지름이 30센티미터를 넘어야 해요. 이런 것을 찾아보세요.”라고 예시를 들었다. 학생들은 책과 함께 정보를 검색해보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그 속에 담긴 수학적 원리, 예를 들어 장애인용 화장실의 크기, 장애인용 비탈계단의 기울기 등을 찾아보는 학습활동을 수행하였다. 교사는 학생들의 활동 내용을 지켜보며 “잘 보세요. 여기에는 수학 시간에 배운 기울기가 나와 있어요. X축은 11, Y축은 1, 경사도는 11분의 1로 되어 있네요.”라며 도움을 주었다. 학생들의 활동이 마무리되자 교사는 학생들이 작성한 내용을 칠판에 붙이며 이를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사가 “여러분은 오늘 수업에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라고 묻자 한 학생이 “생각보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많지 않네요.”라고 대답했다. 교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 여러분이 주변 시설물을 볼 때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 어떤 수학적 원리가 있어서 장애인을 돕고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라는 말로 수업을 마쳤다.》
교사는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장애인 시설물에 수학적 원리를 전이하는 데 수업목표를 두었으며 학생들이 전이하지 못하면 교사는 해당 시설물에 어떤 수학적 원리가 적용되는지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교사가 수업을 마칠 무렵 학생들에게 했던 말을 보면 이 수업이 학생들의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교사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지만, 수학적 사고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즉 어떤 과제든 목표에 관심을 두는 것과 어떻게 그 목표에 도달하느냐의 문제는 같은 선상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수업이 의도를 가지고 계획된 활동이라는 점에서 교수자는 교육목표 또는 수업 목표가 정해지면 학습자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전략적 사고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수학 수업에서 1차적 목표는 학생들이 수학적 원리를 장애인 시설물에 잘 전이하는데 둬야 한다. 학생들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수학적으로 더 깊게 사고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참관기록만 보면 교사가 수학적 원리를 설명했다고만 나와 있지, 수학적 원리가 실제로 장애인 관련 시설에 잘 전이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나아가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나름 적합한 장애인 시설물을 선택했어도 수학적 원리를 이전 교육과정에서 배우지 않았거나 장기기억에 저장되지 않아 제대로 전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가령 장애인 계단이라면 경사각과 관련된 일차함수,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라면 화장실 내부 면적을 구하는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모둠 성원 일부나 전체가 개념적 지식인 다양한 수학적 원리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번 인출했던 경험이 없다면 수학적 원리를 전이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참관자의 평과는 다르게 주제 중심 통합에 수학 교과를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학생들은 아직 전문가처럼 사고할 수 없다. 전문가는 장기기억 속에 수많은 자연과학적, 공학적 지식을 갖고 있고 또 어떻게 설계와 시공을 하는지에 대한 경험도 풍부하다. 그러나 똑똑하고 교육을 잘 받은 학생이라도 장애인 시설물을 조사하여 수학 수업에서 개선점을 제시하고 발표까지 하라고 했다면 이는 비현실적이고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프로젝트다. 또 모둠 활동을 통한 집단지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모둠 활동이 효과가 있으려면 장애인 시설물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거나 최소한 그와 관련된 사실적 지식이나 개념적 지식을 아는 교사, 전문가, 학생이 참여해야 한다.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을 제대로 하겠다면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이 언제나 효과적이지도 않다. 인지심리학자 제레드 호바스(Jarad Horvath)에 따르면, 이는 미래 상황을 예측할 수 없을 때만 주로 효과적이다. 예컨대 음악 교과에서 베토벤의 <운명>을 주제 중심 통합으로 재구성하여 수업하겠다는 의도는 단원의 수업 목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교향곡의 모든 음은 이미 명백하게 정의되어 있고 확실한 순서가 있으므로 더 넓은 범위로 시퀀스를 확장하고 더 커다란 청크를 만드는 학습 방식이 효과적이다. 즉 이때 필요한 학습은 리듬과 하모니에 대한 반복이지, 주제 중심 통합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이는 심지어 정보 인출을 방해하는 간섭까지 만들어낼 수도 있다. 중학교 과학 교과에서 ‘감각기관의 구조와 기능을 주제로 한 수업을 할 때도 주제 중심 통합 수업은 효과적이지 않다. 주제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며 주제 내용인 사실적 지식과 개념적 지식도 명확하며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과학 교사가 학생들의 전이 능력을 높이겠다고 도덕, 일본어, 역사 등 타 교과와 함께 주제 중심으로 교과를 재구성하는 것보다 깊이 있게 과학적 지식을 가르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주제 중심 교과통합 재구성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개별 교과들의 사실적 지식이나 개념적 지식을 충분하게 교수·학습하는 수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흔히 교사들은 주제 중심 통합 재구성을 할 때 사실적 지식이나 개념적 지식의 깊이보다는 주제와 관련되어 교과를 넘나드는 패턴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습관은 좋지 않다. 인터리빙이 개별 청크를 완전하게 하면서도 유연하게 정보를 처리하는 데 있듯 주제 중심 통합 재구성은 개별 교과의 지식을 명확하게 이해하면서 전이 능력을 기르는 데 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먼저 교과 지식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청크 기술을 가르치고 지식을 능숙하게 학습하도록 한 후에 지식 인출이 자연스러운 수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주제 중심 통합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수업을 해야만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주제 중심 통합을 하더라도 학습하는 지식이나 기능이 유사한 교과를 중심으로 통합하여 재구성해야 한다. 가령 축구와 연날리기는 서로 다른 기술을 사용하므로 우리는 두 기술을 거의 혼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족구는 축구와 비슷한 근육을 사용하므로 기술을 쓸 때 어떤 근육을 써야 할지 혼란에 빠지므로 더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처럼 교과를 통합할 때도 핵심 개념인 지식, 기능이 비슷한 교과들끼리 구성하면 학생들은 차이를 구별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하므로 지식과 기능은 더 유연하게 쓰일 수밖에 없다. 즉 전이효과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전체 과목 통합이 아니라 국어, 외국어, 사회를 묶거나 수학, 과학을 묶는 부분 통합 방식이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배움’이 일어나야 한다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꼭 해야 하는 수업방식도 아니다. 나아가 교사가 차시별로 분화된 교육과정에서 하나의 주제에 맞춰 수업을 재구성하는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각 교과를 주제통합 수업으로 재구성하여 편성하고 운영하려면 통합의 규모와 학년, 시기, 내용과 과정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도 많으며, 인간의 인지적, 정서적 한계를 볼 때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인 교사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과학 전문가, 건축 전문가, 음악 전문가라고 하며 만능인 전문가를 통칭하는 용어는 없다. 설령 초등교사가 모든 과목을 가르친다고 해서 교과 전문가는 아니며, 수업 전문가일 뿐이다.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교과 통합을 이뤄 활동하기에는 부적합한 교과도 있다. 예컨대 영어 교과는 어휘, 문법, 구문 등을 주로 반복하여 교수·학습해야 하므로 통합이 효과적이지 않고 활동 면에서도 시간적, 물리적 제약이 많다. 이런 한계를 고려하여 핀란드에서도 ‘현상기반 프로젝트’를 일 년에 한두 개만 수행하며 수업 시간 대부분은 교과 수업을 한다. 영국의 전직 교사이자 교육정책 전문가인 데이지 크리스토둘루(Daisy Christodoulou)는 주제 중심 통합으로 하는 수업에서는 배움을 기대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수업 교사는 미국 남북전쟁 이전에 남부지방에서 흑인 노예들의 탈출을 도왔던 비밀조직인 ‘지하철로 조직’에 관한 수업 활동으로 쿠키 굽기를 하였다. 노예들이 지하 철로를 이동하는 중에 먹었던 음식이 쿠키였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쳤던 축구의 역사에 대한 수업에서 학생들은 대부분의 활동 시간을 역사나 지리, 축구를 이해하는 데 쓰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팀의 문장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고 어떤 색깔을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소비했다.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영어 수업에서도 학생들은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 때 그 인형을 조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느라 많은 시간을 썼다.》
그에 따르면 다수 학생은 수업에서 비밀 지하철로 조직보다 쿠키를 굽기 위한 재료 준비, 요리법, 오븐 사용법 등에만 주로 관심을 두므로 주제인 지하철로와 관련된 역사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교사라도 학교에서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수업을 위해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을 해야 한다.’라고 하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이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고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다져주기 때문에 정당화되는 것이므로 오히려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을 절대화하는 미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주제 중심이든, 백워드 설계든, 교과 내 단원 통합 재구성이든 모두 교수학습을 효과적으로 하는 한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아가 교사는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을 하겠다면 주제와 관련된 학생들의 선수학습이나 선행학습의 수준을 수업 전에 조사하여 사실적 지식이나 개념적 지식 중에 어떤 지식을 얼마만큼 기억하는지를 자주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통합의 장점, 즉 인터리빙이 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전주 완산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 교육청 사회문화 집필 위원, KDI 경제교육교재 집필 위원,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충남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출제위원, 전북 및 전남 교육연수원 강사, 전북대학교 교사 연수 강사, <새전북신문>, <열린 전북>, <전북교육신문>, 인문 웹진 <아홉시>, 네이버 비즈니즈 블로그 <인터비즈>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교육저널인 「교육 제4의 길 」에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미래 교육의 불편한 진실, EBS, 2021>, <학교 속 문해력 수업, EBS, 2022>을 출간했다.
어휴 꼴보기 싫다. 교바사는 필자 섭외에 신중을 더했으면. 이찬승 대표님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중
박제원 선생님은 벌써 3년 넘게 저희 교바사의 필자로서 좋은 글을 공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주시고 계십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기에, 마음에 딱 맞는 글들만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차이가 발전을 위한 동력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비난 형태의 댓글이 아닌, 생각과 관점의 다름을 통해 비판을 해주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위 첫번째 댓글은 표현이 유감스럽습니다. 의견이 다르시면 다름을 표현하시길) 현재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시도들이 신호효과(signal effect)를 위해서 즉, 여전히 입시에 매몰되어 어떤 교육활동에 대한 피수험자의 우수성, 수월성을 매우 주관적인 기록으로 보여주기위해 시행되는 면이 많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언급하신대로 궁극적으로 학습(learning- 이 개념은 이찬승 선생님께서도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강조하시는 부분인데 밑에 댓글이 이해가 안됩니다.)이 이루어지는가가 교육자로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편으로 최근 몇년간의 분위기가 ‘암기(무조건적인 의미에 대한 접근없는 단순 기억)’교육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감이 학습에 대한 몰이해(사실 학습이란게 결국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핵심적)로 이어져 기억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분위기까지 팽배하는 것 같아 수업현장이 복잡해지기만 하는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이찬승 대가님께서도 강조하시는 바,학습과학(인지과학)의 측면에서도 배경지식의 중요성(배경지식이 많아야 잘 이해하고 더 잘 기억할수있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있음에도)이 절대 간과되어질 수 없습니다. 보여주기식 수업경쟁이 지양되길 바럽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방식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닌데 새롭고 혁신적이고 바람직해 보이는 것을 했다는 것만으로 선진적이다 잘해냈다라고 단순히 평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실제적인 학습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 그 메커니즘이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학습이 일어나도록 돕는가에 대해 계속해서 반성하고 보완하는 교사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꾸벅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박제원 선생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교조주의와 맹신에의 경계’는 늘 공감합니다. 주제중심 교육과정 재구성을 맹신해서도 절대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재구성은 이미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 교육활동을 총칭하는 말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모든 맥락에서 우리는 삶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일상을 살기 때문이지요.
다만 교육과정 재구성 논의가 다소 과잉되었던 것은 ‘기존의 교사중심수업관’을 혁신하기 의한 기반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절대화해서도 맹신해서도 교조적으로 해석해서도 안되겠지만, 재구성 독려는 분명 교사의 적극적 실천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시도교육청 정책이 바뀌는 데도 한 몫 했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어떤 사안이든 한발자국 멀어져서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이라 봅니다. 그게 박제원 선생님의 표현대로라면 ‘배움이 일어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 밑에 눈살 찌푸릴만한 댓글이 달릴 일도 없을 테고요. 때론 비판하기도 하지만, 박제원 선생님의 글은 늘 주의 깊게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응원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동안 제 글을 세밀하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마 칼럼 7월호가 마지막 글이 될 듯 합니다. 당분간 충전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꾸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