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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새학기 준비를 가로막는 새학기 준비기간

#443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2019.04.17

지난해 조희연 서울 교육감이 학교 체험을 한다면서 어느 고등학교에 일주일간 근무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체험을 마친 뒤 현장의 고충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겸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현장의 고충을 배우고 나서 나온 가장 강력한 정책이 이른바 ‘새학기 준비기간’이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교사더러 개학하기 전에 미리 출근하라는 것이다. 교육감이 현장에서 “선생들이 놀고 먹는다”는 것을 배워 왔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취지는 그럴듯하다. 3월 2일 개학하고 나서 교육계획을 세울 것이 아니라 2월에 미리 연간 교육계획, 평가계획을 다 세워서 3월 2일부터는 바로 수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목적이라면 3월 셋째 주 정도에 확정되는 연간교육계획을 3월 첫 주까지 확정하라고 기간만 조정하면 될 일이다. 굳이 새학기 준비기간이라는 것을 만들어 출근일을 설정할 필요는 없다. 사실 교사가 교육을 준비하고 연구하기에 가장 부적당한 공간이 바로 학교다. 교무실을 한번만 봐도 바로 답이 나온다. 이건 행정사무공간이지 교육을 준비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닷없는 출근일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교사들은 강제로 출근시키지 않으면 절대 공부하거나 연구하지 않는다.”는 관료적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틀렸다. “강제로 출근시키면 절대 공부하거나 연구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강제로 학교에 나와서 작성해야 하는 연간 교육계획, 평가계획의 서식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수업-일체화의 잘못된 적용으로 인해 이게 연간 교육과정, 수업지도안, 평가계획과 기준안을 모두 상세하게 미리 작성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지금 교사들은 2월 중에 매 시간마다의 성취수준, 수업방법, 성취기준, 평가방법 등을 상세하게 시술하여 거의 책 한권 분량의 계획서를 작성해 내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물론 교육감이 이렇게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청 관료들은 학교가 새학기 준비를 제대로 했는지를 3월 되기 전에 교육계획서가 얼마나 두텁고 상세하게 만들어졌는지로 판단하려 할 것이다. 교장, 교감은 실제 교육보다는 교육청이 자기네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만 관심을 두고 교사를 몰아붙일 것이다. 결국 교육은 어디로 가고 ‘행정상’의 새학기 준비만이 남는다.

 

만약 교육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일이라면 그나마 이런 상세한 매뉴얼을 미리 작성하는 일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렇게 2월 한 달 고생하면 남은 1년간은 이 매뉴얼대로 진행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만나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현상이다. 아무리 상세한 매뉴얼을 작성해 놓는다 하더라도, 그 만남이 이루어지는 첫 순간부터 매뉴얼은 일그러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공들여 짠 교육계획이라도 학생들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되거나 억지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교육계획이 학생들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 상세하면 상세할수록 더욱 더 적응력이 떨어진다. 개략적인 교육계획의 경우는 그 상세한 부분을 교사가 재량껏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수업방법, 평가계획, 평가기준까지 상세하게 작성한 교육계획은 학생들의 상황이 예상과 달라질 때마다 수정안을 작성하여 결재를 받아야 한다. 도대체 이럴 거면 방학 때 학교 나와서 이 책자를 방불케하는 계획서를 왜 작성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수 밖에 없다. 공연히 개학도 하기 전에 진만 뺀 꼴인 것이다. 3월 2일에 가장 리프레시 된 상태로 학생을 만나야 하는데, 이미 상당히 지친 상태에서 학생을 만나, 그나마 그 고생해서 만든 문서가 헛수고가 되어버리니 이제 겨우 4월 1일이라는 것이 정말 만우절 장난처럼 느껴질 것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갈수록 우연적, 발생적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에서 목놓아 부르짖는 창조, 혁신이라는 것도 결국 이 우연적, 발생적 상황을 흘려보내지 않고 어떻게 포착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교사들은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우연적, 발생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가능하면 많은 선택지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전공분야, 학생, 사회변동, 공동체, 세계 등에 대한 지식, 태도와 교육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과 기법들이 포함된다. 수업이 진행 중인 학기 중에는 이러한 것들을 정비하고 확장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방학이 필요하다. 방학 중에 새학기를 준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을 획득하고, 확장하면서 동시에 지친 심신을 회복시킨다는 것이지, 아직 만나지도 않은 상상 속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숨 막힐 정도로 상세한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겨울방학은 통상 1년간 쌓인 심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 순례를 하는 1월(학기 중에는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한다)과 새로운 지식과 기법을 습득하는 2월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지금 교사들은 그 중요한 2월을 문서 작성하느라 탕진하고, 작년보다 늘어난 게 없는 도구상자를 들고 이미 지친 상태에서 개학을 맞이하고 있다.

 

더구나 진보교육감 지역에서는 ‘학생중심 교육’을 강조하는 공문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진다. 학생도 만나기 전에 학생은 물론 교사에게도 빈틈이라고는 하나 없는 상세한 교육계획을 세워 사전 결재를 받으라는 요구와 ‘학생중심’이 어떻게 동시에 거론될 수 있는지, 때로는 교육청의 높으신 분들의 정신건강이 걱정되기까지 한다.

 

2월부터 교사들을 학교에 불러모아 학생도 없는 상태에서 문서상의 교육계획서를 억지로 작성하게 하거나, 영혼없는 강제연수나 시키는 이른바 새학기 준비기간 운영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아니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할 거라고 믿지 않는 교사들더러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기르라는 이율배반적인 요구를 하지 말던가. 적어도 진보교육감을 자처하려면 ‘새학기 준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참신하고 진보적인 관점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일제고사가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등, 혁신교육에 대한 보수교육의 전면적인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 그들은 그 빈틈을 어디서 찾았을까? 진보라고 하더니, 혁신이라고 하더니 별 거 없네 하는 관료들의 자신감에서 찾았다. 그들은 그 자신감을 어디서 얻었을까? 교사들을 대하는 진보교육감이나 진보정권 교육부 장관의 태도다. 진보교육감이나 장관이 교사들의 든든한 동맹이 되어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교육문화를 만들어가지 않는 한, 저들의 반격은 점점 더 거세질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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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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