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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선거가 끝난 자리의 아동 돌봄 (1)

#741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2022.03.23

대통령 선거를 바라본 지역아동센터

 

그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선거가 끝나면 말할 기회도 그만이라는 것을 알기에 고대하며 기다려왔던 시간인데 아쉽게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회오리가 휩쓸고 간 자리에 무엇이 남아 있나 눈을 씻고 찾아보지만 희망의 싹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자 지역아동센터는 더 불안감에 휩싸이는 눈치다. 낙선자였던 이재명 후보가 학교 돌봄을 7시까지 연장 시행하겠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현장의 큰 불만거리가 되어왔던 것인데, 아뿔싸!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학교 돌봄을 7시도 아닌 8시까지 연장하겠다고 한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단 반응들이 적지 않았기에 이제 와서 깜짝 놀라는 눈치들이다. 그랬다. 당선자의 공약은 그러하였다.

 

전체 사회가 출렁대는 이런 판에서 ‘소수의 입장을 외치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늘 낯설고 당혹한 느낌을 안긴다. 소수는 스스로 ‘존재의 당위성’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저렇게 모두가 학교 돌봄만을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필요 없다는 뜻일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은 건강한 마을 돌봄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침식하고 부식시킨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면서 일을 잘 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마을 돌봄도 필요하다’는 한 마디를, 아니면 조금만 더 욕심을 내어 ‘지역아동센터도 아동 돌봄에 힘써 왔고, 앞으로도 역할을 잘 해주길 바라며 우리도 열심히 돕겠다’는 한 마디를 들어보고자 모두들 그렇게 기를 써왔던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마치 후보자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듯, 말 듯했던 순간도 있어, 샘솟는 희망에 절로 입 꼬리가 벙긋거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물론 잠에서 깬 현실은 도로 냉바닥이었지만 말이다.

 

 

우리가 대통령 선거에서 요구하고 싶었던 것

 

그런 시간들이 다 지나고 나자 지역아동센터는 다시금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질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솟아나는 모양이다. “왜 마을 돌봄은, 특히 왜 지역아동센터는 정부에서 이렇게 나 몰라라 하는 것이냐?”하는 질문이다.

 

그런 의문을 한 방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외부의 억압적 구조가 있으면 모든 이야기가 손쉬워진다. 저런 나쁜 정부가 있으니까, 저런 나쁜 제도나 법률이 있으니까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쉽게 이해되고 해결책도 곧바로 마련된다. 저걸 없애거나 바꾸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민주주의의 형식을 갖추고 모든 구성원들이 법치주의에 따라 기본권을 누리고 있는 정상적 사회에 살고 있다는 가정이 전제된다면, 그 속에 숨은 억압적 현실이나 과정들은 매우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일들이 되어 버린다. 무엇인가 문제제기를 하려 들면 “누가 그런 일을 하라고 했죠? 선생님께서 그런 일을 하시겠다고 결정하신 거면 스스로 알아서 책임을 지셔야죠!” 당장 이런 답이 되돌아온다. 모든 것을 개인이 결정할 수 있으므로 개인의 결정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식이다. 물론 사회가 성숙해가면서 그 결정이 결코 개인이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지도 않거니와, 개인에게 온전하게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성숙한 조정된 관점들이 반작용으로 싹터오긴 하지만 그것은 오랜 진통과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그런 고통의 시간들 속에서 약한 개인들은 철저히 존재 자체를 파괴당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우리 지역아동센터는 매우 좋은 하나도 좋지만 충분히 좋은 여럿을 두고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그런 돌봄의 사회를 만들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소망이며, 이런 소망은 어린 아동들이 바로 그 선택과 책임이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의미 있게 존재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가 8시까지 돌봄을 하게 되면, 그래서 학교장의 명령으로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 모두는 학교에서 8시까지 돌봄을 받으라는 ‘명령’(외형적으로는 명령의 형식을 띠지는 않겠지만!)을 내리게 되면 인근의 마을 돌봄들은 존재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어떤 곳들은 나중에 ‘다시 생겨라!’하는 행정 명령이 떨어지면 손쉽게 뚝딱 다시 생길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없어진 지역의 자생적 돌봄 인프라를 다시 만들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일이 생기게 되면 아이들 모두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 돌봄만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러면 된 일이다. 생기기도 않은 일에 이런저런 걱정을 보탤 것 없다고 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일이어서 어린 학생들이 한 가지 시설만을 이용하여 돌봄을 받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여부는 따져볼 만한 일이다. 또한 그런 선택에 따른 책임도 결국은 아동과 가족에게 일차적 책임이 가게 될 것이므로, 최소한 학교 돌봄과 마을 돌봄으로 선택할 여지는 만들어놓는 것이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우려를 해본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다고 학교라는 인프라의 효율성이나 효과성을 무시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누구의 말마따나 ‘상생의 방안’을 찾고 싶다는 바람이 크다. 물론 그런 상생의 방안이 절대 시설을 운영하는 운영자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무엇보다 돌봄의 과정에 참여하는 아동들과 보호자들의 진정한 입장을 반영하면서도, 마을과 학교가 돌봄의 무게를 고루 나눠지고 함께 돌봄을 할 수 있는 그런 상생의 방안을 제안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우리 동네 초등돌봄은 우리 학교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논의하고 함께 감당할 수 있도록 돌봄 거버넌스(governance)를 만들어 달라’는 공약을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이런 거버넌스에 대한 요구는 개별 학교나 시설을 기본 단위로 돌봄이 시행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아직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또한 수직적 구조에서 위계적 방식으로 일을 하는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쉽게 마음이 가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서비스를 이용하기만 하면 되지, 뭣 하러 내가 나서서 ‘우리 동네 돌봄을 더 설치해라, 어떤 돌봄이 더 필요하니 지금의 돌봄을 어떻게 조정하면 좋겠다’ 등등과 같은 복잡한 문제에 마음을 써야 하는가 하는 이용자들의 반발에 부딪히면 모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모두가 돌봄 협치에 반대한다면 돌봄은 지금처럼 누군가 알아서 결정해서 전해주는 그런 일로만 머물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역아동센터에서 제안하고 싶었던 돌봄 협치는 어쩌면 성숙된 시민의식을 바탕에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큰 제한점을 안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늘 아이들 문제에 일차적으로 그런 시민의식을 발휘해온 유구한 역사가 있는 민족이다. 따라서 어쩌면 그런 돌봄의 정신을 그동안은 올바르게 살리지 못해왔던 탓에 어쩌면 지금의 이런 북새통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작은 희망의 싹으로 움터오는 ‘돌봄 협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자꾸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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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성태숙

(현)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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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1. 박경현 수정 삭제

    공감합니다. 학교라는 공간과 시스템이 주는 신뢰도와 안전감을 이해하지만 마을돌봄은 돌봄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건복지부를 보건부와 복지돌봄부(아동, 노인, 장애인, 등등)로 분리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봄을 받다 보면 자연인인 ‘아동’보다 ‘학생’으로 계속 규정될까도 염려됩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모색해 나가야겠죠!

  2. 김태균 수정 삭제

    맞벌이가 많아지고 있고, 다문화/한부모 가정이 점차 증가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돌봄은 계속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대선에서도 모두 후보들이 ‘초등 돌봄교실 연장’을 공약으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여전히 돌봄교실의 운영 주체를 놓고 학교와 지자체 간의 갈등이 여전하고, 돌봄전담사 처우 개선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 방안이 없다는 점입니다. 성태숙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돌봄 거버넌스’가 이 해법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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