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타고 있는 “유아학교” 명칭
“유아학교”는 1997년 6월 2일,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가 발표한 제4차 교육개혁방안에 처음 등장하였다. 개혁방안에 포함된 [유아교육의 공교육체제 확립 방안]에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영유아에 대한 국가 관리체제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교육과 보육으로 이원화되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개혁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아학교 체제로의 단일화를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유아교육과 보육,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유아학교라는 명칭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왜 그런가 궁금하다.
요사이 교육 분야의 가장 큰 이슈는 대입 전형과 사립유치원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지난 30년 동안 유아교육보육 관련 내용이 TV 뉴스와 신문기사로 크게 주목을 받았던 적은 두 번이었다. 한 번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일어나는 아동 폭력 문제였고, 또 한 가지는 요사이 사립유치원의 공공성 문제이다.
어떤 분야마다 갑자기 큰 문제로 등장하는 주제가 있고 잊힐만하면 등장하는 주제도 있다. 아동 폭력이나 사립유치원 문제는 전자일 것이고,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 유아학교로의 명칭 변경 같은 사안이 후자에 속할 것이다.
문민정부에서 출발한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의 무상교육보육을 위한 바우처 카드를 아이행복카드라는 단일명칭으로 통일하고, 배우는 교육보육 내용도 누리과정으로 통일하고, 정보공시나 평가 지표도 통일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교사의 양성과 자격, 월급의 차이는 아직 여전하고, 담당 부처 역시 교육부와 복지부로 여전히 이원화되어 있다.
유아학교라는 명칭은 어떤가? 교육개혁위원회에서 유아학교라는 명칭을 제안할 때 필자는 유아교육 담당 전문위원으로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필자는 유아교육과 보육의 공교육체제 확립을 도모하려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각 기관이 기존의 관습적 운영체제에서 벗어나 교육과 보육을 통합해서 제공할 수 있는 제삼의 기관으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필요가 있는데, 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유아학교였다. 즉 유아학교는 교육 중심의 유치원, 보육 중심의 어린이집 이 둘을 넘어선, 유아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교육복지형 학교로 구상한 것이었다.
유아학교라는 명칭을 대통령 보고서에 담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먼저 왜 명칭을 유아학교로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를 돌이켜 보면, 일반적으로 “학교”라는 명칭의 기관은 당연히 공적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기관으로 인식된다는 점, 학부모들에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꼭 보내야 하는 첫 번째 학교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 유치원과 어린이집이라는 명칭은 일제 잔재라는 점, 공교육 체제 안에서 공적 재정으로 유아교육과 보육을 제공하는 국가들의 기관 명칭이 “학교”라는 점 등을 부각시켰다.
반면에 “학교”라는 기관이 가지고 있는 한계 내지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는 점도 포함시켰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와 같은 형태의 운영방식을 따를 때에는 일하는 엄마와 유아를 위한 복지적인 요소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점, 교사들이 초등학교와 같은 수업과 근무 형태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 등이었다.
당시 유아학교에 대한 의견 수렴 결과는 예산처와 일부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집단마다 유아학교에 대한 그림은 조금씩 달랐다. 어린이집 쪽에서는 학교가 되면 원아모집 걱정은 없겠다고 기대하고, 교사들은 학교의 교사가 된다고 기대하고, 원장들은 교장이 된다고 기대하고, 학부모들은 돈이 덜 들 것이라고 기대하고, 언론에서는 일제 잔재를 벗는다고 찬성했다. 반면에 일부 교수들은 교육복지형 유아학교로 자리 잡기 전에 학교의 부정적인 요소인 경직성이 먼저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걱정하고, 예산처는 그렇지 않아도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공적재정 투입이 많아지고 있는데 학교라면서 더 많은 재정 지원 요구를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물론 임대 건물을 사용하고 있던 영세한 유치원과 어린이집까지 모두 다 학교로 전환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유아학교 안은 절차에 따라 교육개혁위원회 내부 전문위원과 위원들 간의 토론, 그리고 수차례의 공청회를 거친 후 최종 보고서에 담겼다. 다시 말하면 유아학교라는 명칭은 유아교육과 보육을 통합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적인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년 동안 간헐적으로 거론된 유아학교로의 전환 논리는 당초의 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어린이집 아동 폭력 문제가 드러나면서 유치원만이라도 유아학교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거나, 사립유치원 회계 문제가 불거지면서 공립유치원만이라도 유아학교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말이 들리는 것은 좀 놀랍다. 또 일본과의 관계가 어긋나는 시기에는 일재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대표적인 명칭이 바로 유치원이라는 점이 크게 부각되기도 한다. 특히 유아학교가 되어야 초등학교 1, 2학년보다 수업을 더 적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20년 전 초기에 걱정했던 요소들이 응축된 것처럼 느껴진다.
시대 상황에 따라 어떤 정책의 실행 논거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고 또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특정 집단의 의견이 더 반영된다거나 시류를 타는 논리는 타당성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현 정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 간의 보수 격차에 지대한 관심이 있고 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거의 동일한 업무를 하지만 근무하는 기관의 명칭이 다르고 담당 부처가 다름으로 인해 야기되는 유아 교사의 보수 격차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또 유치원교사와 어린이집 교사의 보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유아교육과 보육을 통합하는 노정에 포함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이라는 정책을 내세우지 않는다. 이로 인해 유아학교라는 명칭이 통합과는 별도의 정책안인 양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유아학교를 제안한 필자로서는, 유아학교 따로,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 따로가 가능한지 궁금해진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유아교육 전공으로 한국교육개발원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유아교육정책을 연구했으며, 현재는 동국대(경주)에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위원, OECD 유아교육과 보육정책 국가조정관, 교육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유치원교육과정 개정 등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정책 제안은 유아교육-유치원-교육부, 보육-어린이집-복지부로 이원화된 유아교육과 보육체제를 단일부처로 통합하자는 것이며, 이 안은 지금까지도 미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최근에는 미래를 위한 배우기와 익히기에 쏠려있는 유아기를 아이들이 주도하는 생동하는 놀이 중심으로 되돌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