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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를 꼭 폐지해야 하나?

#422 박제원, 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2019.02.07

전국적 규모로 선발하는 전북의 상산고를 비롯한 자사고와 해당 소재지의 시도교육청 간에 갈등이 치열하다. 전국에는 42곳의 자사고가 있고, 서울에 절반 이상인 22곳이 있는데 올해 전국적으로 24곳의 자사고와 그 중 서울에서는 13곳에 대해 재지정평가가 이루어진다. 만약 자사고가 교육청의 재지정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교육부장관의 동의를 거쳐 자사고 자격이 폐지된다.

 

2017년 12월 정부는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기 위해 자사고의 학생우선선발권을 금지하고 일반고와 동시에 신입생을 모집하며(제 80조 제 1항), 평준화 지역의 자사고 지원자의 일반고 이중지원을 금지하도록(제 81조 제 5항)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일부를 개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는 자사고 지원자의 일반고 이중지원을 막는 법령에 대해서는 위헌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효력을 정지시켰다. 즉 입시 시기는 일원화하지만 일반고 이중지원은 허용했다.

 

정부와 일부 시도교육감들은 자사고가 경쟁교육을 조장하고 교육과정이 입시위주 프로그램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자사고 설립취지를 위반했다고 본다. 즉 특권교육을 해왔다고 비판한다. 무엇보다도 자사고에 대해 헌법 제 31조 제1항(교육을 받을 권리)인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갖는다.”에 의거해 균등한 교육이라는 헌법적 취지를 위반한 학교라고 본다. 가령 전북의 상산고는 자사고 중에는 적은 금액인데도 1인당 연간 학부모 부담금이 2017년에 1,089만원, 2018년에 1,203만원에 달했다. 같은 지역의 국립대학인 전북대학교의 2배가 넘고, 지역사립대 수준이니 서민들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어찌 보면 자사고는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민정서상 특권학교라고 불릴 수 있다.

 

그렇지만 자사고에 대해 학부모 부담금만으로는 특권학교라고 말할 수 없다. 헌법 제 31조 1항은 균등한 교육을 말하지만 또한 ‘교육당사자의 (경제적)능력’을 인정한다. 더구나 헌법 제 4조(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제 10조(행복추구권), 제 23조(재산권)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고교선택권을 인정한다. 헌법 제 31조 제 2항(학습권), 교육기본법 제 3조(학습권), 교육기본법 제 8조(의무교육)는 ‘국민의 능력에 따른 평생학습과 국가가 책임지는 의무교육을 초등학교, 중학교로 한정’하여 제 31조 1항의 ‘균등한 교육’의 한계를 뚜렷하게 명시한다.

 

자사고도 할 말이 많다. 중앙정부는 교부금, 교육지방채(미래교부금을 담보로 발행하는 지방채)로 지자체는 지방세에서 이전되는 전입금 등으로 교육청을 통해 국공립학교 및 사립학교의 학교운영비를 거의 100% 지원하는데 자사고는 소소한 금액도 받지 않는다. 즉 자사고는 국가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 더구나 자사고 재단은 학생납입금의 20%를 의무적으로 부담하기까지 한다. 가령 매년 학부모가 부담하는 학비가 1000억이면 재단은 200억의 사비를 교육비로 지출한다. 자사고 설립자의 교육적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렵고 그 때문에 스스로 문을 닫는 자사고도 있다.

 

물론 자사고가 재단전입금으로 학생납입금의 20%를 부담하는 사실이 자사고 유지의 합당한 근거는 될 수 없다. 자사고 재단이 헌법 제 4조(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따라 스스로 자사고를 선택하고 대가를 부담한 까닭이다. 게다가 자사고 학비가 상대적으로 많은 탓을 자사고 학생의 사교육비를 줄이고 자사고 소재지에 기숙할 타 시설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숙식비’와 ‘방과후 활동비’를 포함한 금액이라고 말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자사고가 걱정할 사안이 아니며 자사고 설립취지와 무관하다. 더구나 학생이나 학부모는 자사고를 지원할 경우에 그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고, 불편한 점이 있으면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교육청과 자사고는 자사고 유지와 폐지의 기준을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우선 교육청은 이를 위해 자사고에 대해 특권학교라는 비난을 자제해야 한다. 감정적인 갈등만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자사고가 경쟁교육을 강화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한 근거는 되지만 반례도 여럿이며, 자사고 출발부터 법적으로 특권을 받았다곤 해도 이는 법령에 기초해 정당했으며 남용하지도 않았다. 또한 자사고도 그동안 국내 명문대와 해외 명문대의 진학실적 및 자사고 운영에 따른 재단부담을 들어 지금처럼 자사고를 유지하려는 주장을 거두어야 한다. 이것이 자사고 설립 취지나 유지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자사고 유지와 폐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자사고의 교육과정’이다. 즉 자사고에 대한 재지정평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자사고의 교육과정이 설립취지에 맞게 되었는가?” 여부이다. 2002년 김대중 정부에서 자립형 사립고를 만들고, 이명박 정부에서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한 것은 “고교평준화에 따른 교육의 획일성을 보완한다.”는 취지였다. 국가교육과정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한국교육에서 획일성을 극복하고 수월성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국가는 학생이 다양한 교육과정을 경험함으로써 그들을 최선의 상태로 성장시키기 위해 자사고를 만들었다.

 

확실한 사실은 그동안 자사고가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학부모와 학생도 다양한 교육과정을 경험하는 학교가 아니라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데 유리한 학교라고 인식해왔다. 가령 IB(국제교육과정 및 평가)에서 요구하는 DP(고등학교 교육과정) 정도의 교육과정을 개설하여 학생들에게 선택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런 과정도 없었고 지금 자사고는 그 정도 수준도 갖추지 못했다. 자사고가 본연의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교육청과 자사고의 갈등이 자사고를 혁신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교육청은 자사고에 대해 재지정평가점수를 올려서라도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교육과정의 다양성이 차고 넘치는 학교가 되도록 기회를 주고 그에 맞도록 법령을 개정하는데 애쓰기를 제안한다. 즉 자사고가 국민에게 대학입학에 유리한 학교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질 좋은 교육과정의 학교로 거듭나도록 여러 대안을 모색했으면 좋겠다. 이미 언급했지만 자사고가 국제적 수준인 IB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로 전환하는 방식도 좋은 대안이다.

 

결론적으로 교육청과 자사고가 갈등하기보다는 교육부와 교육청 및 자사고와의 조속한 협의가 있기를 바란다. 자사고의 교육과정을 지금처럼 입시위주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설립취지에 맞게 재편한다는 전제하에 자사고는 자사고와 일반고를 동시에 지원하도록 개정된 시행령을 받아들이고, 교육청도 한 발 물러나 자사고 탈락자는 임의배정이라도 평준화지역의 학교에 수용하게 함으로써 자사고 폐지를 A플랜이 아닌 B플랜으로 유보했으면 한다. 또한 자사고 교육비는 지금처럼 지원자와 재단이 동시에 부담하도록 하면 자사고 유지가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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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박제원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전주 완산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 교육청 사회문화 집필 위원, KDI 경제교육교재 집필 위원,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충남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출제위원, 전북 및 전남 교육연수원 강사, 전북대학교 교사 연수 강사, <새전북신문>, <열린 전북>, <전북교육신문>, 인문 웹진 <아홉시>, 네이버 비즈니즈 블로그 <인터비즈>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교육저널인 「교육 제4의 길 」에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미래 교육의 불편한 진실, EBS, 2021>, <학교 속 문해력 수업, EBS, 2022>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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