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교육 담론 : 직업과 공포
인공지능 세상이 온다고 한다. 세상이 왈칵 뒤집힐 거라고 한다.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도대체 왜 무엇을 어떻게? 여기에 대한 답은 없고 공포만 만연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공포를 유포하는 교육 담론 중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이를 직업세계의 변화와 관련짓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모두 다음과 같은 공통된 논리를 따르고 있다.
1)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하던 일 중 상당 부분을 기계가 대신한다.
2) 기계가 대신하는 일과 관련된 일자리가 사라진다.
3) 현재 교육, 특히 공교육은 장차 사라질 일자리에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데 치중하고 있다.
4) 기계가 대신하지 못하는 일, 인공지능 시대에 새로 등장하게 되는 일에 필요한 능력을 기르도록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이 담론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어떤 직업이 사라지는지, 어떤 직업이 살아남는지에 대한 공포스러운 예측을 던지고, 인공지능이 따라잡지 못할 직업은 어떤 것이며, 그런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교육을 바라본다.
이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인용된 말은 아마 앨빈 토플러의 다음과 같은 말일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 15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 말을 곰곰이 뜯어보면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을 다음의 두 가지를 위해 낭비하고 있다.
1.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위하여
2.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하여
1. 필요하지 않은 지식
필요하지 않은 지식이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알아 두어야 쓸모가 없거나, 혹은 쓸모가 있더라도 굳이 알아 두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지식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지식과 정보를 두뇌에 많이 담고 있는 사람이 지식인이며 공부 잘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이러한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있던 매체인 백과사전이 있었다. 그러나 백과사전과 같은 인쇄 매체는 그 무게와 부피라는 물리적인 한계도 있는데다가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검색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많은 지식을 머리 속에 담고 있는 사람을 능가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미 체계적인 지식과 정보를 많이 가질수록 책을 뒤져서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훨씬 짧다. 그러나 3세대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어떤 정보나 지식을 얼마나 머리 속에 미리 넣어두고 있는지는 점점 부차적인 위치로 내려앉게 되었다. 최근 구글 검색 엔진은 사용자 정보를 스스로 학습한 뒤 사용자 특성, 검색 지역, 최근 관련 검색어, 검색 트렌드 등을 반영하여 검색 결과 노출 순위를 자동으로 정해서 보여준다. 심지어 검색어를 오타 쳐도 스스로 수정해서 검색하며, 한/영 키를 반대로 쳐도 스스로 바꿔서 검색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지식과 정보를 굳이 머리 속에 힘들게 집어 넣어두려고 애써야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엄청난 지식과 정보를 머리 속에 담고 있는 이른바 “척척박사”나 최신형 스마트 폰으로 구글 검색창을 열어두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려고” 애를 쓰고 “백과사전을 씹어먹을” 기세로 암기하느라 시간을 쏟아 붓는 공부는 낭비일 수 밖에 없다.
2. 존재하지 않을 직업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공부한다는 토플러의 말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수많은 직업을 인공지능으로 대체시킬 것이라는 대량실업의 공포를 반영한 것이다. 이미 인류의 역사는 산업혁명은 곧 실업혁명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증명해 왔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학교 교육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학교제도는 산업사회에 만들어졌고, 산업 노동자를 대량으로 공급하는데 기여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프롤레타리아라 불리는 산업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감한다면 학교교육 역시 헛수고를 하고 있으며 미래의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웬만한 경제 연구소, 사회 연구소는 모두 저마다의 인공지능 시대에 사라질 직업과 새로 흥할 직업 리스트들을 가지고 있다. 가령 일본 노무라연구소와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진은 일본 내 직업 600개 가운데 49%가 인공지능 또는 로봇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업은 일반 사무직, 택시기사, 마트 계산원, 경비원 등이었고 대체 가능성이 낮은 직업은 의사, 교사, 연구원, 관광 가이드, 미용사 등이었다. 많은 경험을 통한 노하우가 필요한 전문직이나 사람들과 의사소통, 공감 등이 필요한 직업들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분류에 따라 현재 고용 상태를 분석한 영국의 WEF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현재 노동자들 중 47%가 10년 이내에 사라질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으며 10년 이후에도 살아남을 일자리에는 33%만이 일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도 미래에 살아남을 직업으로 정보보안 전문가, 빅데이터 분석가, 인공지능·로봇 전문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와 함께 교수, 회계사, 법률가, 의사 등을 들었다. 그 밖에 다른 연구들도 대개 비슷하다. 이 리스트들의 공통점은 우리에게 현재 익숙한 직업들의 대부분을 곧 사라질 직업의 영역에 넣어두고, 극소수의 전문직이나 이름도 낯선 신종 직업들을 새로 등장할 직업의 영역에 올려 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리스트들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고 간단하다.
“현재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혹은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른 여기 나와 있는 신종 직업으로 갈아탈 준비를 하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실업자가 될 것이다.”
이런 대량 실업에 대한 공포는 안 그래도 과민반응하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을 패닉 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사라질 직업이 아니라 새로 떠오를 직업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다른 아이들보다 내 자식이 선점하게 하려는 신종 사교육이 판을 쳤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 어떤 직업이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존의 것들을 얼마나 많이 익혔는가로 판가름 나는 방식의 교육에 매달렸다가는 큰일나겠다는 불안감이 퍼져나갔다.
그렇다면 그 인공지능을 설계하는 일만큼은 사람이 담당할 것이라는 상식적인 판단에, 그리고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자리가 바로 사회의 먹이사슬 제일 상위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남보다 앞서서 그 자리를 선점시켜야 한다는 초조함이 코딩교육 열풍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물론 공교육에도 코딩교육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이는 주로 사교육을 통해 이루어졌고, 남보다 빨라야 한다는 초조함 때문에 충분히 기초를 다루기도 전에 바로 고급기술로, 원리를 배우기도 전에 바로 프로그램 개발로 넘어가는 등 조기 선행학습 경쟁이 일어났다. 그 결과 초등학교 6학년이면 벌써 스크래치, 엔트리는 진작 끝내고 아두이노, 파이썬을 다루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정부 역시 부화뇌동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설치되었던 미래창조과학부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정부가 앞장서서 직업 소멸 대체론과 교육 위기론을 유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불행은 많은 학부모들이 과거부터 내려오던 “사라질 직업”에 대한 미련 역시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존 일자리에서 신규 채용이 줄어드는 만큼 이른바 인공지능 시대의 유망한 신종 직업들에서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유망하다는 일자리들 역시 몇 년 째 계속 미래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결국 부모들은 자녀에게 옛 일자리와 미래형 일자리를 모두 준비시켜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른바 낡은 학교교육과 거기에 맞춰진 사교육 및 신종 학교교육과 신종 사교육을 모두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이게 가능할까? 서로 모순되는 두 교육을 동시에 받으라는 것과 이를 학교에 요구하는 것은 네모로 된 바퀴를 단 수레를 굴리라는 것과 같다. 결국 이래서는 학교도, 교사도, 학생도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고, 학부모는 더 이상의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린다. 이런 초토화된 상황에서 남는 것은 절망과 분노뿐이다. 이게 최근 우리나라 교육계를 지배하는 정서다.
3. 우리는 직업을 예측할 수 없다
장차 어떤 직업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고 대체될 수 없는지를 지금 예측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단적으로 아무 의미 없다. 현재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도 있고, 그 창발적인 속성상 인공지능 때문에 느닷없이 나올 직업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일 뿐이다.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정말 있다면 직업을 준비하기보다는 주식 투자에 나서는 것이 더 빠르게 성공하는 길일 것이다.
미래는 언제나 열려있고 불확실하다. 만약 특정 직업을 예측하여 거기 맞춰 부지런히 공부했는데 막상 어른이 된 다음 그 일이 이미 인공지능이 스스로 하는 일이 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코딩교육만 해도 그렇다. 이미 인공지능은 스스로를 코딩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간다. 인공지능이 자신이 작동된 결과를 수집하여 그걸 바탕으로 스스로를 향상시킬수 있다면 코딩교육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게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흔히 예술과 같은 창조적인 일은 사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미 인공지능은 소설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그 작품들이 아주 독창적이거나 매우 아름답거나 하지는 않지만 형편없는 것도 아닌 적당히 잘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하지만 사람은 얼마나 다를까? 천재적인 예술가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가나 작곡가는 잠깐 소비되고 사라지는 그런 작품들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타고난 천재 몇몇을 제외하면 창조성에 온 힘을 기울여 준비한 학생들은 그대로 실업자로 전락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누구도 10년도 더 뒤의 직업의 흥망을 예측할 수 없다. 설사 10년 뒤의 직업을 용케 맞췄다 하더라도 한두 해 일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그로부터 다시 10년, 20년 뒤의 직업까지도 예측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30년 뒤의 직업 흥망을 예측하고, 그 직업에 필요한 능력을 교육을 통해 미리 준비시킬 수 있는가? 이건 불가능하다. 교육은 점쟁이가 될 수 없다.
여기서 한 발 물러나서 생각해 봐야 한다. 장차 어떤 직업이 유망할지 예측한 뒤 그 직업에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 것이 과연 학교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일까? 오히려 특정한 직업을 목표로 하고 그것을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교육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이다. 직업, 직능에 맞춰진 좁은 교육은 장차 그 직업, 직능이 대체되었을 경우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런 학생을 기를 수 있다. 더구나 특정한 직업, 직능에 맞춰진 교육은 기본적으로 그 직업에서 가장 보편화된 지식과 기능을 그저 전수(transfer)하는 교육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역시 낡은 교육의 한 갈래에 불과하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