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칼럼] 혁신학교와 미래 ‘학교의 문법’

1.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논란과 혁신학교
교육부는 지난 2021년 2월 소위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추진사업계획을 발표한 바있다. 그 후 7월에 1차년도 대상학교가 발표되자 서울시교육청 관내 일부 학교의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제기되었고, 급기야 몇 학교에서 사업이 철회되기까지 했다. 해당 사업은 40년 이상 노후화한 학교 시설물을 중심으로 개축공사를 시행하면서 학습자중심교육이 가능하도록 공간혁신을 추진하고, 디지털 기자재 구축을 통한 스마트교육, 신재생에너지와 생태교육 등을 체험하는 그린교육, 그리고 학교시설의 복합화를 통해 지역사회와도 연계하는 학교공동체 혁신을 추구하는 것을 주 모토로 삼고 있다. 전국적으로 2025년까지 18.5조원을 투입해서 약 1,400개교 2,835개동을 ‘미래학교’로 우선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에서도 2025년까지 모두 213개 학교를 ‘미래형 학교’로 다시 짓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언뜻 보면 낡은 학교 건물을 개축하면서 미래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기능을 보완하려는 것이라 특별히 시비의 대상이 될 것 같지 않은 정책이다. 일견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정책에 대해 일부 학교의 학부모들은 장례식장에서나 볼 수 있는 조화 화환으로 시위하며 강경한 저항의 의사를 표시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가장 중요한 반대 이유는 공사기간인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 필요한 시설을 위해 현재 재학생들이 컨테이너와 유사한 임시 시설에서 안전성이 의심스러운 상태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간혁신 사업에 대한 안내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대다수 학부모들이 이 사업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대상 학교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학부모 입장에서 문제제기 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교육 당국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재학생들에 대한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일부 학부모들이 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가 ‘혁신학교’ 지정이라고 착각하여 반대했다는 해프닝은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한다. 그러고 보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취지 중에서 ‘혁신적이고 유연한 교수학습적용, 인성과 정서발달 기회, 학생선택학습, 융합수업, 체험적 학습, 맞춤형개별학습, 지역사회참여’ 등 혁신학교들을 다룰 때 사용될 법한 어휘들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입시 위주 경쟁교육’에 대한 비판 역시 공감대가 두텁고 변화 요구도 거세다 보니 이런 용어들이 과히 낮선 어휘도 아닌데, 일부 학부모들로부터 여전히 그토록 강한 저항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일 수 있다. ‘반발하는’ 학부모들은 어떤 교육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혁신학교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 것인지, 잘못된 인식이라면 그 학부모들만의 잘못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 한국의 ‘학교 문법’과 혁신학교
혁신학교에 대한 일부 학부모의 우려는 학교개혁 논의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어온 ‘학교의 문법(grammar of schooling)’ 논쟁을 상기시킨다. 미국 교육학자 데이비드 타이엑(David Tyack)은 ‘학교의 문법’이라는 수사적 용어를 통해 다양한 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바뀌지 않고 있음을 역설한 바 있다. 이는 학교개혁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둘러싼 논의에 흥미로운 화두를 제시한 것이다. 타이엑에 의하면, 19세기 이래 제도화한 학교의 형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학교의 원형 혹은 ‘진짜 학교(학교는 원래 이런 것)’에 대한 일정한 상을 형성해왔다. 그것이 ‘문화적인 신념’이 되어 아무리 새로운 시도를 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문법이란 은유적 표현으로서 일정한 구조와 규칙을 지칭한다. 우리의 경우, 학교의 문법이라고 할 만한 구조와 규칙이 무엇일까. 흔히 지식편향적 교육, 입시위주 경쟁교육, 관료주의 교육행정 등이 오랜 기간에 걸쳐 한국 교육의 특징으로 거론되어왔다. 학교에 대한 통상적 이미지는 다음과 같이 떠올려진다. 학교는 전인적 성장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사회적 기회의 통로이기 때문에 가는 곳이다. 학교를 다니면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손해를 보게 되는 도구적 의미가 강하다. 더 많은 기회를 위한 중간 통로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상급학교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변별을 수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시험에 나오는 것을 배우고, 시험 결과에 따라 등수를 매기는 것이야말로 학교에서 해야 할 본질적인 일이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학력이란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점수가 높은가 낮은가에 의해 판단된다. 이러한 교육적 틀 안에서 교사는 주어진 교육과정의 실행자임과 동시에 관료행정기구의 말단 공무원이다. 교육재정이 취약하던 시기부터 학교에 합법적으로 참여했던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가 학생의 점수를 높이는 일에 더욱 몰두하도록 재촉해왔다. 이런 교육에 익숙해온 사람들은 학창 시절에 꿈을 키우고 자유롭게 자라는 외국의 교육을 무척 부러워한다. 그래서 한국의 학교도 바뀌어야 한다고 소리 높이지만 정작 학교가 변하고자 하면 불안감을 느끼고 그 변화에 저항한다.
해방 이후 교육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 중 하나는 아마도 ‘학교교육 정상화’일 것이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흔히 잡무라고 불리는 행정업무를 줄이고 수업이나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하거나 사교육에 휘둘리지 않고 학교가 교육의 중심이 되도록 불필요한 경쟁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학교가 지식을 주입받고 성적에 따라 비교되고 소외되는 장소가 아니라, 즐겁고 철저하게 배우고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개성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도 학교교육 안에서 자녀의 성장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지원이 충실히 이루어져서 믿고 보낼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한국에서 학교를 개혁하려는 노력은 적어도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다양하게 전개되어왔다. 2009년 이후 등장한 ‘혁신학교 정책’은 그 흐름의 일부로서 주목할 수 있으며, 특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특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유형의 학교들과 달리 공교육 전체의 개선, 즉 ‘학교교육 정상화’와 ‘교육본질 회복’을 주장하는 것이다. 2009년 경기도에서 소위 진보교육감 출범과 함께 하나의 교육정책으로 등장한 제도이지만 1990년대 이래 현장으로부터의 학교개혁 운동의 흐름을 잇고 있으며, 입시위주 주입식 교육으로 상징되는 기존 교육을 바꿔보려는 현장 교사들의 노력의 성과라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현재 13개 지역에서 정책적으로 추진될 뿐 아니라 전국 수준으로 확산되었고 혁신학교는 전체 학교의 13%(2019년 기준)에 달하고 있다. 10년 넘는 기간 동안 전국 여러 지역에서 혁신학교 정책이 도입되고 시행되어 온 것이다.
혁신학교는 교육본질의 회복을 위해 기존에 교사들에게 부과된 관료적 행정업무를 경감하고 교육활동 즉 수업과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해 왔으며, 입시위주 주입식 교육 대신 학생 스스로 탐구하는 학습을 하도록 교육과정, 수업, 평가 등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존에 자신들의 교실의 벽 안에서 고립되었던 교사들을 전문성 신장을 위한 협력적 공동체를 통해 서로의 수업을 참관하고 도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학생이 스스로 의사결정하는 시민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배움(학습)중심 활동을 강조하고 학생주도적인 활동과 학생자치를 강조했다. 이 모든 활동이 분절화하지 않고 학교문화 안에서 의미 있고 효과적인 교육 성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학교 전체의 재구조화(whole-school change)를 지향했다. 혁신학교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교육활동 중심의 교육본질 회복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공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우선 실시된 경향이 있고, 학습의 기초가 되는 자기효능감에 기반해서 기초학력, 정서, 창의성, 진로성숙도 등 넓은 의미의 학력을 키우기 위한 활동에 주력해왔다.
그렇다면, 지난 10년의 과정에서 혁신학교는 기존 ‘학교 문법’을 바꾸는데 얼마나 ‘성공한’ 것일까? 타이엑에 의하면 학교 문법에 대한 강한 저항은 대중의 문화적 신념과 관련된다. 즉 – 싫든 좋든 – 사람들이 진짜 학교라고 믿고 있는,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학교의 상을 바꾸는데 얼마나 기여한 것인가?
3. 혁신학교가 해온 것은 무엇인가?
학교 문법의 관점에서 볼 때 혁신학교는 기존의 고질적 구조와 규칙을 변형시키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다. 학교를 제도적 수단으로서만이 아닌 전인적 교육의 장으로 돌려놓기 위한, 사실상 역사적으로 별로 선례가 없었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시도였다.
지난 10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혁신학교는 변곡점들을 거쳐왔다고 본다. 초기 도입과정에서는 다양한 교육적 시도들이 소개되면서 학교교육의 모델로 주목된 점이 없지 않다. 일부 선도적 학교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시도들은 후발 혁신학교들의 모범이 되면서 학교 전체의 개혁을 이끄는데 기여했다. 그러한 성과들에 힘입어 보다 적극적으로 일반학교의 교육을 정상화하는 목적을 지향하며 ‘확산’ 정책을 추진했다. 보다 많은 학교들이 학교개혁의 경험을 갖게 하도록 하는 것이 취지이다.
혁신의 추진 동력도 강하고 학교문화 변화와 같은 성과도 괄목할만한 학교들만을 모델로 해서 추진하면 ‘혁신학교’의 혁신성은 입증이 쉬울 것이다. 그러나 혁신학교는 특목고나 자사고와 같이 특정 대상을 위한 특수목적학교가 아니라 전체 공교육 혁신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정상화’를 위한 실천이 확산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의 경우 신설학교는 자연스럽게 혁신학교가 되도록 제도화했는데, 이 과정에서 생긴 논란이 2018년의 ‘헬리오시티’ 사태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편재한 혁신학교들은 이러한 확산정책의 결과로서 그 안에는 개혁을 이끌어갈 추진세력이 갖추어져 있는가, 그리고 실질적 학교문화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따라 학교 간 편차가 크게 나타난다. 강한 내부추진력으로 학생발달을 중심으로 한 학교조직을 충실히 갖춘 사례가 있는가 하면, 혁신학교로 지정되었지만 소위 ‘무늬만 혁신’에 머무는 사례들도 있다. 초기에 혁신적이던 학교도 연차가 지나면서 교사들의 전보와 번아웃으로 혁신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무늬만 혁신학교가 새롭게 정비하여 교육력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
학교개혁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학교혁신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개혁동력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교육철학과 개혁전략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조건에서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의심과 저항을 뚫고 개혁을 완수하기란 쉽지 않다. 교육적 목적을 공유할 추진 주체가 명확할 때 개혁의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그것도 개혁유지를 위한 전문적 조력이 있어야 하고, 개혁동력이 번아웃되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이 따라야 가능한 것이다.
혁신학교 제도라는 큰 우산 안에는 이렇듯 다양한 학교현실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소수학교에 집중하는 ‘모델화’는 좋은 교육의 선례들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혁신학교라는 타이틀 속에서 고민하는 학교가 많아질수록 학교 문법의 변화는 더 광범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장점을 놓치기도 어렵다. 모든 학교가 원하는 수준의 교육혁신을 이루고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관점에서 볼 때 모델화냐 확산이냐의 문제는 혁신학교 정책이 놓인 딜레마 상황이라고 하겠다.
지난 10년의 교육계를 돌아볼 때, 혁신학교가 확산 혹은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관찰되는 변화가 있다. 적어도 10년 전에는 없었지만 많은 학교들에서 제도화된 변화들이다. 혁신학교에서 시도한 변화들이 일반학교 정책에도 반영된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교사들의 전문적 협력문화이다. 학교개혁을 위해서는 교실 벽 안에서 고립되었던 교사들이 학생발달을 위해 소통해야 하고 협력적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기초 형성을 위해 혁신학교에서 강조된 교원전문성공동체는 현재 일반학교에서도 광범하게 시행되고 있다. 둘째는 학생 문화의 변화이다. 혁신학교들에서는 학습자의 배움을 중심에 둔 교육을 강조하면서 교과나 비교과활동에서 학생의 발달이 중심이 되도록 강조해왔다. 일반학교들에서도 ‘교복입은 시민’과 같이 학생이 수업과 학교공동체의 중요한 주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을 강조하며 창의적 체험활동 및 각종 학생주도 활동과 학생자치가 강화되고 있다. 셋째 학교 문화의 차원에서 볼 때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와 같이 학교 내 민주적 의사결정 문화가 확산되고 있으며, 교사들의 업무경감을 위한 제반 변화들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혁신학교에서 시작된 학생-교사-학부모의 공동체적 규율 제정(3주체 생활협약 등)과 같이 공동체 차원의 규범 공유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넷째 교육과정-수업-평가를 연계한 혁신이 확산되고 있다. 수업을 교과의 논리보다는 학생의 배움을 중심으로 재조직하고 협력적 수업연구를 정례화하며, 학습의 과정을 중시하는 과정중심평가가 발달해왔다.
혁신학교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일반화하고 있는 이러한 요소들은 기존 학교의 구조와 규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하겠다. 오히려 ‘혁신학교보다 더 혁신적인 일반학교들도 많다’는 담론이 일각에서 통용되기도 하는데, 이는 ‘혁신교육의 일반화’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4. 미래지향적 학교의 문법은 가능한가?
글로벌 학교개혁과 관련해 낯익은 주제 중 하나가 ‘학교 개혁의 실패’이다. ‘학교 문법’ 논의도 왜 애초에 만들어진 고질적 구조와 규칙을 바꾸기 어려운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이 결국 학교 제도의 고질적 형식을 바꾸지 못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교육개혁은 쉽지 않다는 것이 규범적 정설처럼 보인다. 혁신학교라고 다를 수 있을까?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를 둘러싼 논란만 봐도 지난 10년간 혁신학교가 추진해온 개혁의 성과가 대중에게 전달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필자에게 주목되는 것은 학교개혁 실패의 문법이다. 타이엑에 의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교육이 시도되어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학교를 ‘진짜 학교’로 알고 그 교육에 빗대어 새로운 교육의 가치를 폄하해서 본다. 우리 식으로 보면 소위 점수나 서열화로 상징되는 전통적 학력이 그것일 것이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를 반대하는 학부모들의 의중을 전언한 한 매체는 혁신학교에 대해, “경쟁을 지양하며 시험을 덜 보기 때문에 기초학력이 일반학교보다 떨어진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고 하면서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학업 수준이 낮아져 걱정인데 텃밭 가꾸면 대학 갈 수 있느냐”고 불평하는 학부모의 말을 전언한다. 이러한 반응은(일부 학부모나 그것을 전언하는 언론매체나) 모두 기존의 문화적 신념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쟁을 안 시키고 시험을 안 보니 너무 불안하다, 생태교육 같은 것을 할 시간에 대학 갈 공부나 시키라는 것이다. 그냥 옛날식 교육으로 그대로 돌아가라는 주문이다.
「학교교육 제4의 길」이라는 저서를 통해 잘 알려진 미국 보스턴대 데니스 셜리(Dennis Shirley) 교수팀은 필자 등과 함께 서울형혁신학교에 관한 국제협력연구(2019-20)를 수행한 바 있다. 그들은 이제까지 한국교육에 대한 통상적 이미지가 ‘학업성취는 높지만 교육의 도구적 성격이 강한 국가’였다면, 혁신학교들은 이와는 다른 의미 있는 교육적 성과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의 혁신학교가 글로벌학교개혁 방향에 맞는 개혁을 시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실현하는 교육을 하는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교육을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교육적 성과들이 발견된다고 보았다. 셜리 교수팀도 한국에서 ‘전통적 학력’에 대한 요구가 학교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고 보면서, ‘단기이익’ 때문에 개혁의 저항집단이 될 수 있는 구성원들이 혁신의 장점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학력관의 측면에서 볼 때, 현재까지 혁신학교 효과에 대해 이루어진 연구들은 다양하며 서로 성과가 상이하게 보고된다. 혁신학교가 학력, 정서, 창의성, 진로성숙도 등 다양한 지표에서 일반학교와 같거나 약간 상회한다는 연구결과가 많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학력을 ‘점수’로만 보다 보니, 사회경제적 배경을 통제하지 않고 단순 비교하여 혁신학교가 학력이 낮다고 일반화해서 주장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다.
개혁의 저항세력은 실증보다는 믿음에 충실하기 때문에 실증자료로만 반박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기주의자를 합리적으로 설득해서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도록 하기는 어렵다. 또한 ‘진영논리’에 의한 반대를 위한 반대, 낙인 가하기, 확증 편향 등에 합리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혁신의 장점’이 궁극적으로 필요하고 타당한 방향이라면 단기이익과 장기이익이 연결되도록 학교와 사회를 개혁하여 문화적 신념의 변화가 자발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육에 있어 고려될 단기적 이익이 ‘점수’라면, 장기적 이익은 ‘미래의 삶’일 것이다.
관련하여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에 대한 논란에서 생각할 것들이 있다. 학교 문법의 변화를 근본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공감가능한 언어로 미래교육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한국교육의 전통적 문법이 바뀌어야 한다면 ‘미래사회’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같은 미래학자들은 미래사회에서 인간은 고정된 정체성에 머물 수 없고 ‘텐트치는’ 정체성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재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루 하루가 도전이 되는 사회 조건에서 학습자 개개인이 더불어 사는 사회 안에서 자기 삶의 주체가 되도록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각자를 자기 삶의 주인이자 책임 있는 사회구성원으로 지적, 정서적, 신체적, 윤리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민주주의교육은 미래사회의 주체 형성에 다름 아니다. 최근 이런 문제의식은 더 급진화하고 있다. 미래 방향에 대해 공감하는 기초 위에서 공간혁신이라는 유의미한 프로젝트가 다루어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미래 삶을 위한 교육을 장기이익으로 고려하면서, ‘점수’가 여전히 단기이익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 현명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전통적 학력에 대한 신념이 미래를 가로막는 문제도 있지만, 개혁적 교육이 ‘진짜 교육’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학력관이 더 설득력 있게 정착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밖 게임의 룰인 사회의 기회배분구조가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학교제도에서도 미래사회에 맞는 학교 문법을 위한 비전과 리더십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는 새로운 학교 문법의 창출을 위한 실험을 표방해온 혁신학교들에 대해서 뿐 아니라 모든 학교들에 대해 기대되는 변화일 것이다.
※ 본 글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현재 홍익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교육사/철학을 전공하였다.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을 보내는가가 명문고의 척도가 된 현재 상황에서 고등학교에서의 혁신학교는 대입을 위한 점수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단기이익의 ‘점수’가 장기이익인 ‘미래의 삶’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말씀처럼 새로운 학력관을 통해 ‘점수’가 갖는 의미부터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미래의 삶을 준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점수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교육부가 준비하고 있는 대입제도도 이를 견인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