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학력(學力) 저하에 대한 교육감협의회의 우려스러운 대응
지난 8월 29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7월 ‘새로운 학력’을 측정하는 지표를 개발하는 연구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의뢰했다고 한다. 기존 국어·영어·수학 등 교과목 성취도로 평가하는 학력은 4차 산업시대에 맞지 않아 감성과 시민성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학력 개념을 만들어 측정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런 추진 이면에는 다른 배경도 있는 듯하다. 지난 교육감 선거 때 특히 보수진영 후보들이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는 혁신학교 고교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11.9%)이 전국 고교 평균(4.5%)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혁신학교를 통해 학교교육 혁신을 추진하는 교육감들의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대응의 목적과 방향이 매우 우려스럽다. 대표적인 예로, 이재정 경기교육감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들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학력’이라 부르는 것은 상상력과 창의력, 융합 능력을 측정하지 못한다. 4차 산업시대가 왔다고 하면서 수치화한 점수를 갖고 (혁신학교를) 판단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시도 교육감들이 도입하려는 아래 <표 1>의 새로운 학력 내용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표 1> 시도 교육감들이 도입하려는 새로운 학력

(출처: 조선일보 2018-8-29)
이번 칼럼에서는 혁신학교의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學力)과 교육감들의 새로운 학력에 대한 정의와 지표 개발 방향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학력이란 무엇인가?
‘학력(學力)’의 정의는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정의는 ‘학교나 여타 교육기관에서 일정기간 특정 교과목을 학습해서 얻은 지식·기능의 양이나 정도(두산백과)’라는 뜻일 것이고, 이보다 조금 더 넓게 정의하면 ‘교육의 결과인 ‘academic achievement’나 ‘academic performance’ 즉 학생, 교사, 학교가 단기 혹은 장기에 걸쳐 교육 목표를 달성한 정도(the extent to which a student, teacher or institution has achieved their short and long-term educational goals)(Wikipedia, 2018)’를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표 1>의 ‘시도 교육감들이 도입하려는 새로운 학력’이 지식 중심에서 ‘지식이 아닌 협업능력, 소통능력, 창의력, 감성·시민성’을 강조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시도 교육감들이 ‘새로운 학력 개념 정립 및 구현 방안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평가지표 개발을 의뢰했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가장 큰 문제는 시도교육감들의 새로운 학력관이다. 지식과 역량을 별개로 보며 지식의 가치를 역량의 하위에 두는 듯한 인식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역량을 발휘할 때 기존의 지식 스키마를 불러와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량은 ‘지식의 활용’과 다른 말이 아니다. 또 새로운 학력을 정의하고 이의 평가지표를 개발한다면 OECD가 UN의 지속가능한 발전 의제를 실천하기 위해 작년 새롭게 발표한 ‘OECD 2030 학습목표 프레임’의 전환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ies)과 웰빙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학생의 웰빙은 건강과 행복 외에 차별받지 않고 소속감을 느끼며 학교 수업에 적극 참여하고, 의미 있는 배움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온타리오 주도 최근 교육 비전과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면서 웰빙을 학교교육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혁신학교는 학생 웰빙을 새로운 학력으로 포함시키고 이에 대한 지표를 개발해 관리하는 데 모범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지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지식이 아닌 협업능력, 소통능력, 창의력, 감성·시민성’이란 표현은 ‘기초지식의 확실한 습득을 바탕으로 협업능력, 소통능력, 창의력, 감성·시민성’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발 21세기 역량교육운동이 시작된 지 어언 15년이 넘었다. 그간 OECD, UNESCO를 비롯해 역량교육과 평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있었고 이제는 역량교육의 실천적 한계를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라고 생각된다. 지식과 역량의 관계도 제대로 파악되고 있는 양상이다. 21세기 역량교육운동을 주도했던 찰스 파델도 최근 「4차원 교육」이란 책을 통해 지식이 역량의 하위 요소이거나 중요성이 역량에 비해 낮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일본도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하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사고력·판단력·표현력을 발휘하려면 기초적 지식기능의 확실한 습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지식, 역량, 인성을 같은 위상으로 보고 학력을 정의하고 있다. 또한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문제해결과 같은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기억 속에 저장된 스키마(schema)나 심성 모형(mental model)이라고도 부르는 지식이다. ‘지식 대신에’란 말은 무지 또는 오해에 기반한 우려스러운 인식이다.
21세기가 18년이 지난 시점에서 학교교육은 새로운 학습목표를 요구하고 있다(<표 2 참조>). OECD가 UN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유네스코 2030 의제(UNESCO’s 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 실천을 위해 2015년 시작한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Education 2030”란 프로젝트를 통해 1차 결과물로 ‘2030년 학교교육이 지향해야 할 학습 나침반(OECD Learning Compass 2030)’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2030년 학교교육이 지향해야 할 학습목표를 아래 <표 2>와 같이 제안하고 있다.
<표 2> OECD 2030 학습목표 프레임

http://www.theewc.org/Content/Home/News/OECD-Learning-Compass-2030
OECD가 2005년 DeSeCo 프로젝트를 통해 핵심역량을 정의한데 이어 12년 만에 추가로 아래 표와 같은 내용으로 전환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ies)을 발표한 것이다.
<표 3> OECD 2030 학습목표 프레임의 전환역량

2005년에 발표한 핵심역량만으로는 국가와 지구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 인식에서 전환역량이 나온 것이다. 학교가 새로운 성장 자원으로서 혁신의 실험실이 되기, 타인의 서로 다른 욕구와 입장 이해, 상호연결성 인지와 섣부른 결론 피하기, 시스템적 사고(systems thinking), 대립·갈등·딜레마 속에서도 균형/절충점 찾기, 자기행동에 대한 미래 결과를 고려하는 능력, 책임감과 도덕적·지적 성숙함 등을 학교교육의 목표로 강조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위 <표 2>의 우측 그림 속 3개의 클로버 잎사귀 모양의 내용이 전환역량이고 이를 <표 3>처럼 자세히 정리해봤다. 아울러 21세기 학교교육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목표를 웰빙(wellbeing)으로 설정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교육감협의회가 주목해야 할 점은 지식의 중요성을 낮게 볼 것이 아니라 이를 가장 중요한 학습목표로 삼아야 하며 OECD가 새롭게 제시한 전환역량과 웰빙의 실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민성 등의 역량은 평가 가능한가?
교육감협의회가 새 학력의 지표 개발을 의뢰한 것에 대한 또 다른 문제점은 감성과 시민성을 평가하려는 의도이다. 평가에는 크게 총괄평가 성격의 ‘assessment OF learning’과 형성평가 성격의 ‘assessment FOR learning’이 있다. 만약 위 기사 내용처럼 감성과 시민성(인성의 연장선상에 있음) 평가 결과를 가지고 혁신학교 학력 저하를 방어하는데 사용하려 한다면 이는 총괄평가 성격의 ‘assessment OF learning’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역량 평가 분야의 전문가 중 한 사람인 Assessing 21st Century Skills: A guide to evaluation mastery and authentic learning(2012)의 저자 로라 그린스타인(Laura Greenstein)이 자신의 책에서 밝히고 있는 아래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런 역량들의 발달이 어떻게, 어떤 순서로, 어떤 기반을 바탕으로, 또 어떤 인지적 능력 수준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해 아직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21세기 역량 교육은 기존의 것에 새로운 것 한 가지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학습에 완전히 통합시키는 일이란 것으로 인식을 전환하려면 집단적 결의가 필요하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아직 인간의 능력을 판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역량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교육감협의회가 평가하고 싶은 감성, 시민성 등의 역량을 평가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UNESCO IBE 역량 모델링(2016)에서도 ‘일반적 역량(generic competencies)’은 아직 평가도구 개발이 덜 된 영역이라 주관적 평가가 일반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역량 평가가 학습된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것보다는 학습의 한 과정이라는 인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교사는 자주 수행평가를 실시하면서 학습에 필요한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 역량 평가는 형성평가 성격의 ‘assessment FOR learning’이 필요하지 총괄평가 성격의 ‘assessment OF learning’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15개정 교육과정에 역량을 포함시킨 배경도 역량을 학교교육의 최종 목표로 평가하라고 넣은 것이 아니다.
“교육과정의 합리적 운영을 위해서는 교육의 최종 결과물로서 교육의 결과를 평가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목표를 평가 및 측정 가능한 구체적인 수행능력으로 명료화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주장이 가능한데 이를 위해서는 역량의 성취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가급적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역량 형식으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는 행동주의적 접근이고 환원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며(박민정, 2009, 이원희 2015), 2015개정 교육과정 연구진이었던 황규호(2016)는 이런 비판이 타당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http://21erick.org/bbs/board.php?bo_table=11_5&wr_id=100672&page=3 (이찬승 2018 재인용)
맺음말
교육감협의회가 시민성 등의 역량 평가 지표 개발을 의뢰한 동기를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평가 지표 개발에 앞서 “무엇을 위한 평가 지표 개발인가?”, “누구를 위한 평가 지표 개발인가?”란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깊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언론이나 세간의 소문처럼 17개 시도교육감협의회가 혁신학교의 기초학력 미달률이 일반학교보다 더 높은 문제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런 의뢰는 거두는 것이 옳다. 이런 의도라면 새 학력을 정의하고 이것에 대한 평가 지표를 개발할 것이 아니라 혁신학교의 학력이 일반학교보다 떨어지는 원인을 먼저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질도 높지 않은 협동학습을 강조하고, 민주적 학교운영이란 미명하에 기초적인 교과지식 습득을 본의 아니게 등한시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교육감의 생각처럼 학교의 교육 효과성을 교과 성적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고 이것이 혁신학교의 교과 성적이 일반학교의 평균보다 낮다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또한 교과 성적의 성취도가 낮은 상당수의 일반학교들이 혁신학교로 전환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반학교와 혁신학교의 교과 성적을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혁신학교의 태생을 고려하면 학업 성적의 평균은 일반학교에 비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향상되는 속도나 정도가 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앞에서 ‘학력이란 무엇인가?’에서 살펴보았듯이 기초학력의 충실한 습득은 여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기초 학력이 부족하면 고등사고력이 발휘될 수 없다. 또 인지과학적으로 보더라도 문제 해결 프로젝트 수업 등을 할 때 작업기억(working memory)의 과부하가 일어나서 지식의 활용 영역인 역량의 발휘는 제대로 되기 어렵다. 역량 함양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지식과 기능을 충실히(자동화 수준으로) 갖추는 일이다. 이때 지식을 단순히 사실적 지식만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 지식에는 사실적 지식, 개념적 지식, 절차적 지식, 상위인지 지식 등의 위계가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감성 등의 정의적 역량에 대한 평가 지표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중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의적인 것과 인지적인 것을 구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접근은 환원주의에 빠질 위험성도 크기 때문이다. 평가를 하더라도 오직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로서의 평가이기를 바란다. 비교를 위한 평가를 하려는 순간 진정한 교육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진정한 시민성 교육을 하려면 시민성 교육의 성과를 총괄평가(assessment OF learning)로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혁신학교의 차별적 성과로 시민성, 감성 등을 평가하려 한다면 이는 가능하지도 않고 시민성, 감성 등의 교육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학습목표(learning goal) 대신 수행목표(performance goal)를 주는 일은 극히 삼가야 한다. 수행목표를 제시하면 학생들은 시행착오도 숨기고 새로운 것에 도전도 꺼리며 오직 평가자에게 잘 보이는데만 초점을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국책 연구기관들에게도 당부드린다. 핵심역량 6가지를 교육과정 총론에 넣은 것의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역량을 총괄평가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가? 역량은 content-specific, context(domain)-specific한 것이어서 콘텐츠나 맥락을 넘어 전이되지 않는 특성이 있는데 총론의 핵심역량을 각 개별 교과를 통해 함양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하고 또 현실적일 수 있는가? 등에 대해 고민해 주시기 바란다. 아울러 역량 교육과 평가에 대한 세계의 관련 연구들을 알기 쉽게 소개해서 국내의 역량 교육이 오해 없이 바르게 실시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