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자는 교육을 생각하지 않는 자다
교육 평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대입 제도 때문에 교육부 장관이 경질되고 정부의 교육개혁 정책이 사실상 좌초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는데, 이 혼란을 지배하는 주문같은 단어는 한결 같이 ‘공정성’이다. 공정성 때문에 절대평가를 인정하지 못하고, 공정성 때문에 정성평가 및 이를 기반한 학생부 종합전형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지선다형으로 치러지는 수능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퇴행적 목소리가 난무했고, 결국 정부가 거기 굴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이 아니다. 공정성은 스포츠 경기에서 중요한 것이지 교육적 용어가 아니다. 교육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당성’과 ‘신뢰성’이다. 타당성이란 평가해야 할 것을 평가했느냐 하는 것이고, 신뢰성은 그 평가를 제대로 했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평가가 공정하면 좋겠지만, 공정성과 타당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공정성을 포기하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타당성이다.
교육 평가의 타당성은 그 평가의 목표와 실제 그 평가 방법이 얼마나 일치하느냐로 판단한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국가교육과정의 교육목표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교육과정의 존재만 알아도 관심 있는 축에 속한다. 아마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목표가 무엇인지 아는 학부모는 손에 꼽을 것이다. 평가는 교육의 제일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교육이 달성하고자 한 것’을 평가해야 한다.
교육과정의 목표는 학생이 이 과정을 다 마쳤을 경우 되어 있기를 바라는 ‘인간상’의 방식으로 제시된다.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가. 전인적 성장을 바탕으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진로와 삶을 개척하는 자주적인 사람
나. 기초 능력의 바탕 위에 다양한 발상과 도전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창의적인 사람
다. 문화적 소양과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 문화를 향유하고 발전시키는 교양 있는 사람
라.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 시민으로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더불어 사는 사람
이러한 사람이 되려면 부지런히 갈고 닦아야 할 능력이 있을 텐데, 이를 교육과정은 핵심역량이라고 부른다. 결국 학교는 학생들이 이 핵심역량을 함양하도록 교육활동을 배치하여야 한다.
가. 자기관리 역량: 자신의 삶과 진로에 필요한 기초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감
나. 지식정보처리 역량: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함
다. 창의적 사고 역량: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함
라. 심미적 감성 역량: 인간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음
마. 의사소통 역량: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존중함
바. 공동체 역량: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
이러한 역량을 길러주려면 여기에 맞는 여러 가지 교육내용과 교육활동이 세심하게 선정되고 효과적으로 배열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공부’라고 생각해왔던 교사가 가르쳐주고 학생이 열심히 받아적고 시험치는 ‘전수형’ 수업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한눈에 드러난다. 그런 수업으로는 지식정보처리 역량만을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감당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역량들의 함양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다양한 협력적, 융합적 활동을 경험해야 한다. 교과를 넘나드는 주제를 학생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협력적으로 탐구하고 그 결과를 심미적으로 표현하고 토론하고 답을 찾아 나가는 방식의 수업이 필요한 것이다.
수업이 바뀌면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교육학의 제1원리는 교육목표-수업-평가의 일치다. 전통적인 수업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면, 전통적인 평가 방법 역시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 평가의 중심이었던 ‘시험’은 교사가 학생에게 전달한 내용을 얼마나 많이 머릿속에 남겨두고 있는가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방식이다. 특히 선택형 문항으로 이루어지는 이른바 객관식 시험은 운이 좋아 문항을 맞출 확률이 20%라는 한계는 있지만, 나머지 80% 중 얼마나 맞추었는가를 측정하면 학생의 지식을 평가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평가해야 할 목표가 심미적 감성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의사소통 역량이라면 시험은 단번에 그 한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역량들은 활동의 결과물인 각종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발표 내용은 학생들이 실제로 일을 해 나가는 과정을 관찰하지 않으면 온전히 확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이러한 역량들은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정성적 평가, 즉 교사의 서술에 의해 상당 부분 보충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성적 평가는 수업을 직접 담당한 교사 이외에는 그 누구도 평가할 수 없다. 시험은 외부의 문항을 가져와서 치를 수 있지만, 정성적 평가는 다양한 수업을 직접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활동을 관찰하고 기록한 담당 교사가 아니면 거짓말이나 소설을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성적 평가는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주관식 평가인 것이다.
이것이 불공정 논란의 원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 또 부모는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자녀들을 평가한다. 학생이 주관적으로 평가한 자신, 학부모가 주관적으로 평가한 자녀, 그리고 교사가 주관적으로 평가한 학생 사이에는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유교적 전통이 강하던 시절에는 자신이나 자기 자녀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박한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정 반대다. 본인이나 자기 자녀에 대한 평가가 실제보다 훨씬 윗쪽으로 과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에 수많은 학생들을 함께 평가하는 교사는 비교적 냉정하게 평가한다. 결국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자신이나 자기 자녀가 불공정한 평가를 받았다는 불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게 번거롭다고 정성적 평가 중심의 평가 개선 방향을 멈출 수 없다. 이미 교육 목표가 그렇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를 저렇게 잡고, 수업을 저런 방식으로 하면서 막상 평가는 정량적인 시험으로 실시한다면 이건 교육은 물론 학생을 기만하는 것이다. 이 경우 수업과 평가의 괴리가 심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을 등한시하고 온통 시험 준비에만 몰두할 것이다. 학교는 학생, 학부모의 희망을 마냥 방치할 수 없다. 그러니 교육과정상의 목표가 뭐가 되었건, 그냥 시험 대비 중심으로 수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육부나 교육청은 교육과정을 파행적으로 운영하지 말라고 학교에 압력을 가할 것이기 때문에 노골적인 시험 대비 수업을 하기도 어렵다. 반면 학원은 교육과정 그딴 거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시험 대비 수업을 할 수 있다. 그럼 학부모들은 말할 것이다.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낫다.”
교육과정을 개혁했으면 평가도 같이 개혁해야 한다. 교육과정만 경천동지할 변화를 일으키고 평가는 그대로라면 결국 평가만 대비하는 사교육의 배만 불려주고, 학교를 교육과정과 평가 사이에 낀 처량한 신세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대체 이 슬픈 코메디를 언제까지 반복할 셈인가? 이럴 거면 차라리 교육과정을 바꿔 달라. 일방적인 지식 전수를 교육 목표로 삼는 1960년대 식으로.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