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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에 파고드는 유사 과학을 경계하며

#683 현병호, 교육매체 계간《민들레》발행인 2021.10.06

과학의 옷을 입은 창조론, 창조과학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설을 과학적 이론이라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근본주의자들만이 아니라 평범한 많은 기독교인들도 창조설과 진화론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고대의 설화나 신화를 현대의 과학 이론과 나란히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지성적인 태도가 아니다.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계와 그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의 보수 기독교계는 진화론이 창조론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40년 전에 결성된 한국창조과학회는 창조‘론’의 관점에서 자연 현상과 인간의 역사를 해석하기 위해 애쓰는 단체다.1 성경에 근거해 지구의 역사가 6천 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진화론을 인정하는 일부 개신교의 경우 빅뱅 이론 같은 과학적 우주론과 진화론 모두 창조의 일환으로 보는 ‘진화론적 창조설’을 채택하고 있지만, 주류 개신교 교단은 이를 이단시한다. 많은 미션스쿨에서 지구가 6,000~12,000년 전에 창조됐다는 ‘젊은 지구’ 가설에 입각한 창조과학을 가르친다. 하지만 가톨릭은 일찍이 성경의 창세기에 대해 “내용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하느님의 사랑을 주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공표한 바 있다.

 

양식사학은 성경의 천지창조 이야기를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 ‘고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연애편지와 논문을 헷갈리면 안 된다는 얘기다. 수메르 신화를 비롯해 고대 문화의 수많은 창조 신화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표현한 것이다. 불가사의하고 위험하게 보이는 이 세계가 아버지 같은 신의 손길로 창조되었고 따라서 인간에게 결코 적대적이지 않다는 믿음의 표현이라는 얘기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지명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국회 청문회에서 지구가 6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는다고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결국 자진 사퇴했지만, 지명 과정에서 충분히 드러났을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명했다는 사실이 문재인 정부의 인사 정책의 허술함을 보여주었다. 포항 한동대는 한국 창조과학의 본산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초대 총장이 한국창조과학회를 만든 사람이며 대학 내에 창조과학연구소를 두고 있기도 하다.

 

물리학자 김범준은, 창조과학은 과학과 비슷한 점이 없으니 유사 과학이라 부르기도 과분해 가짜과학이라 불러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지명 논란 당시 대학신문에 게재한 칼럼에서 창조과학의 비과학적인 주장을 이렇게 비판한다.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진화론이 거짓인 이유’라는 글에서 진화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위배된다는 항목에서 웃음이 터져 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외부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생명체와 같은 열린계(open system)에서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도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위배되니 불가능하다. 중년의 뱃살이 환상일 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2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하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는 2012년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의 증거로 든 시조새 관련 부분 등을 삭제하라는 청원을 낸 적이 있다. 논란이 커지자 과학기술 분야 석학 모임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화론은 가설 수준의 이론이 아니라 과학적 반증을 통해 정립된 현대 과학의 매우 중요한 핵심 이론의 하나로 모든 학생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밝히면서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우리말 ‘믿음’은 맥락 속에서 사뭇 다른 의미로 쓰인다. 믿음은 때로 신념으로, 때로는 신뢰로 나타난다. 예수가 신의 아들임을 믿는 것은 신념일까, 신뢰일까? 신이 자신의 아들을 대신 죽게 할 만큼 인간을 사랑한다는 믿음, 신의 아들이 죄 많은 인간들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릴 만큼 인간을 사랑한다는 믿음이 신뢰라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헤라클레스 관계처럼 말 그대로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 믿는 것은 신념이다. 신념과 신뢰는 전혀 다르다.

 

‘순종하는 3살, 복종하는 7살, 효도하는 10대-성경대로 하면 됩니다.’ 2012년 한국기독교홈스쿨협회에서 연 세미나의 주제다. 기독교계 학교나 홈스쿨링 부모들이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순종’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 순종하듯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선생님에게 순종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교육일까? 혹 이데올로기를 신앙이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데올로기란 어떤 계급의 이익을 깔고 있는 신념체계를 말한다. 지난날 학교에서 주입시켰던 충효 이데올로기와 여러모로 닮지 않았는가. 신앙은 그런 신념이 아니라 ‘신뢰’다. “믿습니다!” 하는 믿음이 아니라 아이가 엄마를 믿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다.

 

권력화한 교단과 목회자 중에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순종을 정치적 의미의 복종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절대자에게 복종하는 이들은 자신보다 약한 이들 위에 군림함으로써 절대권력의 부스러기를 누린다. 길 잃은 양들을 침묵시키며 자신의 신념을 주입하는 목회자들을 경계할 일이다. 종교권력이 세속권력까지 넘본 역사는 오래지만, 오늘날 문명사회는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문명사회의 공교육기관이 종교교육을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보다 헌법이 우선하는 한국 공교육 시스템 속에서 신앙에 기초한 교육관을 관철하기 어렵게 된 기독교계는 원하는 종교교육을 하고자 공교육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새로운 사립학교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기독교 대안학교라는 이름으로 2백 개 가까운 학교들이 생겨났으며, 대부분 예배를 필수 교육과정으로 편성해놓고 있다. 자신들의 신앙에 근거해 ‘대안학교’ 간판을 거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또한 하나의 ‘대안’이므로.

 

하지만 그 대안이 교육자들을 위한 대안이 아닌 학생들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으려면 아이들이 정말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학교일수록 스스로 진리를 찾는 교육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진리란 우리를 어떤 신념체계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진리탐구’라는 말이 빛바랜 것만큼이나 오늘날 교육은 진리와 거리가 한참 먼 것이 되고 말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영혼은 진리를 갈구하고 있다. 그들의 목마름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뇌호흡, 뇌교육이라는 유사 뇌과학

 

197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불기 시작한 뉴에이지 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세를 확대한 단학은 전통적인 선도(仙道) 사상에 맥이 닿아 있는 양생술의 호흡법과 체조를 체계화하여 대중에게 맞게 개발한 수련법이다. 일지선사로 알려진 이승헌이 1985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처음 문을 연 단학선원은 90년대 들어 뇌호흡, 뇌교육을 내세우며 뇌과학과 유사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대중들뿐만 아니라 지식인들 속으로도 파고들었다. 21세기 들어서는 세계화 바람을 타고 ‘단월드’로 이름을 바꾸어 전 세계에 지부를 개설하며 세를 확장했다. 뉴에이지와 웰빙 바람에 한류 바람까지 가세하면서 현재 10여 개 나라에 120여 개 사업체를 둔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전통적 선도사상과 민족주의가 결합된 단학은 증산도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단월드는 증산도와 달리 종교적 외피를 두르는 대신 주식회사라는 법적 지위를 갖고, 현대의 웰빙 바람에 편승하여 수련단체이자 교육기관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최신 뇌과학 이론을 짜깁기해, 뇌호흡 수련으로 집중력이 향상된다거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면역력 증강을 앞세워 프로그램을 홍보한다. 시류에 편승한 탁월한 사업 수완을 바탕으로 단월드는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다양한 단체들을 앞세워 사업 영역을 확대해오고 있다.

 

단월드는 학교에 단군상을 세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뇌호흡으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면서 일찍부터 교육계를 파고들었다. 80년대 국풍 바람에 편승하여 단군을 앞세워 사회적 입지를 다지고, 90년대 이후 뇌과학 바람을 타고 뇌호흡을 앞세워 교육계에서 입지를 넓혀왔다. 많은 학교에서 뇌호흡 특강이 이루어지고, 기업체 등에서도 직원교육 프로그램으로 도입되었다. 단월드는 국학원과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하여 초중고에 강사를 파견하고, 교사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교육계에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단월드의 ‘뇌파진동’은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도리도리 동작을 반복하는 것인데, 머리를 흔든다고 실제로 뇌파가 바뀔 리 없다. 만약 바뀐다면 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셈이다. 우리 몸은 뇌를 충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두개골로 감쌀 뿐만 아니라 뇌척수액이라는 액체 속에 떠 있게 진화했다. 머리를 많이 얻어맞은 권투선수가 파킨슨병에 잘 걸리는 것은 그만큼 우리 뇌가 충격에 취약하다는 반증이다. 도리도리를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만트라(진언)를 중얼거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을 잠재우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뇌에 도움 될 동작은 아니다.

 

단월드 뇌교육의 비과학적이고 반교육적 행태는 2002년 설립한 한국뇌과학연구원 이승헌 원장이 2003년 ‘초감각 인지능력 시연회’를 열어 뇌호흡 수련으로 투시력을 기를 수 있다고 주장한 데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3 2003년 제임스 랜디의 방한을 계기로 SBS에서 연 <도전, 100만 달러 초능력자를 찾아라>4 프로그램에서 투시 능력 실험 실패 이후 뇌호흡이란 용어는 뇌교육, 뇌과학이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좀더 과학적인 외피를 두른 셈이다. 사기 행각이 드러났음에도 단월드는 청소년수련회 등에서 눈가리개를 하고 카드 알아맞히기 연습을 시키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겨루는 대회까지 열고 있다.5 단월드를 다니는 부모의 자녀들이 주 대상으로, 아이들의 지성과 부모의 돈을 빼먹는 전형적인 사기 행각이다.

 

그럼에도 단월드의 유사 뇌과학, 유사역사학이 공교육에 접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나라사랑교육이란 이름으로 유사 역사학 주장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창의성을 개발한다면서 뇌파진동을 보급한다. 교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금도 단월드와 연계된 뇌교육 연수 관련 공문이 교육청 이름으로 각급 학교에 내려오고 있다. 유사 과학이 교육현장에 파고드는 것을 경계해야 할 교육당국이 오히려 이를 지원하는 셈이다. 2016년 제주에서 열린 10회 국제브레인HSP올림피아드 대회는 제주교육청 후원으로 진행되었으며, 2019년 한국뇌과학연구원이 개최한 ‘브레인 명상 콘퍼런스’를 과학기술부가 후원하는 것에 대해 과학계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행사 하루 전에 후원 명칭에서 빠지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유사 과학을 퍼트리는 단체에 공공 예산이 쓰인다는 사실은 교육 시스템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6

 

단월드는 국학원을 통해 벤자민인성영재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진로를 찾는 1년 과정의 벤자민 갭이어 과정도 열고 있다. 교육계의 최신 트렌드를 좇아가고 있는 셈이다. 단월드에 빠진 부모의 설득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교육과정을 보면 단월드 지도자를 양성하려는 목적에 충실한 학교임을 알 수 있다. HSP 12단 과정이라면서 물구나무 서서 걷기를 연습시키거나 뇌파진동이라며 머리를 흔들고, 투시력을 기른다며 안대 끼고 카드 보는 연습을 시키는 등 아이들의 지성을 좀먹는 짓을 영재교육이라며 하고 있다.

 

단월드, 마음수련 등 많은 수련단체들의 공통점은 창시자를 우러러 모신다는 점이다. 신격화에 가깝게 숭배하기도 한다.7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은 수련생들로 하여금 다스림 받기 쉬운 상태가 되게 만든다. 단체가 설립되고 어느 정도 조직화가 이루어지면 조직의 생리상 창시자를 높이는 것이 곧 조직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 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된다. 창시자를 절대화하면서 그 절대 권력을 대신 행사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추종자들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권력의 피라미드 구조가 만들어진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고 스승의 인가를 통해서만 승인되는 점도 수련단체가 사기를 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된다. 영적 계급 체계에 의해 스승의 권력이 절대화되면서 스승은 교조화의 길로 접어든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원리는 도판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조직화가 진행되면서 조직이 점점 외부와 단절된 폐쇄성을 띠게 되는 것도 공통된 점이다. 자신이 믿는 가치를 위해 재산과 가족, 친구 등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세상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게 되면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더욱 힘들어진다.8 자신이 헌신한 단체를 등지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과 비슷하다고 한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데는 상당한 심리적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쪽으로 심리기제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많은 수련단체들이 사실상 사이비 종교단체처럼 운영되고 있음에도 내부인들은 그 사실을 부정하며 한사코 명상단체 또는 수련단체로 규정하려 애쓰는 것도 공통된 현상이다.

 

 

민족주의에 편승한 유사 역사학

 

한국 사회에서 80년대는 민주화운동과 함께 민족주의 열풍이 몰아치던 시기다. 독재 정권이 의도적으로 ‘국풍’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운동권에서 일고 있던 민족주의가 뉴에이지 바람과 시너지 작용을 일으키면서 급격히 세를 확대했다. 택견, 국선도 같은 전통 수련법이 보급되고 증산도, 대순진리회 같은 신흥종교가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단학선원, 마음수련 같은 신생 수련단체들이 세를 확대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85년 소설 『단』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듬해 『환단고기』의 한글 번역본 『한단고기』가 출간되면서 ‘위대한 한민족 신화’가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9

 

『환단고기』는 우리나라가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1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삼한은 만주, 중국, 한반도에 걸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민족주의 계열의 종교나 단체에 쉽게 접목된다. 전통적 선도사상은 태생적으로 민족주의와 결합하기 쉬운 사상이다. 증산도 계열의 단체인 사단법인 ‘대한사랑’에서는 각급 학교를 찾아가 ‘참역사’를 강의하는데, 그 교재가 증산도 역주본 『환단고기』다.10 단월드에서도 일찍이 국학원을 설립하여 학교에 단군상 건립 운동을 벌이고, 학생들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유사 역사학에 근거한 나라사랑교육을 해오고 있다.11

 

『환단고기』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학계에서 논란이 일어나면서 위서로 규정했지만, 아직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저자 이유립은 1911년 계연수라는 사람이 전해 내려오던 문헌 5권을 하나로 묶어 출간한 것을 자신이 재출간한다고 주장했지만, 학계는 이유립 자신이 저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설령 계연수가 편집한 책이 맞다 하더라도 문헌의 사료적 가치가 거의 없어 유사 역사서로 분류된다. 역사학자 이이화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당시 『환단고기』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석기시대에 돌멩이 들고 싸우던 시절인데 어떻게 제국을 건설해요? 역사발전에서 그 시기는 부족국가 시대에요.”12

 

하지만 민족주의에 기초한 유사 역사학은 교육계뿐만 아니라 학계와 정관계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유사 역사학이 개입해 고대사를 늘리고 근현대사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편이 추진되다가 무산되었다. 유사 역사학은 ‘제도권 역사학 곧 식민사관’이라는 도식을 등에 업고 스스로를 재야 사학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강단 사학의 대척점에 자신을 위치시킨다.13 이는 마치 민간요법 수준의 대체의학이 현대의학의 대척점에 있는 듯이 자신을 포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제도권 역사학계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데 민족주의가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고대사를 자민족 중심으로 서술하는 유사 역사학은 사실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14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은 유사 역사학에 기초하고 있는 뿌리 깊은 정서다. 19세기 말 유럽 열강의 지배에 놓이게 된 터키에서 일어난 투라니즘 또한 터키가 인류 문명의 발원지이며 아시아 전체를 지배했다고 주장한다.15『환단고기』의 터키 버전인 셈이다(사실은 『환단고기』가 투라니즘의 한민족 버전이다). 투라니즘은 일본과 중국으로 전파되어 오늘날 일본의 교과서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변국의 이런 흐름이 우리의 민족 정서를 건드리면서 유사 역사학이 세를 넓히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상 각국의 유사 역사학이 서로를 부양하고 있는 셈이다.16

 

우리나라 유사 역사학의 뿌리도 꽤 깊다.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기 이전부터 한민족의 고대사를 부풀리는 유사 역사학이 존재했다. 17 일제 부역자였던 문정창은 해방 후 역사학자로 변신해 ‘한민족의 위대한 고대사’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은 문정창과 함께 국사찾기협의회라는 유사 역사학 단체를 결성해 1978년에 국사 교과서 정정을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벌이기도 했다.18 역사학계에서는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유사 역사학이 실은 일제의 식민사관에서 주어만 바꾸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민족적 자긍심을 북돋고자 우리 역사가 반도의 역사가 아닌 대륙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반도의 역사는 열등하다는 식민주의 사관의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역사학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사 역사학은 80년대 이후 민족주의 바람을 타고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월드컵 응원단 붉은 악마의 엠블럼으로 치우천왕이 등장하고, 소설과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도 유사 역사학의 내용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신흥종교인 증산도에서는 『환단고기』를 경전처럼 떠받든다. 유사 역사학이 표면적으로는 반식민사학적 기조를 띠고 있어 보수 우파뿐 아니라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실정이다.19 2017년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도종환 전 장관이 유사 역사학에 경도되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유사 과학은 사실상 과학이라 할 수 없을 만치 논리적인 허점이 많다. 과학과 유사한 것이 아니라 비과학적이거나 반과학적이기까지 하다. 과학계가 유사 과학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지 않는 까닭은 사실상 논박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구 나이가 6천 년이고 인간과 공룡이 같이 살았다는 창조과학의 주장을 물리학자나 지구과학자, 진화생물학자가 진지하게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사 역사학의 경우 역사학의 특성상 과학적 검증이 쉽지 않고 민족주의 정서와 깊이 연계되어 일반인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다 보니 더 문제가 되는 면이 있다.

 

위기에 처한 민족이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꾸며낸 이야기를 빌어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역사적으로 되풀이되어온 일이다. 20세기 초 유사 역사학은 세계적 현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선에서 멈추지 않고 폭주하게 되면 쇼비니즘으로 치닫게 된다. 20세기 전반기에 독일 제3제국과 대일본제국이 걸었던 길이다. 폭주의 가능성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오늘날 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는 아마도 중국일 것이다. 백여 년 전에 당한 굴욕의 역사를 씻어내려는 몸부림이 폭주로 이어질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동북공정 같은 중국식 유사 역사학에 『환단고기』 류의 유사 역사학으로 대처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 본 글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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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한국창조과학회는 1981년 결성되어 지금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1년 설립 30주년 기념으로 『30가지 테마로 본 창조과학』이란 책을 출판했는데, 도서관 십진분류법(KDC)에서는 자연과학(400)이 아닌 기독교신학(231)으로 분류되어 있다.
  2.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다’(출처: 성대신문 www.skkuw.com)
  3. 2002년 단월드가 설립한 한국뇌과학연구원은 뇌연구촉진법에 따라 2011년에 설립된 정부 출연 기관인 ‘한국뇌연구원’과 유사한 명칭으로 인해 혼동을 일으키곤 한다.
  4. 눈가리개를 한 채 고개를 들면 가리개 아래 틈새로 탁자 위 카드를 볼 수 있다. 카드를 얼굴 정면에 배치하자 거의 알아맞히지 못했다. 초능력 사기꾼 헌터로 알려진 제임스 랜디는 일찍이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자신에게 초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찾았지만 50년 동안 한 사람도 상금을 타지 못했다.
  5. 국제브레인HSP올림피아드는 사실상 초감각적 지각 경진대회로, 단월드 자체 행사임에도 국제행사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원래 HSP는 뉴에이지에서 즐겨 쓰던 ESP(Extra Sensory Perception)에서 발전한 개념인 Hightened Sensory Perception의 약자로 통용되는데, 단월드에서는 이를 Health, Smile, Peace 약자로 쓰면서 HSP가 붙은 사업체를 여럿 운영하고 있다.
  6. 뉴스타파가 보도한 2018년 자료에 의하면 행정안전부는 2009년부터 총 3억6200만 원의 정부보조금을 단월드 계열인 국학원에 지원했다. 보조금은 대부분 나라사랑교육 강사비로 지출되었는데, 『환단고기』에 근거한 유사 역사학을 강의할 뿐만 아니라 뇌교육을 홍보하는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7. ‘마음수련’은 창시자 우명과 그의 부인, 아들까지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8. 단월드에 들어와 재산을 잃고 인간관계까지 단절된 이들이 늘어나면서 단월드피해자가족연대가 만들어지고, 안티사이비(antisybi.org) 같은 단체가 단월드의 실체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지만 단월드의 홍보력이 앞서는 실정이다.
  9. 환단고기(桓檀古記)는 ‘환인, 환웅, 단군에 대한 오래된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유립이 1979년에 처음 펴낸 한문본을 일본인 유사 역사학자 가지마 노보루(鹿島昇)가 일역하고, 이를 임승국이 재번역해 펴낸 것이 『한단고기』다. 임승국은 “환인은 우리말 하느님을 한문으로 음차한 것이고, 환은 곧 하늘의 준말인 한”이라는데,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10. 2011년에 증산도 교주 안경전이 『환단고기』 내용을 교리화한 이래, 증산도에서는 『환단고기』를 경전처럼 받들면서 적극 홍보하고 있다.
  11. 보수 기독교계 단체에서 단군상을 훼손하면서 기독교계 쪽으로 사회적 비난이 돌아갔지만, 국수주의 역사학자나 근본주의 기독교인이나 편협한 세계관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12. 이이화, ‘역사의 판단에 맡겨? 역사가 쓰레기통이냐?’, 한겨레, 2015.11.21.
  13. 대표적인 인물이 이덕일이다. 하지만 재야 역사학자가 모두 유사 역사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이이화는 유사 역사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14. 한스 울리히 베르너, 이용일 옮김, 『허구의 민족주의』, 푸른역사, 2007.
  15. 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에 대항하여 고대의 우랄 알타이 어족을 투란족으로 묶으려는 범투란족주의로, 20세기 초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대동아공영권도 투라니즘의 일본판이라고 할 수 있다.
  16. 1980년대 국풍 바람이 불면서 역사탐방 하는 이들이 만주 지역을 답사하며 태극기를 꽂고 우리 땅이라 선언하곤 한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17. 이문영은 『유사 역사학 비판』에서 ‘최동-문정창-안호상-이유립-임승국’으로 이어지는 유사 역사학자들의 계보를 추적하고 있다.
  18. 안호상은 나치의 유겐트를 본따 학도호국단을 만든 인물로 한국고대사학회 회장을 지냈고 대종교 신도이기도 했다.
  19. 기경량, ‘사이비 역사학과 역사 파시즘’, 역사비평, 2016년 2월.
교육매체 계간《민들레》발행인 현병호

교육 매체 계간 《민들레》 발행인. 저서로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이 있고, 《대안교육 20년을 말하다》, 《재난의 시대,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다》 외 여러 권을 함께 썼다.  옮긴 책으로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 《소통하는 신체》(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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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1. 현병호 수정 삭제

    유명인사나 정관계 인사들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단월드의 주요 홍보 전략이다. 초창기 단학선원 시절 SK그룹(전 선경그룹) 고 최종현 회장도 수련에 열심이었으며, 전 인천시장 유정복은 시청에 단학교실을 열고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12년 11월에 열린 이승헌의 『세도나 스토리』 출판기념회에서 유정복이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의 축사를 대독하고 함께 단학 수련을 한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정치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승헌은 반기문 유엔총장 시절 그와의 친분을 이용해 유엔기구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유네스코 주관 올림피아드에 브레인HSP올림피아드를 끼워넣도록 힘을 썼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엔 강당을 빌려 행사를 여는 등 유엔의 권위를 적극 이용하는 것도 단월드의 홍보 전략 중 하나다.
    시인 김지하는 일찍이 단학에 심취하여 이승헌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했다가 내부 비리를 접하고 탈퇴한 뒤 이를 고발하는 공개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다. 1999년 당시 이미 이승헌 총재의 성 추문과 각종 비리 문제가 떠올랐지만 어찌된 일인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리고 십 년 뒤 미국 언론에서 단월드의 성폭력과 노동착취 문제가 보도되기에 이르고, 이듬해 2010년 《신동아》의 심층 취재에 이어 SBS 에 각종 의혹들이 보도되면서 단월드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하지만 뇌교육과 관련해서는 법적으로 문제 삼기에 애매해서인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으며, 교육계 역시 이를 문제 삼은 적이 없다. 단월드는 한국뇌과학연구원을 통해 국제브레인HSP올림피아드를 주관하면서 오늘날에도 유사 뇌과학을 퍼트리고 있다.

  2. 김태균 수정 삭제

    이번 현병호 선생님의 글은 단월드 및 여러 단체와 인사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기에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필자께서는 사실 기반의 글을 쓰고자 노력하셨기에 이를 알려드리며, 그럼에도 잘못된 내용이 있거나 비판하실 내용이 있으시다면 댓글을 통해 공유 부탁드립니다 ^^

  3. 륜준호 수정 삭제

    끔찍하네요.. 잘 읽고.. 중간부턴 길어서 못 읽었지만..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전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제 출처는 아니네요.. 아.. (어렵다 어려워)…어렵네요

  4. 진실을 알리려는자 수정 삭제

    단월드를 다니고 있으며 기적적인 효과를 얻고 있는 사람인데요.
    뇌파진동 수련도 수련법도 잘못된것이 없어요. 진짜로 효과를 경험해서 말씀드리는데요.
    현병호씨는 마치 굉장히 객관적인 정보로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저같이 효과본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불쾌하고 편협하네요.
    단월드가 뭐하는 단체인지 궁금하지도 않지만, 효과까지 없다고 이야기하는건 거짓말 같아서요.
    똑똑한척 하지말고 좀더 정직해지셨으면 좋겠네요.
    과학 어쩌구 저쩌구 하시는것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이야기하시는 것 같구요.
    양자과학이론이 완전히 가짜는 아닌것같은데 뭐에 많이 삐뚤어지신 분인것 같네요.

  5. 유연철 수정 삭제

    아주 수준 높은 글입니다. 뇌교육, 명상 등을 통하여 효과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건강에 절박한 사람들의 취약점을 이용하여 더 깊은 수련으로 유도하여 금전적인 면을 착취하는 구조와 기업이 확장되며 설립자를 신격화하는 기업문화, 그리고 위계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성추문 등은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속성을 아주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1. 진실을 알리려는자2 수정 삭제

      저도 100% 공감합니다.
      금전 착취뿐만 아니라 2000년대 초반 수많은 순수한 젊은 영혼들이 세뇌당하여 출가 아닌 출가를 하고 지도자가 되었지요
      그 젊은 청춘들이 이제 40대~50대이지요. 천수백 내지 기천만원에 달하는 매달 비전(매출) 달성의 스트레스로 수련은 온데간데 없고 몸은 병들어가고 있지만, 가족들이나 친구들도 교류가 끊어진지 오래되었고, 나이 들어 사회로 되돌아갈 자신이 없어 어쩌지도 못하고 아직도 어느 센타에 대표원장, 원장, 부원장이라는영적 허영심으로 자위하는 분들이 아직도 전국에 많이 남아있죠.
      안티까운 분들입니다
      어쩌지도 못하는 지도자들이 아직도 전국에 많이 있지요

  6. ㅁㄴㅇ 수정 삭제

    최근 엔터테이먼트 하이브라는곳에서 단월드 이슈가 심해서 찾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좋은글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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