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연계 모의선거의 전면제도화, 서둘러야 한다
선거연령이 19세 이상으로 정해져 있는 탓에 우리나라에선 고3 학생도 선거권을 갖지 못한다. 조만간 선거연령이 18세로 낮춰져도 고3 학생의 극히 일부만이 선거권을 갖게 된다. 대선에선 3월초, 총선에선 4월초, 지방선거에선 6월초 이전에 출생한 고3 학생만 선거연령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선거연령제한 때문에 직접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모의선거를 통해 간접적으로 선거를 체험하는 수밖에 없다.
모의선거 중에서도 수업연계 모의선거가 교육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모의선거를 통해 실제 후보자의 공약을 비교분석하고 투표해본 학생들은 재밌고 유익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학교교육과정과 연계돼 실제 후보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학내모의선거는 교육적 효과가 높다. 수업시간에 민주주의 정치 및 선거제도를 학습하고 실제후보자들의 공약을 비교분석하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 캐나다, 독일, 핀란드, 스웨덴 등 많은 나라에서 실제 선거 시기에 수업연계 학내모의선거를 일찍부터 실시해온 배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청소년 대상 모의선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대선 때도 YMCA가 중심이 돼 5만 명도 넘는 청소년들이 청소년모의대선을 경험했다. 그러나 학교 밖 모의선거였다. 학교교육과정과 연계돼 일정한 사전교육을 거친 학내모의선거는 사실상 미답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지난 6월 1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가 기획, 지원한 교육과정 연계 학내모의선거, ‘모의선거로 배우는 민주주의’ 프로젝트가 주목을 받은 이유다.
‘모의선거로 배우는 민주주의’ 프로젝트는 4개 지역(서울, 경기, 광주, 충북) 16개 중고교에서 진행됐다. 시도지사와 교육감 모의선거를 진행한 학교가 12개교, 교육감 모의선거만 진행한 학교가 4개교였다. 모의선거에 참여한 학생 수는 총 3,238명. 학교 상황에 따라 1,2,3학년 전교생이 참여하거나 1~2개 학년이 참여했다. 원칙적으로 지방자치, 선거제도, 공약분석 등을 내용으로 3차시 사전교육을 진행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모의선거를 실시했다.
미국, 독일 등 수업 연계 학내모의선거 선진국에서는 선거사무를 관장하는 정부부처나 독립기관이 교육청과 적극적으로 협력체제를 구축해서 학교모의선거를 지원한다. 실제 선거에서 쓰이는 투표용지와 특별히 제작된 맞춤형 교육자료를 학교에 제공하는 건 기본이다. 일반적으로 학생모의선거는 보통 실제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실시되며 개표 결과도 학교별, 지역별로 집계해서 당일로 공표한다. 모의선거 연륜이 쌓이면서 모의선거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가 늘 똑같은 학교도 나오게 마련이다. 이런 족집게 학교들은 언론의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우리 선관위는 아직 학생 모의선거를 민주시민교육, 특히 유권자교육과 선거교육의 꽃으로 인식해서 적극적으로 지원하진 않는다. 징검다리교육공동체는 서울선관위에 세 개의 공식 질의를 해서 공식 답변을 받아 놨다. 이래야만 현장교사들과 관리자들이 괜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징검다리교육공동체의 지원행위가 적법한지 물었다. “선거운동 또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내용이 없는 이상” 교안과 진행비용을 제공하고 후보들의 홍보자료를 공평하게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등의 교육지원 행위는 적법하다는 게 선관위의 답변이었다. 둘째, 학교의 사전교육 및 모의투표 실시가 적법한지 물었다. 이에 대해서는 “모의투표의 사전교육 및 실시 과정에서 특정 후보자에게 유·불리한 행위가 없도록 유의하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셋째, 모의선거 개표 결과를 언제 공표할지 물었다. 선관위는 학생모의선거는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에 해당”하므로 그 결과를 실제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 후에 공표하면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학생모의선거를 여론조사의 하나로 봐서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 중에는 결과 발표를 못 하게 막는 선관위의 해석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선거권도 없는 학생들의 모의투표 결과가 무슨 수로 성인 유권자들에게 부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과문한 탓인지 학생모의선거를 민주시민교육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제도화한 나라들에서 모의선거 결과의 사전공표를 금지한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모의선거로 배우는 민주주의’ 프로젝트로 지난 6월에 실시된 지역별 모의선거 개표 결과는 특기할만한 점이 많지 않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모의선거와 실제 선거의 당선인이 일치했다. 실제 선거 결과와 비교할 때 모의선거 결과에서 눈에 띄는 점은 교육감의 경우 서울에서 보수후보로 분류된 박선영 후보 지지율이 실제 선거 득표율보다 현저히 낮았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경쟁교육 강화를 조금도 반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도지사의 경우 자유한국당(서울 김문수, 경기 남경필, 청주 황영호) 지지율이 실제보다 현저히 낮았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진보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서울에선 신지예(녹색당)과 김종민(정의당) 후보의 모의선거 득표율이 실제 득표율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다.
이번 ‘모의선거로 배우는 민주주의’ 프로젝트에선 5월 28일 ~ 6월 4일에 수업시간을 활용한 사전교육이 이루어졌다. 대부분 3시간이 투입됐다. 시도지사와 교육감 투표는 6월 8일 ~ 6월 12일 사이에 이루어졌다. 참가 학교는 원하는 학생들로 모의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해서 투개표과정 진행과 당선증 제작 등 선거사무를 맡겼다. 징검다리는 참가 학교에 3차시 교안과 함께 투표용지와 투표소, 투표함을 제공했다. 참여교사들은 예시 교안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본인들의 수업스타일에 맞춰서 다시 만들어냈다.
학생들은 재밌어 했다. 관악중학교 임진희 학생은 “굉장히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모의투표를 하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교육감만큼은 청소년들도 뽑을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교육감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은 학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의 문제점, 개선해야 하는 방법 등을 가장 잘 아는 것도 학생이기 때문에 더 좋은 교육감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감을 썼다.
교사들도 보람을 느꼈다. 대표적인 목소리를 들어보자. “이렇게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회과 선생님들과 함께 무엇을 해보는 경험은 교직 생활 중 처음이었다. 같은 학교 선생님들과 동료성을 발휘하고, 협업하는 과정이 무척 보람되었고, 함께여서 더욱 용기가 났다.” 어떤 교사는 학생들에게 후보사진만 보고 선택하라고 한 후 후보별 공약을 비교하고 다시 선택하게 했다. 양자의 차이를 확인한 학생들은 평생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 투표해야할 이유를 갖게 됐다.
“지방선거에 대해서 피상적인 뉴스거리로 인식하던 학생들이, 실제 후보자들의 공약을 분석해보면서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정치의 역할에 대해 체감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무척 의미있었다. 청소년들이 정치적 주제를 토론하고 탐구하는 것을 불온시하고, 두려워하던, 실체 없는 공포를 어느 정도 극복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막상 모의선거를 무사히 치르고 투표 결과까지 공표되자 이번 수업은 특별할 것도 없고, 이상한 것도 아닌, 학생들이 당연히 해보아야 하는 자연스러운 활동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미 학생들은 무엇이든 토론하고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학부모들도 만족도가 높았다. 학교에서 공약비교를 해본 학생들이 부모들한테 반드시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하게 비교검토하고 투표하시라고 권한 경우가 드물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특하게 생각한 학부모들이 교장실로 전화해서 모의선거 실시를 칭찬하는 바람에 교장선생님이 담당교사를 일부러 불러서 격려한 사례도 있었다.
요컨대, 징검다리교육공동체의 ‘모의선거로 배우는 민주주의’ 프로젝트는 교육효과가 높아서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두루 환영받았다. 2020년 4월 총선부터는 시도교육감과 시도선관위, 민주시민교육단체들이 협력하고 앞장서서 모든 중고교에서 교육과정 연계 모의선거를 실시할 수 있도록 확실한 지원체계를 갖추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학년별로 다양한 맞춤형 선거교육 자료를 만들어내야 한다. 20년 4월 총선이 1년 반 밖에 남아있지 않으므로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교육과정 연계 학생모의선거의 전면제도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학교민주시민교육의 기본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