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방안’에 대한 논평] 현 정권은 ‘교육’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1. 여는 말
예고했던 대로 교육부가 오늘(8월 17일)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였다. 수능 정시 비율을 30% 이상 확대하는 것과 주요 입시 과목(국어, 수학, 탐구)의 상대평가 유지, 고교 학점제 본격 도입 연기, 학종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 등이 그 골자다. 발표 내용을 뜯어볼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분노가 치솟는다. 작년부터 시작된 사회적 논란과 올해 들어 요란스럽게 진행된 공론화의 과정에서 엄청난 유무형의 국민적 에너지를 소진했건만, 그 결론은 너무나 반교육적이고 퇴행적이다. 현 정권은 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들을 이렇게 빨리 헌신짝처럼 버리고도 국민의 지지를 기대하는가? 교육부 장관은 스스로 수차례 공언한 약속들을 뒤집은 채 무슨 낯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
2. ‘개편 방안’의 기만성과 반교육적 성격
교육부가 발표한 ‘개편 방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을 기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역행하고 있다. 그 하나하나를 살펴보자.
첫째, 수능 정시 전형이 30% 이상 되도록 각 대학에 권고하겠다는 방안은 우리나라의 대입정책을 최소 10년 이상 과거로 되돌리겠다는 발상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 중에서 정부가 대학더러 어떤 전형으로 몇 % 이상 선발하라고 강요하는 곳이 어디 있는가? 발표문에서 ‘권고’라고 했지만 이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 사업’에서 아예 지원 자격을 주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사실상 강요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교육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돈에 의한 대학 통제’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있다.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 사업’이 무엇인가? 이것은 이전 정부들(이명박, 박근혜)이 대학들로 하여금 입학사정관 제도를 확대하도록 강요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입학사정관 제도가 고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적극 수용하는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입학사정관 제도를 줄이는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겠다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넌센스이자 알량한 돈의 힘으로 대학을 쥐락펴락하는 교육부의 민낯이다.
수능 정시 확대는 고교 교육현장에 어떤 영향을 가지고 올까? 교육부나 국가교육회의는 다수의 국민이 수능 정시 확대를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고교 교육현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은 수능 정시 확대가 고교 교실을 황폐화시킬 것이라고 확언한다. 수능 전형을 선택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수업(내신)을 포기하고 학원에 의존하거나 EBS 문제 풀이에 전념할 것이기 때문이다(이번 개편 방안에서는 70%로 되어 있는 EBS-수능 연계율을 고작 50%로 낮춘다고 하였다).
이것은 교육부가 한 입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겠다고 하면서 같은 입으로 과거 회귀형 교육을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능 주요 과목의 상대평가 유지와 선다형 출제 방식 고수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일본이 여러 해 전부터 서둘러 국가 수준의 교육개혁을 추진하면서 수능 문제를 논술식으로 바꾸어가고 있는데, 이번 개편 방안은 그나마 있는 일부 논술전형마저도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완전 폐지 방침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나 현 정권의 안중에는 아예 미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수능 평가 방식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상대-절대평가 논란을 상대평가 유지로 결론지은 것은 여러 차례 국민에게 공언한 절대평가 도입 약속을 뒤집은 것일 뿐 아니라 학생들 사이의 치열한 입시경쟁을 유지 강화하는 조치이다. 교육부가 한문과 제2외국어 과목에 절대평가를 ‘확대’한다고 생색을 냈지만, 대입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것은 대국민 기만술에 불과하다. 상대평가 유지는 대입 전형 정책을 ‘교육 정상화’가 아니라 단지 ‘선발’의 관점에서 접근했음을 보여주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반교육적 조치’임을 말해준다. 그동안 교육부가 2015 교육과정과 관련하여 수없이 강조한 ‘학습을 위한 평가’의 정신, 즉 평가의 교육적 측면을 고려하겠다는 생각은 어디로 갔는가? 왜 여기서 이 말 하고 저기서 저 말을 하여 국민적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가? 우리 아이들이나 교사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가?
그러면서도 발표문에는 뻔뻔스럽게도 ‘경쟁·입시 중심 고교 교육을 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바꾼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고 거짓이 참으로 바뀌지 않는다. 객관식 상대평가 유지와 이것을 기반으로 하는 수능 정시 확대가 입시 경쟁을 강화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현 정권이나 교육부 관계자들이 이런 기만적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은 한 마디로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며, 어느 고위 관료 표현처럼 ‘개, 돼지’로 여긴다는 증표다.
셋째, 고교 학점제 도입 연기 역시 엄청난 대국민 약속 위반이며 교육 정상화를 바라는 다수 국민의 기대에 대한 배반이다. 물론 발표문에는 ‘연기’가 아니라 2022년 ‘부분 도입’, 2025년부터 본격 시행으로 표현되어 있고, 이러한 표현이 어느 정도 타당한 일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본격적인 고교 학점제 도입을 위해서는 2015 교육과정의 개정이 불가피하고 이를 위해서는 적지 않은 준비 과정과 이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현 정권의 집권 초기부터 고교 학점제 도입을 확언해 왔으면서도 정작 1년 반이 지나도록 교육과정 개정 등 그것을 위한 준비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대입제도 개편과 맞물려 사실상 고교 학점제 도입이 물 건너갈 처지가 되면서 궁여지책으로 ‘부분 도입’을 들고 나온 것이다.
물론 발표문처럼 ‘부분 도입’ 후 준비를 갖추어 ‘전면 도입’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현 정권의 임기가 지난 다음의 일이다. 이것은 현 정권의 임기 내에서는 책임질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수능 정시 확대를 통한 치열한 입시 경쟁이 되살아나는 분위기에서 이것을 완전히 뒤집는 개혁은 기대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현 정권은 개혁과 변화의 길을 가로막은 채 입술로만 앞으로 개혁을 하겠다고 하는 셈이다. 이것은 국민을 두 번 우롱하는 처사다.
마지막으로, 학종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말은 정성적 평가의 비중을 대폭 낮춤으로써 학교교육의 다양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억제하겠다는 방침으로 이해된다. 물론 그동안 무리하게 학종의 비중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물의가 빚어지고 이것이 때로는 불공정한 게임으로 비친 사례가 적지 않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교육부가 명심해야 할 일은 “가치 있는 것은 평가할 수 없다(오스카 와일드)”란 말이다. 수능처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에 평가를 집중하면 가치 있는 교육은 포기한 채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쓸모없게 될 것만 가르치게 된다. 이것은 망국적 입시개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학종은 그동안 대세였던 수능 위주의 점수 경쟁보다는 학교교육의 다양성을 제고하고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인재들을 선발할 수 있는 여지를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학종 전형이 노정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은 ‘개선’의 대상이지 축소, 폐지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개편 방안’에서는 사실상 학종의 ‘축소’ 방침이 노골화되어 있다. ‘수능 정시 30% 이상 권고’가 그 선봉이며, ‘학종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가 그 마무리인 셈이다. 후자의 경우, 학생들이 고교 과정에서 할 수 있는 학습과 체험의 다양성을 현저하게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에 대한 낮은 신뢰와 일부 학부모들의 과도한 사교육 의존이 학종 축소 주장의 근거가 되고는 있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전향적으로 풀어갈 문제이지 뒷걸음 쳐서 회피할 문제가 아니다.
3.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
한 대입제도 전문가는 이번 개편 방안을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요약하였다. “입시 제도는 더 말할 나위 없이 복잡해졌고, 결과적으로 사교육자들만 신나게 되었다.” 현 정권의 입시제도 개편 제1원리는 ‘간소화’였다. 그러나 우격다짐으로 대학들이 선호할 만한 방식의 수능 정시(진로선택 과목 포함 등) 확대를 추진하다보니 선택이 늘어났고, 이것이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선택의 경우 수를 무한정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학교와 학생들의 판단이 곤란할 정도의 복잡성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사교육 의존도를 키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정책 입안의 주역들은 전형 간소화와 학생 선택의 확대가 정면충돌한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말인가?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전공 연계 없는 수능과목 선택 확대가 대학교육의 황폐화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물리나 화학을 전혀 공부하지 않고도 물리학과에 갈 수 있는 문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수능 30% 이상이라는 개편 방안의 핵심이 적용될 수 있는 대학이 전국 통틀어 35개이고 그나마 입학 경쟁이 치열한 대학은 4개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수능 30%가 안 되어도 학생부 교과 전형이 30% 이상이면 상관없다고 했기 때문에 대다수의 대학은 이번 조치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 네 대학을 통제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인력과 돈, 그리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얻은 것은 고작 학생들과 국민의 심리적 압박감과 이로 인한 사교육 확대 마케팅이었다는 말인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히 호소한다. 대통령은 이런 국력 낭비적이고 반교육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정책 낭비의 주역들에게 준엄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어불성설의 정책을 누가 주도하고, 왜 만들었는가를 세세하게 밝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조치해야 한다. 아울러 교육정책은 현상적인 국민 여론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가 미래로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국민을 설득시켜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미래지향적인 교육철학을 정립하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것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한다면 그야말로 플라톤이 말한 ‘중우정치’(衆愚政治)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현 정권과 여당이 이 망국의 길로 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현재 건신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원장, 한울고등학교 교장, 이우학교 초대 이사장, 참여정부 교육혁신위원회 상임위원,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1세기연구소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그 외에 '사회정책 제3의 길(2008), 대안교육 이해하기(2007), 현대사회와 교육의 이해(2004), 고등학교 교육학(2002)'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