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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논의에 붙이는 소고

#668 박제원, 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2021.08.04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새로운 교육과정인 2022 개정 교육과정이 논의되고 있다. 교사단체 등의 교육계나 정당 등 여기저기서 현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의견이 봇물 터지듯이 나오고 있고, 새로운 교육과정이 지향해야 하는 여러 대안을 제시한다. 교육과정에 대한 식견이 뛰어나고 합리적인 설계능력을 갖춘 탁월한 교육학자나 교사들이 많지만, 지난 2015 교육과정을 현장에서 경험한 교사로서 새 교육과정이 발전적으로 나아가도록 몇 가지 의견을 첨언하고자 한다.

 

1. 미래 인재상

 

1) ‘미래 인재상’보다 ‘교육적 인간상’으로 바꿨으면 한다

 

교육의 본질이나 목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초·중·고 교육이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적 노동능력을 갖춘 인간을 양성하는 방향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일 또한 국가가 우리 학생들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데 효과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교육적 책무라고 본다. 그러므로 교육적 비전은 교육과정 개정 때마다 그 내용이 바꾸어지거나 특수한 측면보다는 모든 학생들의 삶을 두루 포함할 수 있도록 보편적이며 추구하는 가치가 지속가능한 목표여야 한다. 즉 우리 학생들이 자기 삶을 주도할 뿐더러 타자를 배려하고 협력하는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여 사회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도록 표현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2022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교육 비전의 용어를 ‘미래 인재상’에서 ‘교육적 인간상’으로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2022 개정 과정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도 비슷하다. 다수 국민은 배려와 책임감을 1,2순위로 선택하였다. 이는 국민이 교육과정을 기능적 인재를 기르는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고 응답한 것이며, 원래 배려나 책임감은 보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인간의 기본능력에 속한다. 그럼에도 2022 교육과정에서도 현행처럼 여전히 인재상이라고 하게 되면 교육과정 개정이 근본적으로 더 나은 교육을 하겠다는 취지에서 이루어지는 국가의 기능인데 여기에 위배되는 것이며, 오히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역점을 두어 추진했던 교육활동이 인재를 기르지 않았다는 반증(反證)으로밖에 볼 수 없다.

 

교육 비전에 ‘미래’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미래는 예측할 수 있지만 계획된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불확실하며 결과 또한 의도한 것처럼 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교육당국이 미래라는 불확실한 결과를 확실하다고 보고 의도하고 정해진 방향으로만 정책을 추진할 경우에 예견하지 못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나아가 교육당사자이든 외부자이든 미래라는 사회변동에만 주목하여 교육을 기능적이고 가변적인 현상으로 오해하게 함으로써 추구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던 보편적 교육 가치를 소홀하게 할 위험이 있다. 예컨대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고등 사고기술 및 태도 중심으로 역량을 중시하는 미래 교육을 제시하고 수년에 걸쳐 추진하였지만 (정책당국의 의도는 아니라고 하여도) 지식수준은 전체적으로 저하되었고, 지식격차는 커졌으며 역량 교육이 실효를 거두었다는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는 거의 부재하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미래라는 용어 탓을 부정할 수 없다. 즉 교육과정 비전에 ‘미래’라는 용어를 명시하고, 교육당국은 이 용어를 자주 사용하여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사실적 지식 및 개념적 지식 등 지식 교육을 과거형 교육으로, 역량 교육을 미래형 교육으로 착각하도록 한 탓에 문해력 등 기초 및 기본학력의 저하라는 교육문제를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교육활동이 인간과 주변 세계와 관련된 ‘사회적인 배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비전에서 미래라는 용어를 빼고, 인재상도 교육을 통해 예상되거나 기대되는 인간의 특징인 ‘교육적 인간상’으로 표기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요컨대 미래라는 표현은 교육당사자이든 외부자이든 교육을 시대에 맞춘 지식이나 기술을 이해한다고 의미를 축소하도록 하며, 초·중등교육제도의 취지가 모든 학생이 삶에서 보편적 능력을 학습하는 기본 교육에 있으므로 그 취지에도 맞지 않고, 교육이 특정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선입견을 줘서 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축소함으로써 불요불급한 사회적 논란을 생성하거나 증폭하는 기제가 될 뿐이다.

 

2) 자기주도성과 비판적 사고로 구성하면 충분하다

 

인재상의 구성요소로 ‘주도성’, ‘책임감’, ‘배려와 포용’, ‘문제해결융합’, ‘창의혁신’이 논의되고 있다. 자기주도성과 책임감 또는 자기 관리성 등은 기본적 능력이므로 이의가 없다. 배려와 포용은 ‘타인을 배려하며 함께 나누는 포용적 가치관이자 실천하는 능력’이다. 초중고에서 비판적 사고는 분명 중요한 교육과정이지만 규범적이고 방법론적인 기준인 논리주의의 보편성, 객관성 등으로만 한정하면 옳지 않다고 보고 있고, 실제로 모든 사고에는 개인의 주관적 상황이나 사회적 맥락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분석적, 상상적, 맥락적 사고 등인 공감, 성찰, 개념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태도 등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배려와 포용을 인재상의 구성요소로 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해결융합과 창의혁신은 표현만 다를 뿐이지 동일한 능력이다. 그런데도 이를 구분하여 서로 다른 구성요소처럼 제시하는 것은 중첩된 ‘강조효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해결융합은 ‘깊이 있는 지식과 역량을 학습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융합적으로 적용하는 능력’이며 창의혁신은 ‘비판적 사고와 새로운 상황에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해결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비판적 사고, 또는 논리주의적 비판적 사고라고 통합되어 명명되어 왔다. 즉 전통적으로 비판적 사고(논리주의적 비판적 사고)는 교과 주제나 내용과 상관없이 사고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육과정 최상단에 있는 인재상에서 동일한 개념을 마치 서로 다른 것처럼 분리하여 별도의 구성요소로 두게 되면 초·중·고 교육활동이 애매모호해지거나 치우친 해석만을 낳는 일이라고 본다.

 

비판적 사고는 (a) 문제를 인식하고 (b)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을 찾고 (c) 관련된 정보를 찾아 분류하고 (d) 숨은 가정과 가치관을 파악하고 (e) 언어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며 (f) 자료를 해석하고 (g) 증거를 판단하고 주장을 평가하고 (h) 명제들 사이에 논리적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i) 정당한 결론을 도출하고 일반화를 하며 (j) 얻은 결론과 일반화를 시험에 부치고 (k) 더 많은 경험에 근거해 믿음을 재구성하며 (l) 일상에서 특정 문제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다.

『피셔의 비판적 사고』, 서광사, 2010, p25

 

요컨대 인재상의 구성요소에서 주도성, 책임감, 배려와 포용을 ‘자기주도성’으로, 문제해결융합과 창의혁신을 ‘비판적 사고’로 통합하는 것이 비전이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상을 보다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2.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은 다음과 같다.

가. 인문 사회 과학기술 기초 소양을 균형 있게 함양하고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따른 선택학습을 강화한다.

 

나. 교과의 핵심개념을 중심으로 학습 내용을 구조화하고 학습량을 적정화하여 학습의 질을 개선한다.

 

다. 교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학생참여형 수업을 활성화하여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기르고 학습의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한다.

 

라. 학습의 과정을 중시하는 평가를 강화하여 학생이 자신의 학습을 성찰하도록 하고 평가결과를 활용하여 교수학습의 질을 개선한다.

 

마. 교과의 교육목표, 교육 내용, 교수학습 및 평가의 일관성을 강화한다.

 

바. 특성화 고등학교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에서는 국가직무표준능력을 활용하여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초역랑과 직무능력을 함양한다.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안은 다음처럼 논의되는 것으로 보인다.

가. 학생의 삶과 연계한 미래 역량 함양이 가능한 교육과정 개발
나. 고교학점제에 부합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한 교육과정 개발
다. 불확실함에 대응·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육내용 강화
라. 지역 분권화 및 학교 교사 자율성을 중시하는 교육과정 개발
마. 기초소양, 기본 학력 보장을 통해 교육 공공성 및 책임 교육 강화
바. 디지털 AI 교육환경에 맞은 교실수업 개선 및 평가체제 확립

 

현재와 미래의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사항을 비교해보면 2015 개정 교육과정은 학생의 흥미와 진로 적성에 따른 선택적 교육과정을 강조하며 적합한 교수학습방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새 교육과정은 교육과정의 기본원칙이나 방향을 보다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1) 가. 학생의 삶과 연계한 미래 역량 함양이 가능한 교육과정 개발

 

가.는 교육과정의 적정화나 다양화와 관련이 있어 보이고, 국가교육회의가 실시한 <국민설문조사>에서 문항 4번의 교과별 학습내용의 양에 대한 의견에 대응된다. 즉 이전 교육과정에서 교육내용이 고난도이거나 미진하였다고 보고 적정한 수준이 되도록 2015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하였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따라 적절한 수준이 되도록 난이도와 분량을 조정하여 교육내용이나 교과서 등을 개발해야 한다고 해석된다. 그러므로 새 교육과정에는 교과별로 학습해야 할 내용과 수행에서 최소 필수요소만을 정선하여 제시하고 직접적으로 삶과 연계되지 않는다고 보이는 교육내용을 제외하거나 축소하자는 제안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제안의 배경에는 학생들이 삶에서 알아야 할 것과 알 수 있어야 할 것들을 발달에 맞춰 양과 수준을 적정화하면 모든 학생들의 배움 수준이 올라갈 수 있고, 교육적 불평등이나 부진학생 양산, 획일적 수업의 부작용도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고 보지 않나 짐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누가 어떻게 적정화를 판단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흔히 교사는 교육의 전문가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므로 성장 발달 단계와 학업수준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교사들(특히 교사단체)을 중심으로 하여 교과별로 교육과정을 적정화할 수 있는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학생의 삶과 동떨어져 보이거나 고난도 등 부적합한 교육내용을 제외하거나 편재를 바꿔 상위학년으로 이양함으로써 적정한 수준의 교육과정을 경험하게 할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은 일견 응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적정한’이라는 용어는 매우 주관적이다. 교사들에게 진도 압박을 배제하고, 단 한명의 아이들까지 천천히 배울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 협력학습 등 다양한 교수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여 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것이 적정화의 취지라면 새 교육과정에서 지금의 교육내용이 지나치게 많다고 전제한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미 2015 교육과정에 따라 개발된 교과서나 교육지침서만을 보더라도 교육내용이 축소되어 있으며, 그런데도 교사들이 진도 압박을 받아 학생들에게 천천히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없었고 협력학습 등 다양한 교수학습을 할 수 없었다면 그 원인이 다를 수 있다고 사료된다. 하위 학교급에서 시작되어 확장된 학습의 누적적 결손 탓일 수 있으며 이것이 상위 학교급 교사가 교육 내용을 가르칠 때 부담이 되었다면 교육내용의 양이나 질이 학습부진과 교육적 불평등 등 여러 교육문제를 심화시켰다는 진단은 비논리적이다.

 

새 교육과정에서 교육내용의 축소와 고난이도 교육 내용 배제가 옳다고 해도 교사들이 중심이 된 심의위원회에서 그 내용을 선별하게 하는 일은 선별당자가가 일방적으로 교육내용을 취사선택할 위험이 있다. 또한 교육내용이 과다하거나 고난이도인가는 다양한 교수학습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교사가 강의식이든 토론식이든 체험활동식이든 주제통합수업방식이든 다양한 교수학습기법을 얼마나 능숙하게 상황에 따라 쓸 수 있는가라는 교수학습능력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것이지 교육 내용 그 자체만으로 성장과 발달단계를 넘어서는 많은 교육내용과 고난이도 탓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학습의 누적적 결손이 상위학년이나 학교급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적정한 교육과정이 어떤 구성으로 어떤 교육내용이 교육과정에 들어가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나아가 지식을 소홀하게 하고서는 미래 역량을 높일 수 없는 점에서 교육내용의 적정성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2015 개정 교육과정도 학생의 흥미, 진로, 적성과 연계된 핵심역량과 교과역량을 추구한다고 하였지만 교과역량을 어떻게 조직하여 길러야만 핵심역량에 이를 수 있는지조차 모호했다. 그러므로 새로운 교육과정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교과를 바탕으로 핵심역량을 잘 길러내게 한다고 하면 제대로 깊고 넓게 교과를 가르쳐야 하며 당연히 교과 교육 내용과 그 수준의 적정화는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결국 교과의 지식을 배우고 이를 실현하게 하는 절차적 역량과 사회적 역량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감. 책임감, 공동체 의식을 기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적정한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적 능력의 학습과정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바로 교과이고 교과의 지식이다. 그러므로 교과 지식을 적정한 수준으로 한다고 하면서 일방적 선별과 지식 내용의 축소로 이어지지 않을지 몹시 우려한다. 그리고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교육내용에서 지식이 절대적으로 많지는 않다고 본다. 많은 교사들이 체감하듯이 이전의 교육과정과 비교해보면 파격적일 정도로 교과지식의 양은 줄었다. 그렇기 때문에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핵심역량이 학생들에게 길러지지 않았다면 지식과 역량의 관계를 볼 때 오히려 지식을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고 학습하게 한 탓이라고도 볼 수 있다.

 

2) 나. 고교학점제에 부합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한 교육과정 개발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흥미, 진로, 적성을 고려하는 교육과정이다. 그리고 2015 교육과정에서부터 추구되어 왔다. 그러므로 자기 주도적 학습이 고교학점제에 부합되게 하겠다는 취지는 단순하게 과목 개설을 늘리는 등 교육과정 편재나 학습수준의 다양성을 고려한 선택적 교과영역을 넓히는 것보다는 흥미와 진로에 맞게 국어, 영어, 수학 등으로 대표되는 중심교과의 학습 비중을 줄이고 사회, 과학, 예체능을 넘어서 생태, 인권, 노동, 평화 등에 관련된 다양한 과목을 학습하게 하는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한 이처럼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추구해도 현실에서는 과목개설의 한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으므로 교사들이 주체가 되어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를 재구성하거나 교과서 검정기준을 느슨하게 하여 다양한 교과서를 인정하는 방향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우려되는 점이 있다. 학생마다 배워야 할 목표나 속도가 다를 수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을 다양화하여 모든 학생들이 소외되지 않는 보편적 수업복지를 하겠다는 것을 그르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교과내용을 다양하게 하는 것은 보편적 수업복지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더구나 국어, 영어, 수학에 치중된 교육과정을 재편하여 다른 과목을 두루 경험하게 한다는 것을 보편적 복지라고 할 수도 없다. 주지교과는 다른 교과의 기반이 되는 학습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중점적으로 교수학습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더구나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의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교과영역이다. 그런데도 학교에서 대입을 위해 주지교과에 치우진 교수학습을 했다고 하는 등을 들어 주지교과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보는 것은 교육과 학습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문해력 수준이 낮아지거나 기초학력 미달자 수가 높아지는 현실을 살펴보면 지나친 주지교과의 배움 탓에 흥미. 적성, 진로와 관련된 자기주도능력을 줄였다고 할 수도 없다. 사실 주지교과 교수학습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교육과정 외부의 대학의 서열화나 사회적 임금격차에 따른 것으로 온 국민이 최선을 다해 외부 현실을 바꾸려고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문제의 탓을 주지교과 중심의 교육이라고 하는 시각은 설득력이 없다. 나아가 학생들의 학습속도가 다르다는 것은 교육과정의 다양성과 더욱 무관하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문제는 이미 충분하게 학교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다. 초중고에서 학력저하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벌어졌으며 무분별한 주제통합수업은 주제통합수업을 위한 주제통합수업으로 실효성이 없어진지 오래이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 교육과정 다양화를 하겠다면 다양성을 위한 다양성을 하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리고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통해 지식 위주의 수업을 줄이고 수행 영역의 성취기준을 늘리겠다는 의도도 보이며, 여기서는 지식과 역량이 대립적이지 않은데도 대립적으로 보이도록 할 우려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0년 가까이만 보더라도 초중고 현장에서 지식과 역량의 관계에 대한 오도된 이해나 신념은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고, 이는 학습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3) 다. 불확실함에 대응·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육내용 강화

 

2015 교육과정에 비해 디지털 역량, 생태전환 교육, 민주시민, 교육인공지능 등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내용을 신설하거나 늘려 이를 강화하자는 취지이다. 큰 방향에서 생태전환교육, 민주시민교육, 교육인공지능 내용을 강화하자는 것에 특별한 이의가 없다.

 

4) 라. 지역 분권화 및 학교 교사 자율성을 중시하는 교육과정 개발

 

교육과정의 자율화 혹은 분권화라고 할 수 있다. 분권화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고 지역별로 특성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을 의미하고, 자율화는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를 이루려면 교사의 전문성을 보장하는 입법이나 지원정책들이 추가되어야만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보고 교육과정에서 중점추진사항에 놓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정 분권화와 자율화는 교사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거나 직접 개발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하면 교사교육과정의 보편화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사들이 동 학년, 동 교과 교사들과 협력적 관계 속에서 교육과정을 재구성 혹은 개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거나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성취기준 가운데 학교나 학생의 특성에 따라 취사선택하게 하거나 성취기준을 직접 개발하고 교과서를 자유롭게 발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로 읽혀진다.

 

교사의 전문성이 신장되지 못한 것이 교육과정 재구성이나 성취기준을 직접 개발하지 않게 하거나 취사선택하지 않게 한 탓이라고만 할 수 없다. 물론 교사의 전문성은 교육목표에 따른 교육내용을 효과적으로 교수 학습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거나 성취기준을 취사선택하거나 교과서 등 교재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히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의 중점이 정당한가는 두 측면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현행 교과서로 대표되는 교재의 내용이나 성취기준이 교육목표를 이룰 때에 부당한가를 봐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2015 교육과정에서 교사들에게 이러한 부당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교수학습하게 하여 교육전문가가 될 수 없었냐는 것도 실증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지금의 2015 교육과정만 하더라도 학생들의 흥미, 진로, 적성을 반영하고, 연속된 학교급을 반영하여 교사의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교육 내용으로 편성되어 있다. 더구나 주제별이든 단원별이든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서만이 교사의 전문성이 길러지는 것도 아니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궁극적인 취지가 학생들에게 더 나은 학습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면 지난 수년간 교육청을 중심으로 해왔던 교육과정 재구성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를 먼저 분석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선행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즉 교사들에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가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실제로 학습수준이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분권화를 위한 분권화’를 하지 않겠다면 동 학년, 동 교과 교사와 함께했던 분권적 교육과정 재구성이 왜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높일 수 없었는가를 우선, 실증적이고 객관적으로 충분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 후에 성취기준의 신설이나 취사선택은 얼마든지 허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교사의 교육과정 재구성 권한의 확대를 즉시 교육과정의 자율화라고 할 수는 없다. 교육과정에서 교사의 자율은 자유만이 아니라 책임이 부여된 권리이다. 책임이란 우리 학생들의 학습에 있고 학습은 삶에 필요한 힘을 키워주는 과정인데 실제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했던 학교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삶의 힘을 높여 주지 못했다면 분권화의 초점에 대에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실제로 배우는 내용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배우는 내용이 풍부해진다가 아니라 인지적 학습메커니즘으로 볼 때 학습을 방해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무용한 일이다. 요컨대 교육과정에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과 실제로 학습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과는 별개의 사안일 수 있다는 것이며, 오히려 한국적 현실에서 학습격차 등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더울 늘릴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지난 수년간을 보면 낯설지도 않다. 더구나 교육과정의 자율성이 성취기준을 신설하거나 취사선택을 하는데 중심이 있다면 지역이나 학교 또는 동 교과의 학년별 위계에서도 교사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 교육내용으로 인해 오히려 학습격차가 더욱 벌어질 우려마저 있으며 이러한 우려는 당연하며 지나치다고 볼 수 없다.

 

지역별로 시도교육청이 특성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을 분권화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비교적 작은 지역과 인구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 어떤 효과를 지닐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지역별로 특성 있는 교육과정은 우리 아이들의 삶에서 이동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지역에 갇힌 교육을 하게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환경문제를 다룬 단원을 배우게 될 때 지역의 특수한 환경문제를 사례로 하는 교육과정 운영이 학생의 보편적 학습능력을 올려준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개념적 지식을 학습하는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흥미, 진로, 적성에 따른 삶의 힘을 길러주는 교육과정을 하겠다고 하면서 지역의 특성 있는 교육과정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그리고 초중등교육과정은 기본교육과정으로 지역적 특색이 중심이 되는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도 없다. 또한 탐구에서 탐구주제에 대한 귀납과 연역적 접근은 탐구방식의 차이이며 과제에 따라 효과적인 방식이 달라진다. 그런데도 교육과정에서 마치 하나의 방식을 중점적 방식으로 두게 되면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라고 해석되는 경우에 학습위험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교사가 학교에서 국가적 보편성이 있는 교육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교수학습에서 지역적 특성을 사례로 반영하는 연역적 접근 방식이나 지역적 특성을 중심으로 하는 교수학습방식을 따르는 것이 모두 인정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5) 마. 기초소양, 기본 학력 보장을 통해 교육 공공성 및 책임 교육 강화

 

아무런 이의가 없다. 다만 기초소양이나 기본학력에 대해 통념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세부 사항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부족해 보인다. 그러므로 기초소양이나 기본학력에 대해 합의되거나 협의된 정의와 교육 범위가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학습은 기억이고 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학습과학의 원리를 벗어나서 기초소양이나 기본학력을 정의하려는 일에 대해서는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즉 기초나 기본은 상위의 행위가 수행되기 위한 발판이므로 다수의 토론을 통해 보편적이고 합리적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본다.

 

6) 바. 디지털 AI 교육환경에 맞은 교실수업 개선 및 평가체제 확립

 

코로나가 일상이 된 시대가 2년째 지속되고 있다.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영원하게 지속될지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교육의 공공성이나 책무성을 강화하고 교육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교실수업을 개선하며 평가체제를 확립하자는 뜻으로 이해된다. 원격수업을 일상화된 수업형태로 인정하거나 이를 학교에서 새롭게 발전시킨 수업방식으로 하게 함으로써 교실수업의 형태를 다양하게 하자는 것을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과거나 현재의 사례를 보면 대규모 원격수업이나 블렌디드 수업은 학습능력의 저하를 가져오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실제로 초중등교육이 보편적 교육으로 추구하는 목표나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러므로 교실수업 개선 및 평가체제를 확립할 경우에 매우 주의하여야 하고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

 

 

3. 국가수준 교육과정 문서 가독성 제고 관련(구성의 중점 도식화)

 

새 교육과정에서 제안되는 비전은 여전히 포괄적이고 선언적이어서 도식화를 통해 구체적 내용이 목표와 과제로 보충되더라도 실제로 교육현장에서 의미 있는 지침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초중고 현장에서 의미 있는 지침은 실제로 개발될 교과서나 교사 안내서 및 교수학습방법에 달려 있으며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을 도식화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더구나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에서 교육과정의 적정화, 다양화, 분권화, 자율화를 지향하고 그 핵심이 교육과정 재구성에 있다고 하지만 현행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다수 교육청이 중점적으로 두어 추진했던 이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학생들 간의 학습격차를 심화시켰고, 지식 교육을 소홀하게 하여 보편적으로 학습 수준의 저하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도 교육과정 구성을 도식화하여 위계를 부여하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기대어 일방적으로 정당화되었던 교육과정 재구성의 문제점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교육과정 재구성을 의무화하는 목표 지향적 측면이 지나치게 강조될 위험이 있으며, 부실한 교육과정 재구성화가 가져온 지식격차 및 학습격차, 보편적인 학습저하의 현실을 응당 해결할 수 없으며, 나아가 지식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역량교육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이 반드시 도식화하고자 한다면 명백하게 비전과 목표 사이에 사실적 및 개념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기초소양, 기본 학력 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에 따라 목표와 구체적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하면 좋을 듯하다.

 

 

4. 미래 사회 변화에 따른 요구사항 검토

 

이 요구사항은 ‘디지털 역량, 생태전환교육, 자기주도와 포용성을 갖춘 민주시민, 교육인공지능 등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요구사항을 교육과정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할 것인가에 대하여’ 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이슈 중에 ‘생태전환교육’, ‘민주시민교육’, ‘안전한 삶 생활’, ‘노동 교육’ 등은 2015 교육과정에서도 각 교과 특히 사회과에 반영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교육내용이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전혀 새롭게 포함되어야 한다고 볼 수는 없고 기존의 교과교육 내용이 확충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요구사항으로 반영되었던 교육 내용이 분량이나 질에 있어 적정한 수준인가에 대한 실증적 검토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내용이 주관적으로 적다, 많다로 판단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절대적으로 적고 다른 교육 내용에 비해 불균형하여 학생들의 미래 사회 변화에 따른 교육기회를 해쳤는가를 검토해봐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도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응당 확충되어야 한다고 보는 예단은 이미 확장하고 반영되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므로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제통합수업, 프로젝트 기반 선택활동의 교육적 가치는 정당하다고 본다. 다만 지난 수년간에 걸쳐 교육청이 정책적 뒷받침을 하고 학교에서 상당하게 추구했는데도 그 효과는 실제로 미미했다고 본다. 즉 미래든 현재든 사회적 이슈를 이와 같은 교수학습방식으로 다뤄야만 학생들의 역량이 높아진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배경으로는 이러한 교수학습활동에서 기반이 되어야 하는 지식의 학습량이 우리 학생들에게 매우 부족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존중, 자율, 연대 등 민주시민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초중고에서 우리 학생들은 이에 대한 내용을 공통교육과정으로 학습하고 있으며, 그 이전의 교육과정에서도 배워 왔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교육이 미진하다고 하면 이를 반영한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존중 등 추구하는 목표를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즉 미래 사회 변화에 따른 요구사항은 교육 내용이 부족하여 나타나는 문제라고 할 수 없는데도 이러한 교육을 강화한다고 하는 것은 그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쉽게 수긍할 수 없다.

 

 

5. 총평

 

새 교육과정에는 교육으로 형성되는 인재상보다 용어를 인간상으로 바꾸고 교육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인간이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비전이 제시되기를 바라고, 인간의 주체적이고, 자율적이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측면과 타자와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공감. 협력, 배려 등 포용성을 함께 중시한다면 비전의 세부요소를 치우치지 않게 배치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과정 구성의 중점사항도 새로운 원칙과 추진방향이 실제의 학습이 이루어지는가를 기준으로 하여 교사의 가르침이나 학생들의 학습에 실효적인가를 깊이 논의했으면 한다. 특히 교사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취지에 대해 이해하더라도 2015 교육과정이 학교 현장에 적용된 실태를 보면 지식이 교육과정에서 소홀하게 다루어져 온 측면을 부정할 수 없으므로 새 교육과정에서는 지식 교육을 구색 맞추기가 아닌 중요한 학습요소로 인정하고 중점 추진전략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교육과정 문서의 가독성과 관련되어 구성의 중점 도식화는 위계적 구성으로 비전, 목표, 과제의 관계를 명확하게 할 수 있지만 교육목표나 과제를 수행할 때 교수학습방식의 다양성을 축소할 위험 또한 충분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처럼 도식화에 따른 위험을 예견하고 실효적인 방안을 보완할 수 있으면 도식화하여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미래 사회 변화에 따른 요구사항을 교육해야 한다는 방향에 어떤 이의도 없다. 단지 교육내용이 없거나 부족하여 새롭게 추가하거나 확장해야 한다는 취지에 대하여는 좀 더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교육과정을 볼 때에 단지 기후환경, 생태, 민주시민 등과 관련된 교육내용이 부족하여 충분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교육과정에서 미래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사항이 보다 학습되어야 할 과제라면 교수학습방식이나 평가 측면에서 좀 더 깊고 다양하게 원인을 짚어봤으면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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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박제원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전주 완산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 교육청 사회문화 집필 위원, KDI 경제교육교재 집필 위원,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충남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출제위원, 전북 및 전남 교육연수원 강사, 전북대학교 교사 연수 강사, <새전북신문>, <열린 전북>, <전북교육신문>, 인문 웹진 <아홉시>, 네이버 비즈니즈 블로그 <인터비즈>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교육저널인 「교육 제4의 길 」에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미래 교육의 불편한 진실, EBS, 2021>, <학교 속 문해력 수업, EBS, 2022>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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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1. 한찬수 수정 삭제

    훌륭한 의견입니다. 저도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1. 박제원 수정 삭제

      소견에 깊고 따뜻하게 봐주시니 감사드립니다.

  2. 김태균 수정 삭제

    국가교육회의가 주체가 되어 공청회 등을 통해 2022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자 노력하는 모습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계시는 전문성이 담보된 교사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더 나은 교육과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많은 분들께서 보시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1. 박제원 수정 삭제

      고맙습니다 꾸벅.

  3. 김붐 수정 삭제

    다시 지식교육의 강조로 되돌아가는 건가요? 역량이 지식을 기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지식의 강조는 다시 현실과의 괴리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의 요구는 이 지식을 배워서 무엇에 써 먹을 수 있냐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입니다. 그러한 시각은 우리나라 교육에서 수십년 이어져 내려온 것이구요. 역량은 현실과의 괴리를 다소 줄여주리라 기대되었던 것인데 다시 지식의 강조로 되돌아가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닌가요?

    1. 박제원 수정 삭제

      네 선생님. 답글을 주셨군요. 역량은 원래 지식입니다. 지식의 특수한 부분이 역량이고요. 지식이라는 보편성의 체계내에 역량이 있거나 역량이 지식을 바탕으로 있습니다. 학생들이 특정한 지식을 배워서 무엇에 써먹을 수 있는가라는 것은 지식을 당장에 실용적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지식이든 유용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어떤 경우에 유용한가는 각자에 따라 다른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을 유용성의 시각보다는 보편성의 시각에서 읽고 쓰고 말하고 계산하고 등 그리고 그에 담긴 보편적 논리체계를 학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유용하다는 하나의 판단인데 그 유용함이 충돌하거나 유용함의 유용함을 배우는 사고를 바로 지식훈련에서 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진리가 무엇이냐를 배우는 것이 당장에 유용핮 않을지 몰라도 무수한 사람들이 그 문제를 탐구하는 것은 그러한 진리체계가 무엇이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지평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유용하다는 것을 실용에 국한시켜 사고하면 개인적 영역을 한정되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 고맙습니다.

  4. 김붐 수정 삭제

    제 글은 지식교육을 부정하는 것도 지식의 유용성과 실용성만을 강조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다시 지식의 강조는 과거로의 회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지식의 강조가 교육과정과 교육현장과의 괴리를 다시 심화시킬 수 있다는 염려이자 변화하는 교육현장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1. 박제원 수정 삭제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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