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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그리고 8월 “그 날” 이후

#377 김경범, 전 서울대학교 교수 2018.07.05

안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이 주연한 영화 「남아있는 나날」(1993)의 원작은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소설 「The Remains of the Day」이다. 이 소설의 제목을 어떻게 번역할지 여러 의견이 있지만, 필자는 ‘남아있는 나날’보다 영문을 그대로 직역한 ‘그 날의 유산’, ‘그 날이 남겨놓은 것’에 더 익숙하다. 지나간 시절 잘못된 선택, 아픔, 후회, 환멸, 회복, 불확실한 희망, 불안한 미래라는 키워드가 연결 고리가 되기는 했으나, 이 영화를 떠올린 까닭은 영화 끝부분에 걸려있는 잔상 때문이다. 달링턴(Darlington) 저택의 집사 스티븐스(Stevens)가 지난 시절 “그 날” 자신의 실수를 회복하려고 이미 결혼한 켄튼(Kenton)을 찾아가지만, 이 만남으로 두 사람은 완전히 헤어진다. 비 오는 밤, 깊은 눈물을 흘리며 떠나가는 켄튼을 태우고 전차가 멀어진다. 떠나가는 전차를 바라보는 스티븐스, “그 날” 이후 스티븐스에게는 어떤 날들이 남아있게 될까. 8월의 “그 날”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8월 말에 발표하기로 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은 이미 예정된 결과를 향해 정해진 궤도를 가고 있다. 공론화 의제가 선정되었고 네 개의 시나리오도 만들어졌다. 권역별 토론회와 TV 토론회가 진행되고, 시민참여단 400명이 선정되어 본격적인 공론화 절차를 밟게 된다. 뒤돌아보면, 수능 개편에 대한 논의는 모든 정부에서 있었고, 모든 정부는 그 정부만의 새로운 수능 체제를 만들어냈으니 수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었다. 이 경험칙에 따르면 현 정부도 수능을 바꿀 것이고 다음 정부도 수능을 바꿀 것이다. 대개 일부 반발은 있었지만, 정부는 큰 문제 없이 수능을 바꾸고 또 바꿨다. 그런데 이번에 바꾸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다. 수능을 어떻게 바꾸려고 하는지 정부조차도 모르고 있는 듯하고, 집단마다 서로 다른 생각들을 조율하거나 억누르거나 무시하지도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소수가 모여서 밀실에서 정하고 형식적인 공청회를 거쳐 발표하는 방식으로 수능 체제를 정했다면, 현 정부는 작년 8월 개편안이 무산된 이후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한다. 이렇게 8월이면 2013년 문•이과 통합 담론과 함께 시작되었고 2015 개정 교육과정과 더불어 본격화되었던 새로운 수능에 대한 논의가 일견 마무리되어가는 모양이다. 그런데 지난 일 년동안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고 긴 기간에 걸쳐 같은 주제가 반복적으로 논의되면서 이견을 가진 집단 사이의 반목도 깊어지고 국민적 피로감도 극심해지고 있다. 일반 국민, 학생과 학부모, 학교 선생님, 대학들, 모두가 피곤해한다. 국민을 더욱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8월 발표 이후에도 달라진 상황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 예상되는 8월 결정은 대입을 두고 불거졌던 문제들을 다시 잠시 덮어두고 있을 뿐이다. 대학입시를 둘러싼 여러 문제는 그 이후에 다시 불거지게 될 것이다. 국가교육회의가 교육부에 권고할 수능 절대평가/상대평가 선택, 교과/학종/수능 전형 간 적정비율, 수시 수능 최저학력기준 적용 여부 외에도, 앞으로 논의할 사안이 많이 남아있다. 6월 27일 시안이 발표된 2022학년도 수능 응시 영역, 학생부 기록 개선, 학생부종합전형 신뢰도 제고, 대입 평가 기준 및 선발 결과 공개, 논술 폐지 여부, 면접 및 구술고사 개선, 수능 문항의 EBS 교재 연계 여부 등 남아있는 과제도 간단치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6월 30일 헌법재판소가 올해 고입에서 자사고와 일반고를 동시에 지원하지 못하게 하는 선발 계획의 효력을 정시시켰다. 이렇게 되면 서울의 경우 자사고와 특목고에 지원하는 학생들도 일반고에 동시에 지원하되 일반고 지원기회를 1순위부터 인정할지 아니면 2순위부터 인정할지, 1순위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지에 따라 새로운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 게다가 2022학년도부터 전면 실시될 고교학점제, 고교학점제와 더불어 따라올 성취평가제, 교육감들이 공언하고 있는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 급감하는 고등학생, 대학 구조조정, 이 모든 새로운 환경이 2025학년도 대입제도에 집중되어 다시 전 사회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8월 발표안에서도 현재 수능의 문제점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수능이 과거 학력고사처럼 개별 교과 중심의 학업성취도 시험으로 변하여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키워주지도 못하고 학교는 문제풀이 위주의 일방적인 수업을 해야 하고, 표준점수제에서도 과목 선택에 따르는 유불리가 여전히 존재하며, 문항이 패턴화 및 획일화되어 참신한 문항을 만들 여력이 고갈되고 있는데, 8월 이후에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다시 미루어질 듯하다.

 

현 정부 이전의 상황은 제쳐두고, 이번 정부에서 이루어진 2022 대입 관련 논의 상황을 다시 정리해보자.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5대 국정 목표를 세우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하였다. 이 100대 국정과제 중 교육 분야 과제는 다음과 같다.

위에서 언급된 모든 과제 가운데 대학입시와 좀 더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과제는 49. 교육의 공정성, 50. 교실 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 51. 교육의 희망사다리 복원, 이렇게 세 과제이다. 이 세 과제와 대학입시의 관계는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의 질곡 속에 엉켜 있다. 대학입시는 공정하고 바람직한데 교실 수업이 부실하여 교육의 공정성이 훼손되었고 교육의 희망사다리가 끊어지는 결과로 이어졌을까. 아니면 대학입시가 불공정하여 교육의 희망사다리가 끊겼고, 그 결과 교육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교실 수업이 부실해졌는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확신하기 쉽지 않고, 어쩌면 다른 역사적이고 사회 구조적인 원인에 의해 교육과 대학입시의 여러 가지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그 문제를 명확히 정의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 상태로 그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교육의 공정성과 교육을 통한 희망사다리 복원은 어느 정부도 버릴 수 없는 당연한 가치이다. 소수를 위한 학교 교육, 불공정한 대학입시, 희망사다리를 끊어내는 교육을 추구하는 정부는 없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될 여지가 있더라도, 그런 의도를 갖고 정책을 만들지는 않으며 국민도 그런 정책을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정성과 희망사다리 복원을 전제로 하여, ‘교실 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대학입학제도를 만드는 것이 현 정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입니다.’라는 문구에 드러나 있듯이,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경쟁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위한 맞춤형 교육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학생의 교과 선택권을 대폭 확대하는 고교학점제가 정부의 핵심 정책이 되어 2022학년도부터 모든 학교에 전면 실시되는 까닭도 학생 성장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학생 성장을 지원하고 수업혁신을 선도하기 위해 혁신학교의 수를 늘리고자유학기제를 자유학년제로 확대하려는 정책도 같은 맥락에 있다. 경쟁과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핵심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학생 맞춤형 학교 교육으로 혁신하려면 새로운 학교 교육과 어울리는 새로운 대입제도가 필요하다. 입시와 경쟁 중심의 교육에서 학생 성장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하고 학교 교육을 통해 창의 융합적 인재를 육성한다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2018학년도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2015개정 교육과정의 목표와도 일치한다.

이제 대학입시를 현실의 눈으로 살펴보자. 2017년 8월에 논의되었던 2021학년도 수능 개편 시안은 수능 절대평가 부분확대(1안)와 전면확대(2안), 이렇게 한 가지 주제였다. 그런데 결정이 1년 미뤄지면서 2022학년도 수능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중 하나를 정하는 게 아니라, “고교 교육 정상화 방안과 이를 뒷받침할 대입정책을 포괄적으로 마련”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대입제도는 학생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하는 2015 교육과정에 맞추어 바뀌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8월에 “고교 교육 정상화 방안과 이를 뒷받침할 대입정책”이 어떻게 발표될지는 알 수 없지만, 논의할 사안들이 작년보다 더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대입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교육부 발표안이 말하고 있는 “고교 교육 정상화”의 개념이 정의되어야 한다. 고교 교육 정상화의 개념이란, 1) 학교 교육의 목표와 미래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재정의하고, 2) 현재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더 좋은 학교로 만들어가기 위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을 만들며, 3) 이런 새로운 학교 교육을 뒷받침할 대입제도를 설계하는 일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학생들이 미래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역량을 길러주는 더 나은 학교 교육 개혁을 추진하고 이 새로운 교육개혁이 학교 현장에서 잘 작동되도록 도와주는 대입제도를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1995년에 5.31 교육개혁이 발표된 이후 이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개혁이 시도된 적이 없다. 23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구상하는 미래도 다르다. 특히 인구구조의 차이는 결정적이다. 지금의 교육이 바람직한 방향이고 우리가 학교 교육에 만족하며 현재를 유지했을 때 더 나은 미래가 기대된다면, 대입제도를 통해 기술적인 미세 수정과 보완을 하면 충분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학교 교육에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구구조도 현저하게 달라졌다. 지금은 새로운 학교를 설계하는 교육개혁에 나서야 할 적기라고 판단된다. 국가의 교육 철학을 정립한 후에 학교 교육의 방향과 정책을 설계하고, 그런 다음에 대입제도를 논의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대입에서 교과 내신을 강화하면 학교 교육이 좋아질까.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모집 인원을 확대하면 학교 교육은 정상화될까. 그저 학생부종합전형만 늘린다고 학교 교육은 좋아질까. 더 좋은 학교 교육을 위해 수능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단지 수시모집을 줄이고 정시모집을 늘리는 식으로 전형별 선발인원만 조정하면 모든 게 좋아질까. 어쩌면 우리는 허수아비 게임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정말로 물어야 할 질문은 던지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진다. 다른 질문에 답을 찾느라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답이 아닌 답으로 타협한다. 그래서 누가 무엇을 결정했는지 모르고 그저 모두가 결정했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마치 우리가 정작 던져야 할 질문에 답을 찾은 것으로 오도한다. 나중에 누군가 정작 중요한 질문을 던지려고 해도, 그 질문의 답은 이미 결정되었다며 귀찮아한다. 어딘가에서 별도로 고교 교육 정상화 방안이 만들어지고 있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논의 순서가 잘못 꿰어진 까닭에 8월 발표안은 단지 미봉책에 그치고 말 것이다.

 

현 대입제도의 난맥상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최근의 상황만 보더라도 고교 다양화 정책, 2015 교육과정과 후속 조치 미흡, 학생부종합전형의 증가에 따른 학생부 기재요령의 전면 쇄신과 새로운 학교수업 개혁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이 축적되어왔다. 정부는 정작 공교육의 질 제고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문과/이과 구분 없는 2015 창의융합 교육과정과 맞물리는 새로운 수능 체제도 지난 정부가 결정해야 했지만 결정하지 못했다. 새로운 수능에 대한 논의는 2013년에 시작되었고 학생 수 감소 등 대입환경의 큰 변화들이 2015년에 예고되었지만, 정부가 결정하지 못하면서 대입제도의 불확실성이 커져 왔다. 고교 다양화 이후 지역과 고교유형에 따른 학력 격차도 심각한 수준으로 벌어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일반고 황폐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늘어나는 사교육비 때문에 부모 세대의 미래는 저당 잡혀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이 늘어났지만, 고등학교의 학생부 기록은 공정성을 의심받고,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평가는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다. 이미 2005년 인구 총조사에서 경고한 대입 학령인구의 급감도 2015년에 현실이 되었다. 학생 수가 급감하는 환경에서 대학들은 생존을 위해 학생을 모집하여 충원하기에 급급하다. 대입제도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그리고 2022학년도에 본격적으로 실시되는 고등학교 학점제도 완전히 새로운 대입환경을 예고하고 있다.

 

“교육의 공정성(희망사다리 복원)”, “경쟁과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핵심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학생 맞춤형 학교 교육으로 혁신”, 정부가 표방하는 이 두 가치는 대학입시와 어떻게 연결될까. 먼저,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28일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위촉식에서 대입제도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시각으로 볼 때 공정하고 단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학생과 학부모의 눈에 단순하고 공정한 입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는 너무나 당연하다. 복잡하고 불공정한 대학입시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다루어야 할 주제는 이렇게 다시 정의될 수 있다. “경쟁과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핵심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학생 맞춤형 학교 교육으로 혁신”하는 데 기여하는 “단순하고 공정한 대학입시”란 무엇인가? 학생과 학부모의 눈으로 보면 “단순하고 공정한 대학입시”는 수능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하고 공정한” 수능이 “경쟁과 입시 중심의 교육”을 만든다는 데 있다.1 고교 간, 지역 간, 개인 간 학력 차이도 국가 주도 표준화 시험인 수능 점수를 기준으로 한다. 교사들의 눈으로 보면 “학생 맞춤형으로 학교 교육을 혁신”하는 대학입시는 학생부종합전형이다. 그런데 이 전형을 두고 일부 학부모는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경쟁과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핵심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학생 맞춤형 학교 교육으로 혁신”하는 “단순하고 공정한 대학입시”란 현재 조건에서는 모순적이다. 두 가지 모두를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학입시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두 가지 모두를 만족하는 학교 교육은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한 방향을 선택하는 학교와 다른 방향을 선택하는 학교로 나뉠 수도 있겠지만, 학생은 두 가지 모두를 준비해야 하며 학교가 책임져주지 못하면 학부모는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다. 단순하고 공정한 입시를 수능으로, 학교 교육을 혁신하는 입시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설정하고 생각해 보자. 수시모집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치르고 정시모집을 수능으로 치른다면 대입제도는 전체적으로 두 가지 모두를 충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정하지 못한 수시모집과 학교 혁신을 방해하는 정시모집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이 서로 다른 방향을 지향하기 때문에 대학입시에 영향을 받는 학교 현장은 방향을 잃어버리고 부담과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일제고사라는 시험체제와 학생 맞춤형 교육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를 준비하도록 요구받는다면 학교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학교에서는 수시를 준비하고 학원에서 정시를 준비하는 체제를 우리 사회가 용인한다면, 학교는 숨통이 트이겠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사교육비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수시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하고 정시는 수능으로 선발하는 이중 구조가 잠깐의 타협점은 되겠지만 해결책은 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결론적으로 학교 교육과 대학입시의 부조화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학교 교육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만들어지는 새로운 대입제도는 그네처럼 부질없이 흔들리며 학교 현장과 국민을 계속 헷갈리게 할 뿐이다. 현 정부는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한다고 공약하고, 동시에 공정하고 단순한 대학입시를 요구한다. 정부 교육정책의 모순과 빈곤함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대학입시는 가능할까. 실상은 수능도 공정한지 의문이고, 완전히 다른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의 선발체제를 두고 단순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과정이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르고 고등학교 체제도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의 암묵적인 서열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대입제도를 통해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실현하려면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할 텐데 우리 사회가 그런 정책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과 재수생이 같은 수능 문제에 응시하고 같이 평가받는 것은 기회의 평등인가. 3년 공부한 학생과 4년 공부한 학생을 차별하지 않는 체제가 오히려 3년 공부한 학생을 차별하는 것은 아닌가. 대입을 둘러싼 논의는 엉킨 실타래를 벙어리장갑을 끼고 풀어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 엉킨 실타래처럼 엮여있는 모순적 상황을 풀어가는 방법이 지금은 없어 보이지만, 엉킨 실타래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방식처럼 대입의 핵심 고리 하나를 잘라내는데 합의할 수 있으면 풀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하고 공정한 대학입시” vs “학생의 핵심 역량을 함양하는 학생 맞춤형 학교 교육”, 우리는 이 가운에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맺힌 고리를 자르고 문제를 풀어갈 것인가. 미래의 대입 전형을 설계하는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앞으로 두 가지 방향의 선택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학교 교육만으로는 이 두 방향 모두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두 방향 모두가 아니라 하나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하나의 개혁 방향은 수능(혹은 이와 유사한 국가 단위 표준화 평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경쟁과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핵심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학생 맞춤형 학교 교육으로 혁신”하도록 수능 문제 유형, 평가 영역, 평가지표, 시행계획 등을 새로 만들고 다른 전형요소는 폐지한다. 수능 준비 과정은 학교 교육을 통해 학생이 자신에게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과정과 동의어가 되어야 하고, 한 아이가 태어나서 국가 의무교육체제에 들어와 대학입시를 치를 때까지 언제나 기회는 평등하게 제공되고 평가는 공정해야 한다. 이런 수능을 만들 수 있을지, 서술형 평가는 그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이 수능으로 만들어지는 서열은 공정할지, 지금은 모든 게 의문이고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으므로 멀리 떠 있는 구름처럼 보인다. 일본이 도입한다는 일부 간단한 서술형 평가, 프랑스의 바깔로레아, 영국 옥스브리지 대학의 면접 문항이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시험을 도입해도 학교 교육을 새롭게 혁신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교육만 늘어날 수 있다. 학생이 미래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역량을 교과 지식으로 한정하지 않아야 한다. 창의적인 생각과 사고력을 비롯하여 협력하고 공감하는 능력 등을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우고 익혀서 학생이 성장하는 학교를 만들고, 학교에서 배우고 성장한 내용을 시험을 통해 평가한다는 것이 하나의 개혁 방향이다. 가능할지 알 수 없고, 완전한 전례도 찾아볼 수 없다.

 

다른 개혁 방향은 학교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대입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형요소와 평가 방식을 “경쟁과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핵심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학생 맞춤형 학교 교육으로 혁신”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만든다. 학교 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학생이 대입 전형을 준비하는 과정은 학교 내외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지만 학생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에 자기 주도적이고 단순하다. 수능과 내신으로 모든 학생을 상대적으로 줄 세울 필요가 없으며, 학생이 도달한 성취를 절대적으로 평가한다. 대학은 성취도를 기준으로 다양한 영역을 평가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하여 (혹은 하나 혹은 두 가지 자료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수능의 역할, 내신의 역할, 학생부 혹은 다른 자료의 역할을 규정해야 하며 학교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평가 자료의 양과 질이 중요하다. 상대적 서열 여부는 덜 중요하다. 공정성은 자료의 생성과 평가과정의 공정성으로 치환된다. 대입 전형요소를 학교 교육에 일치시키되, 학교 교육의 변화와 대입제도의 변화를 동시에 움직이는 방식이다. 대학은 커트라인이 필요하지만 모든 학생을 줄 세울 필요는 없다. 학교 교육이 학생 맞춤형으로 달라질 수 있다면 학생을 평가하는 자료의 양과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변별력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이 방향도 학교 교육이 달라지지 않으면 실현되지 못한다.

 

2020년이면 학생 수가 급감하여 대학은 구조조정을 거쳐 새로운 체제로 개편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 구조조정 과정은 최소 십 년 이상 진행될 수도 있다. 초고령화 사회가 고착되고 생산가능인구도 줄어든다.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이유도 달라지고 대학 졸업장의 가치도 달라진다. 현재처럼 사람이 인위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기계적인 점수만이 공정하다는 인식은 대학 졸업장의 가치 하락과 함께 달라진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아이들의 역량을 획일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워내는 교육도 획일적이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현상 유지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대입제도의 미래는 수능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과 학교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어떤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유아교육부터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학교 교육을 원점에서 재설계해야 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학교 교육에 초점을 맞추면 앞으로 급격하게 변할 대입환경 -인구감소, 대학구조조정, 4차 산업혁명 시대, 학력 격차, 사교육비, 일반고 황폐화, 선행학습 금지, 학생부 및 학생부종합전형 개선- 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학생 성장 중심의 학교 교육 혁신과 새로운 대입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대입제도의 변화는 필연적이며, 다만 시기의 문제이다. 사회가 달라졌는데 교육이 현상 유지를 선택한다면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2013년 이후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선택하지 못할 듯하다. 오역일 수도 있지만,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묘비명이 떠오른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리는 언제까지 우물쭈물할 것인가. 영화 「남아있는 나날」의 스티븐스는 “그 날” 이후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우리는 8월 “그 날” 이후 무엇을 해야 할까. 전 국민이 피로를 느끼고 지겹다고 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몇몇 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우리 모두 열린 광장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진정한 열린 광장을 만드는 게 그 첫 시작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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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내신도 학교 내에서 수능보다 더 심각한 “경쟁과 입시 중심의 교육”을 만든다. 내신은 단순하지만 공정하지 않다. 서로 다른 표본에서 얻은 점수를 비교하여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내신이 공정해지려면 모든 고등학교가 같은 학력 수준이어야 한다는 불가능한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혹은 수능을 내신 점수화하여 전국 단위로 평가하여 그 결과를 학생부에 기록해야 한다. 논술은 단순한지 공정한지 알 수 없다.
전 서울대학교 교수 김경범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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