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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스승의 날 단상

#367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2018.05.16

5월은 기념일의 달이다. 가정의 달이라고들 하지만 반드시 가족 행사만 있는 건 아니다. 우선 첫날부터 기념일로 시작한다. 다름 아닌 5월 1일 노동절이다. 정부가 부르는 공식 명칭은 ‘근로자의 날’이지만 ‘근로자’라는 단어에 순종하는 노동자라는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함의가 있다는 비판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설적인 ‘노동절’이라는 말로 이 날을 부른다. 심지어 언론에서도 굳이 근로자의 날을 고집하지 않고 노동절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래서 5월 1일 만큼은 노동자가 주인공이 된다. 노동에 대해 배려하는 척이라도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일 년 내내 전투적 노동조합을 비판하던 보수언론조차도 노동 프렌들리는 못해도, 최소한 ‘귀족 노조 어찌할까?’, ‘떨어지는 노동생산성, 한국경제 고질병’ 이런 따위 기사를 악의적으로 내지는 않는 날이 노동절이다. 더군다나 그런 악의적인 기사를  ‘노동절 특집’이라는 명목으로 낸다면 양아치 취급을 받을 것이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물론 어린이날 특집 기사로 ‘버릇없는 요즘 아이들’, ‘날로 폭력적이 되는 아이들’, ‘스마트폰 중독 이대로 좋은가?’ 따위 기사를 기다렸다는듯이 쏟아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린이 날의 주인공은 어린이지 어린이를 걱정하는 어른이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5월 8일을 콕 잡아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제의 잔재’, ‘비뚤어진 친권,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인가?’ 이런 따위의 기사를 내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기사를, 그것도 아주 기획 특집 이런 식으로 낸다면 그 기자는 ‘패륜아’ 취급을 당할 것이다. 기념일이라는 것은 적어도 그날 만큼은 그 주인공의 관점에서 함께 바라봐 주는 날이니까.

 

그런데 유독 여러 기념일 중 주객이 전도되는 날이 하나 있다. 주객 전도 정도가 아니라 주인공을 희생양 삼아 그동안 맺힌 원한이라도 풀겠다는듯이 독하게 달려드는 날, 그날을 기점으로 사회적 이지메가 이루어지는 그런 기념일이 있다. 바로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유독 이날은 여러 언론사들이 교사들에게 한풀이라도 하려는듯 갖가지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낸다. 물론 스승이 꼭 교사만 말하는 건 아니지만, 사회 통념상 이 날은 ‘교사의 날’이나 다름없다. 교수도 있으니 조금 범위를 넓히면 ‘교원의 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교원의 날이 아니라 전국민 교사 성토의 날로 바뀐지 오래다. 왜 그런지 세계적으로 순위가 많이 떨어지는 성과를 보여주는 대학의 교수들은 젖혀두고 OECD 최고의 성취도를 만들어내는 초중등 교사들만 죽어라고 두드려 패는 날이 되었다. 평소에도 교사 때리기가 국민스포츠인 나라지만 5월 15일은 이 국민스포츠의 결승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승의 은혜’라는 형식적이고 간드러진 말조차 안 나온지 무척 오래되었다. 너무도 상투적이라 듣기에도 지루한 ‘직업으로서의 교사만 있고 진정한 스승은 찾기 어려워졌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여기저기서 들린다.

 

우습기 짝이 없다. 내가 처음 교직에 들어선 26년 전에도 “옛날에는 스승이 있었는데, 지금은 직업으로서의 교사만 있다.”는 탄식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부터 20년 전 교사들이 지금 교사들보다 스승에 더 가까웠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럼 40년 전의 교사들은? 오, 노우! 무자비한 체벌과 파렴치한 촌지로 가득했던 시대가 아닌가? 자기가 가르치는 교과의 기본적인 내용조차 허덕이던 교사들이 득실거리던 시대가 아닌가? 스승이라는 고상한 가치는 커녕 기본적인 직업윤리라도 갖췄으면 하는 그런 교사들이 득실거리면서 자기들의 컴플렉스를 폭력으로 해소했던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옛날에는 스승, 요즘에는 그저 직업이라고?

 

더 이상한 것은 요즘 교사 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들, 가령 **연대 간부출신 운동가들이나 정부 요직에 계신 분들이 가지고 있는 교사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바로 20년 전 4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아니 저 주장대로라면 스승이 득실거렸을 시대였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교사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그들과 전혀 다른 오늘날의 교사들을 비난하고, 그러면서 과거에는 스승이 있었는데 하면서 탄식하는 것이다.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하긴 교사 때리기에 언제 논리가 있었나?

 

이젠 두드려 맞는 것도 지친다. 스승 씩으로 대접해주기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직업인으로서 교사 따위로 불러도 좋다. 그러니 직업인으로서의 온당한 권리나 제대로 누렸으면 한다.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라고 되어 있는 초중등 교육법상의 권리나 온전히 누렸으면 한다. “행정사무와 기타사무는 직원의 업무” 라고 분명히 법에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행정사무만 직원이 담당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늘어나는 새로운 행정사무나 기타사무는 생기는 족족 교사가 담당해야 하는 일이나 없었으면 한다. 교사가 학교 전산망 보안 유지하고, CC카메라 유지보수하고 관련 실태 공문 작성하느라 시간을 하얗게 보내는 일이나 없었으면 한다. 그래서 교육이 아닌 기타 사무를 담당하라고 했더니 그걸 비정규직에게 갑질한다며 진보 언론에서 기획특집으로 매주 연재까지 하는 상황이나 없었으면 한다. 직업인으로서 교사이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무슨 스승 씩이나 바라겠는가?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교사는 교육자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교육정책을 정하는 자리에도 초청받지 못하고, 설사 초청된다 해도 학생대표, 학부모대표, 학교비정규직 대표, 공무원노조 대표와 같은 자격으로 그저 의견집단의 하나로 불려갈 뿐이다. 교육전문가가 아니라 그저 일반인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이 주제에 무슨 스승 씩이나 바라겠는가? 우리나라 교사들은 국회의원, 시장, 대통령 선거도 아닌, 자신들의 업무와 직결된 교육감 선거에서조차 자기 의견을 내놓으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징계를 받는다. 이 주제에 무슨 스승 씩이나 바라겠는가?

 

우리나라 교사들은 아무 약속없이 학부모가 난입해서 학생들 보는 앞에서 폭행을 가해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밤낮없이 사생활도 없이 민원전화에 시달려도 누구 하나 돌아봐주는 사람 없다. 장기결석생이 걱정되어 가택방문했다가 주거침입죄로 고발당하고 폭행까지 당한다. 학교 폭력이 발생해도 개입해서 해결할 권한도 없이 무조건 학폭위에 신고해서 넘겨야만 하고, 그러면서 정작 학폭위 결정에 대한 불만 민원은 혼자 다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 수업준비 안한다고, 연구 안한다고 게으른 세금도둑이라고 손가락질이나 당한다. 그러면서 막상 수업이 없는 방학기간을 그저 노는 시간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아니, 그럼 대체 언제 공부하고 준비하란 말인가? 설사 공부 안하고 쉬기만 한다고 쳐도 그렇다. 그렇게 시달렸으면 한 학기 마치고 좀 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미국 학교는 방학 때 월급 안준다고? 거긴 애초에 계약 하기를 월급이 아니라 연봉이다. 이런 하찮은 변명이나 하고 앉았어야 하는 주제에 무슨 스승 씩이나 바라겠는가?

 

5월 15일 하루 날 잡아서 교사 때리기 하는 거, 뭐 좋다. 그건 이미 면역이 되어 그러나보다 한다. 갑자기 신문에 교사 때리기 내용이 늘어나면 “아 5월 15일이 가까워졌군” 하며 달력을 맞춘다. 그러니 때리려면 때리고 국민 스포츠를 마음껏 즐기시라. 다만 바라는 것은 그놈의 스승 타령 좀 그만두어달라. 교사 노롯조차 온전히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승’ 어쩌구 하는 말은, 더군다나 표창도 하고 기념식도 하는 것은 때리기보다 더 싫다. 솔직히 내 귀에는 약올리고 조롱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마 다른 35만 동료 교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이 놈의 스승 타령 집어치우고, 이 놈의 스승의 날도 집어 치우자. 정부에 요구한다. 스승의 날을 국가기념일에서 정식으로 폐지하라.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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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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