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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두꺼비가 되어 입시괴물과 싸울까

#639 현병호, 교육매체 계간《민들레》발행인 2021.05.18

최근 아동학대 관련 뉴스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학교가 문을 닫고 부모와 아이들이 집에서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면서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학대당하는 아이들도 늘고 있지만 교사가 이를 발견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었다. 지난 일 년 사이에 일어난 아동학대 사건의 상당수는 학교가 제 기능을 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동학대는 우리 사회만의 문제도,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다.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진보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동학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아이들을 보호하는 제도도 보완되는 중이다. 2014년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고 「아동복지법」이 개정되어 가해자 처벌과 피해아동 보호가 대폭 강화되었다. 올해 1월에는 체벌권 조항을 삭제한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과 제도를 갖추는 일도 중요하지만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제 기능을 하기 힘들다. 학대의 양상은 다양하다. 법이 아무리 엄격해도 물리적 학대를 막을 수는 있어도 정신적 학대까지 막을 수는 없다. 약자를 대하는 문화가 그 사회의 수준을 결정한다. 아이들을 학대하는 사회에서는 장애인이나 동물도 학대당하기 십상이다. 아동학대는 약자를 대하는 문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문화적 배경과 역사에 대한 이해가 전제될 때 보다 현실적인 대응책도 가능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아이들은 약한 존재였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태어난 아이를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이를 마비키(間引き, 솎아내기)라 불렀다. 마치 밭에 뿌린 씨앗의 싹을 솎아내듯 한다는 말이다. 코카에시(子返し)라고도 불렀는데, 신에게 아이를 되돌려준다는 뜻이다. 오늘날 택배로 받은 상품을 반품하듯 당시에는 영아살해가 별 죄책감 없이 이루어졌다. 당시 일본에서 활동했던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는 『일본사』에서 “일본의 여성들은 기를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면 모두 아기의 목을 다리로 눌러 죽여버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에도시대는 전쟁 없이 사회가 안정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는데, 3천만 명 정도에서 2백 년 가까이 인구가 그다지 늘지 않았다.1 온천이 발달하고 위생 관념이 비교적 일찍 생겨난 일본에서는 자연적인 유아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생산력이 인구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영아 살해로 이어진 것이다. 셋 이상의 자녀를 둔 가정이 드물 정도로 마비키는 에도시대 일본의 보편적인 관습이었다.

 

그나마 관서지방은 해외무역이 번성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경제가 발전한 반면, 관동과 동북지방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업 지역이었다. 농업 생산력이 따라주지 않고 봉건영주들의 수탈을 피할 수 없었던 농민들의 자구책이 마비키로 나타난 것이다. 노부모를 산에 버리는 관습도 있었다.2 기아의 공포가 빚어낸 악습인 셈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마비키를 금지했지만 20세기 초까지도 이어졌다고 한다. 도덕의 문제 이전에 생산력의 문제이자 치세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아동유기와 영아살해 관습도 일본 못지않다. 서구사회에서 부모에 의한 직간접적인 아동학대는 19세기까지 별 양심의 가책 없이 이루어졌다.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에 의하면 프랑스에서 18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45퍼센트 정도는 10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 그럼에도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 민중들은 더욱 가난해졌고 성인들도 단명해서 계모가 급증했다. 계모에게 학대당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숲에 버려지거나 구걸에 내몰렸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 만연했던 ‘고양이 학살’은 약자들이 처한 극한적 상황을 말해준다.3

 

17~18세기 프랑스 도시에서는 갓난아이를 도시 근교에 사는 유모에게 맡기는 것이 사회적 관습이었다. 전 계층의 아이들이 유아 시기에 유모 손에서 자랐다(1780년 파리의 신생아 21,000명 중 2만 명이 유모에게 맡겨졌다). 무관심과 비위생적 환경 속에서 숱한 영아들이 죽어갔지만 친엄마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두세 명의 아이가 죽어나간 유모에게 또 아이를 맡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아이들은 운 좋게 살아남은 뒤에야 네댓 살 때 ‘친엄마’에게 ‘입양’되었다.4

 

산업혁명 이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19세기에는 인구폭발로 인한 기아의 공포가 일상적으로 실감되는 문제였다. 인구는 기하급수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은 산술급수로 증가한다는 이론에 근거한 맬서스의 『인구론』 출간(1798년) 즈음부터 기아의 공포는 150년 가까이 인류를 짓눌렀다. 오늘날 문명중독 상태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은 실감하지 못하지만,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기아의 공포는 보편적 현상이었다. 20세기 초 프리츠 하버가 질소비료를 발명하면서 인류는 비로소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 속 학대받는 아이들

 

민간에 전승되어오는 민담이나 설화 속에는 아동유기나 학대와 관련된 이야기가 적지 않다. 어린 남매가 부모에게 버림받고 숲을 헤매면서 고난을 겪는 독일 민담 ‘헨젤과 그레텔’도 그런 이야기다. 19세기 이후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근대적 가족 개념이 생겨나면서 자식을 버리는 것에 대한 심리적 금기가 작동하여 이야기 속에서 친모는 계모로 바뀌고,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행위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가 위험에 처하는 형태로 굴절된다.

 

이 이야기들은 궁핍한 시대에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비극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 민담에는 괴물이나 신적 존재에게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은혜 갚은 두꺼비, 에밀레종 설화, 심청전 등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아이는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의 (여자) 아이다. 지네에게 제물로 바쳐진 덕이는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이다. 그 마을의 가장 약자라고 볼 수 있다. 에밀레종에 제물로 바쳐진 아이도 시주조차 할 수 없었던 가난한 홀어미의 아이였다. 심청이는 눈 먼 홀아비의 딸이다. 돈 있고 권세 있는 부모를 둔 아이가 제물로 바쳐지는 이야기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은혜 갚은 두꺼비’에서는 덕이가 제 먹기에도 모자란 밥을 나눠주며 기른 두꺼비가 덕이를 구한다. 이 옛이야기를 듣거나 책에서 읽은 아이들은 대개 두꺼비에게 관심이 쏠려 다른 것은 생각치 않지만, 조금 생각이 별나거나 삐딱한 아이라면 자기 또래의 여자아이를 괴물에게 제물로 바치는 비정한 어른들에 대해 한 번쯤 의문을 품을 법도 하다.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 마을에서 날마다 보고 지내는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어른들이라니! 약자에 대한 연민이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는 어른들은 이야기 속에서 내내 뒷전에 숨어 있을 따름이다.

 

유아사망률이 높고 아이 목숨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시대였다 해도 그렇게 아이를 제물로 바치고서 마을이 과연 안녕할 수 있을까? 비록 이야기라 하지만 말이 안 된다. 그런 심성을 지닌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공동체성을 지녔을 리가 없고, 아이를 잃은 집집마다 웃음꽃이 필 리가 없다. 아이들인들 어른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여차하면 마을을 탈출할 꿈을 꾸지 않을까? 하지만 저 민담들은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약자가 희생당하는 현실을.

 

심청이는 공양미 삼백 석에 장사꾼들에게 팔려 인당수에 제물로 바쳐졌다가 연꽃 봉오리 속에 구조되어 왕비의 자리에까지 오르지만, 가난한 집 아이가 장사꾼들에게 제물로 팔려가는 것을 막지 못하는 사회에서나 구전될 법한 슬픈 이야기다. 장사꾼들이 저들 살겠다고 여자아이를 바다 속에 수장시키는 것이 이 세상의 냉정한 현실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효심에 감동할 용왕도 없고, 연꽃이 구명정 노릇을 해줄 리도 만무하니, 뒷이야기는 희망사항이라고 봐야 한다.

 

위험에 맞닥뜨렸을 때 약자인 아이를 희생시키는 것은 내부지향적이고 과거지향적인 부족사회의 특징이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은 아기장수 우투리 이야기도 부족사회의 전형적인 민담이다. 외부의 적보다 부족사회 내부의 권력 서열에 위협당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심지어 우투리는 범상찮은 아이에 지레 겁먹은 부모에 의해 아기 때 살해된다. 영아살해인 셈이다. 무덤에서 콩과 팥이 변한 군사들과 함께 다시 살아나려던 우투리를 이번에는 관군이 와서 죽인다. 부족(국가)과 부모가 손잡고 기성질서를 위협하는 아이를 억압하는 구조다.

 

 

새로운 민담이 필요한 시대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일은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다만 베이비박스를 설치하거나 해서 유기 아동을 돌보는 사회적 장치를 갖추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대기근 같은 재해가 아니어도, 아이를 낳았지만 기르기 힘든 사정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나 있기 마련이다. 원치 않았던 아이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사람들도 있고, 평범한 부모들 가운데도 아이한테서 벗어나고 싶은 무의식적인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숨겨진 욕망이 괴담 같은 이야기의 형태로 회자된다. 현대의 민담인 도시전설은 그렇게 생겨난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레 부모가 되어버린 이들 중에는 아이를 학대하면서 세상에 대한 화풀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름날 뙤약볕 아래 주차된 차 안에 어린아이를 두고 내렸다가 아이가 사망하는 사건은 부주의로 인한 사고로 간주되지만, 도시전설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아기 침대를 자동차 지붕 위에 올려두고 젊은 부부가 언쟁을 하다 깜박 잊고 그대로 출발해서는 한참 뒤에야 알아차린다는 이야기는 아동유기 민담의 변형된 버전이다.

 

동서를 불문하고 아동을 보호하는 문화는 근대에 접어들어서야 생겨났다. 한국 사회의 경우 유교의 영향으로 예로부터 친권이 강한 편이었다. 아동인권에 대한 의식은 동학운동 이후 방정환을 거치면서 서서히 생겨났지만, 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들의 생존권보다 부모의 친권이 우선하는 것이 현실이다.5 1998년 영훈이 남매 사건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면서 ‘가정폭력범죄 및 성폭력범죄에 대한 특례법’이 제정되어 직계존속이라 하더라도 고소할 수 있게 된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서구에서도 아이와 여성을 보호한다는 개념이 보편화된 건 20세기 들어서다. 18세기 무렵 ‘아동기’라는 개념이 생겨났지만, 산업혁명 초기만 해도 아동노동 착취는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였다. 19세기 들어서 아동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싹트면서 의무교육제도가 생겨났다. 이 제도는 아이들을 노동착취에서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국가가 바라는 인적자원으로 양성하려는 취지도 있었다.

 

의무교육제도 덕분에 아이들은 부모와 자본가들로부터 학대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된 반면 다른 한편으로 이제 국가가 관리하는 인적자원 신세가 되었다. 국가의 보호 아래 들어간 아이들은 또 다른 억압 상황에 놓이게 된 셈이다. 자녀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부모들은 국가주도 교육에 발맞춰 아이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공장 대신 학교에 갇힌 아이들은 기계노동 대신 학습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기댈 곳 없이 극심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은 학교나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국가와 부모가 손을 맞잡고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세운 것이다.

 

국가주도 공교육이 아이들을 인적자원으로 간주하는 것은 근대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진보적인 정권도 기본 노선은 다르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당시 교육부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뀐 것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선착순 달리기를 강요하는 학교 시스템에 사교육 시장까지 가세하면서 아이들은 밤낮으로 학습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아이를 제물로 바치던 시대가 가고 이제는 아이를 떠받드는 시대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아이들의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지네괴물이 입시괴물로 바뀌었을 뿐.

 

하지만 입시괴물은 훨씬 거대해서 아이 한두 명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 아이도 부잣집 아이도 제물 신세를 피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입시 동굴에서 운 좋게 살아남는 아이들은 대체로 부잣집 아이들이니, 예나 제나 없는 집 아이들의 운명은 그리 다르지 않다. 옛이야기에서 덕이를 구한 것은 덕이보다 더 약자였던 두꺼비였다. 영웅이 나타나 불칼을 휘둘러 괴물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아이한테 밥풀을 얻어먹고 살던 두꺼비가 자기 목숨을 던져 아이를 구한다. 의리의 연대다.

 

교육개혁의 칼날도 입시괴물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영웅을 기다릴 일이 아니라 약자들이 연대하여 스스로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무책임한 어른들과 무력한 아이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전승되어야 한다. ‘아기장수 우투리’처럼 서글픈 이야기도 그만 전승할 일이다. 아기장수를 지키는 어른과 그런 어른다운 어른들을 보고 자라 진짜 어른이 된 아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이 시대의 새로운 민담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오늘날 두꺼비의 역할을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부모일까, 교사일까. 현실에서 덕이네 부모는 밥벌이도 힘겨운 상황이니, 그나마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사들은 비록 국가의 녹을 먹는 처지이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두꺼비가 되어 입시괴물과 싸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많은 부모들이 괴물과 한패가 되어 아이들을 동굴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므로 쉽지 않은 일이다. 용기 있는 교사들의 연대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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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1721년부터 에도 막부는 정기적인 인구조사를 실시했는데, 1721년 약 3천만 명이던 인구가 150년이 지난 메이지 시대에도 3천2백만 명 정도에 그쳤다.
  2. 195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나라야마 부시코>에 마비키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덤덤하게 묘사되고 있다. 식구를 줄이기 위해 부모를 산에 버리던 관습을 영화화 한 것이다. 일본에 있던 관습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에 의해 고려의 관습으로 왜곡되어 고려장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3. 로버트 단턴, 『고양이 대학살』, 조한욱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6
  4.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만들어진 모성』, 심성은 옮김, 동녘, 2009
  5. 형사소송법에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고소하지 못한다”(제224조)라는 조항이 아직도 건재하다.
교육매체 계간《민들레》발행인 현병호

교육 매체 계간 《민들레》 발행인. 저서로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이 있고, 《대안교육 20년을 말하다》, 《재난의 시대,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다》 외 여러 권을 함께 썼다.  옮긴 책으로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 《소통하는 신체》(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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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1. 김태균 수정 삭제

    입시괴물을 잡아줄 어여쁜 두꺼비가 누굴까요? 입시괴물이 사라진 학교를 상상하니 참 많은 것이 떠오르네요. ‘학벌없는사회’에 대한 운동부터 최근에는 채용까지 고민하는 움직임이 있는데…이러한 것 모두가 과도한 경쟁 문화가 가져온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들이 부디 결실을 이루기를 바라며…많은 두꺼비들이 등장하길 바랍니다~

  2. 배근우 수정 삭제

    누가 두꺼비가 되어 싸워줄까요. 입시와 입시 위주의 주지주의 교육 풍토가 바뀌지 않는 이상 아이들의 고통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의 변화와 동반해서 혹은 교육의 변화보다 발 빠르게 사회의 변화가 도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혹자의 말처럼 교육은 사회의 종속변수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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