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을 놓치는 서로의 어리석음

1. 왜 그렇게 말이 많냐고?
아이는 툭하면 아팠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런 기색을 조금은 알아차리긴 했지만, 때론 그런 점이 못 견디게 싫었다. 왜 그런지 스스로 짚어도 보고 짐작되는 점이 있기도 했지만, 그걸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아이에게 못마땅한 점이 보일 때마다 하나씩 그걸 마음속에 접어두고 있었다.
그건 그 아이 엄마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 아이의 엄마 영향이 작지 않다. 그러나 실은 아이의 어머님을 아직 뵌 적은 없다. 다만 늘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왔을 뿐이다.
두 자매가 함께 다니는데 아이는 그중 언니다. 두 아이가 나름대로 힘든 구석이 있지만, 언니인 아이는 늘 매사를 힘들어해서 보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툭하면 이런저런 일로 눈물 바람이다. 그중 하나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아프다는 것이다. 최근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픈 일이 더욱 잦아져 아예 학교를 못가거나, 학교에 가서도 제대로 수업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고 한다. 그런 힘겨움은 센터 생활에도 이어져 하루 걸러 결석을 하기에 이르렀다.
차라리 무엇이 힘들다고 제대로 표현이라도 했으면 상황이 좀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파서 올 수도 없고, 아무것도 못 하겠다는 데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아이들이 조금만 건드리거나 장난을 해서 마음에 안 들면 눈물 바람을 하거나, 사납게 쏘아붙였다. 제 마음에 맞는 대로, 제가 원하는 대로, 저 편한 대로 그렇게만 센터를 다니려 하는 것 같아 언젠가부터 아이의 행동이 곱게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아이가 센터에는 벌써 서너 명이나 되었다. 그중에는 벌써 그만두라고 수차례 이야기를 했지만 본인이 싫다고 버티는 아이가 있고, 또 본인은 정작 그만두고 싶은데 부모님 성화에 억지로 다니는 아이도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공교롭게 모두 남학생들이었다.
보통 고학년이 될수록 아이들은 센터를 다니는데 흥미를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마음에 맞는 친구라도 있는 경우에는 괜찮지만, 단짝 친구도 없고 센터 프로그램에도 딱히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마치 곧 끈 떨어질 연이 날아가 버릴 것처럼 언제나 위태위태해 보인다. 이런 일들은 보통 남학생들에게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여학생들은 고학년이 될 때까지 센터를 다니면 일정하게 생활이 잡혀서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센터를 그만두지 않는다. 따라서 센터 교사들도 여학생들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상대적으로 덜 하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건 내 생각일 뿐이고, 아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 날도 아이는 배가 아파서 학교에서도 양호실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며 센터를 못 가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좀 있으니 아이의 학습지 교사가 센터로 찾아왔다. 그리고 오늘 수업을 함께 하기로 했다며 아이를 찾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의 일인데, 나는 그날 괜한 오지랖을 떨었다.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선생님이 오셨으니 얼른 센터에 와서 공부를 하고 가라고 아이를 재촉한 것이다. 그런 재촉이 힘겨웠던지 아이는 엄마에게 하소연을 한 모양이고, 득달같이 어머니께서 다시 전화가 걸어왔다.
평소에도 말씀하시는 투가 별로라고 생각한 적이 많아서 나는 선입견을 갖고 무뚝뚝하게 아이가 센터에 와서 공부를 하고 가야 할 것 같다고, 선생님께서 와서 기다린다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님은 안 된다고 말씀을 하시다가 흥분이 되셨는지, 왜 이렇게 말이 많냐고, 우리 아이가 아파서 못 가겠다는데 왜 자꾸 오라고 하냐고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하셨다. 그러더니 학습지 교사를 바꿔 달라 하셔서, 지난번에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왜 귀찮게 하냐는 식으로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렇게 일은 끝나버렸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는 대로 일일이 받아주는 것이 과연 아이를 위한 일일까를 아이나 부모님과 상의 없이 혼자 생각하고 결정한 나는 결국 그저 말 많은 교사가 되어버렸다. 사정도 잘 모른 채 센터를 찾은 학습지 교사는 불벼락만 맞고 고객 한 명을 잃고 말았다. 나는 왜 그렇게 말이 많냐는 어머님 이야기에 솔직히 충격을 받아서 더이상 무엇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 말이 많아요?’라는 말이 잊혀지지도, 소화가 되지도 않아서 혼자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론 그 아이를 보는 게 조금씩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아프고, 맘 상하고, 기분 나쁜 것을 참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네가 그렇게 힘들 때 남들도 다 힘들단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무슨 내색을 한 건 아니지만 점점 더 나는 아이를 잘 돌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갔던 건지도 모른다.
실은 그런 일은 나만 겪은 것도 아니었다. 우루루 아이들이 집으로 몰려가다가 일이 생겨도 그 부모님은 상대 아이를 신경질적으로 나무라는 데만 힘을 쏟았다. 자신의 아이가 어떤 동기를 제공하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볼 겨를은 없이, 화를 내며 센터를 찾아오신 일도 있었다. 자신의 아이가 당한 일에만 격분해서 소리를 지르고 흥분을 가누질 못하셨다. 그리고 그 아이가 흥분을 해서 성질을 부릴 때에는 그런 어머님의 모습이 엿보여 속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오다가다한 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충동적으로 아이를 몰아세웠다. 선택을 하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독 전화를 해서 계속 아이에게 이런저런 일을 확인하고, 또 아이도 사소한 결정 하나도 엄마에게 보고를 하듯 이야기를 하는 편이라 나와 대화를 하는 중에도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어머님을 바꾸어달라고 해서 지금 아이와 하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집에서 이야기를 하셔서 결정을 하시는 편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아이에게는 그렇게 계속 아파서 센터를 다니기 힘들면 센터를 그만 다니는 일을 한 번 고려해보는 편이 좋겠고, 또 엄마에게도 말씀을 드렸으니 오늘 밤 의논을 해서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약 센터를 다닌다면 지금처럼 툭하면 아파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은 곤란하니 잘 생각해보고 다닐지를 결정하라고 하였다. 아이는 뜻밖의 이야기에 놀란 것인지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그럼 그만 다니겠다고 하였다.
2. 잃고 나야 보이는 것들
그동안의 아이들은 그만두라고 하면 보통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 마련이어서 나는 이런 협박을 손쉽게 써왔다. “너 그런 식으로 할 거면 그만두거라!”하고 말이다. 이런 내게 진절머리가 난 어떤 아이는 “무슨 공부방 선생님이 툭하면 그만두라고 하냐?”고 제대로 맞받아친 적도 있었다. 그것은 사실 횡포나 다름없는 일이었는데, 어느 틈에 나는 그런 고얀 버릇이 들어 버렸다. 그러다가 이렇게 아이가 정말 그만둔다고 하면 심장이 쿵 내려앉아 버리면서 말이다.
그동안 저도 그런 생활이 힘들었던지 말을 내뱉고 아이는 홀가분한 표정이 되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은 것도 같았다. 나는 뒤늦게 “선생님이 정말 원하는 바는 실은 네가 빠지지 않고 잘 다니는 것이야.”라고 덧붙였지만 쓸데없는 사족이었다. 이미 끝난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결정이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것도 사실이다. 늘 서로 조금씩은 부딪칠 수밖에 없는 공부방 생활에서 그럴 때마다 한편으론 울고, 또 한편으로는 심각하게 항의를 해오는 아이와 부모님이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센터에서 생활을 할 때 똑 부러지게 잘 하는 것도 아니어서, 남들은 저를 봐줘야 하고, 저는 남들을 통 봐주지 않는 것에 대해 늘 약간 울화가 치밀던 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런 말을 해서 아이가 그만두는 상황이 절대 후회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왜 그런 소리를 괜히 해 가지고, 왜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해서….자책을 거듭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이의 퇴소 결정은 다음날 동생을 통해 들었다. 동생 아이는 언니야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는 센터를 계속 다닐 것이라며 언니의 결정을 덤덤히 전했다. 그런 일을 잘 모르는 다른 교사들은 이 깜짝 소식에 모두 정말 놀랐다. 난 부끄럽지만 내가 저지른 짓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남아준 동생 아이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3.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센터장인 내게 아무도 대놓고 왜 그런 입방정을 떨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는 소리를 하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진 않는다. 아무 때나 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서 사는 것으로 치면 나 역시 그 아이에 못지않다는 걸 말이다. 그것을 자신에게는 괜찮다고 하고, 남에게는 안된다고 했으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위선이다.
아이들이 센터를 놀이터처럼 생각하지 않고 힘들고 오고 싶지 않은 곳으로 느꼈다면 그것은 운영하는 나의 책임인데, 그것을 아이들의 인내심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탓만 해왔다. 소중히 여겨주지 않고 함부로 대한다고 성질만 냈다. 그렇게 별로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진지하게 대하기보다 서로 보지 말자고, 나는 너 아니어도 다른 아이가 있으니 괜찮다고 관계를 폭력적으로 정리하는 것에만 급급해했다. 그 아이가 오지 않아서 흔들릴 관계들을 염려하며 그제야 그 아이가 발하는 힘을 느끼며 어쩔 수 없는 결정에 안절부절 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어머님께만은 빌고 싶지 않은 엉뚱한 마음도 똬리를 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는 소용없는 현실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놓고 이제 와 왜 이러냐고 조롱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은 후회를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일을 다 친 뒤에 뒤늦게 센터 교사들에게 다시는 아이들에게 함부로 그만두라는 소리를 하지 않겠다고 하니, 늘 평온하게 아이를 대하던 교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웃기만 한다. 그 말 없는 웃음에 나는 더 부끄러웠다. 그러고 보니 정말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 하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더 단단해졌다. 그것은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교사들이 인내심을 내지 못하고 그런 식으로 군다면 결국 아이들 역시 그렇게 결심할 수밖에 없을 뿐이란 것을 이제야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며칠 후 또 한 명의 아이가 스스로 관두겠다고 나섰다. 늘 적응을 못 해서 센터를 억지로 다니던 모습을 한 아이다. 이 아이에게도 난 역시 그만두란 소리를 과거에 했었다. 하지만 이 일이 있은 후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란 결심을 했던 터여서, 늘 우두커니 서서 망설이는 아이를 데려다 마련한 것을 보여주고 혼자 흐뭇해한 바로 그 다음날에 일어난 일이라 마음이 아팠다.
아이의 어머님은 너무 미안해하며 아이가 적성이 안 맞아서 학원을 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늘 학습 현장에서는 빛을 발하던 아이니 어쩌면 잘한 결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또 한 번 세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제는 노력조차 할 기회도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머님은 동생 아이가 일곱 살인데 학교를 다니게 되면 꼭 센터를 보내고 싶다는 말씀을 남겨 주셔서 그나마 조금 진정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호되게 입버릇을 고치고 있다. 그동안 어질지 못했던 심성에 대해 반성도 해보지만 언제 욱하는 성질이 터질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다. 어질고 고운 심성은 아마도 타고나는 것이겠지라는 생각에 지레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고쳐 사는 일이 힘든 것인데, 나는 잘도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말라 요구하며 살아왔다고 뒤늦은 반성을 해본다. 나는 입버릇 하나 고치기도 이렇게 힘든데 말이다.
돌봄은 교사에서 아이에게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며 어우러지는 일이란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서 될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정말 못 견디게 아픈 것일 수도 있었는데….그러면 더 잘 돌봤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꼭 이렇게 잃고 나야 깨닫는다. 그렇게 난 아직도 어리석기만 하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현)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얼마 전 본인의 자녀가 학교 안에서 받은 불이익에 분노하여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학교 교실로 쳐들어온 한 학생의 어머니 얘기를 접했습니다. 학교가 이럴진대, 지역아동센터는 더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지역아동센터의 주 역할을 돌봄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교사들에 대한 존중이 더 낮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지나간 ‘스승의 날’을 생각하며, 스승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힘내십시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