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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고등학교 교과 평가, 수능, 고교체제, 교육개혁, 새로운 학교 – 서론 2 –

#631 김경범, 전 서울대학교 교수 2021.05.04

지난 3월 칼럼(서론 1)에 이어, 이 글은 서론의 나머지 부분으로 여기서는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인식과 담론을 재고해 보려고 한다. ‘서론 1’의 내용은 현재 고등학교 내신 체제와 성취평가제 확산을 두고 공정성과 변별력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변별력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상대평가만 변별력이 있고 절대평가(등급제 혹은 원점수)는 변별력이 없다는 주장은 평가 방식을 단일 전형 요소로 한정하여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는 전제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IB 디플로마 과정은 7점 만점 체제이지만, 많은 대학은 이것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복수의 전형 요소를 활용하여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절대평가로도 합/불을 가릴 수 있는 변별력을 얻을 수 있다.

 

2. 변별력과 공정성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표준점수도, 백분위도, 등급도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변별력이 너무 강해도 불공정성이 커지고, 점수를 조합해도 불공정성이 커질 수 있다. 기계적으로 산출된 점수를 공정하게 여기는 이유가 고등학교와 대학에 대한 신뢰 부족 때문이라면, 국가가 개입하여 신뢰를 담보할 장치를 만들면 될 일이다.

 

 

내신 vs. 수능 : 배분 비율 논의는 무의미했고, 앞으로도 무의미하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홍길동은 모든 학생을 내신으로 선발하자고 주장하고, 이몽룡은 수능으로 선발하자고 주장한다. 이몽룡은 고등학교 간 학력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져 있는 현실에서 내신 선발은 공정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홍길동은 학교 간 격차를 인정하지 않아야 오히려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갈 토대를 만드는 공정한 입시가 된다고 강변한다. 현재 조건에서 홍길동의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대학 입장에서 내신 전형은 일반고를 배려하기 위한 목적 혹은 기계적으로 쉽게 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다. 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에는 내신을 많이 반영해야 학교 교육이 정상화된다는 주장이 성행했지만, 내신의 타당성은 학교 수업이 학생의 역량을 키워준다는 전제에서만 유효하다. 내신을 반영한다고 무조건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지는 않는다. 내신을 많이 반영하면 오히려 학생에 대한 교사의 통제력이 강화되는데, 이 또한 교사가 학생의 역량을 키우는 수업과 활동을 수행하고 지원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바람직하다. 대개 우리는 학교가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을 수행하는지는 무시하거나 포기하고, 대학입시의 관점으로만 내신을 바라본다. 그래서 내신 논의는 학교 간 학력 차이가 이슈이다. 수능을 기준으로 본다면 학교 간 성적 차이는 심각하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단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대학입시의 관점에서 이몽룡은 학교 간 차이를 해소하는 공정한 선발 도구가 모든 학생이 같은 날 같은 시험을 동시에 치러서 얻은 수능 점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홍길동은 수능 준비로 인해 학교 교육이 파행되고, 학생이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없으며, 경제적 배경이 좋은 학생(혹은 그로 인해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에게 유리하므로 공정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외고, 자사고, 사교육 기관이 몰려 있는 지역(강남, 목동, 중계, 수성구 등), 그리고 재수생이 대개 수능 성적이 높게 나온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자 이몽룡은 내신과 수능으로 각각 50%씩 선발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홍길동은 내신 80% + 수능 20%를 제시한다. 두 사람은 논쟁 끝에 내신 60% + 수능 40%로 타협한다.

 

수능 100% 혹은 내신 100%에서 내신 60% + 수능 40%가 되었다면, 또 내신 80% + 수능 20%에서 내신 60% + 수능 40%가 되었다면, 이몽룡과 홍길동이 각각 지적한 내신 전형과 수능 전형의 문제점은 해결되고, 입시는 좀 더 공정해진 것일까. 아니다. 비율 분배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라 회피하기 위한 선택이다. 더구나 분배 비율이 80:20에서 60:40으로 달라지면서 결과적 공정성은 오히려 훼손되었다. 차별을 심화시키는 “공정”을 과연 공정으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과거 한때는 그것이 공정했을 수 있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 그리고 미래에 과거의 공정은 유효하지 않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기회와 과정의 공정성을 논의하지도 못하고 내신 60% + 수능 40%로 회피하면서, 내신 전형의 문제점과 수능 전형의 문제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가 홍길동이고 이몽룡이었다. 이와 같은 비율 분배 방식은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결과만을 약간 조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잠재적 피해자를 만든다. 예를 들면, A 학교 1등은 내신이 1.00등급 수능 백분위는 93%이고, B 학교 1등은 내신 1.20등급 수능 96%인데, A 학교 1등이 합격한 모집 단위에서 B 학교 1등이 내신과 수능 전형 모두에서 커트라인 바로 밑에서 불합격되었다면, 불합격한 학생은 내신 60% + 수능 40% 합의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분배 조합에서도 이런 사례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현 정부가 정시를 확대하고 학생부 기록을 대폭 축소하면서, 이제 대학입시는 내신과 수능으로 귀결되었다. 사실상 과도한 변별력을 가진 점수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 시대와 맞물리며 학교 현장은 과거로 급격하게 회귀하여, 오로지 점수 따는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창의성과 문제해결력, 개인의 소질과 적성, 협력과 소통과 공감, 책임감, 도덕적 인성, 인문학적 상상력, 과학적 창의력,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 모든 학생의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 등 현 정부가 쓰고 있는 이 모든 단어는 지금 학교 현장에 없다. 지금 학교 현장에는 내신과 수능만 있다. 앞으로 상황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현재 대학입시에서 서울 상위권 대학의 경우 내신의 힘(변별력 and/or 선발 인원 규모)과 수능의 힘을 6:4로 가정해 보자. 수시 이월 인원 때문에 실제로는 5:5쯤 혹은 5.5:4.5쯤이 되고, 내신과 수능 모두 강한 변별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난 2월 교육부 발표에 따라 2025학년도부터 성취평가제가 선택과목 전체로 확대되면, 202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내신의 변별력과 타당성은 심각하게 낮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의 힘을 지금 그대로 유지하면, 상대적으로 수능의 힘은 압도적으로 강해져서 80년대 학력고사 시대나 90년대 수능 시대가 미래에 재현된다. 앞으로 그렇게 된다면 고교학점제도 없고, 미래 교육도 없으며, 학생 개인별 맞춤형 교육도 없고, 혁신 교육도 없으며, 4차 산업혁명도 없다. 오로지 “공정”의 가면을 쓴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만 남는다.

 

현재는 수능과 내신 모두 과도한 변별력을 갖고 있지만, 이미 정부는 내신의 변별력 저하를 예고하였으니, 필연적으로 수능의 변별력도 줄어든다고 예상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상황이다. 수능과 내신의 힘을 동시에 떨어뜨리면, 사람들은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사실은 뭔가를 더 하지 않아도 변별력에 문제가 없고 변별력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만약 국가가 새로운 평가 도구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 전에 가장 먼저 할 일은 모든 학생에게 태블릿을 지급하고 학교 현장에 최상급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미 교육부가 코로나 사태 이후 부분적으로 시작한 사업이다. 다만 학교가 보유하는 게 아니라, 학생 개인 소유로 직접 주어야 한다. 무상교육에 입학지원금까지 주는데, 태블릿을 학생 개인에게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미 대구교육청이 학생에게 지급하고 있고, 다음 학기에는 대구 학생의 반 이상이 학교에서 태블릿을 갖게 된다. 내년에 어떤 정부가 새로 들어오더라도, 다음 정부는 최상급 와이파이와 태블릿을 모든 학생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고, 에듀테크는 매우 급격하고 빠르게 수업 현장으로 들어올 게 분명하다. 에듀테크의 적용과 진화는 내신 평가와 수능 평가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보안 문제를 걱정하겠지만, 태블릿으로 시험을 치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정부가 새로운 평가 도구를 만든다면 이미 알려진 대로 논·서술형 문항의 부분적 도입 즉 기본 선다형 문항과 논·서술형 문항의 조합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하지만 미래 세대의 변화와 수업 현장의 변화를 고려한다면, 컴퓨터 기반 논·서술형 문항의 전면 도입을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신처럼 수능의 힘도 낮춘다면, 학교 교육이 사실상 수능 준비를 위한 수단이 되는 현실을 타개하게 되며 새롭게 논의되는 수능은 학생의 역량을 키우려는 학교 교육에 보탬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수능 논의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의 조정이나 응시 과목 조합 수준이 아니라, 수능의 정체성을 재설계하는 수준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새로운 수능 논의 출발점은 미래 사회를 위한 내신 평가와 학교 교육의 총체적 변화이며, 여기에 맞춰 새로운 국가 단위 표준시험 체제를 설계해야 논의의 의미를 갖게 된다. 학생이 학교에서 키워온 역량을 평가하려면 어떤 문제를 만들고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질문은 이처럼 단순하다. 지금까지 못 만들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새로운 답을 찾아 나서려는 모험심이 필요하다. 여기서도 수능 문항의 타당성과 선택과목 체제의 공정성을 논의하지 않는다면, 수능 폐지와 그 이후의 대안을 논의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만약 국가가 새로운 도구를 만들지 않고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한다면, 소수 상위권 대학은 면접을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때의 면접은 1) 학생부 기반 면접의 충실화, 2) 사고력을 평가하는 옥스퍼드대학과 캠브리지대학의 면접 방식,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거나 둘 다를 조합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대학은 면접 자체를 시행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우리는 일 이년 후 변별력이 낮아진 수능과 내신 때문에 생긴 힘의 공백을 국가가 주도하여 메울지, 아니면 대학에 자율권을 주고(물론 정부는 이미 자율권을 주었다고 주장하지만) 대학 스스로 메울지를 두고 해묵은 자율권 논의를 다시 반복하게 될 것 같다.

 

앞으로 논의를 시작하고 결론을 찾고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몇 년 동안, 정부 정책의 모순은 현실 속에서 점점 더 강하게 질곡과 파열의 고통을 드러낼 것이다. 올해 새로운 수능이 도입되어 첫 시행을 앞두고 있고, 다음에 도입될 “좀 더 새로운 수능”은 올해 논의를 시작하여 2024년에 결정하고 2027년 말에 시행될 예정이다. 무려 앞으로 6년간 학교 현장이 정시 확대와 고교학점제라는 정부 정책의 모순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미 올해부터 내신의 변별력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작년까지 상대평가 체제를 유지하던 진로 선택과목이 성취평가제로 전환되었고, 2025년부터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서 선택과목 전체에 성취평가제가 확대된다. 특히 상위권 대학에서 기계적으로 산출한 내신의 변별력과 타당성은 매우 낮아졌다. 대학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서울에 있는 상위권 16개 대학은 정부 요구에 따라 2023학년도 정시모집을 40%로 늘렸다. 이 대학들도 정시 커트라인 저하와 추가모집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학생을 충원해야 하는 대부분 대학은 수시모집 인원을 최대한 늘렸다. 정시를 늘리면 학생을 충원하지 못할 위험이 더 커져서, 단순히 대학 총장이 물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대학이 문을 닫을 수 있다. 그래서 4년제 대학 전체로 보면 올해 정시 선발 비율인 24.3%에서 2023학년도에는 22.0%로 줄어든다. 그래도 추가모집에 나서는 대학은 점점 늘어나고 대학 파산은 피할 수 없다. 고등학생이라면 수능 혹은 내신을 준비하면 된다. 대학입시를 위한 창제 활동은 급속히 축소되고, 어떤 과목을 선택해서 수강할지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내신만으로도 갈 수 있는 대학은 많이 있다. 내신과 수능을 두고 정부 정책, 대학의 반응, 고등학교와 학생의 반응은 서로 엇갈린다. 교육과정은 앞으로 가라고 하는데 대학입시는 뒤로 가라고 하니 고등학교는 혼란스럽다. 학생은 줄어드는 데 대책이 없으니 대학도 혼란스럽다. 앞으로 최소한 6년간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전환기를 모두가 살아내야 하는데,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 정부는 해결할까, 회피할까. 그야말로 각자도생하는 형국이다.

 

내신과 수능의 분배 비율 논의, 즉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선발 비율 문제는 개별 대학의 학생 모집전략에 해당하는 정도의 사안인데, 우리 사회는 이 사안을 국가적 이슈로 끌어올려서 부질없는 논쟁과 공론화 과정을 치렀다. 국가가 커다란 연극판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배우로 또 누군가는 관객이 되어 무대 위에서 공연했고 무대 밖에서 관람했다. 내신과 수능의 분배 비율 논의를 다시 할 것인가. 아니다. 이제 그것은 대학에 맡겨두자. 우리가 다시 돌아와 거울 앞에서 진지하게 성찰할 첫 번째 이슈는 내신의 공정성과 타당성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슈는 수능 문항의 타당성과 점수 체제의 공정성이다. 논의의 수순(手順)이 바뀌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고, 그 결과 사교육 조장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으므로 순서가 중요하다. 수능을 먼저 논의하면 결과적으로 대학입시 중심 혹은 수능 중심의 고교 교육을 벗어나기 어렵다. 내신의 공정성과 타당성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학교 교육 중심의 대학입시를 만들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다. 세 번째 이슈는 대입 수시/정시 구조와 안정적 거버넌스이다. 매년 달라지는 대입제도, 정권마다 달라지는 수능, 모두의 관심사이자 당연한 가치지만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대입 공정성, 비정상적으로 진행되는 3학년 2학기 교육과정, 사교육에 의존하는 정시모집,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가. 고통과 모순은 학부모에서 새로운 학부모로 이어지지만, 정부는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신 ⇒ 수능 ⇒ 대학입시로 이어지는 일련의 이슈를 하나의 방향으로 정돈하여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설계해야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를 위한 총체적 교육개혁과 새로운 학교를 만들 수 있다. 유치원 의무교육화, 새로운 초중고 학교 교육, 파산과 붕괴의 길로 접어든 고등교육 생태계 복원, 평생교육의 일반화도 결코 대학입시와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 : 내신의 공정성과 타당성

 

내신이 공정해야 학교 교육 중심의 대학입시를 실현할 수 있고, 학생의 역량을 키우는 수업이 이루어져야 내신이 타당성을 갖는다. 내신은 단위 학교 내에서 지필고사(중간고사 + 기말고사)와 수행평가의 조합으로 산출되며, 대개 수행평가는 변별력이 매우 약한 평가이다. 고등학교 내신은 학교 내에서 공정하게 산출된다고 말할 수 있다. 아마도 고등학교 선생님들 사이에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학교 내에서 서로 다른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더라도 유불리가 생기지 않게 모두가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지필고사를 치르고 그 점수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입시에서 내신은 수능처럼 촘촘하게 줄을 세우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A고등학교 학생의 내신은 1.5등급이고, B고등학교 학생의 내신이 1.6등급인데, 이 두 학생이 교과 전형에 지원하여 A고등학교 학생이 붙고 B고등학교 학생이 떨어졌다. 이 결과를 합리화할 수 있는 논리는 단지 그것이 미리 정해진 규칙이라는 것뿐이다.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는가, 적성과 소질은 무엇인가, 잠재력이 더 있는가, 이런 질문과 무관하게 단지 사전에 규칙이 그렇게 정해졌으므로 그 규칙에 따라 나온 결과를 공정하다고 받아들인다. 마치 허수아비 게임을 하는 듯하다. 이론적으로는 학교 간 비교가 제한적인 내신을 활용하여 올해 대입에서 14만 8,506명이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선발된다. 이는 전체의 42.9%에 해당하고, 내년에는 44.2%로 더 늘어난다. 그러므로 이슈는 내신이라는 규칙, 기계적인 점수 산출 방식의 공정성과 타당성이다. 수능 전형의 점수 산출 방식도 규칙이고, 내신 전형의 점수 산출 방식도 단지 규칙일 뿐이다.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는 2025학년도 이후의 내신 체제 즉 성취평가제가 내신 평가의 약 2/3를 차지한다. 이때 내신의 공정성과 타당성이 우리가 논의할 대상이다. 미래의 이슈로 보이지만, 그 미래는 이미 올해부터 성취평가제가 적용되기 시작하였으므로 현재와 무관하지 않다. 2025학년도 이후에도 지금처럼 대부분 선다형 지필고사에 근거하여 성취평가를 할지, 3등급 혹은 5등급 성취평가는 어떻게 공정성과 타당성을 확보할지,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이 논의가 수능의 변별력과 형태를 결정하는데 직결되기 때문이다. 만약 “좀 더 새로운 수능”에서 논·서술형 문항을 도입한다면, 수행평가를 지금처럼 변별력 없는 방식으로 유지할 수 없으며, 선다형 지필고사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공정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가 미리 만들어져야 한다. 성적 부풀리기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교육청이 성적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 일정 비율 폭을 유지하도록 가이드를 만들어 학기마다 확인하겠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교사의 수업과 평가 자율권은 요원하고 학교 운영의 자율권도 사실상 지금과 다르지 않게 된다. 앞으로 내신 평가에서 논·서술형 문항 평가의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논의가 수능 논의보다 앞서야 하는데, 교육부의 어느 부서에서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기를 바란다. 여기에는 학교 내에서 내신 점수를 산출할 때 새로운 방식의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뿐만 아니라, 학교 간 비교가 가능한 좀 더 보편성을 지닌 지표로 어떻게 만들어 갈지도 포함된다. 내신이 학교 간 비교가 가능한 보편적 선발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수능의 정체성도 대폭 달라져야 한다. 이와 함께 미래의 내신 체제를 설계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개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1. 고등학교에서 공정하게 산출된 내신은 정말로 공정한 평가지표일까?
2. 내신으로 학생을 선발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학교 교육이 만들어질까?

 

첫 번째 질문에서는 우선 산출과정의 공정성 측면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산출과정의 공정성은 수행평가와 성취도 평가의 문제이다. 내신이 공정성을 담보하려면 평가의 일정 부분이 학교 담장을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단위 학교 밖 평가자 풀을 구성하거나 지역 내에서 여러 학교가 공동 평가단을 구성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IB 평가에서는 이미 실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물론 교사의 평가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겠지만. 두 번째 질문은 학교 수업의 이상과 현실의 문제이다. 학교 선생님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낼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정부의 계획과 교육청의 지침으로 되는 게 아니다. 현재는 학교 수업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어떻게 해야 역량을 키우고 그 역량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가 문서와 책에만 있다.

 

90년대 이후 내신 담론은 내신이 대입에 반영되어야 학교 교육이 정상화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신으로 학생을 선발하면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는 것일까. “공정한” 수능이 학교 교육 정상화를 방해한다고 말하지만, 지금의 “공정한” 내신도 수능과 같은 역할을 하기에 내신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된다. 수능을 비판하는 논리는 그대로 내신에도 적용될 수 있는 모순적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신과 수능의 분배 비율을 논의했다. 다음 글에서는 비록 부분적인 가능성에 그칠지라도 내신 체제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다루고, 이 주제는 새로운 수능 체제로 이어진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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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대학교 교수 김경범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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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김태균 수정 삭제

    교수님의 구체적이고 명쾌한 설명이 담긴 글은 항상 저의 부족함을 일깨워주고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평가’라는 꼬리가 ‘교육’이라는 몸통을 흔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 벗어나서 내신이 학생의 성장을 기록하고 이 성장을 더욱 촉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교육전문가는 물론, 교사, 학생, 학부모 등 전 사회가 관심을 갖고 더 나은 결과를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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