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대입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에 대한 논평] 새로운 대입제도 논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4월 11일 교육부가 ‘대학입학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발표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새로운 대입제도의 시안이라기보다 지난해 8월 이후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입제도와 관련하여 수렴한 시민단체 및 개인들의 의견과 전문가들의 정책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정책 결정 기초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에 요청한 주요 논의사항은 ‘선발 방법의 균형, 선발 시기, 수능 평가 방법’의 세 가지이다. 아마도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가 국민 참여에 의한 공론화 방식을 통해 이들 사안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조정하여 최종적인 대입제도 개편안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주요 언론의 분위기는 매우 비판적이다. 지난 7개월 여 동안 교육부는 무엇을 하고 이제 와서 국가교육회의에 공론화를 부탁하느냐는 비난에서부터 중요한 교육정책을 찬반 투표로 결정할 수 있느냐는 합리적인 지적까지 비판의 내용은 다양하다. 앞으로 4개월 동안 우리 사회는 작년에 이어 또 한 차례 입시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큰 홍역을 치르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모든 변화에는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단지 소모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쏟은 에너지만큼 우리 사회와 교육이 더 건강해지고 성장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된 입시제도 개편은 대개 발등의 불을 끄는 방식이어서 하나의 해결책은 얼마 못 가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현 정부의 교육부 역시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람쥐 쳇바퀴를 벗어나 우리 교육이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 달리 접근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우리 교육에 대한 장기적이고도 미래지향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급격한 사회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매일 매순간 보면서도 교육에 관한 우리 국민 대다수의 생각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2016년부터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모든 사람의 화두처럼 회자되기는 했지만, 정작 그러한 기술 변화에 학교교육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실사구시적인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실에서는 여전히 교과서 지식을 암기하고 선다형의 문제로 그 수준을 측정하며, 거기서 나타난 아이들의 상대적 서열이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결정적인 요소로 활용된다.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수능 상대평가-절대평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시대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나라들에서는 이러한 관행을 버린 지 오래이다. 아이들은 공동의 문제를 놓고 협력하면서 함께 지식과 문제해결력을 키우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 서열보다는 성취수준에 얼마나 가깝게 도달했는가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와 같이 입시위주의 교육 전통이 강했던 일본조차도 2012년부터 아이들의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키우기 위한 장기적이고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들 역시 입시제도 개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우리와 달리 선발방법 자체에 매달리기보다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를 먼저 고민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전형 방법을 마련하는 순서로 접근하고 있다.
2022학년도 대입제도나 수능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국민에게 약속한 발등의 불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불을 끄는 데만 급급해서는 지금까지의 혼란이 되풀이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상황을 악화시키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교육이 10년 뒤, 20년 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거기에 입각하여 역순으로 2022년의 입시제도 방향과 모양을 만들어가야 한다. 당장은 5지 선다형이나 상대평가가 대입 변별력을 보장해준다는 이유로 선호될 수 있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미래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없다면 이제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눈앞의 이해관계에 따른 찬반 여론을 따르기보다는 미래사회에 적합한 학교교육의 상을 먼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입전형 방법이나 수능 제도를 구안하는 연역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둘째, 공론화 방식에 의한 문제 해결 전략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원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은 우리 사회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고 숙의민주주의라는 것을 생각할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이 사안의 성격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특히 교육정책은 한편으로 고도의 전문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이기 때문에 공론화 방식으로는 본질을 놓친 채 국민들 사이의 갈등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여곡절 끝에 공론화 작업 참여자들이 다수결로 입시제도 개편안을 결정하더라도 국민들이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교육정책은 본질적으로 다수결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정책이 아무리 전문적이고 또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이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많은 국민들의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원전 문제의 공론화 방식과 달리 교육정책의 특성에 맞는 방식과 절차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 예로 프랑스가 2003년에 1년 동안 추진했던 국민대토론회 방식이나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 먼저 방안을 제시하고 다수 국민들이 그것을 검토하도록 했던 핀란드의 방식을 들 수 있다. 국가교육회의의 깊이 있는 고민과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셋째, 대입제도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공정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입제도가 모두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공정하다’는 말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고 또 부정확하게 이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수능이 학종보다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서울 강남 지역 학부모가 수능 정시 확대를 더 선호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수능이 공정하다’는 말의 실제 의미는 채점자의 주관이 작용하기 어려워 선발이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객관적이라고 해서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선천적인 능력이 비슷한 두 학생 중 하나는 부모의 도움으로 고액 과외를 받아 높은 점수를 받고 다른 학생은 그렇지 못하여 낮은 점수를 받았을 경우 단지 점수에 따라 합격 여부를 가리는 것을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OECD는 부모의 낮은 경제력 때문에 선천적인 능력이나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래사회에 필요한 기본적인 역량을 습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는 뜻으로 공정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력이나 선천적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이 중시된다.
이렇게 보면 학종을 불공정한 전형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학종은 정량 평가(점수)가 아닌 정성 평가(다양한 활동 내용)로 이루어진다. 어떤 학생이 수능에서 다소 낮은 점수를 받았더라도 그 학생이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탐구활동을 열심히 하고 타인과의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면, 입학사정관은 그 학생을 합격자로 선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런 결정을 불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외국 대학들은 오래 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학생들을 선발해 왔다. 물론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이 말하듯이 학종이 성적이 낮은 부유층 자녀들의 화려한 스펙 쌓기로 악용되는 사례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숫자로 표현되는 점수보다 학생의 삶 전체를 바탕으로 평가하는 것이 입학 후 성공적인 대학 생활을 예견하는 데 훨씬 더 적합하다는 국내외 대학들의 실증적인 연구 결과들, 그리고 학종을 계기로 학교교육이 점차 교과서 중심의 수업을 탈피하고 있다는 점들을 고려하면 학종의 긍정적인 측면도 적극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학종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교내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참여한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더 많은 진학 기회를 부여한다면 그만큼 그것은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 대입제도의 구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으로 학생 구성의 다양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유수한 외국 대학들은 학생들의 자질과 성적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전체적인 학생 구성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중요한 선발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국제간 교류 확대로 다양화된 사회에서 동질적인 문화나 계층 배경을 가진 학생들만 선발할 경우 세계에 대한 이해나 적응 능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 구성의 다양성은 다양한 계층을 대변할 사회 지도자의 다양화를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지나치게 동질적인 집단 구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대학들이 강남이나 명문 사립고 출신을 선호한다는 소문은 그 간접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명문고 선호나 우열반 구성도 동질 집단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근래에 들어 지역균형이나 기회균등 선발 등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비중이 너무 작고 특히 성적 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대학들의 경우 갈수록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새로운 대입제도 는 어떤 방식으로든 학생 구성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구안될 필요가 있다.
섣불리 말한다면, 지금부터 4개월이 우리나라 교육의 장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국가교육회의에서 채택되는 대입제도의 골격은 적어도 향후 6~7년간 유지될 것이고 간접적으로는 그 이후에도 오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간곡히 바라건대, 국가교육회의가 이번에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눈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대입 선발의 편의가 아니라 학교교육의 내실화를 우선적인 목표로 삼아야 하며, 학생이 지식의 이해를 넘어 활용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새로운 신호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변별력을 볼모로 한 수능 상대평가 및 객관식 프레임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언제까지 문제풀이 기계로 남아 있게 할 것인가?
현재 건신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원장, 한울고등학교 교장, 이우학교 초대 이사장, 참여정부 교육혁신위원회 상임위원, 교육을바꾸는사람들 21세기연구소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그 외에 '사회정책 제3의 길(2008), 대안교육 이해하기(2007), 현대사회와 교육의 이해(2004), 고등학교 교육학(2002)' 등 다수의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