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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센터에서 영어 공부 해보기

#625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2021.04.14

 

1. 등장!

 

오늘 센터에서는 쿠키를 만들었다. 집에서 가끔 쿠키를 만드신다는 학부모님께서 1일 선생님이 되어 주셨다. 아이들은 작은 오븐에서 구워져 나오는 쿠키를 기다리느라 진작부터 안달을 한다. 쿠키를 만들고 오븐에 굽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의 분위기는 점점 더 어수선해지기 시작한다. 쿠키가 완성되어 시식까지 마친 아이들이 이젠 더 기다릴 것이 없다는 허탈감에 바람처럼 나부낀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분위기는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되어 간다. 시간은 벌써 5시 30분을 넘기고 있는데 센터에는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잠재우려면 바로 내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작은 화이트 보드판 2개를 들고 보드 마카와 함께 등장하였다. 나의 등장을 보자마자 아이들은 아우성을 쳤다. “태쌤, 오늘은 영어 일기 안 쓰면 안 돼요?”, “태샘 오늘 같이 특별한 날에는 원래 영어 일기 안 쓰잖아요?” 아이들은 영어 일기를 막아보려 아우성을 쳤지만, 나는 아랑곳 없었다. 아이들을 모이게 했더니 쿠키를 다 먹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던 아이들이 적지 않게 모여들었다.

 

나는 작은 칠판에 우선 ‘오늘의 영어’라고 쓴 다음에 tea, teacher, read 3개의 영어 단어를 쓰고 그 곁에는 각각 ‘차, 선생님, 읽다’라고 뜻풀이를 썼다. ‘차’라는 풀이만을 보고 몇몇 아이들은 ‘tea’를 ’car’라고 추측하여 말하고 있었다. 이 차는 그 차가 아닌데 말이다. 일단은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 배울 주요한 사항인 ea에 밑줄을 쫙 긋고, 이 둘은 묶어서 길게 “이~~”라고 발음을 하면 된다고 시범을 보였다. 할 일 없는 아이들이 그 소리를 따라 한다. 그리고 ea에 t가 붙었으니 tea룰 어떻게 읽어야 하겠는가를 물어 보았다. 몇몇 아이들이 비슷한 말로 시도를 한다. 불과 2월에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알파벳 소문자를 아는 아이들이 서넛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는 장족의 발전이다.

 

아이들의 시도가 장해서 고개를 끄덕거린 다음 tea를 들려준 후에 이는 차가 아니라 녹차, 홍차 할 때 마시는 차라고 그 의미를 고쳐 일러주었다. 그 후에 tea를 붙인 teacher로 넘어갔다. teacher는 매일 쓰는 영어 일기 속에도 자주 등장하고 아이들이 배운 학교 영어에서도 익숙해진 단어라 따라 읽어내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철차가 이렇게 긴 단어를 외우는 일은 많지 않아서 아이들 중에는 자신은 결코 teacher를 외울 수 없다고, 너무 긴 단어라고 볼멘 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사실 단어를 통해 파닉스를 익히는 것이 목표였는데, 요 며칠 단어를 외우는 방식에 고민을 해오던 참이었다. 아이들과 단어를 익히고 영어 일기를 쓰는 시간은 대략 5시 30분 이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센터로 보면 대충 하루의 프로그램들이 얼추 마무리되기 시작하는 시간으로 애매하게 남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때로는 프로그램이 미처 끝나지 않은 아이들은 아직 각자의 공간에 머물러 있을 때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 영어 단어들을 외워야 한다고 칠판을 들고 있으면 아이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다가와서 그때마다 단어를 읽어주고 외우게 해야 하는 수고도 생긴다. 그런 방식은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단히 비효율적이다. 더욱이 한 쪽에선 이미 잘게 자른 종이에 깨알같이 단어를 써서 자신은 다 외웠으니 확인을 바란다는 아이들이 북적거린다. 그러니 이걸 했다, 저걸 했다, 이 아일 상대했다, 저 아일 상대했다 혼이 쑥 빠져나갈 지경이다.

 

이렇게 며칠을 몸살을 알고 나니 지난밤 퇴근길에는 절로 이 문제가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든 이런 방식은 바꾸어내야 하겠다는 게 결론이었는데,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려면 아무래도 가능한 모두를 불러 모아서 한꺼번에 단어 설명을 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함께 익히고 확인을 받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굳게 결심을 한 차에 오늘의 아우성이 더해져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한데 불러 모으게 된 것이다.

 

 

2. 함께 하는 힘

 

모여든 아이들과 함께 입을 맞추어 tea, teacher, read를 따라 읽도록 하였다. 마스크를 뚫고 자신감 있는 아이들 몇몇의 우렁찬 소리가 들려온다. 몇 번을 함께 입을 맞추어 읽게 하면 독특한 리듬이 생기고, 그 리듬에 맞추어 읽는 아이들은 작은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잘 못 읽는 아이들일지라도 그 우렁차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에 함께 묻혀서 흉내를 낼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방식이다. 최소한 귀로 소리라도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만약 이렇게 혼자 해보라고 했으면 이런 즐거운 기분을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함께 하는 힘이 있다.

 

tea를 읽고 teacher까지 읽어내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미 잘 알고 있는 teacher의 일부분인 tea를 읽는 것인데다, 발음도 쉬우니 곧잘 따라 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read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발음도 어렵고, 앞의 두 단어에 비하면 별로 친숙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눈치다. 그렇다면 이걸 잘 기억해두었다 다음에 두 번, 세 번 거듭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아무튼 읽기는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어가고 있다. 이제는 두 명씩 서로 짝을 지어 둘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함께 읽기를 해보라고 하였다. 코로나로 거리를 두어야 하지만, 어려운 일을 친구와 함께 겪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기를 바라며 잠시 서로를 보고 외워보도록 한 것이다.

 

이번에는 teacher의 공략이다. 아이들과 함께 이 단어는 7개의 철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손가락을 펴고 t, e, a, c, h, e, r을 한 글자씩 읽으며 손가락을 접어보도록 하였다. t, e, a, c, h, e, r을 한 글자씩 큰 소리로 읽어내며 독특한 가락이 만들어진다. 그 가락에 실어 몇 번을 반복해서 함께 읽다 보니 어떤 아이들은 이미 t, e, a, c, h, e, r을 외울 수 있게 된 눈치다. 아직 암송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자신은 이제 시험을 볼 거라며 종이를 달라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건 단어를 어떻게 외우는 것인지 일종의 시범이 되는 셈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렇게 단어를 한 글자씩 읽는 것을 간간히 해보기는 했지만, 전체가 다 같이 입을 모아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니 아이들이 훨씬 쉽고 즐겁게 단어를 외우는 눈치다. 게다가 그동안 소문자를 외우지 못했던 아이들이 소문자를 익히도록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일부터는 이렇게 잘 읽을 수 있는 단어를 찾아보거나 제시된 단어의 스펠링을 잘 읽을 수 있도록 리듬을 내는 법에 대해 더 고민을 해 봐야겠다.

 

아이들이 시험을 보는 종이는 A4용지 이면지를 손바닥의 1/4만큼 작게 자른 것이다. 아이들은 다른 종이에 시험을 봐서는 안 되고, 이런 쪽지를 건네받아 칠판 뒷면에 가서 단어를 써와야 시험을 본 것으로 인정을 받는다. 영어 단어와 뜻풀이까지 써오면 즉석에서 세 개나 네 개 정도의 단어를 읽어보게 해서 읽기까지 통과하면 단어 익히기 과정은 끝이 난다. 물론 정 안되겠다 싶은 아이들은 한두 개 정도로 그 수를 줄여준다. 하지만 이는 매우 은밀하게 기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에게 파닉스가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재미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주어진 단어는 암기해서 써오는데, 이를 읽거나 그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아이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단어들 사이에 연관이 있으니, 예를 ike와 같은 부분을 중심으로 삼아 그 앞, 뒤에 철자를 붙여서 bike나 like 등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는 것까지는 쉽게 이해하고 어찌어찌 외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직 알파벳을 정확하게 읽을 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이를 읽고 또 그것이 어떤 것을 뜻하는 단어인지까지를 정확하게 말하기는 아직 어려운 경우가 생기는 모양이다.

 

이때는 판단을 잘 해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렇게 영어 단어를 써온 것만 해도 힘든 일이니 이를 다시 써오라고 하면 난리가 난다. 거기에 단어와 뜻풀이까지 모두 맞았는데, 정작 앞에 와서는 단어를 읽을 수 없는 경우라면 이는 더욱 난감하다. 단어를 읽을 수 없으니 다시 써오라고 할 수도 없고, 한 아이를 붙들고 계속 씨름을 할 수도 없으니 이건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그렇게 읽을 수 없는 아이들을 둘씩 붙여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다섯 번씩 큰 소리로 단어를 암기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모든 소동들이 다른 선생님들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6시 직전에 벌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가 따로 없다, 때로는 저쪽 방에 가서 하시면 안 되냐고 정중하게 쫓겨나기도 한다. 그러면 우루루 아이들을 뒤꽁무니에 매달고 부랴부랴 작은 방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그렇게 영어 단어를 익혀야 아이들은 식사 시간의 3단계 고비 중 겨우 1단계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3. 나의 3박자

 

이런 과정은 영어에 대한 나의 작은 지식과 아이들에 대한 계속되는 관찰과 늦은 밤 걸어가는 퇴근길의 3박자가 이루어내는 일이다. 나는 영어를 잘 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기초적인 영어는 어느 정도 읽고 쓸 수 있으니 그것이 큰 힘이다.

 

원래 이 과정은 아주 우연히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으로 영어 수업하는 것을 도와주다가 도저히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하게 된 것이다. 학교 수업만으로는 아이들은 영어에서 거의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아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지경은 아니지만, 아무튼 영어를 못 하고, 싫어하는 모습이 뚜렷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큰 문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조금이라도 돈이 있으면 영어 학원이나 방과 후 수업 같은 것을 해서 영어에 대한 물꼬를 터주고 싶어 하셨다. 아이들은 아예 영어가 어렵고, 잘 못 하겠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그 힘든 걸 왜 자꾸 하라고 하냐고 도리질만 칠뿐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학년별로 나누어 그에 맞는 수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 선생님을 모셔 와도 알파벳도 모르는 데야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대화가 유창해진다 할지라도 온라인으로 영어 단어가 글자가 되어 나오는 방식의 학교 수업에는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알파벳이라도 알게 하자고 시작한 것이 파닉스로 이어지고, 파닉스만으로 하고 시작한 것이 영어 일기 쓰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늘 식사 전에는 한데 몰려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영어를 하고 나야 식사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니 기다릴 줄 알게 되고 안에서 벌어지는 소동도 줄어드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생기게 되었다.

 

게다가 가장 좋은 것은 단 하루라도 이렇게 영어 단어 외우기와 일기 쓰기를 거르는 날이 오면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한다는 사실이다. 거창한 선물을 한 것도 아닌데,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저녁 먹고 그냥 가도 된다고 하면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난리가 난다. 서로서로 기쁜 소식을 전하느라 바쁘고, 아이들 모두가 환한 얼굴이 된다. 어떤 큰 선물이 이에 비할까 싶어 때로는 절로 웃음이 난다.

 

하지만 나 역시 이렇게 진행하느라 고심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내일은 어떤 단어를 해 볼까는 퇴근길의 큰 고민거리다. 아이들이 먼저 알아야 할 만한 것, 쉽게 알 수 있는 단어들을 이리저리 짜 맞추어 가며 고심을 한다. cake를 생각해보고, take, bake, rake 등등으로 다른 단어를 조합해본다. 아직은 명사 위주의 쉬운 단어를 중심으로 진행을 하는데, 앞으로 이를 어떻게 넓혀갈까도 고민이다. 아무튼 이리저리 고심을 하다 좋은 조합이 생각나면, 깜깜한 골목길에라도 멈추어 서서 핸드폰의 매모장을 열고 얼른 메모를 한다. 아마도 지난번에 사놓은 파닉스 책을 펼쳐보면 더 좋은 조합들이 많이 있을 터이지만 아직은 이렇게 고민을 해서 우선 해보는 단계이다. 이 단어는 어떨까, 저 단어는 어떨까? 때로는 아무 때나 저절로 그런 생각 속으로 그냥 빠져들기도 한다. 조금 더 다듬고, 더 손봐서 지금 이 과정이 잘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변화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아직 아이들에게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분명 작은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일단 흐르는 물처럼 우선은 계속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다가 어떤 걸림돌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가보기로 말이다. 다만 아이들이 영어 공부를 그만하자고 건의함에 의견 제시를 너무 많이 하지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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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성태숙

(현)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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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김태균 수정 삭제

    항상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하시는 선생님의 노력을 응원합니다. 작은 변화가 눈덩이처럼 불어서 보다 많은 학생 친구들이 영어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체계적이고 발전된 학습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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