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비중이 준다고 해서 정시가 느는 것은 아니다.”
어느덧 일 년 전의 일이다. 작년 3월 22일 당시 문재인 후보는 서울 00초등학교에서 교육 공약을 발표했다. 대학입시를 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 수능전형 세 가지로 단순화하겠으며 수시 비중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는 내용이다. 그 후 약 한 달 뒤 발표된 공약집에는 교실혁명을 통해 공교육을 혁신하고 사교육비를 경감, 학생맞춤형 학습을 위해 필수교과를 최소화하고 선택과목을 확대, 복잡한 고교체제 단순화, 고교학점제 추진, 벽 없는 학교 조성, 사교육을 유발하는 수시전형 대폭 개선, 대입제도를 단순화하고 공정성을 제고, 대입 전형 수 축소 및 대입전형 명칭의 표준화, 2015교육과정의 적용에 따라 수능 절대평가 추진, 수시 최저학력기준 폐지 검토,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는 교육체제, 교육의 공정성을 높이고 교육의 계층 사다리 복원이 담겨 있었고, 수시모집을 축소하는 공약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이 인구에 회자된 계기는 이 문제가 거론된 작년 5월 2일 대선 후보 TV토론이었다. 유승민 후보가 “문 후보 공약 중 수시 비중을 축소한다고 했다. 정시를 늘리면서 수능은 자격고사화하겠다고 하는 건데 수시 비중 축소 공약은 여전한가?”라고 물었다. 이에 문 후보는 “논술·특기자전형을 없애서 대학입시를 단순화하고 그걸 통해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낮추자는 것이고, 논술·특기자전형을 없애면 그만큼 수시 비중은 줄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시 비중이 준다고 정시가 느는 것은 아니다.”는 언급이 나왔다.
문재인 후보: 줄어드는 수시 비중을 어떻게 할애할거냐 라는 것은 각 대학이 또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죠. 그래서 수시 비중이 준다고 해서 그만큼 정시 비율이 는다, 그것은 아닙니다.
유승민 후보: 아니죠, 수시가 줄면 정시가 늘죠.
[……]
문재인 후보: 정시를 늘리자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수시에서 두 가지 전형을 줄이고, 그러면 줄어드는 전형에 대해서 아까 학생부 전형을 늘릴 것인지 이런 것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죠.
유승민 후보: 아니요, 문 후보님 공약에 수시 축소하겠다고 되어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 아니, 그 전형을 줄이면 수시 비중은 자연히 줄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수시 비중 준다고 정시가 느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입니다.
두 후보가 서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아마 문재인 후보는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수시모집에서 논술전형과 특기자전형이 줄어드니까 수시모집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과 교과전형만 남게 되고 그렇게 되면 수시모집의 비중이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의 전형 별 선발 인원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대학이 남겨진 인원을 수시모집의 교과전형이나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넘길지 아니면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모집으로 넘길지 알 수 없으니 반드시 정시가 늘어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대학들에게 인위적으로 정시와 수시 비율을 강제하기도 어렵다. 아마 이런 뜻이었을 것 같은데, 두 후보의 의사소통이 막힌 까닭은 논술전형과 특기자전형을 없애면 수시 “비중”이 줄어든다는 말을 서로 다르게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시모집 선발인원이 줄어들면 당연히 정시모집 선발인원이 늘어난다. 하지만 수시모집으로 선발하는 논술전형과 특기자전형이 없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정시모집 선발인원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말이 왜 이해되지 못했냐면 아마도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 다음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1) 대학은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을 선발하려고 한다.
2) 정부는 행정적, 재정적 수단을 동원하여 대학이 원하지 않는 수시모집 학생부(종합, 교과)전형을 늘려왔다.
그러니까 정부가 대학에게 수시모집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선발 인원을 늘리라고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대학들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당연히 정시모집 선발 인원을 늘릴 텐데, 수시모집의 논술전형과 특기자전형이 없어진다고 해도 정시모집 선발 인원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대학은 정시모집에서 당연히 수능 성적이 높은 학생을 선발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수시모집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노무현정부는 교과 반영 비율을 대학에게 강제했고, 그 다음 두 정부는 「입학사정관제 지원 사업」과 「고교교육정상화기여대학 지원사업」을 통해 학생부종합전형을 양적으로 확대해 왔다. 정부 지원사업과 함께 학생부종합전형이 시작되었고, 정부가 이 대학지원사업의 평가 지표에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는 인원과 입학사정관의 고용 상황을 포함하고 있으니, 정부 지원을 얻으려는 대학들은 이 전형을 확대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수시모집이 늘어났다. 일견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인 인식이 타당해 보이지만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의 선발 인원 조정 문제는 다른 고려 사항들도 있다.
먼저 대학은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선발하려고 한다. 그런데 수시모집에서는 전형에 따라 수능을 최저학력기준으로 쓰거나 전혀 활용하지 않기도 한다. 수능 성적은 정시모집에서 반영된다. 정시모집에서 수능 커트라인을 높이려면 정시모집 선발 인원을 줄여야 한다. 어느 대학이 수시 선발 인원을 줄이고 정시 선발 인원을 늘리면 그 대학의 정시모집 수능 커트라인은 더 낮아진다. 수능 커트라인에 의한 대학 서열화에 매우 민감한 대학 입장에서는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학들이 정시모집 인원을 늘리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학생 수의 급격한 감소 때문이다. 60-70년대 초반 100만 명을 넘었던 한 해 출생자 수가 2007년에는 50만 명 이하로 줄었다. 2016년 출생자는 406,243명이었고 2017년은 357,700명 정도로 잠정 집계되었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밑도는 상황이고 대학 교육의 효용성 저하와 함께 대학 진학률이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서 많은 대학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상황이 곧 닥치게 된다.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도 인구 감소 여파의 예외가 아니다. 조만간 대부분의 대학에서 누구를 선발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누구든지 선발해야 하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의 현실도 곧 닥칠 미래와 많이 다르지 않다. 현재 많은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학생을 확보하는 것이고, 학생을 확보하려면 수시모집 선발 인원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정시모집은 상징적인 수치만 만들어놓고, 수시모집에서 90% 이상을 선발하여 학생을 확보해야 그나마 절반 이상의 학생을 모을 수 있다. 과거에는 정부 지원금에 관심이 있어서 일부 대학이 수시모집 선발인원을 늘렸다면 지금은 생존의 문제 때문에 거의 모든 대학이 수시를 늘린다. 상위권 대학들도 마찬가지이다.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하려면 수시모집 선발 인원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정시모집에서 수능 커트라인도 올라간다. 그러므로 수시모집 “비중”이 줄어든다고 해도 정시모집 인원이 늘어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정부가 수시모집 선발 인원을 줄이라고 강제하면 많은 대학들은 곧바로 도미노 파산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동시에 생존을 위한 대학들의 여러 가지 쇄신 노력과 시도들도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생존을 위한 기회가 사라지는 셈이다. 그리되면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체제와 연구 역량은 급속도로 붕괴될 수도 있다.
TV토론의 해프닝으로 보였던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선발 인원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첫 계기는 작년 6월 모 장관 후보자의 아들 건으로 시작된 학생부종합전형의 불공정성에 대한 언론 보도들이었다. 학생부종합전형 관련 언론 보도를 분석해보면 이때부터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비판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여기에 더하여, 현 정부의 교육 공약이었던 수능 절대평가 확대가 작년 8월 초에 발표된 2021학년도 수능 절대평가 확대 안으로 현실화되자 학생부종합전형의 불공정성 이슈는 ‘수시 축소 정시 확대’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모집을 확대한다고 모 장관 후보자의 아들 사례를 막을 수 없다. 더구나 그 사례는 학생부 기록의 문제이지 학생부 평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 절대평가는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의 선발 인원 조정 문제를 촉발시켰다. 대학입시와 관련된 여러 논점들 가운데 과거에는 없었던 새로운 이슈가 대두된 것이다.
작년 8월 말 2021학년도 수능 절대평가 확대 안이 일 년 연기되면서, 과도하게 늘어난 수시를 축소하고 정시를 확대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반론으로 수시 규모를 유지하거나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대학입시에서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선발 비율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이 문제에는 여러 집단의 이익과 불이익이 개입되어 있고 대입제도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도 반영되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다음의 두 명제로 갈무리할 수 있다.
1) 학교 교육의 정상화와 미래 지향적인 교육을 위해서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의 선발 인원을 늘려야 한다.
2) 학생부종합전형은 공정하지 않고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모집이 공정하니 정시 선발 인원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이 두 명제의 논리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학생부종합전형을 늘려야 한다는 명제는 미래 지향적인 학교 교육 혁신이 동반되었을 때 타당성이 확보된다. 그런데 현재 우리 고등학교가 그런 교육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며, 학교 교육 혁신을 위한 노력이 없는 상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선발 인원만 늘린다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한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그 부작용이란 신뢰성과 공정성의 결여, 사교육의 영향 등이다. 물론 학교 교육 혁신을 위한 노력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으나, 많은 학부모들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마치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대립하는 모양이지만, 학교 내 교사들 사이에서의 의견 대립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학생부종합전형이 공정하지 않으니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를 늘려야 한다는 두 번째 명제에는 비약이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이 공정하지 않다면 공정하게 고치거나 폐지하자고 주장해야 하지만, 두 번째 명제는 수시 축소와 정시 확대로 이어진다. 이 비약이 생긴 이유는 분명하다. 학생부종합전형 개선이 아니라 ‘수시 축소 정시 확대’ 그리고 ‘수능 절대평가 반대’가 두 번째 명제의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수능으로 선발하는 인원을 늘린다고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공정성 문제가 있지만 선발 인원을 줄이면 그런 불공정성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뜻인가. 어쩌면 정시 선발 규모를 확대하면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문제는 수면 아래로 사라질 지도 모른다. 정시모집 선발 인원 확대란 곧 수능 변별력의 유지이며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정시모집이 뒤늦게 철든 학생을 위한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명분 아래 수능이 현재 방식으로 유지된다면 거대한 수능 사교육 산업도 함께 유지된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과연 수능이 뒤늦게 철든 학생을 위한 또 다른 기회인지, 아니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또 다른 기회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선발 인원 조정 문제와 수능 절대평가 vs. 상대평가 담론은 동전의 양면이다. 여기에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문제가 곁다리로 끼어 있고 뒤늦게 철든 학생, 검정고시생, 재수생 등을 위한 공정한 기회 제공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니까 우리 앞에 놓인 진짜 이슈는 수능 절대평가 문제이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바뀌면 기존 정시모집은 사라지고 새로운 대입 체제로 개편될 수밖에 없다. 반면 수능이 현 상태로 남아 있으면 이미 2022학년도부터 전면 실시한다고 예고된 고교학점제는 유명무실해지고 내신 성취평가제도 동력을 상실한다. ‘교실혁명을 통해 공교육을 혁신하고 사교육비를 경감, 학생맞춤형 학습을 위해 필수교과를 최소화하고 선택과목을 확대, 복잡한 고교체제 단순화, 고교학점제 추진, 벽 없는 학교 조성, 사교육을 유발하는 수시전형 대폭 개선, 대입제도를 단순화하고 공정성을 제고, 대입 전형 수 축소 및 대입전형 명칭의 표준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는 교육체제 마련, 교육의 공정성을 높이고 교육의 계층 사다리 복원’도 마찬가지로 좌초할 것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 교육 혁명을 통해 새로운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 몇 명의 학생을 선발할 지는 개별 대학이 결정한다. 정부가 재정 지원을 제시하며 유도 혹은 권유할 수는 있지만 대학에게 드러내놓고 요구하거나 강제한 적이 없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길 바란다. 대학을 강제로 옥죄면 대학도 망하고 우리 사회도 같이 허물어진다.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선발 인원 문제의 본질이자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논란의 본질은 결국 수능 절대평가 전환이다. 올해 8월에 정부가 무슨 결정을 할지 지켜보아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이젠 반드시 결정해야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