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밥이라고?
“밥 먹었냐?”, “식사하셨어요?”, “언제 밥 한번 먹자.”는 가장 일상적인 우리의 인사말이다. 최근 들어 밥이 빵으로, 라면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많아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밥’이라고 지칭한다. 밥이 인사말의 핵심인 우리 사회.
밥을 먹어야 살 수가 있다. 그런데 놀이를 밥이라고 하다니, 놀이가 밥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는 말인가? ‘놀이밥’ 도입 정책을 살펴보려고 한다.
1. 2018년, 강원도 교육청의 새로운 시도: ‘놀이밥 100분, 3시 하교’
강원도 교육청은 올해부터 ‘놀이밥 100분, 3시 하교’를 시범 운영하고, 2020년부터는 강원도 내 전체 초등학교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놀이밥 100분은 초등 1, 2학년생들에게 아침 1교시 시작 전에 30분, 2교시 마치고 중간에 40분, 점심 먹고 30분을 노는 시간으로 배치해 하루에 총 100분을 놀게 한다. 또 놀이 시간 도입으로 인해 학교에 있는 시간을 늘려서 오후 3시에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 정책은 초등학교 1, 2학년생에게는 놀 권리를 보장해주고, 학교는 돌봄 기능을 강화해서 맞벌이 부모들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취지이다. 자녀의 1학년 입학을 앞두고 직장을 계속 다닐지, 그만둘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엄마들과 1학년부터 이 학원 저 학원을 순례하며 엄마의 퇴근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이 시도는 화살 한 개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놀라운 발상이다. 또 놀이의 교육적 가치를 인정하여 실제 교육정책에 반영하고 시범을 통해 정책을 확대, 안착시키려는 매우 획기적인 정책 추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강원도 내 현장교사들은 업무 부담 증가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초등 1, 2학년생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놀이 시간에도 안전 지도를 해야 하는데 이는 곧 업무가 연장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1학년은 손이 많이 가서 기피 학년인데 이러한 현상이 더 가중될 것이라고 염려한다. 교총이 발행하는 한국교육신문도 기사1 와 사설2을 통해 놀이밥 도입은 현실을 무시한 정책이며 교원복지를 손상시키는 정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안전요원의 배치, 자원봉사자 활용 등의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예산을 확보해서 안전 요원을 배치하면 아이들도 교사도 학부모도 모두 다 좋겠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휴무일에도 일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공익근무자와 함께 하루를 보낸다. 이런 날의 활동은 공원 산책이나 체육실 활동이 주가 된다. 하필 강원도는 해당 사항이 없지만, 임용시험에 합격한 발령 대기자 예비교사들을 활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전에 안전 교육을 받고 배치를 받는다면, 학교 현장도 익히고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는 것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수당 지급을 위한 예산이 확보된다면 적극 제안하고 싶은 대안이다.
그런데 놀이밥의 도입은 사실 전북교육청이 먼저 시도했던 정책이다.
2. 전북 교육청의 시도: ‘놀이밥 60+ 프로젝트’
전북 교육청은 2014년부터 ‘놀이밥 60+ 프로젝트’를 도입하였다. 초등학교의 쉬는 시간을 조정해 놀이 시간을 60분 이상이 되게 하여 놀 권리를 보장하고, 전통놀이 등을 통해 학생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찾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전북 교육청은 놀이 시간을 수업 사이 중간 틈새 시간과 방과 후에 배치하도록 권장하고 학교자율선택과제로 추진하였다. 2017년도에 전북도 내 초등학교들은 420개교 중 326개교가 놀이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2개 교시를 통합하여 운영한 뒤나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놀이시간을 제공하였다. 전북 교육청은 학교 안 놀이 활성화를 위한 초등 교감 전체를 대상으로 연수를 개최하는 등 ‘놀이밥 60+ 프로젝트’를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북 교육청의 ‘놀이밥 60+ 프로젝트’는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필요하고, 놀이의 가치가 큰 데도 우리 아이들의 현실은 학교와 학원 공부로 인해 놀이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데에 착안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시도한 정책이다. 아이들과 놀이 그 자체에 초점을 둔 정책이다. 그러나 전북 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놀이밥 60+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놀이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아이들을 그냥 자유롭게 놀게만 한다는 비판이 있다. 또 놀이 프로젝트 운영에 대한 지침이나 기준이 없고 평가를 하기도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3
위와 같은 지적은 놀이와 관련해서도 교사나 교육청이 뭔가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우리의 오래된 관습에서 나온 것 같다. 놀이, 특히 자유놀이에 대한 개념, 가치에 대한 이해 부족을 토대로 아이들을 그냥 자유롭게 놀게 내버려두지 못하고 놀이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교육/가르침 강박증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3. 놀이밥, 편해문 선생이 제안한 아름답고 창의적인 용어
놀이밥, 너무나 좋은 말이다. 창의적이다. 우리 것이라는 냄새도 물씬 난다. 이 말은 강원도나 전북 교육청이 정책에 사용하기 전 2012년경부터 놀이운동가 편해문 선생이 사용하기 시작했다.4
편해문 선생은 밥을 제때 먹어야 탈이 나지 않듯이 아이들도 제때 충분히 놀아야 탈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놀이에 허기가 들면 그 허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나타난다는 것이다. 친구를 왕따시키고 괴롭히고 폭행하고, 게임에만 몰두하는 등의 행동은 다 놀이에 대한 허기가 쌓여서 나타난 것이고, 놀이밥을 잘 차려서 푸짐하게 먹여주면 허기가 상당 부분 해소된다고 말한다. 무서운 말이다.
편해문 선생은 순천시와 함께 기적의 놀이터 ‘엉뚱발뚱’을 구상하여 올해 4호까지 만들었다. 시흥시는 2016년에 ‘놀이밥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 시민강좌를 운영하고, 군포시의회는 2017년에 순천시의 놀이터를 벤치마킹하기로 의결하고, 서울시는 초등학교 놀이터를 재구성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한 운동가의 발상이었던 놀이밥이 이제 학교울타리를 넘어 교육체제 안으로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두 개의 도에서는 중점교육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놀랍다. 그런데 놀이가 정말 밥일까?
4. 4차 산업시대 미래형 인재를 만드는 최고의 방법, ‘자유놀이’: 미국 심리학회 40년 연구 결과
1월 말(발행일, 2018.1.22), 한겨레 신문에 소개된 책이 예사롭지 않았다. 제목은 “최고의 교육(원 제목, Becoming Brilliant: What Science Tells Us About Raising Successful Children)”이고, 미국 심리학회(th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가 2016년에 낸 책이었다. 저자는 발달심리학자로 미국 델라웨어 대학교의 교수인 베르타 골린코프와 심리학자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선임연구원 캐시 허시-파섹 두 사람이다. 저자들은 미국 심리학회지에 지난 40년 동안 실린 수백 건의 논문을 검토하고, 저자 자신들의 책 13권을 종합하여 이 책을 냈는데, 제목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 교육계와 부모들에게 뭔가 시사해주는 것이 있을 것 같았다. 가장 객관적인 과학적 결과로 ‘성공하는 아이로 키워내는 방법’을 말해주겠다는 것 아닌가.
이들은 4차 산업시대 미래형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 시스템은 읽기와 쓰기, 수학 같은 하드 스킬 뿐 아니라 이러한 학문적 성취의 기반이 되어줄 소프트 스킬인 6C 역량을 포괄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우리는 여전히 하드 스킬에 집착하지만, 소프트 스킬은 학교와 직장 및 더 큰 사회적 장에서 성공의 핵심요소라는 것이다. 이들이 찾아낸 소프트 스킬 6C 역량은 협력, 의사소통, 콘텐츠, 비평적 사고, 창의적 혁신, 자신감이다. 우리가 요사이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는 ‘핵심역량’과 유사하다. 이들은 6C 역량의 발달단계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아래 표와 같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아이들의 놀이, 특히 자유놀이가 6C 역량을 얻고 연습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인용한 글 중에 가장 재미있는 비유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몬테규 가와 캐플릿 가처럼 우리 사회가 놀이와 학습을 분리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치 나비가 날갯짓을 할 때 두 날개를 함께 저어야 하듯이 놀이와 학습은 완벽하게 상호작용을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집에서, 공동체에서 학습을 위한 놀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5. 놀이, 가장 맛있고 영양가 높은 아이들의 밥!
놀이는 하는 행위 자체로 즐겁기 때문에 동기가 필요 없다. 유인책도 필요 없다. 놀이를 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진다면, 더구나 흥미로운 환경이라면 아이들은 놀이에 몰입한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광경을 떠올려 보자.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들과, 웃고 울고, 속삭이고 소리 지르고, 삐지고 화해하고, 신나게 뛰다가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고, 손 발 눈 코 입 온몸을 사용하고, 먹는 것도 뒤로 하고, 그동안 획득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활용한다. 노는 아이들을 보면 보고 있는 사람도 즐겁다. 더구나 놀이로 시작해서 작업으로 이어지는 활동을 보노라면 흐뭇해지기도 한다.
이 놀이 과정을 교육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다양한 탐구 방식과 문제 해결 전략의 활용, 개성이 담긴 정서적 표현과 수용 및 조절, 나름의 이유와 함께 형성되고 해체되는 사회적 관계, 상황과 맥락에 맞는 다양한 방식의 의사소통 등이다. 소프트 스킬의 원동력이 바로 놀이이고, 놀이가 바로 총체적인 발달과 학습의 장임을 알 수 있다.
강원도와 전북 교육청의 초등 1, 2학년 놀이밥 추진 정책은 아동기까지도 놀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계도해 나갈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시도이다. 교육자치단체가 교육부의 정책에 앞서 치고 나가는 획기적인 정책이기도 하다. 올해는 전국 시도 교육감들도 관심이 보이고 강원도 교육감이 설명까지 했다니 어쩌면 확대 속도가 빠를 것 같기도 하다.
지난 해 12월 말에 발표한 유아교육 혁신안에 대해 편해문 선생이 일갈했다. 유아교육과정은 놀이중심이 아니라 놀이 그 자체가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필자는 교사의 계획안에 근거한 가르치기 중심의 유아 교육과정 운영을, 유아가 주도하는 놀이중심 운영으로 옮겨야 한다고 제안한 것에 크게 만족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실은 놀이중심 교육과정에 대한 저항도 있다. 교사가 혼자 담당할 아이들은 많고, 공간도 없으며, 개념 자체도 모호하다고.
강원도와 전북의 놀이밥 정책 추진결과는 유아교육 현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런데 우리도 놀이 그 자체를 유아 교육과정으로 여기는 날이 올까? 아득하다는 생각이 든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유아교육 전공으로 한국교육개발원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유아교육정책을 연구했으며, 현재는 동국대(경주)에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위원, OECD 유아교육과 보육정책 국가조정관, 교육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유치원교육과정 개정 등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정책 제안은 유아교육-유치원-교육부, 보육-어린이집-복지부로 이원화된 유아교육과 보육체제를 단일부처로 통합하자는 것이며, 이 안은 지금까지도 미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최근에는 미래를 위한 배우기와 익히기에 쏠려있는 유아기를 아이들이 주도하는 생동하는 놀이 중심으로 되돌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