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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다양한 교원단체 설립의 자유를 가로막는 정부의 직무유기

#342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2018.02.22

어느 나라에나 교사들의 자주적인 연합인 교원단체가 있다. 교원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은 그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척도다. 자유가 없는 나라는 교사를 통제하고 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쓰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에서는 교사에게 교원단체 결사의 자유가 없으며, 단 하나의 교원단체만 인정된다. 마치 공산당 하나만 인정되는 중국이나 북한처럼.

 

그럼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대한민국에는 모두 몇개의 교원단체가 있을까? 보수 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이하 교총)과 진보 성향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라는 양대 단체를 중심으로 이런 저런 군소단체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언론사에서도 중요한 교육정책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이나 의견을 물을 때 교총과 전교조에게 각각 물어본다. 그 밖에 보수, 진보를 대표하는 대형 단체 둘을 중심으로 ‘좋은교사모임’, ‘실천교육교사모임’ ‘새학교네트워크’ 같은 다양한 작은 단체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우리나라 교원단체 상황은 민주주의의 모범사례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건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교원단체는 커녕, 교총이라는 단 하나의 교원단체만 있기 때문이다. 교총이 정부와 교사의 전문성 신장, 교육의 발전과 관련한 각종 교섭, 정책협의를 할 권리를 독점하고 있으며, 교원전문단체로서 권위를 가지는 각종 연구대회 등을 개최할 권리도 독점하고 있다.

 

그럼 전교조는? 전교조는 교원단체가 아니라 교원노동조합(이하 교원노조)이다. 교원단체와 교원노조는 설립 근거와 기능, 역할 등이 다르다. 교원노조의 설립근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동조합법)의 특례 규정에 따른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조합법을 따르기 때문에 그 목적과 설립 절차는 다른 노동조합과 동일하다. 교원의 임금, 근무조건, 후생복지,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 등에 대해 교육부장관, 시도교육감, 각 사립학교 재단과 교섭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설립 신고서는 교육부 장관이 아니라 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한다.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은 교원노조에 대해 사용자로서 노사관계를 이루지 정책 파트너나 전문적인 자문과 협의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 역할은 교원단체의 몫이다. 교원단체는 교육기본법 제15조에 의해 규정된 단체로 교원의 상호협동, 교육의 진흥, 문화 창달, 교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한다. 교원노조가 교원의 노동권과 복지를 위한 이익단체라면, 교원단체는 교원의 전문성 신장 및 보호 및 교육의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전문직 단체다. 따라서 교원단체는 정부나 시도교육청을 사용자가 아니라 정책 파트너 혹은 자문대상의 위치에 두고 교섭하거나 협의할 수 있다. 임금이나 근로조건, 복지로 범위가 제한된 교원노조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교섭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교육부나 교육청을 상대로 교육정책을 놓고 교섭하거나 협의하는 주체는 사실상 전교조다. 명색이 교원노조인 전교조는 놀랍게도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임금 인상이나 교원의 후생복지 증진을 전면에 내걸고 교섭하거나 투쟁하지 않았다. 전교조는 교사의 노동권과 복지보다는 학생의 교육권,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 침해에 주로 맞서 싸워왔다. 이름은 노동조합이라고 썼지만, 교원노조보다는 교원단체의 역할을 해온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만 보고 지레 짐작으로 교사들의 철밥통을 지키는 이익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억울할 만도 하다.

 

그런데 법적 지위가 노동조합이다보니 이 교섭이 쉽지가 않다. 교사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교육관료들의 눈엣가시이기 때문에 교육부와 교육청은 어떻게든 전교조와의 교섭내용을 축소하려고 한다. 교육관료들은 교원노조법을 휘두르며 각종 교육정책 관련 사항은 교사의 권익과 복지에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므로 ‘교원노조법상 교섭 대상이 아님’이라며 대화를 거부하기 일쑤다. 전교조 하면 떠오르는 장외투쟁은 바로 ‘교섭 대상 아님’ 때문에 빚어진 셈이다.

 

노동조합으로 등록된 전교조가 노동조합의 상징인 임금협상 한번 안 하고 교원단체 역할에 치중해왔다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교원단체의 지위를 독점하고 있는 교총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증거다. 교총은 교사보다는 교장, 교감, 그리고 교장, 교감이 되고자 하는 교사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왔으며, 군사독재 정부 및 그 연장선상에 있는 특정한 정치집단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지지해 왔을 뿐, 교사의 전문성, 자주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서울시 교권보호조례조차 강력하게 반발하여 무산시키는 놀라운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원단체가 이런 교총 하나 밖에 없다 보니, 승진 대신 교육을 선택하고, 독재와 그 연장선상의 정치집단에 반대하는 교사들은 교원단체가 아니라 교원노조인 전교조를 통해 주장을 펼쳐야 했고, “비교섭 사항”이라는 법적인 장벽에 번번히 가로막혀야 했다.

 

그럼 투덜대지 말고 뜻이 있는 교사들이 교총을 대신할 교원단체를 만들면 될 일 아닌가?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는 결사의 자유가 있지 않은가? 물론 교육기본법 15조는 교원은 교원단체를 결성할 수 있으며(1항) 그 조직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2항)라고 되어있다. 즉 교사들은 대통령령이 정한 기준을 충족시키고 소정의 절차를 따르면 얼마든지 교원단체를 조직하고 활동할 수 있다. 교총이 교장, 교감 입장을 대변하고 정치적으로 치우쳤다면 박차고 나와서 새로 만들면 된다. 설사 법에 “교총 이외의 교원단체 조직은 금지된다.” 따위로 되어 있더라도, 헌법소원하면 100% 위헌이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가? 아무리 찾아봐도 그 기준과 절차를 규정한 ‘대통령령’이 없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교사들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원단체를 설립할 법적인 권리가 있다. 그런데 그 설립의 절차를 규정한 시행령이 없다. 그래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교총이라는 보수적인 교원단체 외에는 어떤 교원단체도 설립할 수가 없다.

 

우리 나라는 복수의 교원노조를 인정하고 있다. 교원노조법과 그 시행령의 절차에 따라 교사들이 설립신고를 하면 누구라도 교원노조 설립이 가능하다. 현재 전교조가 법외노조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셋 이상의 교원노조가 활동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원단체 역시 복수로 인정되어야 한다. 교총 뿐 아니라 진보에서부터 중도, 보수를 망라한 다양한 교원단체가 활동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자유민주주의에 맞다.

 

물론 교육기본법에는 교원은 대통령령이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교원단체를 조직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법률의 집행을 위해 그 대통령령을 제정해야만 한다. 그건 행정부의 의무다. 권리는 있는데 그 권리를 이행할 법령이 없어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있다면 이건 정부의 직무유기이며, 그 덕분에 특정한 단체가 교원단체로서의 권리를 독점하고 있다면 이는 부당한 이익이다. 정부는 조속히 임무를 수행해야 하며, 부당한 독점이익을 최대한 환수하여 골고루 나누어야 한다.

 

한 줄로 정리한다.

 

정부는 교원단체 조직에 관한 ‘교육기본법 시행령’을 조속히 제정하고, 그동안 근거없이 교총이 누려왔던 모든 독점적인 권리와 혜택을 회수하라.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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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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