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학교교육의 목표 = 핵심역량 함양’에 대한 긴급 문제제기

#339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18.01.18

2015개정 교육과정의 시행 첫해를 맞아 시도교육청별로 교육과정 전문가 양성을 위한 직무연수가 한창이다. 모든 연수 내용에는 핵심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과정 재구조화가 들어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2015개정 교육과정 실행과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하나는 학교교육의 목표를 ‘핵심역량 함양’으로 잡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이고, 다른 하나는 지식과 역량에 관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오해에 관한 것이다.

 

 

1. ‘학교교육의 목표 = 핵심역량 함양’에 대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최근 한 연구 자료에는 ‘핵심역량 함양을 위한 학교 교육과정 설계 방향 및 원리’란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도표가 제시되어 있다.

 

<표 1> 핵심역량 함양을 위한 학교 교육과정 설계 방향 및 원리

이 자료에 따르면 학교교육의 목표가 ‘핵심역량 함양’으로 되어 있다. 이런 기조는 2015개정 교육과정 개발 중에도 없지 않았지만 ‘학교교육의 목표 = 핵심역량 함양’처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2017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성과 발표회(2017. 11. 24)와 이번 겨울 방학 동안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교육과정 전문가 연수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는 기존의 지식기반교육에서 역량기반교육으로의 대 전환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런 대전환의 준비를 제대로 해 왔는가? 무엇보다도 학교교육의 목표 변경은 ‘무엇이 가장 가르칠 가치가 있는가?’,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인가?’를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이기에 광범위한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왜 지식이 중요한가(Why Knowledge Matters: Rescuing our Children from Failed Educational Theories. Harvard Education Press, 2016)의 저자 Hirsch. Jr.는 자신의 책에서 현대 인지심리학에서 확정적 이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관련 내용 하나를 소개한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본질적으로 특정 내용 영역에 긴밀히 연계되어(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에 학교서 습득하는 스킬(능력, 역량)은 ‘영역 고유성(domain-specificity)’을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 사고력 같은 것이 좀처럼 쉽게 특정 과목 영역에서 분리되어 다른 과목 영역으로 응용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 이론은 전통적인 스킬에 관한 관점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Hirsch. Jr.는 캠브리지 출판사가 출간한 역량에 관한 핸드북, 『The Cambridge Handbook of Expertise and Expert Performance, 2006』의 제목처럼 skills 대신 ‘전문적 지식과 역량 및 전문적 수행(expertise and expert performance)’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를 소개하면서 그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역량기반 교육에 대해 비판한다.

 

“듣기 좋은 아동중심교육이 일반역량이라는 잘못된 이론과 결합해서 아동들을 고역스런 역량 훈련으로 몰아넣고 있다(A benign child-centeredness coupled with a faulty theory about general skills has led to a child purgatory of skill drills).”

 

다음은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적 목소리들이다. 타당하고 균형을 갖춘 교육목표 정의를 위해 이런 목소리의 경청은 꼭 필요하다.

 

▶ Michael Young

 

역량기반교육 비판의 중심에 서 있는 대표적인 학자가 마이클 영(Young, 2008)이다. 그는 역량은 경제적 도구주의 성격이 너무 강하며, 학교 교육은 전통적인 지식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학교는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 온 지식을 배우고 전수하는 기능을 해야 하고, 또 지금은 지식기반 사회이기 때문에 지식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 Mark Priestley and Gert Biesta

 

국가수준의 교육과정 개발에 관한 세계적 추세를 소개하고 있는 책 『Reinventing the Curriculum』(2013)을 보면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두 저자는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비판적 학자들에 의하면 역량 중심으로의 전환은 학습자가 배움(배우고, 습득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의 주체(subject)가 되느냐, 아니면 사회가 잘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의도한 역량’(예: 창의·융합형 인재)을 잘 갖춘 대상(object)이 되느냐의 문제를 안고 있다. 다시 말해 교육의 목표를 ‘지식의 습득과 활용’으로 보느냐 ‘역량의 함양’으로 보느냐는 학생을 비판적, 민주적 자기 결정권을 갖는 행동과 책임의 주체로 볼 것인가 지도와 개입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후자는 전형적인 행동주의 및 도구주의 교육관이다. 역량기반교육은 밖으로 드러나는 수행과 행동(performance and behavior)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사고, 이해, 성찰, 가치 판단 등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너무 구체적인 행동(behavior)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다른 상황에서 역량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즉 그 역량이 다른 영역에서 발휘되고 전이되기가 어렵다.

 

▶ Andy Hargreeves

 

『학교교육 제4의 길』이란 책의 저자인 Andy Hargreeves는 21세기 역량을 다룬 책 『21st Century Skills』(2013)’에서 역량을 강조하는 교육에 대한 위험성을 아래와 같이 경고하고 있다.

 

첫째, 신경제가 요구하는 고도의 역량에 대한 필요성이 과장되어 있을 수 있다. 21세기 역량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역량을 강조하는 교육에서는 사회정의와 불평등 완화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도덕성, 윤리성, 격차 완화,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 구축, 환경 문제, 빈곤, 삶의 질 등이 직업세계에서 요구하는 역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진다.

 

셋째, ‘21세기 역량’ 교육의 좋은 취지와는 달리 정치가들이 임기 내 업적을 내고자 학교를 닦달하고 끊임없이 개입한다. 이들은 여전히 표준화 시험 성적을 중시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개혁과 개입은 오히려 학교교육을 후퇴시킨다.

 

넷째, 역량교육이라는 의제는 속도와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피상적 참여와 상호작용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가슴 뛰게 하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의 이념과 목표, 교수학습의 질을 혁신하기 위한 진정한 전문가 공동체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장기적 목표보다는 늘 단기적 목표가 압도한다.

 

도구주의에 뿌리를 둔 역량의 함양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교육의 목적에 인적자본 형성을 포함시킬 수 있다. 문제는 아예 위 <표 1>처럼 사회적 수요에 부응해서 학교교육의 목표를 ‘핵심역량의 함양’으로 전격 전환하는 것에 있다. 그동안 해왔던 지식교육이 다 무용지물이라면 세계 주요국들이 여전히 지식기반교육을 중심에 두면서 범교과적 역량 함양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핵심역량의 함양이 학교교육의 주 목표로 설정된 이유는 21세기초부터 시작된 세계적 역량 운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역량 연구의 중심에 섰던 학자들이 ‘역량중심교육과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과도, 또 2015개정 교육과정의 인재상과도 관련이 깊다. 각 교과과정의 교육 목표를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로 키우기 위한 핵심역량 6가지를 중심으로 각 교과에 반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개정 교육과정은 매우 급히 만들어졌다. 지식과 역량의 관계에 대해서도, 인간상과 인재상과의 상호관계도 연구된 바 없다. 그러면서도 원론 수준이기는 하지만 2015개정 교육과정은 깊이 있는 지식과 원리의 습득을 강조하는 ‘이해를 위한 지도(Teaching for Understanding: TfU)’ 혹은 ‘디자인에 의한 이해(Understanding by Design: UbD)’라는 교수학습 이론을 도입했다. 이 이론은 지식의 깊은 이해를 강조한다. 이 이론이 지향하는 단원역순설계(backward design)는 핵심질문과 핵심개념을 앞세우고 학습활동을 여기에 긴밀히 연계시키도록 함으로써 교사가 저지르는 2가지 죄악(twin sins)1을 방지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지금 이에 대한 연수도 전국적으로 비교적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2015개정 교육과정의 실천은 핵심질문과 핵심개념 중심의 단원 설계를 통해 깊이 있는 이해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지식기반교육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바른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핵심역량의 함양은 핀란드, 싱가포르, 미국, 일본 등 세계 주요국들처럼 지식교육을 보완하는 학습 디자인의 한 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역량교육을 실패한 지식교육의 대안처럼 과대 선전하고 포장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역량에 대한 세계적 유행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려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역량’이나 ‘능력’이란 어휘가 한국에서는 긍정적인 어휘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마 지금까지의 지식기반교육에 대한 실망이 커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사실 블룸의 교육목표 분류(알다, 이해하다, 적용하다, 분석하다, 평가하다, 창조하다)를 상기해보면 지식교육 내에 지금 강조하고 있는 역량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업을 잘 설계하면 수행 과정을 통해 정의적 역량까지 길러진다. 다만 21세기 들어 마주하는 도전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역량이 더 강조될 필요는 있다. ‘역량’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식의 활용을 강조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일부 국가에서 교육과정 기준 문서에 핵심역량 리스트를 제시하는 것도 지식교육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활용을 강조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한국의 고유한 현실을 고려할 때 학교교육의 목적은 깊은 이해를 목표로 하는 ‘지식교육’으로 삼되 이의 보완제로 ‘역량교육’에 접근하는 방향이 옳다. 국책연구기관의 연구물이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학교교육의 목표를 ‘핵심역량의 함양’으로 규정하고 해당 연구진이 이를 기반으로 전국에 교육과정 연수를 하고 있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2. 역량과 지식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흐름

 

한국은 지금까지 세계적 역량 운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 사회는 “이제 지식교육에서 벗어나 역량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지식교육을 폄하하고 암기와 습득 중심의 교육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역량의 하부구조에 관한 무지와 관련이 깊다. 하나의 역량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지식과 인지 능력, 실용적인 기능, 태도, 정서, 가치, 윤리, 동기 등이 다 동원된다. 역량은 이렇게 총체적으로 발휘된다. 특정 역량의 발휘는 그 역량과 관련된 기반 지식이 충분히 습득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가령 비트코인 거래소를 폐쇄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 외국의 사례 등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지식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기본적인 지식과 기본적인 기능이 모든 역량 발휘의 기반이다. 최근 OECD Education 2030 연구 프로젝트에서 제시된 아래 도표는 지식과 역량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표 2> OECD Education 2030 Framework

지식과 역량 간의 관계를 가장 잘 설정한 국가의 하나로 일본을 들고 싶다. 일본은 최근 10년 만에 교육과정을 전면 개정하면서 초중고 교육이 공통으로 지향해야 할 학력을 ‘자질·능력의 3개 축’으로 재정의했다. ① 살아가며 일할 때 필요한 ‘지식 및 기능’의 습득 ② 미지의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사고력·판단력·표현력’의 육성[역량] ③ 배움을 삶에 활용하려는 ‘학습의 힘, 인간성’의 함양이 그것이다. 아래 관련 <표 3>을 보면 지식과 역량을 동등한 축에 놓고 있다. 한국과 매우 대조되는 지점이다. 역량에 관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역량과 지식의 관계가 좀 더 명확해지고 있다. 한국은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래 <표 3>을 보면 일본은 이런 최신 연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표 3> 일본 신교육과정의 교육목표 – ‘자질능력의 3개 축’

교육의 주요 목표인 지식의 습득과 역량 함양의 관계 또는 위상에 관한 또 다른 자료로는 『Four-Dimensional Education, 2015』이 있다. 이는 미국의 교육과정재설계센터(Center of Curriculum Redesign: CCR)에서 펴냈는데 이 책 저자 중 한 사람인 찰스 파델은 미국의 역량연구의 본산인 P21(The Partnership for 21st Skills)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21세기 역량 프레임으로 <표 4>를 제시하고 있다.

 

<표 4> CCR 21세기 교육목표 프레임


이 프레임은 교육목표를 구성하는 역량(skills), 지식(knowledge), 인성(character)을 같은 차원으로 다루고 있다. 지식이 역량의 하위 요소가 아니라 역량 및 인성과 서로 부분적으로 겹치면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로 보고 있는 것이다. 4번째 차원인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학습능력(learning to learn)의 다른 표현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이 프레임은 OECD가 현재 추진 중인 ‘교육 2030(Education 2030)’ 프로젝트 팀과 협력하면서 세계 32개 교육목표 프레임을 분석하고 종합해서 나온 결과라고 한다. 교육의 목표를 핵심역량의 함양으로 잡은 것은 한국뿐일 가능성이 높다. 이어서 단편적 지식의 암기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 시각에 대해 살펴보겠다.

 

 

3. 단편적 지식 암기의 유용성

 

21세기 들어 깊이 있는 지식(deep knowledge), 깊이 있는 학습(deep learning), 깊이 있는 이해(deep understanding)가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고 단편적이고 얕은 지식(surface knowledge), 얕은 학습(surface learning), 얕은 이해(surface understanding)는 유용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깊이 있는 지식·학습·이해에 비해 가치나 유용성이 상대적으로 적을 뿐이다. 단편적 지식이 이해의 과정 없이 암기되고 거기에 머무는 것이 문제이지 단편적 지식이 다른 단편적 지식과 연결되고 상위 단계의 개념적 지식과 통합의 과정을 거친다면 단편적 지식은 더 이상 단편적 지식이 아니게 된다. ‘이해를 위한 지도(TfU)’ 이론을 개발한 사람 중의 하나인 Jay McTghe는 자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단편적 지식의 유용성을 밝히고 있다.

 

“사실적 학습과 기초적인 기능은 어떻게 되는가? 뭔가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식의 기억과 기능의 습득이 필요하지 않은가? 지식과 기능의 습득 없이 사고하고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가 의미의 도출과 전이를 중시하는 ‘이해를 위한 지도’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핵심지식을 습득하고 기본적인 기능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이해와 전이라는 더 큰 맥락 속에서 학생들이 사실적 지식과 특정 기능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학습자는 사실적 지식과 기능을 더 큰 개념과 연결시키고 실제적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용하면 더 잘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Teaching for Understanding: a meaningful education for 21st century learners

 

단원에서 배울 내용을 단원 맨 앞에 제시하는 핵심질문과 이것이 포함하고 있는 핵심개념에 긴밀히 연계시키면서 가르치고 배우면 목표가 명확하고 배우는 내용과 연계가 우수해서 이해와 기억이 확실히 더 잘 된다. 이해를 위한 지도의 이런 효과는 이미 25년 가까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검증되었다. 한국에서도 2015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이것이 소개되고 지금 전국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다만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 그리고 이런 새로운 수업이 가능한 환경의 마련 없이는 “짝퉁”으로 끝나기 쉽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13개월 마다 지식의 양이 두 배로 증가하는 21세기에 지식의 습득이 핵심개념이나 핵심원리 중심으로 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매우 바람직한 변화이다. 핵심개념 중심의 새로운 접근은 교육 격차를 줄이는 데도 기여한다는 연구도 있다.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지만 핵심질문, 핵심개념 중심의 깊은 학습은 지식 홍수 시대의 지식교육에 대한 한 대안으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위에서 살펴본 ‘얕은 지식’과 달리 한국에서 말하는 ‘단편적 지식’의 유용성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인간의 뇌는 어떤 정보와 지식을 접하면 본능적으로 패턴을 탐색한다. 이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인간의 본능적 기능이다. 외부 자극이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것인지 불리한 것인지를 매우 신속히 파악하려는 뇌를 갖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인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초등 저학년 학습활동 중에 점을 이으면 글자가 되기도 하고 물고기나 코끼리 같은 동물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단편적 지식이 서로 연결될 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게 된다. 점(=단편적 지식)이 없으면 물고기나 코끼리 같은 개념적 의미는 존재할 수 없다.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해 에세이를 쓰려면 관련 주제에 대한 낱개의 어휘는 물론 관련 기초적인 사실적 지식을 풍부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아래 <그림 1>처럼 깊은 개념적 지식은 얕은 지식이 연결되고 통합되면서 형성된다.

 

<그림1>

얕은 학습(surface learning)은 깊은 학습(deep learning)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지 쓸모없지 않다. 실제 자신의 학습의 궤적을 생각해보라. 단편적 지식의 암기는 매우 유용한 학습의 한 과정이다. 블룸의 교육목표 분류도 ‘기억하다, 이해하다, 적용하다, 분석하다, 평가하다, 창조하다’처럼 되어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의 기억 없이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사실적 지식은 지식의 4가지 위계(know what-사실적 지식, 개념적 지식; know how-절차적 지식, 상위인지 역량) 중 가장 기초가 되는 요소다.

 

 

4. 용어 선정에의 신중함 필요

 

교육과정 문서나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선택은 매우 신중해야 하고 가능하면 글로벌 표준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 있는 용어의 사용 예를 들면 ‘역량중심교육과정’, ‘창의융합형인재’의 강조가 현재의 문제점을 낳았고, 형성평가가 잘 안 이뤄지니까 ‘과정중심평가’란 용어를 도입해서 총괄평가의 의미를 왜곡하고 형성평가를 소홀히 하거나 이를 대체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도록 만들었다. ‘학생참여중심’이란 용어의 경우도 이 말 대신 ‘학생중심’, ‘학습자중심’이란 용어를 썼어야 했다. ‘학생참여중심’이란 용어는 마치 모둠 수업을 통해 학생이 활발하게 참여하기만 하면 수업을 제대로 한 것이란 오해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학생중심학습(student-centered learning)’ 방식이 ‘교사중심학습(teacher-centered learning)’ 방식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서로의 장단점이 있다. 교사중심 수업도 상황에 따라 매우 유용하다. 이 둘의 절충인 ‘학생중심지도(student-centered teaching)’가 현실적이다. 용어 선정에서 일본이 최근 보여준 신중한 태도 하나를 소개하겠다. 일본은 “이번 새로운 교육과정 개정에서 주체적인 학습, 대화적인 학습, 깊이 있는 학습을 골간으로 하는 ‘능동적 학습(Active Learning)’을 전면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용어를 사용할 경우 이 용어에 대한 오해와 과다한 반응이 우려되어 최종 단계에서 이 용어 사용을 않기로 했다”는 글을 읽었을 때 참 인상적이었다. 한국도 이런 신중함을 배웠으면 한다.

 

 

5. 맺음말

 

학교교육의 최종 결과를 핵심역량의 함양으로 설정할 경우 큰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지식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데 이런 시도가 자칫 지식교육 자체를 소홀히 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량을 중심으로 한 인재상보다 더 상위 개념인 인간상을 교육목표에 연계시키지 않은 채 역량중심의 인재상만을 각 교과에 강하게 반영하게 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로 인한 교육의 목표에 대한 현장의 혼란은 매우 클 것이 분명하다. 철학의 부재, 원칙의 부재, 연계성과 일관성의 부족 등으로 인한 부작용도 크게 우려된다. 정보와 지식의 홍수시대, 그리고 지식의 수명주기가 짧아지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목표와 교수법의 모색은 필요하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단지 유행을 좇아 너무 성급히 현장에 도입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끝으로 기초 지식의 확실한 습득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인지과학과 뇌과학의 연구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뇌가 어떻게 학습하고 이해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는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기초적인 지식과 기능은 모든 학습의 기반이 된다. 일본이 이번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이 “기초적인 지식과 기능의 확실한 습득”이다. 교사가  ‘두 가지 죄악’을 일상적으로 범하는 상황에서 학교교육의 목표를 역량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은 교육을 더욱 피상적인 수준으로 몰고 가서 지식교육, 역량교육 둘 다를 놓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한국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만들 것이다.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조치가 있어야 한다. 정책결정자들의 현명한 결단을 촉구한다.

 

🖨️ 인쇄(Print)하기

각주

  1. 교사가 수업에서 저지르는 두 가지 죄악(twin sins) – ① 활동중심 수업(activity-focused teaching) ② 진도 나가기에 초점을 두는 수업(coverage-focused teaching)을 말함. 핵심질문이나 핵심개념과 긴밀히 연계되지 않은 활동중심 수업은 활동만 있고 성취목표 달성과는 관련이 적기 때문임.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글 유아기 영어교육, 무엇이 최우선 판단 기준이어야 할까? 다음글 청소년참여위원회와 청소년의회
칼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