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 영어교육, 무엇이 최우선 판단 기준이어야 할까?
새해 들어 갑자기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의 방과후 영어교육 금지에 대해 2018년 1월 16일 교육부의 발표가 있었다.
1. 논란의 시작
지난 해 끝자락인 12월 27일, 교육부는 [유아교육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 안에 총 4개의 추진 과제를 담았는데 그중 ‘교실 혁명을 통한 유아 중심의 교육문화 조성’에 포함된 일부 내용-한글, 영어교육 등 제외-이 문제가 되었다.
교육부는 교육과정을 유아중 심으로 전환하여 유아 인권을 보장하려는 목표를 설정하고, 놀이·유아 중심으로 교육과정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방과후 과정도 영유아 대상 과도한 사교육 문화를 개선한다는 세부안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세부안을 도출하기 위한 현황의 한 축으로 영어, 한글 등 초등학교 준비 위주의 교육, 학습을 위한 주입식 교육으로 유아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초등학교 1-2학년 교육과정에도 포함되지 않은 교과목(영어)과 같이 유아 발달 단계에 부적합한 내용은 어린이집에서도 제외할 것을 방안으로 제시하였다.
이에 학부모들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재미있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정부가 나서서 비싼 사교육을 더 부추긴다며 8만 7천 명이 청와대에 청원을 하였다. 언론에서도 현실을 무시하고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졸속으로 발표한 정책이라고 연일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도 재검토하거나 시행시기를 늦출 것을 요구하였다.
2. 먼저 검토할 사항
유아기와 초등 1, 2학년 영어교육과 관련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내용에 대한 검토를 먼저 해봐야 한다.
첫째는 초등학교에서 몇 학년부터 영어를 정규과정에 포함하여 가르치고 배우게 되느냐이다. 3학년부터이다. 1997년부터 영어를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학년의 결정은 우리나라 교육정책 연구의 산실인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수차례 공청회를 거친 후 이루어졌다. 일반적인 아동의 언어 발달, 모국어의 문법체계 습득 시기, 모국어와 제 2외국어와의 관계, 영어교육의 필요성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집중적인 논의 끝에 학년을 결정했다. 제 2외국어인 영어를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하는 것이 부정적인 요소는 상대적으로 적고 긍정적인 점이 더 많아서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 판단이었다.
둘째는 3년 전 2014년 9월에 제정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의 내용이다. 이 법은 선행교육이 학생들의 심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학부모들에게는 사교육비 부담을 안겨주며, 정규 학교의 교육과정을 비정상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장본인임을 인식하고 그 폐해를 막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3년 반의 유예기간을 거친 이 법이 올 3월부터 시행되는데 그 내용 중 한 가지가 그동안 암묵적으로 시행하던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을 금지하는 것이다.
특별법에 의하면 초등학교에서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1, 2학년의 방과후 영어를 금지하는 것은 공교육 정상화라는 더 높은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 이는 논리적으로도 타당하다. 바로 이 맥락에서 교육부는 유아 대상 학교이자 교육기관인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영어교육을 금지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유아기 교육과 초등교육과의 연계성, 교육정책 간의 일관성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3. 의견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교육에 대한 의견은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찬성으로 또 반대로 나뉜다.
먼저 유아기 발달 특성과 제 2외국어 학습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관점의 중심은 아이들이며, 주로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고, 유아기 영어교육에 반대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유아기는 모국어의 어휘와 문법체계를 습득하는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로 이때 제 2외국어를 학습하는 것은 효과도 적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어교육은 유아기보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다.
다음으로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방과후 활동으로 영어교육을 금지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걱정을 중심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관점은 정규 기관인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금지하면 학원이나 학습지 등 사교육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리 사회의 영어에 대한 프리미엄이 워낙 높고 교육열도 높아서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다른 아이들은 영어를 공부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 시키면 뒤질 것이라는 부모들의 불안감이 결국은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고 비용 부담까지 안겨준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이들에게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학습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의 영어교육 금지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철회해야 한다고 말한다.
끝으로 유아교육과 초등교육과의 연계성을 중심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번 3월부터 초등학교에서는 1, 2학년 대상의 방과후 영어교육을 할 수 없다. 법을 따르자면 그렇다. 하물며 어떻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방과후 영어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교육체계 내에서의 정책의 일관성이나 유아교육과 초등교육과의 연계교육 차원에서 보면 설명이 필요 없는 당연한 논리적 순서이다.
4. 진단과 판단
짐작하건데 교육부는 유아들의 발달과 교육적 관점, 그리고 교육체계 간의 연계성을 고려하여 유치원과 어린이집 방과후 영어교육을 금지하겠다는 발표를 했을 것이다. 더구나 특별법 제정부터 시행까지는 3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추진해야 할 정책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과 언론은 사교육으로 번질 확률이 높은 사회적 현상을 언급하며 금지 조치는 잘못되었다고 청원을 하고 줄 이은 보도를 하였다. 또 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은 유아기에 적합한 게임이나 노래 등의 방식으로 영어교육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하고, 비용도 저렴하여 부모들의 만족도도 높은데 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난하였다. 게다가 유관 정부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어린이집의 영어 특별활동을 금지하려면 법을 개정하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손을 저었다. 여기에 여당은 다가올 선거를 의식하여 교육부에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야당은 현실을 모르는 졸속 교육정책이라고 비난을 하였다. 교육부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형국이 되었다.
부모들은 자신의 교육철학을 반영하여 자녀를 교육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영유아 무상교육과 보육 바우쳐를 부모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적합한 기관을 선택하여 교육할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방과후에 실시하고 있는 영어교육을 정부가 금지하는 것은 부모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청와대 청원에 올라온 의견이나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몇 만원1 남짓의 저렴한 비용으로 방과 후에 영어교육을 하는 것을 정부가 금지한다는 것은 소득 격차로 인한 교육 격차를 유아기부터 조장하는 정책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도 영어 학원을 기웃거리게 되거나 가정에서 할 수 있는 학습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서 이로 인한 경제적, 심리적 부담감이 현재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현 정부의 철학의 근간을 찌르는 날카로운 말이다.
교육정책을 수립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교육대상인 아이들의 권리, 아이들의 교육권을 가진 부모들의 생각, 사회를 유지 발전시켜야 할 국가의 책무성 등등. 어느 요소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실 너무나 원론적이고 진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조금 먼저, 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는 교육대상자인 아이들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 대상의 정책을 수립할 때에는 더 섬세하게 아이들을 고려해야 한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그들의 발달적 조건을 살펴야 하고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유아기에 가장 가치 있는 활동은 노는 것이다. 놀 때는 온 몸과 마음과 정신이 통합되어 작동한다. 눈이 반짝이고 손과 입이 바쁘고 몸도 가만 두지 않는다. 그러려면 머리도 쉬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즐거움과 화남과 슬픔의 표현, 소통력, 주도성, 협동심, 협상력, 조절력, 창의력 등이 키워진다. 현재는 물론 미래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들이 어떤 교육 장면에서보다도 놀이 장면에서 키워진다. 이런 이유로 유아교육 전공과목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우는 필수과목이 바로 발달과 놀이이다.
몇 분의 교육감님들과 함께 스웨덴과 독일의 여러 유아교육 기관을 방문했을 때, 그분들이 가장 많이 하셨던 질문은 “이 아이들은 언제 공부하느냐?, 개별 책상이 왜 없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분들 눈에 비친 아이들은 종일 놀고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이들은 실내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그림책을 가지고 놀고, 선생님과 밖으로 산책 나가서 오랫동안 놀고, 다시 들어와서 친구들과 뭔가를 만들면서 놀고 있었다. 개별 아이들의 이름이 붙어있는 책걸상이 없었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길게 설명하는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그곳 교사들도 영어교육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일부 소수의 부모들이 좀 더 일찍부터 영어를 가르쳐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예전 동독 지역의 한 유치원에서는 자원봉사자인 할머니가 일주일에 한번 와서 영어 노래와 게임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의 경우 제 2외국어인 영어를 정규교육과정에 포함하여 가르치는 것은 대부분 초등학교 시기이다. 이들 국가의 모국어와 제 2외국어인 영어의 근원이 같아서 이 시기가 늦지 않은 시기라는 생각이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러나 정규 학교교육과정에서 영어를 교육하는 시기가 유아기가 아니라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개발도상국 부모들의 유아기 자녀 영어교육에 대한 열정은 유럽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높았다. 유네스코 과제를 수행하면서 동남 아시아권 국가인 베트남, 태국, 몽골 등에 갈 기회가 있었다. 이들 국가의 유아교육기관장들은 영어에 관심이 매우 높았다. 베트남의 가장 비싼 사립유치원은 호주에서 초빙해온 원어민이 영어를 가르쳐주는 곳이었다. 원장은 어떤 수준의 원어민을 초빙해왔는지를 설명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교육부 담당자들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의 현실은 금년 1월에 드러났다.
5. 다행이고 아쉬운 점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방과 후 영어교육에 대한 입장을 1월 말에 발표하겠다던 교육부가 1월 16일로 발표를 앞당겼다는 것은 이 문제가 얼마나 뜨거운 감자였는지, 교육부가 얼마나 비난을 들었는지를 잘 말해준다.
교육부 발표 내용은 고액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나 과도한 방과후 영어교육과 같은 유아기 조기 영어교육의 부작용부터 해소하고, 올 한 해 동안 국민 의견수렴을 거쳐 초등학교 영어교육, 방과후 영어교육 등에 대한 개선 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인 상황이 교육적 판단보다 앞선 준거로 작용하였다. 선거가 있는 해인 올해,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30, 40대가 바로 유아와 초등 저학년의 자녀를 둔 연령층이기 때문에 여당과 정부는 이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아기 교육에 대한 교육부의 기본 입장은 지난 해(12월 27일)에 발표한 내용과 동일하다. 기본 교육과정과 마찬가지로 방과후 활동도 놀이와 유아 중심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해 말 12월 27일에 발표한 교육부의 유아교육 혁신 방안은 그동안 교육부의 유아교육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덜기에 충분한 좋은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추진했던 유아교육정책과는 색이 완전히 다른 정책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유아를 교육의 중심에 놓고, 유아기 삶을 상징하는 놀이를 교육과정의 중심에 놓고, 저소득층과 다문화 가정 및 발달의 경계선에 있는 유아들을 경제적, 교육적으로 최우선 지원하고, 학부모를 교사와 함께 유아를 키우는 교육공동체로 간주하는 정책들이 있었다. 또 공립 유치원을 늘리기 위한 합리적인 전략과 함께 사립 유치원 교사에 대한 급여 지원도 포함하였다. 이런 정책들은 그동안 유아를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조기교육 대상으로 간주하고, 이를 위해 교사가 가르쳐야 할 많은 내용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학부모를 교육의 대상으로 간주하던 정책들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아쉽게도 방과 후 영어교육 금지로 인해 좋은 내용이 다 묻히고 말았다. 앞으로 교육부가 혁신방안에 담은 다른 과제를 추진할 에너지가 남아 있을지도 걱정이 된다. 또 국가교육회의가 활동을 개시하면 정말 교육적 판단이 최우선 기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유아교육 전공으로 한국교육개발원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유아교육정책을 연구했으며, 현재는 동국대(경주)에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위원, OECD 유아교육과 보육정책 국가조정관, 교육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유치원교육과정 개정 등에 참여하였다. 대표적인 정책 제안은 유아교육-유치원-교육부, 보육-어린이집-복지부로 이원화된 유아교육과 보육체제를 단일부처로 통합하자는 것이며, 이 안은 지금까지도 미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최근에는 미래를 위한 배우기와 익히기에 쏠려있는 유아기를 아이들이 주도하는 생동하는 놀이 중심으로 되돌리는 것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