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참여를 전면적으로 보장할 때다
얼마 전에 징검다리 톡방에서 흥미로운 논쟁이 진행됐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매우 형식적으로 운영된다는 몇 선생님들의 지적과 비판에 이어 학생들이 자치법정을 통해 학교폭력사안을 직접 판정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예를 들어 서울시교육청의 혁신학교정책자문위원장에 이어 경기도교육청의 꿈의학교추진단장으로 맹렬히 활동 중인 박재동 화백은 “학폭위는 아이들로 구성하고 거기서 해결되지 않을 때에 아이들과 어른들로 구성된 2차 학폭위에서 맡아도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어서 그는 “학교폭력 문제를 판단할 때는 아이들에게 맡겨야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판단을 더 잘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화해와 치유를 더 잘한다는 증거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는 “전학시킬 것인가, 퇴학시킬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도 일차적으로 아이들에게 맡겨야 한다.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게 어려울 때 어른들이 개입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나는 박재동 화백의 학교폭력대책 구상에 즉각적으로 강한 공감을 표시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교육감 시절 비슷한 생각으로 학교폭력대책을 마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2010년 겨울, 학폭피해 학생의 잇단 투신자살로 온 국민이 슬픔과 비탄에 빠졌다. 교육당국과 언론이 학폭대책을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싸맸다. 나는 2011년 2월, 이른바 곽노현표 학폭대책 3원칙을 세상에 내놨다. 박재동 화백과 똑같은 문제의식이었다.
첫째, 학생자치 처리의 원칙. 학교폭력의 발생 원인과 진행 경과, 적절한 처리 절차와 제재 방안에 대해서는 학급아이들이 교실생활의 전문가이자 학폭 당사자로서 제일 잘 안다. 중고등학생쯤 되면 아이들의 집단지성과 감수성으로 충분히 정의롭게 자신들의 분쟁사안을 처리할 수 있다. 그 자체가 최고의 민주시민교육이기도 하다. 학폭사안은 원칙적으로 학생자치법정에서 다루는 게 바람직하다.
둘째, 교육적 처리의 원칙. 학교폭력 사안의 처리 과정에의 참여가 모든 당사자에게 최고의 교육적 기회와 경험이 되도록 처리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당사자들이 나와서 다양한 관점에서 사태를 설명하고 상호 질의와 답변을 거듭하는 가운데 사태의 총체적 진실이 드러나게 하여야 한다. 그렇게 드러난 진실에 합당하게 공동체의 이름으로 벌을 가하고 가해자가 사죄함으로써 최대한 피해자와 화해가 일어날 수 있도록 회복적 정의를 추구하여야 한다.
셋째, 방관자 교육의 원칙. 학폭사건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외에도 교사자, 방조자, 방관자 등 다양한 층위의 목격자들이 있다. 제일 많은 게 방관자다. 빤히 알면서도 묵인해주는 방관자들이 있기 때문에 학폭이 지속된다. 방관자들이 외면하지 않고 힘을 모으면 가해자는 당해내기 어렵다. 대부분의 학폭은 학급친구들의 눈총과 지탄으로도 중지시킬 수 있다. 학폭교육은 누구보다도 대다수 방관자의 각성을 겨냥해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교육연극팀 4팀을 섭외해서 중학교 순회 학폭 교육연극 공연을 시작하게 했다. 이를 통해 나는 가해자와 피해자, 가담자 등 학폭사안의 다양한 당사자, 특히 방관자가 연극적 묘사와 장치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된 자신의 역할을 객관적으로 보고 각자가 행동을 바꾸기를 기대했다. 한마디로, 곽노현표 학폭대책은 ‘학생자치법정, 회복적 정의, 교육연극을 통한 방관자 교육’으로 구성될 것이었다. 물론 나는 얼마 안 돼 물러나야 했으므로 이런 3대 원칙을 부분적이고 희미하게 선보였을 뿐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참여를 겁낼 게 아니라 적극 권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론적으로 갖고 있을 뿐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 박재동 화백의 경우 길지 않은 미술교사 생활을 통해 혁신적이고 재미난 학생중심 미술수업을 선보이며 학생참여의 교육적 효과를 직접 확인한 분이다. 지난 6월 21일, 서울 중랑구에서 700여 명의 학부모 앞에서 박재동, 김민웅, 조희연, 그리고 내가 혁신교육 토크쇼를 할 때였다. 이때에도 박 화백은 교사라도 학생한테 배울 게 많이 있으며 교육정책을 짤 때 지금처럼 학생참여를 배제할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교육정책을 기획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중석에 함께했던 중고교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환호했다.
학생참여 강화에 대해 조희연 교육감도 적극적이었다. 학생들을 피교육자로만 대하는 것과 교육정책 의사결정에 학생을 배제하는 것은 완전히 동일한 것이라고 호응했다. 그는 학교운영위에 이제는 학생대표가 당연히 들어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나아가서 18세 선거권을 예로 들며 얘기를 이어갔다. 18세 선거권이 인정돼 고3 학생이 교육감선거권을 갖게 되면 당장 학생들이 쓸 수 있는 예산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교육감선거의 경우 16세 이상 고교생들 전체에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되면 집에서 학부모와 학생이 선거를 놓고 토론을 하게 될 것이고 학생들이 자신과 관계된 정책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행사에 참석한 고교생들이 다시 박수를 치며 반겼다.
나는 조희연 교육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그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번 학기부터 서울시교육청은 중고등학교에서 보이텔스바흐 원칙에 따른 논쟁교육을 본격적으로 권장하는 일에 팔을 걷어 붙였다. 서울시교육청이 만들어서 일선학교에 보낸 안내 리플렛에는 토론 논쟁 교육에 적합한 토픽들이 예시돼있다. 하나같이 흥미로운 주제들이지만 특히 학교생활과 관련된 토픽들이 눈길을 끈다. 용의복장 규정을 어떻게 할까? 학교운영위에 학생대표의 참여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교내에서 청소년의 정치의사표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고교평준화정책은 공평한 권리보장인가, 선택권의 침해인가? 청소년의 정당가입은 필요한가? 선거연령을 18살로 내릴 필요가 있나? 등이다. 학생생활의 공통주제와 쟁점에 대한 토론 논쟁은 학교교육과정의 필수불가결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
안내 리플렛은 학교 밖 정치와 사회의 뜨거운 쟁점들도 보이텔스바흐 원칙에 따라 논쟁수업을 진행할만한 좋은 주제로 예시한다. 이를테면 핵위협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필요한가? 원자력 발전소는 전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가, 안전을 위해 제한되어야 하는가? 이주노동자에게 우리 국민과 똑같은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가? 같은 것들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오늘의 사회현안에 대해 결정권을 행사하진 못해도 최소한 학습하고 토론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의 외피 속에서 학교를 정치 논쟁 교육 진공상태로 만들고자 했던 기존의 관행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한 교육회피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루되 보이텔스바흐 원칙에 따라 세뇌주입교화를 하지 말고 논쟁적으로 균형 있게 다룰 것을 요구할 뿐이다. 교육기본법도 정치적 주제와 현안을 다루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교사 본인의 “정치적, 당파적,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는 방편”으로 삼지 말라고 할 뿐이다. 당대의 논쟁적인 시사 주제를 학교수업에서 교육적으로 다뤄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바보가 되거나 비교육적 환경에서 오염되기 쉽다.
서울시교육청도 리플릿에서 동일한 문제의식과 처방전을 내놓는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교육활동에서 학생이 정치문제를 다뤄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 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진정한 의미는 학생에게 특정 정치 견해를 주입하지 말고 토론과 논쟁의 과정을 통해 학생 스스로 정치적 판단을 하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현안에 대해서는 보이텔스바흐 원칙에 따라 토론 논쟁 수업을 해야지 조건반사적으로 회피하거나 조금이라도 세뇌교육이나 일방적인 의식화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는다.
나는 학부모 교원평가와 동료 교원평가는 바로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믿지만 아직도 중고교 학생에게는 수업평가 기회를 줘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만큼 학생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내야만 하는 참여 영역이 없을 것 같다. 앞으로는 교장공모제에서도 지금과 달리 중고교 학생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교장은 교사들의 교장일 뿐 아니라 학생들의 교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학생회와 동아리 활동을 거의 전적으로 학생자치에 맡기고 학생축제 등 다양한 행사의 기획과 집행을 학생자치에 맡겨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특별히 추가적으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현실의 학교에서는 이마저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이제는 행동이 필요한 때다.
결론적으로 학생참여는 수업(토론논쟁수업, 프로젝트수업 등), 학교폭력 등 학생징계, 생활규칙 제·개정, 학급운영, 학교교육과정의 설계와 운영, 학교행사 기획, 수업평가, 교장공모, 학교운영위원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또한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학생중심 수업진행과 학급운영, 학생자치 학생회와 동아리활동, 학생주도 학칙과 생활규칙 입법, 학생참여 학교운영위가 학생중심 학교와 민주적 학교문화를 만들어낸다. 이래야만 학교교육이 시나브로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있다. 이제는 학생참여의 전면화와 실질화를 교육개혁의 열쇠말로 인식하고 과감하게 실천할 때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