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변화에 관한 의문스런 가설과 전략들(1) – 융합적 인재 양성과 통합교과
잘못된 접근부터 바꿔야
내년 8월말 교육부가 발표할 대입전형 개선안에는 이와 관련된 수능체제, 내신평가제도, 고교학점제 등의 방안들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의 뿌리나 잘못된 인식의 틀을 그대로 둔 채 다시 1년의 추가 연구를 한다고 해도 체감할 수 있는 개선된 안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패러다임과 담론, 철학, 가치, 변화 가설(예: ‘A로 바꾸면 B란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다’), 제도, 내용(교과목 편제와 구성), 운영(교수법 포함), 교사의 전문 역량(professional capital), 교육개혁의 절차 등을 그대로 두고 대입전형과 수능의 개편안 마련에 임한다면 입시제도와 교육의 겉만 바뀌지 실제적 내용은 전혀 개선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먼저 기존의 제도와 인식의 틀 중 대입전형과 수능체제 개선에 직접 관련되는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은 ‘융복합적 인재 양성, 문이과 통합, 역량교육의 강화, 절대평가, 학생 선택 강화, 교과목 편제, 체험 중심 수업 강화, 교육과정 개선 방향, 과정 중심 평가’ 등이다. 먼저 이번 칼럼에서는 융복합적 인재 양성과 통합사회, 통합과학 교육과정 운영의 타당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융복합 인재 양성’이라는 표현과 교육목표의 문제점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융복합 인재 양성’을 강조하면서 심각한 문제점들이 야기됐다. ‘융복합 인재’란 용어는 주로 산업계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산업계는 IT, BT, NT 등의 신기술을 융합 혹은 복합하여 기존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 2015개정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에 보면 “2009개정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자주인, 창의인, 문화인, 세계인을 기초로 지식정보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역량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를 아래와 같이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1> 2015개정 교육과정의 교육목표

‘창의융합형 인재’라는 말은 용어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근본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다. 첫째, 이 표현은 논리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융합형 기술’이나 ‘기술의 융합’은 성립하니 이런 표현을 쓰려면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라고 풀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둘째, 초중등교육에서 인재상의 최상위 목표가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최우선 순위를 국가경쟁력이나 실용성에 두는 발상이다. 위 <그림1>을 보면 초중등교육에서 가장 바깥테두리에 위치한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교육의 최종 혹은 최상위 목표로 보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 학습력이 뛰어난 싱가포르의 경우를 보자.
<그림2> 싱가포르 21세기 역량 프레임(출처: http://www.moe.gov.sg/)

싱가포르의 경우는 한국과 사뭇 대조적이다. 한국의 4가지 인재상인 <자주적인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에 해당되는 싱가포르의 교육목표는 가장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 역량과 정보통신 기술 등은 인재상의 하위 요소로 보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싱가포르의 접근이 더 타당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융복합 기술, 융복합 인재 등의 유행어를 적극 밀어붙인 것이 청와대(그 당시 대통령은 밝히지 않겠다)라는 뒷말을 듣고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2009개정 교육과정에서 새롭게 설정한 4가지 인재상(자주적인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과 <그림1>의 6가지 핵심역량은 유기적으로 함께 개발된 것이 아니다. 기존의 4가지 인재상에 6가지 핵심역량을 갖다 붙이고 당시 청와대의 관심사였던 융복합 인재 양성을 다시 덧칠한 것이다. 한 나라의 교육목표가 이렇게 허술하게 변경되고 결정된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최근 교육목표를 변경한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교육목표 4가지가 ‘① 탁월성(excellence)을 추구한다. ② 공정한 교육(educational equity)을 추구한다. ③ 아동의 웰빙(wellbeing)을 촉진한다. ④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감(public confidence)을 높인다.’이다. 이와 같이 교육의 비전 혹은 교육적 신념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실질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도 이런 변화의 원리와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세계의 주요국들은 ‘창의융합형 인재’와 같은 표현을 쓰지 않고 그냥 “비판적 사고력, 창의적 사고력을 갖춘 사람(think critically, think creatively)”처럼 쓰고 이를 위한 학습은 ‘여러 학문분야에 걸친/범교과적인 접근(multidisciplinary approach)’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통합사회, 통합과학 등 ‘교과통합’의 문제점
2015개정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워크숍이나 공청회 때도 “인접 교과목을 섞어서 가르치면 융복합적 사고가 키워지는가?”란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런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교육부는 윗선을 의식해서인지 ‘융복합’이란 용어의 긍정적인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융복합 인재 양성의 수단으로 문이과 구분없이 고교 1학년 과정을 공통으로 배우게 하면서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를 위해서는 ‘융합적 접근’을 한다는 명분으로 지금의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교과서를 개발했다. 그 당시 좋은교사운동은 “2015 통합사회 교육과정, 이렇게 하면 실패한다”란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그때 발제자였던 한 사회교사는 “문이과 구분없이 사회과목 군과 과학과목 군을 고루 학습할 기회를 학생에게 제공하자는 방향인데, 사회과목 군, 과학과목 군을 각각 과목 군 내에서 통합형 교육과정으로 학습하면 창의융합형 인재로 양성될지는 근본적인 의구심이 있다.”라고 지적하였었다. 정확한 지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최근의 관련 연구에 의하면 역량은 ‘영역 고유성’(domain specificity)을 지닌다. 사고력은 특정 교과로부터 쉽게 분리되고 이것이 다른 영역에 응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캠브리지 출판사의 관련 개론서(The Cambridge Handbook of Expertise and Expert performance, 2006)는 “A Handbook of Skills” 대신에 “Handbook of Expertise”란 표현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Why Knowledge Matters, 2016 13쪽). 이는 UNESCO가 수행한 역량 연구에서 지식과 역량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과도 관련이 깊다. 지식은 역량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하위 요소의 하나인 것이다. 물화생지를 어설프게 섞어 놓고 그 교과서로 배우면 융복합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가 양성된다는 것은 아직까지 어디서도 검증된 바 없는 임의적인 가설이다. 핀란드도 역량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전통적 교과는 그대로 존재하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해결기반 프로젝트 수업, 토론, 조사와 분석 및 탐구 등을 통해 역량을 향상시킨다. 다른 주요국도 유사하다. 한국만 이상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를 고르게 학습하면 융복합적 사고가 가능한 인재가 양성된다는 가설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보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배워야 할 통합사회는 그 양이 너무 많다. 쉽게 썼다고 하지만 관련 내용을 제대로 수업하려면 결국 일반선택의 사회탐구 9과목을 끌어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존의 사회 교과서는 5단위-5단원인데 개정된 교육과정에 의하면 8단위-12단원이다(참고로 1단위는 1주일에 1시간, 한 학기 동안의 수업을 뜻함). 이렇게 양이 많으면 깊이 있는 학습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단원이 늘어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교과 이기주의가 작용한 결과라 생각한다.
또 다른 큰 문제점도 있다. 탐구나 활동 중심 수업은 관련 지식을 충분히 익히고 난 이후에 이를 활용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고1에 편제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기반 지식을 충실히 습득할 기회가 생략된 채 부과된 과목이다. 이는 덧셈과 뺄셈 그리고 곱셈도 제대로 못하는 학생들에게 이들을 종합적으로 활용해야 가능한 나눗셈 수업을 하라는 격이다. 현재와 같은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모든 학생들이 공통으로 배우게 할 경우 기초를 놓친 학생들, 특히 취약계층 아동들에게는 매우 불리하고 불공정한 일이 될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인공지능 기술이 직업의 자동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시대에 학교로부터 지식교육을 받을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학생들이다. 인간의 창의력과 통찰력은 각각의 기반 지식을 매우 충실히 갖추고 다시 이들이 하나로 통합될 때 비로소 그 구현이 가능해진다.
7차 교육과정을 통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을 필수로 이수했지만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데 실패했다. 가르치는 교사는 물화생지 중 한 과목만 전공했는데 이런 교사들로 학생에게 융합적 사고력을 갖추게 할 수 있겠는가? 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려 하는가?! 지식과 역량 간의 관계에 대한 무지부터 깼으면 한다. 제대로 된 지식교육의 바탕 위에서만 제대로 된 역량교육도 가능하다. 다시 “Back to basics!”가 해결책이다.
지식교육에 대한 폄하 풍조에 대한 우려
지식교육이 단편적 지식의 암기 수준에 그치자 지식의 활용을 강조하기 위해 역량교육운동이 세계적으로 펼쳐지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역량교육의 강화가 지식교육의 폄하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탄탄한 기반 지식의 바탕 위에서만 역량의 구축과 작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역량 함양을 위해 체험 중심 수업, 프로젝트 수업을 해본 결과는 어떤가? 지식의 체계적 습득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체험 중심 수업도 반드시 지식의 체계를 더 튼튼히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블룸의 지식 사다리만 보더라도 지식교육은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분석하고, 응용하고, 종합하고, 이를 이용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창조하는 것이 상위의 지식교육이다. 이 점에서 자유학기제가 마치 한 학기 동안 지식교육을 중단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도 큰 문제다. 자유학기제를 거치고 고교생이 된 학생들의 변화를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일부 교사들로부터 문제점이 보고되고 있다. 꾸준히 이어져야 하는 지식교육을 반학기 느슨하게 운영한 것의 후유증으로 보인다. 아일랜드가 한국과 달리 전환학년 방식으로 운영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지식학습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일은 잠시도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자유학기제도 지식교육의 활용과 긴밀히 연계시켜 운영하는 것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상위권 학생들은 자유학기제 동안에도 계속 공부를 하지만 중하위권 학생들은 “옳다”하여 논다면 의도와 달리 자유학기제는 학력 격차를 늘리는 학기가 되고 말 것이다. 같은 이유로 인해 통합사회, 통합과학을 통해 1학년에서 수박겉핥기식으로 사회와 과학을 배우고 고 2-3에서 심화된 과목을 학습하는 방식이 된다면 제대로 된 지식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내용 중심의 지식교육이 허술한 상태에서 활동 중심, 체험 중심의 교육 강화는 위험하기조차 하다. 세계적 유행을 무분별하게 쫓는 방식이나 교육 문외한인 정치가들이 교육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임의적 수선 방식의 교육과정 개정 때문에 교육과정의 나선형식 개발 원칙은 헌신짝처럼 버려진지 오래다. 그래서 역량교육운동과 함께 “왜 지식이 중요한가?”란 주제의 책들(예; Why Knowledge Matters, 2016)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2018년 8월 말 이전에 ‘교과목 체제/편제’ 전면 재검토해야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2021학년도 수능체제 연기를 하면서 2018년 8월 말까지 수능과 연계된 제반 요소를 고려한 ‘대입전형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또 다른 졸속이 우려된다. 현재의 교과목 편제는 개선할 점이 매우 많다. 고1 과정은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이 되었다가 선택교육과정이 되었다가 하는 방식으로 혼선을 거듭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런 시행착오도 소중한 자산이기는 하다. 과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더 나은 미래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과목 체제나 편제에 대한 대원칙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가령 “탐구적 활동 중심 수업은 이를 위한 기반 지식을 충실히 한 다음 한다.”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런 원칙 있는 개정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통합사회, 통합과학이 고1에 편성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 한편 수학 같은 교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세분화되어야 하고 사회와 과학 선택과목 체제의 불균형도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와 과학은 과분화되어 있다. 또한 모든 학생이 공통으로 배워야 할 내용과 선택으로 배워야 할 내용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는 현 교육과정의 전면 재개정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내년 8월 제대로 된 대입전형 개선안을 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현재의 교육과정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부터 살피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기초연구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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