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21학년도 수능 체제를 제대로 논의하고 있는가?
1. 시작말
문재인 정부는 2021학년도부터 시행될 새로운 수능 체제를 8월 말 발표할 예정이다. 2015개정 교육과정의 반영에 더해 수능 절대평가로의 전환 등 대선 공약을 동시에 반영해야 하는 입장이다. 수능 체제란 수능의 평가 목적과 평가문항, 평가 범위, 평가 시기, 성적 산출과 보고 방식 등을 통틀어 말한다. 교육변화의 대 변곡점을 맞아 새 시대에 맞는 차세대 수능 체제를 제대로 설계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상태다.
2021 수능 체제 개편은 수능뿐만 아니라 내신평가, 대입전형, 고교 학점제, 2015개정 교육과정 등의 개편과 긴밀히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를 바꾸면 다른 것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떤 요소의 장점을 추구하면 이것이 다른 요소의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경쟁을 완화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고자 수능 전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자 하니 수능 중심의 정시 전형에서 변별력 약화란 문제가 발생하는 점,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려고 하니 성적 부풀리기가 발생하는 점 등이 그렇다. 정부는 마땅한 대안도 없어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수능 절대평가 전환이란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는 상황이다. 8월 말이 발표 시한이기 때문이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에 대한 해결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이 올바른 변화의 방향이긴 하지만 전 과목을 전환할지 아니면 일부 과목부터 단계적으로 전환할지, 그리고 5~9등급 중 몇 등급으로 할지 등, 결정이 쉬운 것이 한 가지도 없다. 이와 관련해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했을 때 기대하는 효과가 날까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효과 없는 변화는 않는 게 낫다.
절대평가 전환이 기대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수능평가 외에 내신평가도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하고 등급도 5등급 정도로 낮춰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를 보면 정부는 현재 ‘수능 9등급 절대평가 + 내신 9등급 상대평가’란 조합도 고려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조합은 기대하는 효과를 전혀 낼 수 없다.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상대평가의 폐해가 줄어들지 않는다. 어떤 절대평가로 바꾸느냐가 핵심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현재 새로운 수능체제를 둘러싼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2. 수능 문제점 분석과 미래 방향 설정
2021 수능 체제를 둘러싼 현재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할 것인가, 일부 과목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할 것인가?”란 질문 대신에 아래와 같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 “지금의 수능은 무엇이 문제이고 수능의 바람직한 미래방향은 무엇인가?”
• “바람직한 미래의 수능 체제로 나아가려면 과도기적 2021 수능 체제는 어떠해야 하는가?”
유감스럽게도 현재 교육부나 인수위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이런 접근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위 두 가지 질문에 초점을 맞추어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우선 대표적인 표준화 시험인 현재의 객관식 상대평가 수능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1) 상대평가 수능의 문제점
(1) 타당성이 낮음
현재의 수능시험은 수학능력을 측정하는 도구로서 타당성이 낮다. 인간의 다양한 능력(분석적 능력, 창의적 능력, 실용적 능력, 잠재력 등)과 성향(예: 학업에 대한 동기와 열정, 학업 성공에 필요한 태도 등) 중에서 분석적 능력에 가까운 인지적 학습 능력만 측정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을 하나의 잣대로만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시험은 특정 능력이 잘 발달된 학생에게 유리하다. 또 이런 선발 방식으로는 다양한 인재를 선발해서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미래사회 변화에 대비할 수 없다. 또한 수능과 같은 지필평가를 통해서는 창의성, 감성, 소프트 스킬 등과 같은 미래사회에 가장 필요한 자질들을 평가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자질의 발달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이 여전히 고부담인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2) 경쟁을 심화시킴
현재의 9등급 상대평가 수능은 학생을 1점 단위로 촘촘히 줄 세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살인적 경쟁을 유발한다. 이런 경쟁이 주는 부담은 불안증, 우울증을 유발하고 심한 경우는 자살 충동까지 일으킨다. 상대평가는 옆 동료가 실수해주기를 바라는 평가이기 때문에 매우 비교육적이기도 하다.
(3) 획일적/피상적 교육을 강화
수능시험은 매우 정형화되어 있다. 게다가 여전히 고부담(정시전형 요소, 수시 지원시 최저학력기준) 시험이기 때문에 고교의 경우 배우는 내용, 가르치는 방식을 수능 고득점에 초점을 맞추게 만든다. 또한 수능은 객관식 시험이기 때문에 오답을 찾는 기술 향상이 매우 중요하고, 깊은 학습을 불필요하게 만들며 피상적 학습을 강화한다.
(4) 전공 준비의 장애요인
현재의 수능시험은 총점제다. 이로 인해 고교생들은 학교교육에서 배우고 싶고 대학 전공 수업에 필요한 것과는 무관하게 좋은 등급을 받는데 유·불리함을 기준으로 이수 과목을 선택한다. 따라서 이런 고교 수업체제로는 전공 준비도나 전공 적합성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대학에 진학해도 전공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많은 학생들이 보정교육의 대상이 된다. 다수의 외고 학생이 필요도 없으면서 단지 1등급을 받기 쉽다는 이유로 아랍어를 선택하고, 물리학과를 지원하는 학생이 수강생 수가 적어 등급을 따는데 불리하다는 이유로 물리II를 배우지도 않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심각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5) 교사의 자존감·전문성 발달을 훼손
고3 교실에서는 수능문제집이 교육과정을 대체한다. 누구도 교사가 전인적 교육을 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바라는 고교 과정에서의 좋은 교육은 성적을 향상시켜 상위권 대학에 진학시키는 일이다. 교사는 연구할 필요도 변화할 필요도 없다. 그저 시험 문제를 잘 푸는 요령을 전수하는 기능인의 역할만 잘하면 된다. 연구할 필요성, 수업 방법을 혁신할 절실한 동기를 갖지 못한다. 뒤처지는 학생들이 다수라도 이들이 있어야 9등급을 편하게 산출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능 상대평가의 폐해는 이렇게 심각하다.
(6)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킴
현재의 수능은 매우 불공정한 시험이며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수능 점수에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한편 수능 점수로 줄 세워 선발하는 것은 능력주의(meritocracy)의 폐해를 간과하는 것이다. 교육기관의 능력 중심 선발(merit-based selection)은 사회계층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마이클 영의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사교육이 극도로 잘 발달된 한국에서는 대도시 부자집 자녀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대 재학생의 70% 이상이 고소득 가정 출신이란 최근 언론 보도(동아일보, 2017-7-13)가 이를 잘 말해준다. 대학의 이런 전형은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계급사회를 부추긴다. 외고·자사고·국제고 등이 폐지되어야 하는 것도 이런 점과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많은 사람들이 수능시험을 공정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객관식이고 문제가 즉시 공개되기 때문에 객관성과 투명성이 높은 시험이지 공정한 시험은 아니다. 인간의 능력은 개인마다 다르고 다양한데 한 가지 잣대로만 인간을 줄 세우는 시험, 부모의 지원과 사교육의 영향이 크게 반영된 시험이 어떻게 공정할 수 있는가?!
(7) 도전과 실패를 꺼리게 만듦
현재의 수능처럼 정답만 찾게 하는 시험은 창의성을 죽이고 암기식 학습을 강화하며 실수와 실패를 두렵게 만든다. 정답이 존재하는 수능은 정답이 없는 현실세계의 문제해결과는 동떨어진 시험이다. 이런 시험은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미래사회를 앞두고 도전과 실패를 꺼리는 쓸모없는 인간을 양산할 우려가 크다.
2) 변별력 논쟁의 허구와 잘못된 ‘적격자’ 통념
위와 같은 이유로 중장기적으로 객관식 위주의 수능은 폐지 내지 자격고사로 전환되거나 타당성이 있는 시험으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수능을 당장 폐지하거나 자격고사화 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아직 수시 전형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의 불공정성은 현재 심각한 수준이다. 당분간 선발도구로서의 수능의 유지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고 학교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큰 상대평가 수능을 마냥 이대로 유지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에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전환을 통한 긍정적 효과가 있어야 하고, 당분간 선발도구로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9등급을 5등급 정도로 등급수를 축소하며 고교 내신 역시 절대평가 5등급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정부가 ‘수능 9등급 절대평가와 내신 9등급 상대평가의 조합’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는 현재의 ‘수능 9등급 상대평가와 내신 9등급 상대평가 조합’보다 더 나을 게 없다. 수능 9등급 절대평가 전환은 경쟁의 강도를 낮추지 못하며 학교교육에 미치는 수능의 부정적 영향도 줄이지 못한다. 절대평가 전환이 경쟁완화란 효과가 있으려면 최소한 수능과 내신 공히 5등급 정도로 등급수를 낮출 필요가 있다.
수능을 5등급 절대평가로 전환할 경우 대학은 정시 전형에서 ‘적격자’를 어떻게 선발할 수 있는가? 5등급 절대평가의 결과는 변별력이 부족해서 전형자료로 쓰기 어렵다는 것이 대학측의 입장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위해서는 낡은 ‘적격자’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21세기 대학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적격자’는 수능과 같은 표준화 시험의 정답을 잘 찾는 사람이 아니다. 21세기 대학은 학업능력 외에 공감능력과 같은 감성지능이 높고 협업을 통해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나며 윤리성까지 갖춘 사람을 뽑아야 한다. 아울러 학습에 대한 열정이 있고, 불평등한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 ‘적격자’이다. 수능을 5등급 절대평가로 전환해도 ‘적격자’를 선발할 수 있는 길은 있다. 변별력 부족을 문제 삼는 것은 상위권 대학이 기존에 누리고 있는 대학 서열을 이대로 유지하고 싶은 욕심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대학은 수능과 내신 모두 5등급 절대평가 체제를 수용하고 상위권 대학들은 수능과 내신 공히 1등급인 학생들 중에서 잠재력이 있는 사람을 뽑아 우수하게 교육시켜 기존의 서열을 지킬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대학들에게 묻고 싶다. “대승적 차원에서 볼 때 학생을 수능 점수로 촘촘하게 줄 세워 뽑음으로써 대학 서열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중등교육을 살리고 학생들의 삶과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한가?”
3) 수능 변별력 유지는 시대착오적 발상
2021학년도 새로운 수능 체제를 논의할 때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현재와 같은 수능의 변별력이나 영향력을 이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일 수 있다. 21세기에는 창의적 문제해결능력과 같은 고등사고력, 또한 공감능력과 같은 정의적 역량이 중요한 시대이다. 이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교가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수업을 지금보다 대폭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교육은 학생이 스스로 배울 내용과 방법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학생중심학습(student-centered learning)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표준화 교육시대가 저물고 개인별 맞춤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학습생태계의 변화는 표준화된 교육과정, 수능과 같은 객관식 표준화 시험의 퇴조를 의미한다. 현재와 같은 객관식 수능 시험이 상대평가를 통해 높은 변별력을 가질수록 학교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커질 수밖에 없다.객관식 9등급 상대평가 수능 시험은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창의력을 죽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렵게 만드는 무서운 세균(GERM)임을 알아야 한다.
미래교육에서의 평가에서는 진단과 형성, 성장을 위한 목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시대에는 관찰평가, 자기평가, 동료평가, 포트폴리오평가, 지역사회나 기업의 멘토의 열린 평가 등이 중요하고 자연스럽다. 이런 평가방식의 강화와 함께 수능이 느슨한 절대평가 로 전환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사실 서울의 상위권 대학은 학종을 통해 많은 학생을 선발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 5등급 절대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란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변별력 부족 타령의 시대착오성과 허구성을 직시할 때 문제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4) 수능 논의에서 놓치고 있는 점 하나
새로운 수능 체제 논의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학교교육 정상화는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과 등급수 축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동시에 수능시험의 타당도를 높여 수능이 학교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긍정적 영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능의 객관식 문항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논술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고교가 당장은 이를 준비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학교의 논술지도 능력을 갖추는 속도에 맞춰 단계적으로 논술형을 심화시켜 가면 된다. 초기에는 부담이 매우 적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논술 문제를 출제하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시점에 수능시험은 고등사고력을 측정하는 논술(형)을 포함시켜야 한다. 최근 일본, 이스라엘, 칠레 등이 논술형을 강화하거나 독립된 에세이 시험을 대입시에 추가할 예정이거나 이미 추가했다. 세계 주요국들 중 대학입학시험에 논술(형)이 없는 곳은 한국을 제외하고는 찾기 어렵다. 한국도 고등사고력 함양을 위해 공통논술을 수능시험에 도입해야 한다. 채점이 부담이 되면 수시에서 최저학력기준을 폐기하고, 별도의 논술을 선택으로 하는 등 채점 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없지 않다.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이 토론식이나 탐구수업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소재로 한 공통논술(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논술시험에 선택적으로 응시함)의 도입은 매우 자연스럽다.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역량 교육을 강조해놓고 내신과 수능에서 논술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2015 개정에서 역량을 강조한 것이 허구라는 점을 스스로 시인하는 일이다.
5) 수능문제의 해결을 막고 있는 잘못된 인식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해결이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다. 이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해결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 절대평가 전환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정책결정자들 인식의 틀을 지배했던 ‘절대평가 변별력 부족 → 상대평가 회귀; 수능에 논술(형) 도입 → 채점의 어려움 → 객관식 유지; 내신 절대평가의 성적 부풀리기 발생 → 상대평가 유지’와 같은 낡은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낡은 접근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육과정에 충실한 학교교육 실현과 입시지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아동의 건강을 지키며 학습이 즐거운 학교 구현,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모든 아동의 잠재력 실현’을 헌법 1조처럼 교육변화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이하 이를 ‘2030 교육비전’으로 칭함)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효과도 없을 ‘수능 9등급 절대평가 + 내신 9등급 상대평가’ 같은 옹색한 구상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수능과 내신 공히 5등급 절대평가 전환은 상수화해야 한다. 절대평가 전환으로 인한 변별력 부족의 문제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지 이것 때문에 절대평가로 전환하지 못하거나 ‘2030 교육비전’을 포기할 변명이 될 수는 없다. 5등급 절대평가를 하게 되면 다수의 동점자가 발생하게 된다. 이중 적격자 선발은 가령 최 상위권 대학의 경우, ‘내신 1등급+수능 1등급’ 지원자들 중에서 서류전형과 간단한 면접을 통해 유자격자를 1.5~2배수 정도 선발한 다음 추첨으로 선발하면 된다. 이는 매우 공정하고 합리적이다. 그러고 나서 대학이 가르치기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한다. 현 상위권 대학이 별도의 특별한 노력 없이 성적 우수자를 선점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정리하면 새로운 수능체제 논의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수능시험의 7가지 부정적 요소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2030 교육비전’을 설정한 다음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부가 8월 말 발표하기로 한 2021 수능 체제는 최소한의 변화만 주고 기존의 체제를 1~2년간 더 유지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실패가 예견되는 무리한 추진을 않을 수 있고 2021년까지 ‘2030 교육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기초연구 등 충실한 준비를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2021 수능 체제 개발 방안을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2030 교육비전’을 먼저 수립하고 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능 체제를 모색한다. 이를 위해 2021학년도부터 시행될 새로운 수능 및 내신 체제는 수능과 내신 공히 5등급 절대평가 전환을 적극 검토한다. 앞에서 소개한 ‘교육비전 2030’이 최우선이므로 변별력 부족 논란에 대해서는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도록 한다. 한 가지 예로 바로 앞에서 소개한 ‘유자격자 중 추첨제 실시’를 적극 검토한다.
• 수능시험의 타당도를 높이고 고등사고능력을 함양하며, 학교교육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견인하기 위해 모든 대학이 공동으로 출제하는 ‘공통논술’을 도입한다.
• 수시와 정시의 비율은 인위적인 개입보다 자연스럽게 균형점을 찾아가게 한다.
이상과 같은 변화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어려우면 6~10년 후 도입에 대해 합의하고 2021학년도 수능체제는 현재의 것을 잠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하나의 현실적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미래 교육생태계 변화에 대응하는 수능의 미래모형
미래의 대학입학시험은 어떤 모습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사회변화와 미래교육의 변화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해갈 것이다. 먼저 미래의 학교교육과 대입전형, 수능시험을 예상해보면 아래와 같은 변화가 예상된다.
1) 미래교육 패러다임
• 미래 학교의 교육은 교사중심 주입식 교육이 쇠퇴하게 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학생의 선택과 책임이 강화되는 학생중심 교육이 강화될 것이다.
• 미래의 학교교육은 학습자의 실제의 삶과 관련이 깊고,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체험 중심의 교육이 강화될 것이다.
• 미래사회에는 창의적 문제해결능력과 같은 고등사고능력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학교교육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수업 등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업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이런 수업을 반영하고 견인하기 위해 국가수준의 대입시험은 논술시험을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화될 것이다.
2) 미래학교의 교육과정
• 미래의 교육과정은 현재와 같이 가르칠 내용, 방법을 자세히 규정하는 방식의 표준화된 교육과정이 퇴조하게 되고 국가수준에서 공통으로 요구하는 교육과정 내용은 지금에 비해 최소화될 것이다(현 중학교 교육과정 수준이나 그 이하).
• 미래에는 학교자치가 강화되고 지역 특성에 맞는 교육이 일반화될 것이므로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은 가이드 성격으로 변할 것이다.
3) 미래의 대입전형
• 미래의 대입전형은 입학경쟁이 치열한 대학일수록 총체적 전형(holistic admission)이 일반화되고 현재의 수능처럼 단일한 잣대(single scale)(예: 인지적 학습능력)로만 학생을 선발하는 관행은 사라질 것이다.
•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 비율은 60%(21세기 직업이 대졸이상 학력을 필요로 하는 정도)까지 떨어질 것이다.
• 미래 사회는 인구 다양성의 증가로 인해 대학의 입학전형도 이런 다양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 수학능력시험은 대학수학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통기본학력만 측정하는 적성시험이나 자격고사 성격으로 빠르게 변할 것이다. 한편, 21세기는 지식의 습득보다 활용이 강조되지만 기초적 기반지식의 습득은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에 지필고사에 의한 자격고사도 필요할 것이다(예: IB).
• 미래에도 한국의 대학서열과 상위권 소수 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아울러 대입시가 학교 교육과정을 지배하는 경향도 상당한 기간 유지될 것이다.
• 21세기 대입시험은 고등사고력 측정을 위해 논술형 문항을 늘리거나 별도의 논술시험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예: 미국, 이스라엘의 최근 변화처럼 ‘읽기, 수리, 논술’ 중심).
• 미래에는 지식의 생명주기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과 함께 평생학습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할 것이다. 이런 환경 변화로 인해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으로 진학하려는 학생 수는 점차 줄어들며 학습이란 확실한 필요가 있을 때 하게 될 것이다.
4) 미래의 채용과 대학 졸업장
• 기업의 채용은 상위권 대학의 졸업장과 전공 내용보다는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스킬과 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호할 것이다. 이는 기술의 변화가 빠르고 경쟁이 더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환경은 미래학자들의 예측처럼 대학 졸업장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졸업장과 자격증이 경쟁하는 시대를 열게 만들 것이다. 또한 인지적 학습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일수록 고교만 졸업한 후 전문 자격증을 따고 다양한 창업경험을 쌓는 선택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은 교육생태계 변화에 맞는 수학능력시험은 대학수학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통기본학력만 측정하는 자격고사 성격을 가질 것이다. 이는 최근 미국(SATI)과 이스라엘이 채택하고 있는 모형으로서 아래와 비슷한 형태가 될 것이다.
• 수능 = 읽기(reading)(선다형+논·서술형) + 수리(maths)(선다형+논·서술형) + 논술(사탐·과탐 중 택1하여 원하는 사람만 응시) ※ 5등급 상대평가 혹은 절대평가
• 내신 = 무학년 학점제(절대평가) + 정성적 평가(자기평가, 동료평가, 관찰평가) + 포트폴리오 평가 + 내신논술(사회·과학을 소재로 한 논술 수행평가)
이상과 같은 수능은 대입시가 학교교육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학생의 준비부담을 줄이며 사교육비의 감소란 효과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4. 맺음말
오는 8월 말까지 발표하기로 되어 있는 2021학년도 수능 체제 개발은 난항을 겪고 있는 듯하다. 절대평가로의 전환 등 대선 공약의 이행 부담이 추가되면서 문제해결이 더 복잡해졌다. 일정에 쫓기면서 무리하게 공약을 이행하려 든다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훨씬 더 커 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수능의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할 것인가 일부 과목만 전환할 것인가’식의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 이런 닫힌 논의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30 교육비전과 이에 호응할 수능의 미래모형을 먼저 설정하고 이에 맞추어 2021학년도 수능체제를 개발하는 것이 순서다. 이런 접근을 하게 되면 수능과 내신 모두 5등급 절대평가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런 접근이 변별력이란 덫에 갇히면 안 된다. 우리는 이제 교육적으로 가치가 낮은 시험이 높은 변별력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아울러 상위권 대학들이 변별력 유지를 통해 기존의 대학서열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학교를 입시준비 기관화하고 학생들을 객관식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들며, 학생들의 건강과 삶을 심각하게 해치는 일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대학은 “아동 청소년들의 삶과 건강을 희생할 만큼 대학서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가?”란 자기성찰적 질문을 던지며 현재보다 적은 등급수의 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수용해야 한다.
2030 교육비전을 수립하고 이에 연계된 2021학년도 수능 체제를 개발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그렇다면 기존의 수능제도를 1~2년 연기하고 충분한 연구와 준비를 해서 새로운 체제의 수능을 제대로 마련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교육회의, 국정기획자문회의 및 교육부가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을 기대한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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