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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국가 및 지역 수준의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 소고(小考)

#559 박제원, 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2020.08.05

우리나라의 경우 초·중등학교 교육은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운영하도록 되어있고 교육과정이란 그에 따라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교육내용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계획(기준)이다. 국가의 교육과정을 통제하는데 그 방식은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방식, 시도 교육청이 주도하는 방식, 학교와 교사들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나눠지는데 우리나라는 중앙정부가 주도한다. 하지만 1992년의 제 6차 교육과정 이후에 초중등교육의 다양화·지역화·자율화를 위해 점차적으로 분권화하는 추세이고 2015 개정 교육과정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해 교육기본법 제 2조에는 교육이념을 두고 있고, 초중등교육법 제 23조 제 2항에는 교육부 장관이 17개 시도에 적용되는 국가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할 교육내용의 기준과 내용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즉 초·중등학교에서 편성하고 운영하여야 할 학교교육과정의 교육목표와 내용, 방법과 운영 평가 등에 관한 국가 수준의 기준 및 지침이 제시되어 있다. 또한 제 2항에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서 획일적으로 제시하기 어렵거나 세밀하게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사항,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추구해야 할 교육적 사항을 시도 교육감이 지역의 자연적, 사회적, 역사적 특수성과 교육의 실태 및 학생 교원 주민의 요구와 필요 등을 반영하여 지침으로 정하고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할 때에 준거로 할 수 있다. 학교는 초중등교육법 제 23조 제 1항에 따라 국가 교육과정 기준과 교육청에서 정한 교육과정 지침을 따르고 학교의 학생, 교원 상황, 교육 실태, 교육 시설 설비, 자료 등 교육여건의 특수성을 감안해 실천 가능한 학교교육과정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지난 ’17년 초1∼2학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하여 금년인 ’20년에 모든 학교급과 학년에 적용되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완성된 첫 해이고 그에 대한 평가는 이르다고도 할 수 있지만 교사 입장에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바꾸게 된 배경이나 교육청의 교육과정 지침과 관련해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초·중등교육과정의 목표로 창의·융합형 인재는 적합하지 않아

 

국가 교육과정 수준에서 초·중등교육과정의 목표를 꼭 ‘창의·융합형 인재’에 두어야 했는가라는 의문이 있다. 그 이유는 초·중등교육과정은 기본교육과정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전인교육을 받아 최대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육과정에서 ‘창의·융합’을 탁월한 학식이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두게 되면 학교는 학생이 고유한 자아를 실현하도록 도와주기보다는 특정한 능력을 기르는 훈련장이 되어버린다. 더구나 미래 사회는 융합기술이 주도하는 산업구조를 갖춘 사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근거로 삼았다면 학교교육의 목적을 학생들의 지성, 감성, 시민성(덕성), 신체 등을 성장하는데 두기보다는 국가의 경제발전 같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외재적 목적에 치우쳤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통합했지만 접근 방식도 마뜩치 않다. 우리 학생들로부터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는 칸막이를 치워야 하는 까닭은 전인교육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지 고도의 기술적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미리 교육해야 한다는 ‘예기사회화’ 때문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삶과 학교교육의 사회적 기능을 고려하면 교육에서 외재적 목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초·중등학교는 1차적으로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지식과 규범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고, 교육과정의 목표를 창의·융합형 인재양성에 둘 경우에 교육이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요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이다.

 

뇌 과학적으로도 창의·융합능력은 자주 쓰거나 쉽게 개발되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에 보편적인 교육 목표로 두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미국의 인지심리학자인 데니얼 T· 윌링햄은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에서 기억과 창의성에 대해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주로 기억에 의존하고 살아가며 창의적이지 않다.

 

인간은 호기심이 많지만 생각하는 재주는 뛰어나지 못하다. 뇌는 생각하는 용도로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생각하는 수고를 덜어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신에게 생각은 어렵고, 속도도 느리고, 믿을 만한 작업도 아니며 적절한 인지적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뇌가 담당하는 감각, 사고, 운동 기능 중에서 오히려 감각기능과 운동기능이 사고기능보다 효율적이고 믿을 만하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하루하루를 무사하게 보낼 수 있고 수 백 가지 결정을 할 수 있는 까닭은 주로 기억에 의존하여 처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문제는 언젠가 풀어 본 문제이므로 예전 방식처럼 다시 풀면 된다. 과거에 푼 문제를 쉽게 푸는 까닭도 시각기관이 즉시 지각하고 예전에 들은 문제라는 걸 기억기관이 알아채고 정답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행동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할 수도 있다. ‘상자 밖에서 행동하라’는 말처럼 기억된 정보라는 자동조종장치에 의지하지 않고 평소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매번 상자 밖에서 생각하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모든 가능성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려면, 가령 양파를 썰거나 사무실에 들어가거나 점심시간에 음료수를 사는 일상적인 일마저도 새로운 눈으로 보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 동안은 새롭고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얼마 못가서 지칠 것이다.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뇌는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를 추론하여 해결하거나 복잡한 글을 분석적으로 읽거나 어느 정도 에너지를 써야하는 생각(의식)에 익숙하지 않다. 즉 뇌는 삶에 크게 도움이 될 정도로 호기심을 끌어낼만한 새롭거나 흥미로운 자극에만 창의적으로 사고하려고 하며 일상적 삶에서 ‘메인(main)’이 아니다. 다수의 인간은 그 능력보다는 덜 뛰어나지만 익숙한 ‘기억’에 의지하여 과거의 행동을 답습하며 산다. 예를 들어 철학이나 자연과학에 등장하는 어려운 개념어를 모르더라도 타자와 대화할 때 특별하게 불편하지 않고, 마트에 가서 별 어려움이 없이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는 것도 기억 때문이다. 즉 기억은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흔적을 마음에 새겼다가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두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억은 필수재이고 초·중·고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그 능력을 보편적으로 학습하게 하는데 두어야 한다. 내 말은 꼭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창의·융합형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창의성이 핵심역량이라는데도 동의한다. 다만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요구로 삼아 교육과정을 개정하고 최고의 목표로 정해야 했는가에 대해 동의하지 못할 뿐이다. 교육의 본질을 고려할 경우에 초·중등교육의 비전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인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을 두는데 그쳤다면 차라리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수의 핵심개념과 관련된 개념적 지식을 충분하게 학습해야

 

국가 수준 교육과정과 교육청 지침 사이에서 학교가 중점적인 교육내용과 교수학습방법을 선택하고 학생의 학습경험을 평가할 때에 두 기준이 충돌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즉 다수의 시·도 교육청이 ‘새로운 학력’을 지침으로 만들어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준거로 삼으라고 할 때에 국가 수준 교육과정과 다른 뉘앙스를 받았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따르면 교과서는 암기에만 치중하는 단순한 지식이나 문제풀이 중심으로 되어 있지 않다. 교육내용은 실제적으로 핵심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소수의 핵심개념을 중심으로, 특히 창의·융합형 인재를 기르기 위한 융합적 사고 계발이 가능하도록 구조화되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소수의 핵심개념을 이해하고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단순 암기가 아닌 교과에 고유한 사고 및 탐구과정을 통해 교과의 중요한 개념과 원리인 일반화된 지식을 가르쳐야 하고 그 다음에 교과 내, 교과 간 연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융합이라는 실천적 행위도 가르쳐야 한다. 즉 교과마다 절차적 지식을 통해 교과에 특수한 개념적 지식을 가르친 후에 학생들이 각 교과에서 학습한 다양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연결하여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청 지침인 새로운 학력은 교과교육과정에서의 중점사항이 창의·융합형 인재를 기르는데 있다고 보기 어렵다. 새로운 학력은 모든 학습자들이 지성, 감성, 시민성, 건강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학습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전인교육을 지향한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융합적 사고계발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교육청 지침도 교과 내 통합이나 교과 간 통합을 통한 주제중심 통합교육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말한다. 그러나 성열관이 《새로운 학력관, 교육과정 수업 평가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서 강조하듯이 단원을 통합하는 과정은 교과서에 실린 개념적 지식을 재구성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즉 주제중심통합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까닭은 지식 교육에서 교과서에 실린 개념적 지식을 분류하여 학생들에게 주로 학교, 가정, 지역공동체, 글로벌 문제 등 사회적 주요문제와 관련된 지식을 가르치고 실천하게 하는 데 있다.

 

이러한 교과 내 통합이나 교과 간 통합을 둘러싸고 국가 수준 교육과정과 교육청 지침 간의 미묘한 차이는 단순한 해석 차이로 볼 수 없다. 교사가 교과 내 통합이나 교과 간 통합으로 교과를 재구성할 경우에 실제로 가르치지 않는 개념적 지식이 있거나 그에 대한 학습비중을 현격하게 줄일 수 있다. 물론 개념적 지식을 세부적으로 구성하는 사실적 지식도 함께 제외되거나 줄어들 수 있다. 더구나 교과서를 중심으로 출제되는 수능 고사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공정성 시비를 불러올 수 있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두는 취지가 교육내용에 대한 전국 공통의 일반적 기준을 두어 학교에서 동일한 교육목표와 내용, 방법과 운영, 평가 등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려는 것인데 17개 시도교육청의 지침에 따라 교사나 학교 간에 개념적 지식의 재구성을 크게 다르게 했다면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가져올 수 있다. 물론 지역의 특수성과 학생의 수준, 학교의 필요를 반영해 교육청의 지침을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지침이 지역 교육의 실태, 학생과 교원 등 주민의 필요를 제대로 반영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내 말은 주제중심 통합 교육과정의 목표는 전인교육에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만 교과서에 실린 지식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교과 내에서나 교과 간에 통합하는 방식이 문제이고 그에 따른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사회적 불평등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교과서에 실린 개념적 지식의 재구성이 정당할 수 있다. 그 지식 중에 어떤 것은 사실이나 진실을 왜곡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등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반교육적일 수 있다. 그러나 초·중등 교과서에 실린 개념적 지식은 과거에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교과서처럼 지배집단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피지배집단을 억압하는 수단인 계급 재생산의 수단으로 순응하는 학생을 만들거나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 자유, 평등, 정의 등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 있지 않다. 내가 중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교과서에 경제개발을 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의 보편적 인권인 자유권 등 기본권을 억압할 수 있다거나, 반민주적인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했는데도 불가피하다거나, 식민지 시절인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 문인들의 작품이나 화가들의 그림을 존경받을만한 것으로 찬미하면서 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학교의 교과서에 실린 규칙과 질서에 담긴 도덕적이거나 사회적인 지식과 원리는 생명, 인권, 환경 등 부족해보일지 모르지만 보편적인 가치를 담은 내용이 실리고 있다. 더구나 정권을 지지하기 위해 미화했던 예술가들의 작품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에 실린 개념적 지식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할 때에 교과의 각 단원에 핵심개념으로 실린 개념적 지식이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학습과학에 따르면 창의성은 다양한 사실적 지식, 개념적 지식, 절차적 지식을 이해하고 그 지식들을 융합하여 다른 상황에 전이할 때에 발현된다. 요컨대 학생들에게 교과의 고유한 중요개념이나 원리 등 개념적 지식을 사실적 지식을 수반하여 먼저 학습하게 하고 주제중심 통합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우려되는 교육적, 사회적 불평등을 막는 등 보다 합리적이다.

 

 

메타지식의 근간은 내용 지식

 

수업을 구성할 때에도 그 중점이 다르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서는 수업의 목표가 교과역량의 함양으로 교과 기반의 학문 지식 및 기능을 습득하고 활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 간, 학생 상호 간 신뢰와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태도는 학습을 위한 선결과제이지만 관계상 부차적이다. 수업에서 교사와 학생, 학생 간에도 좋은 태도를 요구하지만 수업의 중점 목표는 도덕적 태도를 기르는데 있지 않다. 또한 교과서는 핵심개념이 들어있는 가장 중요한 텍스트로 교사가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교과역량을 기르려면 반드시 그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

 

교육청 지침인 새로운 학력은 그와 다르다. 수업에서 ‘우정’과 ‘연대’, ‘협력’ 등 태도를 학습만큼 중요하게 여긴다. 학생들로 하여금 정서적인 소속감을 느끼고 협력적인 교실문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지식 학습보다 중요할 수 있고 학습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본다. 그 까닭은 교육과정이 교실과 학교를 넘어서 사회적 공간에서 중요한 문제를 다루어야만 전인교육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사회문제 해결에 창조적으로 기여하는 학습경험을 할 때에 지식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감성, 행동, 실천이 교과역량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특히 교과서를 중심으로 하는 수업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과서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학습 자료가 아니며 교과서 내용을 반복적으로 암기하는 일은 효율적이거나 전인교육에 효과적이지 않다. 대신에 교육의 목표인 자아실현을 위해 교육과정 수업 및 평가에 최적의 교육 자료를 활용해야 한다. 교과서는 교육의 목표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학생들이 처한 환경에 맞게 사용되거나 극단적으로 보면 교과서에 실린 개념적 지식을 전혀 가르치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교과의 개념적 지식을 실질적으로는 태도보다 하위에 두는 데는 이유가 있다. 경기도 교육청의 새로운 학력관인 ‘창의지성교육’은 그 점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경기도 교육청에 따르면 창의지성교육은 교사들이 각 교과에서 가르쳐야 할 핵심적인 지식을 창의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교육내용을 구성하고 경청과 토론식 수업방식으로 의사소통능력을 높이는 교육이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서도 지적하였듯이 학교교육과정을 구성할 경우의 중점사항인 ‘경청과 토론을 통한 학생 참여형 수업’, ‘학습한 내용을 새로운 상황에서 적용하여 문제해결’ 등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이 학습할 내용은 핵심개념 위주’라고 되어 있지만 경기도 교육청의 교육과정인 새로운 학력관에서는 ‘학생들이 학습할 내용은 핵심지식 위주’라고 되어 있다. 국가교육과정에서 핵심개념은 교과의 지식, 기능, 태도를 아우르는 빅 아이디어로 그때의 지식은 교과서에 나온 지식이다. 하지만 창의지성교육에서 핵심지식은 교과서에 한정된 지식이 아니거나 교과서에 나온 지식은 쓸모없다고도 볼 수 있다. 즉 교과서와 교과서 바깥의 지식을 모두 말하지만 중심은 교과서 바깥의 지식에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지식은 완성되고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에 따라 새롭게 생성되어 발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요컨대 교과서에 실린 지식은 시대성을 반영하지 않고 모든 학생들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유용하다고 볼 수 없으며 배워야 할 절대적이고 유일한 지식도 아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미래 사회를 준비하여 행복하게 살고 인류 공동의 지속적인 공존에 기여하려면 학교에서 공통적으로 배워야 할 핵심지식은 사실적 지식이나 개념적 지식보다는 무수한 지식에서 적절한 정보를 찾아내고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는 방법인 메타지식이나 메타학습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사가 교과서의 내용을 절대적으로 인식하고 수업을 통해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전달하는 것은 교사 위주의 일방적인 가르침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들도 교과서를 유일한 학습 자료로 여기고 그 내용을 반복적으로 암기하는 것만으로 학습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메타지식만이 지식과 정보가 폭증하고 지식의 반감기가 줄어드는 사회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참 지식이며, 교육에서 추구하는 학력관은 스스로 지식과 정보를 확보하고 생성하는 자율적 학습능력과 타인과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협동적 작업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과 교육청의 지침이 태도교육에 대한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를 무시하고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 학생들에게 지식과 기능과 태도는 모두 학습해야 할 역량이기 때문에 태도를 중심으로 보든 부차적으로 보든 큰 혼란을 일으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식을 대하는 관점은 두 교육과정이 분명하게 다르고 교육청 지침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교육청 지침은 우리나라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을 감안하면 지식교육을 너무 소홀하게 여긴다고 봐야 한다. 교육청의 지식에 대한 태도를 보면 외적으로는 고등한 사고력인 메타지식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교과서의 지식을 중시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강하다. 더구나 학습에 대한 방법인 메타지식이나 학생들이 메타지식을 추구하려는 욕구는 선차적이지 않다. 먼저 다양한 내용 지식이 편도체에 생존에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고 인출했을 때에 효과적이라면 다른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 패턴을 학습하려고 하고 그때에 메타지식이라는 형식지식이 따라온다. 인간의 즉자적 필요는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으로 이어지는 것이지 추상적인 것에서 일방적으로 구체적인 것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청의 지침처럼 미래교육에서 학습의 의미를 ‘메타지식‘이나 ’메타학습‘에서 찾으려면 학생들이 충분하게 내용지식을 갖도록 학교교육과정을 권장해야 한다.

 

 

지식의 꼼꼼함을 바탕으로 수행평가를 해야 역량도 키울 수 있어

 

평가에서도 차이가 난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서는 과정중심평가를 강화하여 학생이 자신의 학습을 성찰하도록 하고 평가결과를 활용하여 교수학습의 질을 개선하도록 되어 있다. 과정중심평가를 하라고 한 것은 학교에서 지식습득 정도나 수행을 측정하기 위한 평가를 일회성 평가에서 벗어나 교수학습과 통합적으로 연계시키려는 의도였다. 즉 학생에게 실제로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교사에게는 수업개선에 활용하는 자료로 쓸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은 평가할 때에 방식이 지필평가든 수행평가든 특정한 비율로 정하지 않았다. 교과의 특성에 맞춰 학생들에게 학력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교수학습의 질을 개선하면 된다. 하지만 교육청 지침은 수행평가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수행평가는 학생들이 무엇을 알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를 볼 수 있으며 어떤 사회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를 적극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수행평가는 지성, 감성, 시민성, 건강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학생의 발달상황을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평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에는 토론, 포트폴리오, 창작, 문제해결과제, 논술, 프로젝트 학습 등이 있으며 구체적인 평가요소로는 학습준비성, 상호 협력 능력 및 정도, 참여도, 자발성, 과제 해결력, 이해력, 표현력 등을 들 수 있다. 교육청 지침에 따라 수행평가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수행에 집중한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다. 수행이 학습의 총체적인 측면을 반영하는 것은 맞지만 수행이 고등한 수준에 이르거나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그 기반에 다양하고 정확한 지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토론, 논술, 프로젝트 학습이 바람직하지만 학생들이 토론에서 주장에 대해 빈약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전혀 제시하지 못하면 그 토론은 말잔치에 그치며 학생들에게 길러주려고 했던 논리력 등 고등사고력에 접근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처럼 사실적 지식이나 개념적 지식의 수준이 낮은 상태라면 참여도나 자발성, 의사소통능력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모습은 이미 수많은 교사들이 교실에서 경험하는 일이며 그때마다 개념적 지식이나 사실적 지식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지식 학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필평가의 장점을 소홀하게 여기고 수행평가에만 비중을 두는 것은 단 한명의 아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수준 높은 교육을 하겠다는 교육청 지침과도 어긋난다.

 

결론은 이렇다. 교육청이 지침으로 지식위주의 학력을 극복하겠다고 하고 가치와 태도를 조화롭게 기르는 교육과정을 구성하겠다면 학생들이 교과서에 실린 개념적 지식이라도 최소한 보통학력 수준까지는 학습하게 해야 한다. 설령 교과서 지식을 암기하는 학습방식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해도 학교에서 학생들이 지식에 대한 무관심으로 확장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더구나 지식을 암기하는 학습이 꼭 나쁘지도 않다. 암기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한국교육에서 지나친 경쟁과 서열화의 문제 때문인데 그 핵심은 암기학습방식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승자독식주의에 치중하는 전반적인 낡음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암기위주의 평가방식을 지양하고 역량을 중시하는 새로운 방식에 기준을 두고 평가한다고 그러한 교육적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는 없다. 또한 2015 교육과정으로 개정하게 된 배경을 창의·융합인재라는 사회적 필요에 두는 것은 기본교육을 지향하는 초·중등교육과정에 맞지 않고 학교가 교육의 본질적 목적인 학생들의 잠재력을 성장시켜 자아실현하게 한다는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기본 교육과정에서 창의·융합인재를 중핵으로 두는 것은 차기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에 꼭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참고문헌>

 

1. 2015 개정교육과정 총론 해설서, 교육부, 2020.
2. 새로운 학력관! 교육과정, 수업, 평가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한국교육개발원·교육정책네트워크, 2017.
3. 신 학력관과 2015 개정교육과정에 기반한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의 대안 모색,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2018.
4.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데니얼 T· 윌링햄, 문희경 편역, 부·키.
5. 학교 혁신의 이론과 실재, 강충열 외 7명, 지학사, 2013.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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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완산고등학교 교사 박제원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전주 완산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 교육청 사회문화 집필 위원, KDI 경제교육교재 집필 위원,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충남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출제위원, 전북 및 전남 교육연수원 강사, 전북대학교 교사 연수 강사, <새전북신문>, <열린 전북>, <전북교육신문>, 인문 웹진 <아홉시>, 네이버 비즈니즈 블로그 <인터비즈>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교육저널인 「교육 제4의 길 」에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미래 교육의 불편한 진실, EBS, 2021>, <학교 속 문해력 수업, EBS, 2022>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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