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교육정책 돋보기(4) – 교육정책과 학교 현장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 누구를 위한 교육정책인가? –
법과 제도는 중립적이지 않다. 누군가에겐 유리하고, 누군가에는 불리한 구조적 선택성을 가진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이익과 학교 안에 힘이 없는 구성원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누적되어온 정치, 사회 구조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부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고 한 울리히 벡의 말처럼 최근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무엇보다 약자들에게 크게 다가왔다.
교육계를 살펴보면, 학교에 제대로 나가지 못하는 기간에 아동학대로 죽거나 다치는 아이들의 소식이 들려왔고, 저소득층 학생 등 손길이 필요한 학생들의 학업 결손이 심화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등교 중지 기간에 맞벌이 가정 등 돌봄이 더욱 필요한 학생들이 늘어났지만, ‘돌봄이 누구의 업무인가?’라는 학교 안팎의 논쟁만 있었을 뿐,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해 우리 사회는 깊이 있게 고민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온라인 학습 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배움에서 소외되기도 했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수치를 나열하며 지원책을 발표하였지만, 도움이 필요한 모든 학생에게 그 지원의 혜택이 스며들었는지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예전 같지 않은 등교 상황이 지속되면서 학생들의 학력저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온라인 학습이 등교 학습을 보완하는 성격을 지니는 상황에서 기초 학습에 대해 공교육이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다는 지적과 그에 따른 학력 격차가 심화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입시위주의 정책과 중앙집권화된 ‘교수-학습-평가-기록’에 관한 지침은 학교의 숨 쉴 공간을 없애버리기도 했다. 등교 여부 결정도 입시를 기준으로 많은 것이 결정되었다. 교육정책・지침의 말단에서 수행하는 이들은 고통 받았고, 그 고통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교사는 지침으로 정해진 평가를 수행하느라 바빴고, 학생은 그 평가를 단기간에 받느라 고통스러웠다. 심지어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내용을 평가 받을 것을 강요받았다. 코로나로 등교연기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학교와 교사는 상당한 박탈감과 피로감을 느꼈다. 이른바 교사 패싱, 교사 수단화 현상이 나타났다. 답이 정해진 듯한 설문은 많은 교사와 학부모에게 원성을 샀다. 게다가 학생들에게는 그런 설문의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교육부는 등교개학 결정시 학생의견을 조사하지 않았으며 학생 의견은 교사・부모의견에 반영되었을 것1이라고 속단하였다.
이제 학교 안으로 눈을 돌려 보자. 학교는 계급적이다. 달리 말하면 학교에는 분명한 강자와 약자가 존재한다. 학교의 권력은 누군가에게 집중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이고, 학교도 그러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학교도 형식적으로 평등과 민주주의가 존재한다. 교직원 회의가 있고, 학교운영위원회도 있고,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기도 한다. 학생들은 선거에 출마하고 투표도 한다. 법적으로 학생의 참여와 자치가 보장되어 있다.
교육기본법 제5조(교육의 자주성 등) ②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존중되며, 교직원ㆍ학생ㆍ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은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초중등교육법 제17조(학생자치활동) 학생의 자치활동은 권장ㆍ보호되며, 그 조직과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을까? 학교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설문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응답들을 살펴볼 수 있다. 교장, 교감은 교사들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교장의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한다. 교사는 교장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이 막혀서 교장의 권한을 줄여야 한다고 한다. 학부모는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교사들에 대한 불만이 많다. 교사는 학부모 때문에 교사의 권한이 축소되고 교육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교원과 학부모의 수는 상당히 많고 그 스펙트럼이 넓어서 집단 이름으로 구성원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또한 우리는 집단 일부에 대한 개인과 주변의 경험을 기반으로 집단 전체를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의 참여와 자치에 대한 설문을 하면 많은 학생들은 교장, 교사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못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반대의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교장과 교사가 학생들 때문에 하고 싶은 교육활동을 못한다는 말은 들어보기 힘들다. 어른들은 권한이 있어서 다 하는데 학생들의 만족이 낮을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21대 국회에서 강득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학생회를 법정기구화하고,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학생 대표를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17조(학생자치활동) 학생의 자치활동은 권장·보호된다.
② 학생의 자치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학교에 학생회를 둔다.
③ 학생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학교의 장 또는 제31조에 따른 학교운영위원회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학교의 장 또는 학교운영위원회는 그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1. 학생회와 학생자치활동 지원에 관한 사항
2. 학생생활과 학교운영에 관한 사항
3. 그 밖에 학칙으로 정하는 사항
④ 교육감 및 학교의 장은 학생회 설립·운영에 필요한 공간과 예산을 지원하여야 한다.
⑤ 학생회의 설립·운영 및 지원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국립학교의 경우에는 교육부령으로, 공립·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시·도의 조례로 정하되, 구체적인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
제31조(학교운영위원회의 설치)
② 국립·공립 학교에 두는 학교운영위원회는 학생회의 대표, 교직원회의 대표, 제34조의3에 따른 학부모회의 대표 및 지역사회 인사로 구성한다.
학생은 학교의 최대 구성원이자, 학교에서 온전한 하루를 생활하는 학교의 주인이다. 그런 학생이 교육에서, 학교에서 주인 대우를 받고 있는가? 학교의 공식적인 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생들은 왜 위원이 될 수 없을까? 학생들의 연합체는 교육부, 교육청과 공식 협의할 수 없는 것인가? 국가교육위원회에 학생들이 위원으로 여럿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학생들의 외침은 왜 항상 외면되어야 하는가? 학생의 의견을 조금 반영해달라는 요구조차도 학교장의 학교운영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일까?
코로나로 인해 교육 관계자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교육부나 교육청의 담당 부서는 밤을 지새우며 때론 식사할 겨를도 없이 몇 달을 보냈을 것이다. 학교에 학생을 보내는 학부모는 불안과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현장 교사들이 천지개벽한 교육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느라 노력한 것은 두말할 것 없다. 하지만 이 시기에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그 가정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학생들, 원치 않게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린 약자들을 먼저 기억했으면 한다.
일부 엘리트 관료들이 잃는 것 없이 결정하는 교육정책, 현장의 고통을 도외시하는 교육정책, 강자의 권리를 공고히 하는 교육정책을 뒤로 하고, 약자들을 위한 따뜻한 교육정책, 평범한 민초들을 위한 교육정책, 학생의 목소리에 유심히 귀 기울이는 교육정책을 꿈꿀 수는 없을까? 교실에서 묵묵히 교육을 실천하는 교사들의 고뇌과 아픔,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사교육으로 휘청거리는 학부모의 불안과 고통, 배움-정책-의사결정에서 소외된 채 주인이 아닌 대상자로 전락한 학생들을 언제까지 외면해야 하는가?
이에 교사의 이익만을 최우선에 두지 않는 교사들, 자기 성찰을 기반으로 실천하는 교사들, 나와 내 주변 그리고 학교의 혁신을 만들어가면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는 교사들이 필요하다.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힘은 현장에 있으며, 이들이 힘을 합칠 때 절망적인 구조를 바꿀 수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학교, 교육청, 교육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과 정책의 연결고리를 찾고 있는 교사이자 연구자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사람을 살리는 위대한 일을 실천하는 교사들, 학교의 주체이자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