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교육을 본격화할 때다
진보성향 정권교체로 향후 민주시민교육이 교육계의 인기품목으로 부상하리라는 기대가 높다. 교육 관련 출판사들이 다양한 교재 출판기획을 서두르는 가운데 온라인 교사 대상 연수기관들도 본격적인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민주시민교육의 강화를 새 교육 트렌드로 찍고 시장 선점을 위해 부지런을 떠는 교육출판연수계의 사업 후각이 족집게로 판명나면 좋겠다.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한다고 할 때 무엇을 어떻게 강화하자는 것인지 따져보기로 한다. 민주시민교육이 세상없이 좋은 명약이더라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써야 효과가 난다. 덮어놓고 민주시민교육 레테르를 붙여도 곤란하고 어설프게 민주시민교육에 덤벼들어도 곤란하다. 민주시민교육은 얼핏 생각하기보다 외연이 넓다. 민주주의의 개념이 다양한 만큼이나 민주시민성의 개념이 다양할 뿐더러 민주시민성의 형성과 발전에 기여하는 민주시민교육 요소는 더욱 다양하기 때문이다.
공교육은 통째로 민주시민교육이다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유초중등교육은 전체가 통으로 민주시민교육의 성격을 갖는다. 유초중등 교육과정과 교육활동은 발달 단계와 분과 경계에 따라 구획이 지어졌을 뿐 내용적으로는 불가분적이고 유기적이며 상호보강적인 민주시민교육으로 기능하도록 설계돼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특정 교과나 활동도, 심지어는 민주주의 근현대사나 인권동아리활동도, 주제연관성이 강할 뿐 민주시민교육으로서 특권적이거나 우월적인 지위를 주장하기 어렵다.
교육기본법도 ‘공교육=민주시민교육’의 관점을 지지한다. 교육기본법에 따르면 공교육의 목적은 이타주의적 ‘홍익인간’을 이념적 지향으로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의 자질’을 길러주는 데 있다. 자주생활인, 민주시민, 홍익인간은 인간성이 갖춰야 할 세 핵심요소이자 인간이 나아가야 할 세 발전 단계로 볼 수 있다. 개인생활도 자치하지 못하는 사람이 국가와 공동체를 집단 자치하는 일에 제대로 참여할 리 없다. 국가와 공동체의 일에도 관심 없는 사람이 널리 타인 일반을 이롭게 하는 일에 관심 가질 리 없다. 자기의 삶에 영향력을 미치는 공동체의 일에 주인의식을 갖는 민주시민은 홍익인간의 최소치와 자주생활인의 최대치를 가진 셈이다. 그런 점에서 공교육의 목적과 사명을 단순히 민주시민 양성에 있다고 요약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민주시민교육과 잠재교육과정, 그리고 학교문화
학교교육과정, 특히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은 법이 정한 교육목적인 생활자주성, 민주시민성, 홍익인간성 함양을 구현하는 수단이다. 문서상의 교육과정은 수업시간에 수업내용과 수업방법, 평가활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각 교과의 수업내용은 물론 수업방식과 평가방법도 민주시민교육에 적합해야 한다. 교육과정은 시간표로 상징되는 공식교육과정과 광의의 학교문화에 배어있는 잠재교육과정으로 대별된다. 물론 둘 다 민주시민교육에 적합해야 한다. 특히 잠재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인성과 시민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공식교육과정보다 훨씬 더 크고 지속적이다. 잠재교육과정은 문화적, 구조적 요소가 훨씬 강한 특성을 갖고 있기에 공식교육과정보다 바꾸는 게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의 핵심은 수업이다. 평균적인 한국인은 만 5살에서 18세까지 13년 동안 유초중고를 다니며 매년 최소한 40주 이상, 매주 최소한 30시간 이상을 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며 지낸다. 뭐든지 1만 시간을 반복 훈련하면 달인의 경지에 이른다고 할 때 보통의 한국인은 최소한 1만 5천 6백 시간 이상을 학교수업을 받으며 보낸, 수업경험의 달인들이다. 스펀지처럼 뭐든지 흡수하는 청소년기 내내 학교를 오가면서 보통의 한국인이 그 많은 수업시간에 가랑비에 옷 젖듯 체득해서 달인의 경지에 오른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적 의식과 행태, 다시 말해서 민주시민의 덕성과 역량일까?
어린 학생들이 주인의식과 참여의지, 자율성과 연대역량을 갖춘 민주주의자로 클 것인지, 아니면, 엘리트주의자, 권위주의자, 국가주의자, 배금주의자로 클 것인지는 최소한 1만 5천 시간에 달하는 학령기의 수업시간에 교사들로부터 어떤 가치관과 사회의식, 어떤 태도와 덕성이 명시적, 묵시적으로 전수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우리교육은 입시경쟁교육이지 민주시민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생들은 공부 기계 취급을 당하며 비교와 경쟁을 무슨 사회적 DNA처럼 몸에 새겼다. 그 결과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존감이 낮고 지적호기심이 약하며 행복하지 않다.
협의의 수업방식도 중요한 잠재교육과정의 하나다. 예를 들어 지식의 효과적인 전달과 주입을 목적으로 교사가 잘 소화해서 일방적으로 전수하는 기존의 강의형 수업방식이 권위주의에 친하다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에, 자유롭게 질문과 토론이 오가고 소통과 협력이 살아있는 혁신적 수업방식은 민주주의에 친하다. 당연히 수업방식을 민주친화형으로 최대한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교사들의 부담이 크다. 교육감 시절 내가 교사의 행정업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교원업무정상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이유다.
분명히 공식교육과정에서 교과서와 언어로는 민주주의, 합리성, 정의, 인권 등을 가르쳤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은 수업방식과 생활지도, 학교행사와 학생활동 등 잠재교육과정을 통해 어려서부터 엘리트주의와 권위주의, 국가주의를 내면화, 체질화한다. 특히 생활지도방식이 중요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두발과 용의복장 단속이 주 업무였고 수틀리면 체벌과 폭언이 횡행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종전에 학생들은 아무 권리도 없었다. 교사들은 일기장도 볼 수 있었고 휴대품과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있었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생활지도 패러다임이 학생인권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다. 중요한 잠재교육과정의 바람직한 변화다.
학생회 활동과 동아리 활동 등 학생자치활동은 그 자체가 민주시민교육의 성격을 갖는다. 학생자치로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각종 규정을 만들고 상벌과 징계를 정할 수도 있다. 나아가서 교사 및 학부모와 3주체협약을 만들 수도 있다. 교육활동과 학교현안에 대해 여론조사와 토론회 등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서 학교장이나 학운위에 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학교에서 학생자치는 명목만 있을 뿐 실질이 없다. 실질적인 학생자치를 허용하면 사고가 날까 걱정하는 교장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이 잘 아는 맥락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아이들의 집단지성을 통해 풀 수 있다. 민주주의를 몸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학생자치를 과감하게 또한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서구에선 학생회간부가 교장/교사초빙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한다.
민주시민교육으로 공교육을 재편하기 위해서는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에 찌든 잠재교육과정과 학교문화를 확 바꿔야 한다. 나는 교육감 시절 체벌폭언 금지와 학생인권 보장, 학생자치 실질화로 잠재교육과정 혁신의지를 알렸다. 학생인권은 교사도 마구 침입할 수 없는 사생활 기타 자유공간을 학생에게도 인정하겠다는 정책의지의 표현이었다. 생활지도의 민주시민교육화 없이 공교육을 민주시민교육으로 만들 방법은 없다. 생활규율을 자율화하고 대신 수업규율을 엄격화하자는 게 당시의 슬로건이었다. 지금의 조희연 교육감은 질문이 있는 교실, 토론이 있는 교사회, 교복 입은 시민으로 학교문화 혁신의 키워드를 정식화했다.
민주시민교육과 학교운영시스템, 교장리더십
공교육의 민주시민교육화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교육 관련 제도환경과 학교문화를 거의 환골탈태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 2010년 이래 진보교육감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변화의 속도는 더디다. 교장승진제도 개혁처럼 교육부가 아니면 바꿀 수 없는 핵심제도들이 있는데 그동안 바꾸지 못한 탓이 크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교육부가 진보교육감의 주요정책에 재를 뿌리지 않고 보조를 맞추며 지원해줄 게 틀림없다. 앞으로 교육부와 진보교육감이 협력하는 가운데 교육개혁과 학교혁신에 탄력과 가속이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초중등 공교육은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 교육이어야 한다. 학교도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 학교여야 한다. 그런데 공교육과 학교를 이렇게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공교육과 학교를 민주주의에 의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지금은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시와 지침이 없으면 학교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학교의 자율성이 없다. 지금의 교장은 교육부와 교육청의 대리인일 뿐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대표자가 아니다. 교사도 교육과정 편성과 평가의 자율성이 없다. 중앙집권적 관료행정시스템과 권위주의적 교장문화, 상호 노터치 원자적 교사문화에 길들여진 교장과 교사들이 무슨 수로 민주주의자를 길러낼 수 있겠는가.
민주시민교육에 친화적인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학교가 최대한 교육과정과 교육활동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자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교육부가 유초중고에서 99% 손을 떼고 교육청에 권한을 이양해야 하며 교육청도 최대한 학교에 권한을 넘겨주고 학교지원역할을 맡아야 한다. 둘째, 학교자율성 확대가 교장독재의 심화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학교운영위와 교원인사위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교사회를 법정 심의의결기구로 만들어서 교장의 제왕적 권한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셋째, 학교의 자율성 확대는 교장의 민주적 리더십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스펙관리형 누적점수제 교장승진제도를 혁파해야 한다. 당장은 교장공모제, 특히 내부공모제를 최대한 활용하되 최장 10년 이내에 지금의 시대착오적인 교장승진제도를 교사경력 15년만 넘으면 누구나 일정시간 연수를 거쳐 교장자격을 받을 수 있게 고치고, 공모경쟁을 통해 교사와 학부모, 학생에게 교장선택권을 주는 방향으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이런 중층적인 제도개혁과 무관하게 기존교장들의 개혁마인드와 민주적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고 보상할 때만이 민주시민교육에 걸맞은 학교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다.
교육내용과 민주시민교육
공교육의 본질과 사명이 민주시민교육에 있기 때문에 모든 교육과정과 학교문화가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의 교육과정이자 학교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학교의 교육내용에서 민주주의와 인권평화생태감수성, 사회정의와 과학의 사회적 책임성에 반하는 요소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오류는 사회교과가 아니더라도 어느 교과목에서도 있을 수 있다. 정치/경제/법/역사/지리 등 사회교과만이 민주시민교과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 음악/미술/체육교과와 과학/기술교과는 물론 수학교과와 가정보건교과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민주시민성과 홍익인간성을 키워줄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만난 교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의 교과목이 민주시민교육의 불가결한 구성요소라고 자부했다. 특히 국어교사들이 그렇다. 민주시민교육의 실질이 폭력과 강요, 거짓과 위선을 혐오하고 소통과 토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데 있는 이상 소통과 토론을 배우는 국어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이 아닐 도리가 없다.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특정교과 우월주의는 배척하지만 민주주의에 친한 토론논쟁식, 팀프로젝트 수업방식으로의 전환은 사회교과와 국어교과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교과 속성상 상대적으로 용이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가끔 역사교과서나 사회경제교과서, 가정생활교과서 등에서 정치불신, 노동경시, 약자차별 등 강화된 인권감수성에 어긋나는 내용이 발견돼 문제가 된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내용도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통일교육, 정치교육, 노동교육, 언론교육, 성교육이 상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내용이 부실해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교과 밖 민주시민교육이 이 부분에 집중하는 이유다. 교육내용은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어야만 시대를 쫓아갈 수 있다. 시대상황이 바뀌면 민주주의의 과제가 달라지기 때문에 당연히 공교육=민주시민교육의 강조점도 바뀌지 않을 수 없다. 민주시민교육으로서 21세기 공교육은 최소한 민주적 협업능력과 생태감수성, 과학탐구의 사회적 책임성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21세기 교육과정은 내용적으로 세계적, 국내적 차원의 경제적 양극화와 4차 산업혁명, 기후변화와 생태계 위기, 문명 충돌과 테러리즘 등 인류 공통의 고난도 현안과제들을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이 뒤따르고 부정의가 있으면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이 불붙게 마련이다. 21세기 공교육은 반차별 인권운동과 평화군축운동, 환경운동과 노동운동, 신생에너지와 탈핵운동 등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정의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국내외의 헌신과 분투를 소중하게 다뤄서 누구도 사회와 역사의 진보에 대한 신뢰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도와야 한다.
민주시민교육 중 꼭 필요한데도 교육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지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은 학교 안으로 외부 강사들을 모셔 와야 한다. 또한 현장체험이나 진로체험처럼 학교 밖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은 과감하게 학교 밖 학교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처럼 공교육의 민주시민교육 전환은 학교의 문을 안팎으로 열어놓을 것을 요구한다. 학교 밖에는 생생하고 풍부한 민주시민교육자료를 갖고 있는 민주시민교육의 잠재적 현장이 매우 많다. 예를 들어 국가기관과 지방자치기관, 공기업과 노동조합, 민주항쟁기념단체와 공익시민단체, 대통령기념관과 여성평화인권박물관은 예외 없이 학교 밖 민주시민학교가 될 수 있다. 아직 쓸 만한 교육시설과 지원역량을 갖춘 곳은 드물다. 그래서 모든 국가기관과 공사단체에 민주시민교육 제공 및 협조 의무를 부과하고 지역별 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구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주시민교육과 사회현안교육, 그리고 보이텔스바흐 3대원칙
지금도 학교에는 안보교육강사, 통일교육강사, 보훈교육강사, 효도교육강사 등이 인성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의 이름으로 들락거린다. 최근 자유총연맹 소속 한 안보교육 강사가 극우파적인 시각으로 박근혜 탄핵과 촛불 시민을 일방적으로 폄훼하다 교사와 학생들의 집단 항의와 야유를 받고 쫓겨난 사례가 있었다. 아이들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학교에는 아무나 들여서는 안 된다. 검증이 필요하다. 나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학교에 들어와서 광의의 인성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하는 강사에게는 보이텔스바흐 합의라 불리는 정치교육의 3대 원칙에 대한 적절한 연수와 훈련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독일의 정치교육학자들은 1976년 보이텔스바흐에서 협의의 민주시민교육=정치교육의 3대 원칙으로 교화주입 금지, 논쟁성 재현, 학생판단 지원에 합의했다. 보이텔스바흐 3대 원칙에 따르면 학문과 정치의 영역에서 논쟁적인 사안을 학교와 교실에서 다룰 때 교사나 강사는 다양한 주장들을 균형 있게 재현함으로써 학생들의 주체적 판단형성을 지원할 뿐 자신의 주의주장을 일방적으로 주입, 교화하려 들면 안 된다. 보이텔스바흐 3대원칙은 향후 학교교육에서 사회현안 토론논쟁 형태의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교사들이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교육원칙이자 직업윤리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의 강사는 자유총연맹 소속이라서가 아니라 민주시민교육의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그에 역행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문제의 강사가 그랬듯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조주입교육을 민주시민교육으로 착각하는 일부 교사와 강사들 탓에 일부 초중등학교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아직도 학교수업시간에선 정치논쟁이 불붙은 사회현안을 가급적 다루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비교육적 미신에 매여 있다. 그렇지만 이 분들도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교육적으로 바람직하고 정치적으로 공정하게 다루는 보이텔스바흐 원칙을 접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으로 믿는다.
공교육을 민주시민교육으로 재편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교사의 정치기본권 확보다. 현재 교사는 정당가입과 정당활동, 공직출마와 선거운동을 금지당한 채 정치관객의 삶을 강요받는다. 교사는 선출직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의 기관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남달라야하는 특수한 직업이다. 공교육이 입시경쟁교육에 머물 때는 교사의 정치금치산자 신분이 덜 문제됐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공교육을 민주시민교육으로 재정립하려는 현재의 시점에서 교사의 학교 밖, 업무 밖 시민적 정치활동은 교사인권과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민주시민교육을 위해서도 권장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교과수업에서 민주시민교육의 요소가 절로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걱정은 접어도 된다. 교실수업에서 보이텔스바흐 원칙 적용과 교내 정치활동 금지만으로 100% 문제없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춧불시민혁명과 정권교체, 그리고 교육개혁 전망
이명박근혜 정권시절 입증되었듯이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민주시민교육도 후퇴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절 입증되었듯이 민주주의가 전진하면 민주시민교육도 전진한다.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자를 요구하는 이상 민주주의자 양성이 사명인 학교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학교에선 오늘의 아이들이 자랄 뿐 아니라 내일의 민주주의가 자란다. 그런데 내일의 민주주의는 오늘의 아이들이 민주적인 학교제도와 문화 속에서 1등 민주시민 교사에게 입시경쟁교육이 아닌 민주시민교육을 받을 때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내일의 민주주의는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어야만 더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는 썩 밝지 않다. 오늘의 아이들은 아직도 권위주의와 관료주의 학교문화 속에서 2등 민주시민 교사에게 입시경쟁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다행스런 점은 지난겨울 전국적으로 전례 없는 규모의 민주시민교육이 광장에서 전개됐다는 점이다. 누구도 가르치려들지 않았지만 모두가 체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과서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배운 민주주의, 주권자, 시민연대, 명예혁명이 광장에서는 살아 꿈틀거리는 실체였다. 누구든지 가슴으로 깨닫고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은 보잘 것 없을지 몰라도 모이고 뭉치면 어떤 권력도 당할 수 없다는 정치적 진실을 깊이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몸으로 느꼈기에 깊었으며 기쁨이 따랐기에 지속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헌법1조의 주권자의식은 지난겨울의 촛불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당연히 교사, 학부모, 학생의 주권자/시민의식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
지난겨울 촛불시민혁명이 만들어낸 일반시민의 강화된 주권자의식과 지난5월 정권교체로 들어선 파워엘리트들의 진보적 성향이 맞물려 향후 한국사회는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의 모든 차원에서 한 단계 이상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전망된다. 혹시 교육은 예외 아닐까? 기업생태계와 일자리시장에 큰 변화가 없고 대학서열화체제와 수능중심 대입제도가 근본 틀을 유지하는 이상 입시경쟁교육을 5년 만에 민주시민교육으로 전환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와 진보교육감들이 동일한 비전아래 보조를 맞출 경우 잠재적 교육과정과 학교 운영구조의 일대 민주화에 필요한 제도개혁은 상당히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본격적인 민주시민교육의 발걸음을 성큼 내딛을 때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