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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 개혁을 위해 유럽 병을 극복하자

#287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2017.05.25

새 정부가 들어서고, 교육개혁에 대한 여러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가령 이 중 눈에 띄는 것이 수능 자격고사화를 포함한 대학입시제도 개혁과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안이다. 나름 의미 있는 제안이며, 충분히 공론에 붙여 볼 가치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제안들을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 바로 걸핏하면 등장하는 “독일처럼, 프랑스처럼, 핀란드처럼” 같은 대목이다. 한 마디로 “유럽처럼”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유럽의 교육제도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교육이 유럽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배워야만 할 정도로 허술하고 후진적이라는 생각 역시 매우 자학적인 사고방식이다. 게다가 유럽식 교육 제도에 대해 잘못 알려졌거나 오해받고 있는 것들도 많다. 어떤 면에서는 일부 운동가들이 자신들의 희망사항의 잣대로 유럽의 교육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능 자격고사화, 대학평준화의 모델로 자주 제기되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가 그렇다. 독일의 경우 아비투어라는 대입자격고사를 보고, 평준화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문제 난이도가 우리나라 수능보다 훨씬 높고, 상위 40% 정도에 들어야만 진학할 수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 중 80% 정도만 합격한다. 게다가 대학이 평준화되어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의학, 치의학, 심리학, 약학, 수의학 분야의 학과는 입학 정원을 정해 놓고 아비투어 점수로 줄을 세워 고득점자를 선발한다. 더구나 이렇게 정원을 정해 놓고 고득점자 위주로 선발하는 학과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비투어를 다만 자격고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프랑스 대학의 평준화도 사실과 다르다. 프랑스 학생들은 평준화된 일반 대학에 일단 들어간 다음, 다시 비평준화 된 그랑제꼴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프랑스 사회의 각 분야마다 이 그랑제꼴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는 철저한 학벌사회다. 게다가 그랑제꼴은 학비도 비싸며, 일반 대학보다 국가 예산도 더 많이 투입된다. 그야말로 특권학교,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선호하는 용어대로라면 귀족학교인 셈이다. 그러니 프랑스의 대학 평준화는 명문대학들은 각자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고, 명문대학이 아닌 대학들만 몽땅 평준화한 것, 학부 교양과정만 평준화하고 전공과정은 명문대학을 그대로 유지한 것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핀란드의 경우도 그렇다. 핀란드 교육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진보교육활동가들이 쏙 빼놓는 이야기 세 개가 있다. 교사에 대한 처우가 매우 낮아서(국민 평균의 80%) 최근 들어 교직 만족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각종 기업 등에서 교사 출신 직원을 선호하면서 젊은 교사들의 이직률이 높아져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 철저하게 운영되고 있는 유급제도, 그리고 학교 규칙과 질서가 매우 엄격하다는 점이다. 학생을 억압하는 우리나라 교육이라는 틀을 먼저 세우고, 그 대립 항으로 핀란드를 바라보니 이런 점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확인할 수 있는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주장들이 나오는 까닭은 우리 교육을 지나치게 낮추어보고 유럽, 특히, 독일, 프랑스, 북유럽의 교육을 지나치게 높게 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나라의 좋은 교육제도를 배우고 장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장점과 단점을 제대로 알고 있는 가운데, 다른 나라의 장점과 단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통찰한 다음의 일이다. 우리의 장점에만 도취되어 다른 나라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주장한다면 국수주의지만 다른 나라의 장점만 보고 우리에게서는 오직 단점만을 본다면 이는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무심결에 사용하는 ‘교육 선진국’이라는 용어도 거슬리긴 마찬가지다. 교육 선진국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교육에 있어 선진적으로 발달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반면 경제나 정치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이 후진적인 나라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는 교육 선진국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불과하지만 교육에 관해서는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자료는 많다. 이것이 다만 공부를 많이 시켜서 거둔 성취만은 아니다. 학교 인프라부터 압도적이다. 99%가 고등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고, 80% 이상이 대학교육까지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학교가 넉넉하게 공급되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학교 시설도 우수하다. 19세기 교실은 옛말이다. 산간벽지에 있는 학교까지 최신의 기자재들이 갖추어져 있고, 초고속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으며, 컴퓨터실이 없는 학교도 거의 없다. 교사진의 수준도 최고다. 우리나라처럼 교사가 그 사회의 최상위권에서 충원되는 나라도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장점들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의 훌륭한 기자재와 ICT장비들은 주입식 교육 하느라 바쁜 가운데 거의 활용되지 못하거나 분실이나 고장에 대비하여 자물쇠로 잠겨있는 경우가 많다. 최고 엘리트들로 모인 우리나라 교사들은 정작 그 능력을 수업과 연구 대신 각종 학교 행정업무, 교감·교장이 되기 위한 승진 스펙 만들기에 허비하고 있다. 이런 운영상의 문제점들을 찾아서 해결한다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본래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은 우리가 후진적이고 그들이 선진적이라서가 아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배워서 우리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우리 교육에 대해 지나치게 자존감을 높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유럽을 높이고 스스로에 대해 자학적 관점을 가질 일도 아니다. 우리 교육의 바람직한 개혁 방향은 국수주의와 사대주의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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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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