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차라리 안 먹고 만다.

#547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2020.06.17

안 먹고 만다.

 

“Is this an orange?” 간식을 먹기 위해 서 있던 아이들의 눈빛이 일그러진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한편에서는 짜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를 보기 바쁜 모습이다.

 

하루에 한 번 오후 3시경에는 간식을 먹는다. 세상이 무너지는 날이 오더라도 아마 오후 3시에는 간식을 먹고 무너져야 할지 모른다. 그만큼 간식이 갖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식사는 의무적으로 치러내야 할 일처럼 느껴져 밥 먹기를 힘들어 하는 아이들도 간식을 먹는 일만큼은 절대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선호가 갈리는 일이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간식은 늘 부족하고 애틋하다.

 

그러니 교사들도 그런 간식 시간을 어떻게 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기 쉽지 않다. 때로는 간식만 보면 우루루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질서와 배려를 강조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손 씻기 등의 위생을 강조하기도 한다. 맛있는 간식을 먹을 수만 있다면 그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대부분 아이들도 별 소리 없이 교사의 지시에 눈치껏 따라준다.

 

하지만 아무래도 영어를 하는 것은 좀 심한 처사로 느껴졌나 보다. 간식을 앞에 두고 계속 뭐라고 영어를 이야기를 해대는 선생님이 너무 답답하고 야속해서 제발 한국말을 써달라는 간청이 줄을 잇는다. 특히 학습에 자신감이 없거나 영어만 들으면 충격을 받는 몇몇 아이들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다.

 

“Is this an orange?” 사과 그릇에서 사과 하나를 집어 들고 묻는다. 몇몇 아이들은 그저 얼음이 되어버렸다. ‘뭐라는 거야?’ 차마 그 소리조차 못 낸다. 간식 접시를 들고 얼음이 된 아이 뒤로는 기다림에 지친 아이들이 난리다. 답답한 심정에 “Is this an orange? Yes or no?” 다시 묻는다. 몇 번을 반복하고 옆의 사람이 훈수를 두어주면 그제야 겨우 “No.”라고 모깃소리만 하게 답변이 날아든다.

 

그럼 그쯤에서 그만두면 얼마나 좋겠는가? 겨우 받아먹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No. it isn’t.”로 하란다. ”No.“면 됐지 “No. it isn’t.”는 또 뭐란 말인가… 뭘 또 해 달라나? 지쳐가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래도 꿋꿋하게 “No.”를 다시 한 번 밀어보는 아이들도 있다. 그럼 또 사과는 없고, “No. it isn’t.”만 돌아올 뿐이다.

 

‘아니 또 뭐래니?’ 답답하기 그지없는 표정이다. ‘no라고 했는데…’ 우물쭈물 어쩌지 못하고 있는데 앞에서는 “Please follow me. No, it isn’t.” 간식을 줄 생각은 않고 계속 말만 많다. 이젠 지쳤다 싶은 아이에게 구세주가 된 것은 이미 간식을 먹고 있던 다른 아이들이다. ‘No. it isn’t.’라고 해야 한다고 옆에서 또 다시 훈수가 날아든다.

 

겨우겨우 몇 마디를 하고 나서 간식을 얻고 나니 기운이 쫙 빠지는 모양이다. 간식 접시를 앞에 두고 아이 속내가 절로 튀어 나온다. “에휴, 다음부턴 간식을 먹지 말아야지….”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들면 그냥 간식이라도 포기하는 게 나을성싶은가 보다.

 

하지만 사과를 다 먹고 나면 또 다시 악몽이 시작된다. 좀 더 먹고 싶으면 “One more, please”하고 2탄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돌봄과 교육

 

돌봄의 공간에서 교육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 것이 좋을까? 요즘 고민이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달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학교가 정상화되고, 돌봄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개학과 학교 교육은 이미 불안정하고 불분명한 일이 되어버린 듯하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학교 교육의 불안정성이 유지될 것이 점점 더 확실해 보인다. 설혹 백신이 개발된다 할지라도 제2, 제3의 코로나 사태가 다시금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게 견고해보이던 100년 역사의 근대학교 제도가 환경 재앙에 의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균열이 갈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상황이 이리 되고 보니 교육에 대한 오랜 신념들이 마구 흔들리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을 논하는 일은 학교 제도와 입시를 논하는 일과 다름없게 되어버린 지 오래다. 따라서 교육을 생각한다는 것은 학교가 어쩌고저쩌고, 입시가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로 늘 논의가 환원되기 일쑤였다. 즉, 입시와 입시를 보장할 수 있는 학교 제도가 우리 교육의 핵심 두 기둥이었던 셈이다.

 

국가 중심의 거대한 학교교육 체제는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날줄과 씨줄을 재생산하는데 주요한 근간으로 작동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재생산 제도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지원 및 통제는 실로 막강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쉽사리 그런 제도를 이렇게, 또는 저렇게 균열을 내고 손보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무슨 교육을 논하랴? 그저 학교를 어떻게 잘 돌아가게 할까 그 고민을 하는 것만도 충분하고 남았다. 그 속에서 돌봄은 늘 정규 학교교육과정의 일종의 뒤치다꺼리쯤으로 여겨져 왔을 뿐이다.

 

간식을 먹으면서도 영어 대화를 하나쯤 나누어보는 이 수고도 다 학교 가서 잘 하라고 하는 애달픈 수고였던 것이다.

 

 

나는 교육을 고민한다.

 

그러나 이제 학교가 제대로 작동을 못하게 된다면, 즉 수업의 형식과 내용과 평가방식을 정해서 실시하던 학교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가 나서서 우리 아이들을 교육해야 할지도 모른다.

 

6월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센터의 아이들 중에는 이어폰을 제대로 끼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 또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오느라 센터에는 점심때나 되어서 오던 아이는 온라인 수업 진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학교에 불려가서 듣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집중해서 듣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교육에 대한 우려가 심각해지고 있는 지금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오프라인 수업을 온라인 수업으로만 대체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지금의 위기가 정말로 크나큰 환경적 위기의 징조를 품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은 획기적으로 달라질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교육을 삶 전체를 위한 것으로 전면적으로 다시 방향을 세우고, 그런 교육을 위해 삶의 모든 순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우리 사회의 깊은 고민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면 돌봄도 어느 순간에는 모든 돌봄의 순간이 또한 교육의 순간이기도 한 그런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 인쇄(Print)하기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성태숙

(현)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글 지금은 파격적인 새 평가체제 도입 논의 절호의 기회 다음글 쉽게 읽는 교육정책 돋보기(3) – 교육정책과 학교 현장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 교육정책,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
칼럼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