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 검색
칼럼 모아보기
ERICK squareal Research & Innovation Center of Korea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 네비게이터 101 – “교육 비전, 착시와 맹시를 피하라!”

#274 이재경, 뉴욕주립대 버팔로 교육대학 석좌교수 2017.04.19

지난 번 칼럼 “공교육을 잡으면 사교육이 잡힌다!”에서 사교육은 공교육의 그림자와 같아서 그 주체를 잡지 않으면 결코 잡히지 않으며,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잘 살려서 공교육이 발전하려면 사교육의 강점을 능가해야만 한다고 역설하였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능가의 의미가 단순히 같은 성적의 잣대로 놓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교육이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을 공교육이 잘해서 교육의 전반적 수준과 질을 높이는 것을 뜻한다. 현재 사교육이 성행하는 이유는 학교성적을 올리거나 대학입시 준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공교육이 입시용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따라간다면 이는 학교가 거꾸로 학원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학교교육에서 대학입시 올인과 시험성적 지상주의가 빚어내는 교육 비전(vision)의 왜곡, 특히 착시와 맹시 현상의 문제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가 잘 아는 인지적 착시(illusion)의 한 예를 들어보자. 아래 그림에서 어느 직선이 더 긴가? 물론 우리의 눈에는 (a)가 (b)보다 더 길어 보이지만, 실제 직선의 길이는 똑같다. 한번 이러한 직선을 학생들의 시험을 통해 측정된 지식과 기술의 양이라고 생각해 보자. 연구에 의하면 학생들이 같은 교과내용을 배우고 시험을 칠 경우, 시험결과에 따른 상벌여부에 따라서 성적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상벌이 따르는 고부담 시험(high-stakes test)에서는 상벌이 없는 저부담 시험에 비해 성적이 더 좋게 나오고 더 크게 향상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성적 인플레는 실제로 학습능력이 향상한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시험용 문제풀이를 더 훈련한 결과일 수 있다. 만약 교사가 특정 시험의 출제 동향과 기출문제에 맞춰서 교육과정을 가르치고, 학생이 그 내용에 대한 이해가 없이 정답 찍기 요령만 익혀서 점수가 올라가면, 결코 이러한 가짜 공부는 후일 진짜 독자적 사고력과 분석력이 필요한 상황에 독이 될 뿐이다.

문제는 시험에 부과되는 상벌과 같은 인센티브는 아주 높은 반면에, 정작 시험의 결과를  좌우하는 교수학습 능력이 따르지 못하는 경우다. 동기가 역량보다 지나치게 높으면 능력 이상의 결과를 요구하기 때문에 부정이 발생할 소지가 높다. 고부담 시험으로 인한 부작용과 역효과는 이미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실험연구자인 도날드 캠벨(Donald Campbell)은 예언했다. “어떤 계량적인 사회 지표이건 사회적인 의사결정에 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그 지표는 부패의 압력을 더 많이 받게 되고 원래 모니터링하려고 의도한 사회적 과정을 보다 더 왜곡하고 부패시키기 쉽다.” 이른바 “캠벨의 법칙”은 교육에도 적용되는데, 특히 시험결과에 따라 학교와 교사에게 상벌을 주거나 책무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시험이 게임으로 변질되고 시험결과를 조작하거나 시험 룰을 왜곡하는 “시스템 플레이”(gaming the system) 문제가 발생한다. 캠벨의 법칙이 시사하는 것은 교육에서 당근이나 채찍을 아예 없애거나 심리적 부담을 주는 시험을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평가방식의 균형적 사용과 적절한 인센티브와 더불어 자율적인 교육환경과 역량개발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부에서 시행하는 교과서 내용 중심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과 국제기구인 OECD에서 시행하는 실생활 응용 위주의 PISA 학력평가를 비교해 보자. 이명박 정부 시절 “기초학력 미달 제로 플랜”을 통해 학교책무성을 강화한 결과 국가 시험에서는 국어와 수학 등의 점수가 크게 올랐는데 같은 기간 한국 학생들의 PISA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기간에는 성적 하위권 학생들의 국가학력 평가 점수는 유지된 반면 PISA 성적은 오히려 하락했다. 고부담 시험의 덫에 빠지지 않고 교육을 하려면 학생들에게 교과서 암기가 아니라 일상생활과 사회의 문제해결에 적용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개발하고 하나의 시험이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해야 한다. 최근에 강조되는 창의성 교육도 표준화 시험을 통해서 측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상벌을 준다고 생각해 보자. 창의성은 심리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압력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영감을 통해 생겨난다. 학교에 혁신하라고 독촉하는 것은 마치 예술가에게 총을 들이대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라고 협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효과를 낳는다.

 

사람들이 특정한 과제에 정신을 팔거나 몰두할 때 다른 관심사나 중요한 일을 놓치는 것을 인지심리학에서 지각의 맹시(blindness)현상이라고 한다. 농구시합 관전 중에 한 팀의 패스 횟수를 기록하라고 요구받은 연구실험 참여자들이 경기 중간에 코트에 등장한 (연출된) 고릴라를 보지 못했고, 경기 종료후에 그 사실을 듣고는 매우 놀랐다는 것이다. 교육에서도 이른바 “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 즉 맹시 현상은 종종 벌어진다. 학교성적 높이기와 입시경쟁에 몰두하다 보니 교육의 중요한 사명인 인성 함양을 도외시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인성교육진흥법까지 만들어 학교 무대에 등장시켰음에도 주연이 되지 못하고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있지는 않는가? 교육의 목표를 인지적, 정의적 그리고 도덕적 발달의 세 가지로 크게 나눌 때, 오늘날 학교교육에서 가르치고 평가되는 대부분이 인지적 영역, 그것도 단편적 지식과 단기적 성과에 치우칠 때 공교육의 미래는 없다. “교육 비전, 착시와 맹시를 피하라!”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 인쇄(Print)하기

뉴욕주립대 버팔로 교육대학 석좌교수 이재경

연세대 졸업(교육학 학사와 석사) 후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으로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뉴욕주립대 버팔로(University at Buffalo, SUNY) 교육대학 석좌교수(UB Distinguished Professor)로 재직 중이며, 또한 미국 교육학회 펠로우, 스탠포드대 행동과학연구센터 펠로우, 콜로라도대 교육정책센터 펠로우이다. 주요 저서인 "학력격차의 해부"(The Anatomy of Achievement Gaps)를 통해 미국 교육의 수월성, 형평성, 그리고 책무성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였고, 한국과의 국제비교를 통해 새로운 교육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옥스포드 대학 출판사 발간). 특히 미국의 낙제학생방지법의 효과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 등을 통해 모든 인종 및 사회집단 간의 학력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의 평가와 논의에 기여해왔다.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이전글 길도 별도 지도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의 교육 다음글 ‘고교 학점제’ 도입을 생각하며
칼럼 목록으로